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었다. 존경하던 인물이지만 그게 다였다. 2004년 “대통령이 한번 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어리둥절했다. 자서전 집필을 제안받았을 때도 선뜻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 6년을 이 부담스럽고 벅찬 일에 매달렸다. 2006년 7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41회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의 구술을 녹취했다. 200자 원고지 5600장 분량의 ‘김대중 자서전’에는 그의 유년시절부터 대통령 퇴임 이후까지 오롯이 담았다. 김 전 대통령이 ‘서자(庶子)’로, 두번째 부인의 3남1녀 중 맏이라는 사실도 처음 공개했다.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경향닷컴



심혈을 기울인 ‘김대중 자서전’은 29일 출간됐다. 제대로 된 ‘정본 자서전’으론 처음이다.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펜으로 되살아난 DJ의 85년 생애는 어떨까. 자서전의 마지막은 “나는 마지막까지 역사와 국민을 믿었다”는 문장으로 끝맺었다. 김 위원은 “자서전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자서전 집필을 맡기 전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 모습이었나. 직접 만나본 느낌은.

“젊었을 때부터 존경하고 흠모하던 분이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의 불굴의 삶, 한번도 꺾이지 않는, 모든 현안에 정면으로 맞서는, 조그만 섬마을에서 태어나 모든 역경을 헤치고 거목으로 거듭난 삶이 감동이었다. 직접 만나보니 인간적이었다. 집에서 청소하는 사람이나 밥하는 사람이나 모두 20년 이상 DJ 곁을 머물던 이들이다. 사람을 내치지 않더라. 측근의 자질논란이 있지만, 그 사람이 진정성을 가지고 행한 일에 대해서는 그랬다.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잘한 일은 칭찬해주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직위를 불러줬다. 나를 꼭 ‘김 사장’이라고 부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야기도 어렵게 하지 않고 유머를 구사하려고 했다. 썩 웃기는 유머감각은 없었지만 그러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 김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오열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평소에는 어땠나.

“삶을 서술하면서 눈물을 흘리신 적은 없다. 그런데 현실정치적인 발언을 많이 하니까 일각에서 원로로 대접받고 살지 왜 그러냐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울면서 ‘나는 민주주의를 위하고 민주주의 때문에 살았는데 민주주의가 위기에 닥쳤을 때 내가 당연히 말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지하에 있는 의사, 열사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니 나는 당연히 죽을 때까지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 DJ는 사실 ‘눈물의 대통령’이다. 지지자들의 눈물의 강을 타고 다시 올라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어느 시에도 그러더라. 대통령이 안 되니까 그렇게 안돼서 눈물이 나고, 대통령이 되니까 또 짠해서 눈물이 난다고.”

- 1부 집필을 끝내고 2부 집필을 맡은 시기에 김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자서전은 크게 출생~대통령 취임 직전까지 다룬 1부와 대통령 재임기~퇴임 이후까지를 담은 2부로 나뉜다. 1부를 끝내고 쉬고 있을 때 갑자기 불러 ‘자서전 편집위원’ 임명장과 만년필을 주셨다. “마무리 하라”면서. 나흘 후에 병원에 입원해 다시 못 나오셨으니 DJ가 지상에서 준 마지막 임명장이었다.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만약 그런 절차가 없었다면 자서전이 정통성의 문제도 있고, 일정이 표류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모두 정리하고 돌아가신 거다.”

- 자서전을 본 이희호 여사의 반응은.

“며칠을 잠 안자고 읽은 것으로 안다. 측근들이 저러다 병나면 어쩌나 걱정했을 정도였다. 이 여사가 자서전을 보면서 “살아계신 것 같아요, 살아계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더라. DJ도 1부 원고를 보고 굉장히 좋아했다. 일기에도 “김택근 사장은 글을 잘 쓴다”고 써 있다. 내가 한 인터뷰에서 이 글씨를 동판으로 만들겠다고 했더니 김대중 평화센터에서 제작해주겠다고 하더라.”

