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직전에도 “민주주의 후퇴”…MB정부에 경고
마지막까지 ‘민주주의 화두’
“가만히 있으면 존경받겠지만 그냥 넘길 수 없어”
병중에도 범민주진영 연대 촉구 등 격정적 발언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헌화를 마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도 통곡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문제를 끝까지 자신의 화두로 붙들고자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후퇴와 역주행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자 찾아온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9개월’을 “10년 전의 시대로 전체 흐름이 역전되는 과정”, “역주행”이라고 처음으로 표현했다.




»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 42분 서거했다. 사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8월8일 일본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 직후인 14일 동교동자택에서 납치와 관련한 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1973.8.14
»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 42분 서거했다. 1980년 군사법원에서 열린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과 관련, 재판받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익환씨의 모습.
그는 당면한 문제로 민주주의의 위기, 경제위기와 서민의 고통, 악화되는 남북관계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시민사회 단체가 굳건하게 손을 잡고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범민주진영의 연대를 촉구했다.

이런 발언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통해 진전된 민주화의 성과가 흔들리는 사태에 눈감기 어려웠던 까닭으로 읽혔다. 그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가만히 있으면 그냥 존경받고 아무 소리도 듣지 않겠지만 민주화를 위해 반세기 동안 투쟁한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들을 그냥 넘길 순 없다는 뜻을 종종 말씀했다”고 전했다.

»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4일 밤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정상간 합의문에 서명하기에 앞서 두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2000.6.15 (평양=청와대사진기자단)
김 전 대통령은 올해 1월1일 국민의 정부 신년하례식에서 “현 정권은 독재자 편에 섰던 사람들”이라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를 높였다. 그는 “5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쟁취한 민주주의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을 거치며 이제 반석 위에 올랐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민주주의가 큰 도전을 받고 20~30년 전으로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재야·시민사회 지도자들과 두루 의견을 나누면서 ‘민주주의 회복’ 방도를 구체적으로 고심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어떤 선언’을 함께 하는 방법도 이런 맥락에서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김 전 대통령이 큰 슬픔을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말했다.

» 26일 김대중 대통령이 민생점검차 들린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과일 가게에서 과일가게 주인이 수박값을 묻는 대통령에게 만이천원짜리 수박을 만원에 드리겠다고 하자 즐거워하며 파안대소하고있다. 이 수박은 이희호씨가 이만원을 내고 샀다. / 2001.9.26
김 전 대통령은 그뒤 여러 현장과 인터뷰 등을 통해 한층 격정적인 발언을 잇달아 쏟아낸다. 5월28일 노 전 대통령의 서울역 분향소를 찾은 김 