- 최근 남북관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때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출간된다.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DJ는 평생 두 가지 신념으로 살았다. 민주주의와 남북통일. ‘햇볕정책’이라는 건 튼튼한 안보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에 포용정책을 펴는 거다. 오늘날 우리 국력의 1/30밖에 안 되는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가지면서 한반도에 긴장감으로 몰고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것은 우리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DJ는 한반도가 외세들의 각축장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자서전은 냉전으로 해결하려는 모든 세력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민족이 나아가야 할 지침을 주는 것이다. 그가 남긴 게 뭔지 따져볼 때 참으로 평화로운 길이 담겨있다.”

- 김 전 대통령이 자서전을 통해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나.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후보단일화 결렬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쓴 것에 대해 당시 YS 측에서 대통령 후보와 총재를 독식하려고 했던 전말을 제대로 써달라고 했다. 또 대통령 재임기간 중 구속된 아들들에 대한 아픈 마음과 억울한 심정 등을 ‘이렇게 이렇게 표현해달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개헌 등 권력구조에 대해서도 써달라고 했다. 미래에 우리 정치나 국민들에게 ‘개헌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로드맵을 밝히고자 했다.”

- 김 전 대통령의 구술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있나.

“6.25 전쟁이 나서 서울에서 목포까지 피난을 가서 목포형무소에 갇혔다가 탈출해 첫번째 부인인 차용애 여사를 밤늦게 만나는 장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담판을 벌이면서 혼신의 힘을 다한 대목이 감동스러웠다. 특히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하며 재판장의 입술모양(‘무기징역’이면 입술이 모아지고, ‘사형’은 입술이 찢어지는)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순간을 이야기할 때는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자서전 집필이 힘들다가도 ‘이렇게 산 사람도 있는데 이걸 제대로 옮기지도 못하나’라는 생각으로 채찍질 했다.”

- 김 전 대통령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직설적으로 했다.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어땠나.

“처음엔 이명박 대통령을 좋아했다. ‘실용정부’라는 말에 기대를 많이 했다. 그래서 더 많이 실망했다. ‘이명박 정부는 철학이 없다’고 했다. 서민경제, 남북관계, 민주주의 등 ‘3대 후퇴’를 이야기했다. 또 오늘을 먹고 살고 오늘과 내일을 책임질 것들을 없앴다. 대표적인 게 정보통신부다. DJ가 1981년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있을 때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세계최강을 만들겠다’고 구상했던 거다. 경제위기에도 지식정보화 사회를 붙여 IT강국을 만든 것이다.”

- 김 전 대통령의 삶은 용서와 화해로 압축된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납치를 당하고도 박정희 기념관을 추진하고 내란음모죄로 내몬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자서전을 읽으면 이런 궁금증들이 해소되나.

“DJ는 옥중에서 많은 사색을 하며 내일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악한 일을 안 했는데 왜 악인들의 손에 죽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용서하는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달았다. 또 용서하는 삶이 이긴다는 것을 배웠다. 영국에서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이 일어났는데 보복정치를 했을 땐 또 다른 독재자가 나왔다. 하지만 용서하는 정치를 했을 때는 독재자가 출연하지 않았다는 거다. 김 전 대통령은 한 번도 희망을 꺾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감옥에서도 공부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거다.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지면 또 다음 4년을 준비하고. 늘 도전하는 자세,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것. 이게 대단한 거다.”

- 사람들이 자서전을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나.

“우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자서전을 통해 평화와 사랑의 기운이 한반도에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서전에도 표현돼 있지만 미래에 이 땅의 새로운 주인들이 왔을 때는 DJ가 가장 평화스럽고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걸 던진 위대한 민주투사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미래를 위해서도 이번 자서전은 소중한 민주주의 유산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 김대중 평전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진이 다 빠져서 추스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우선 자서전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다. 못 다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더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평전을 쓸 계획이다.”



- 경향신문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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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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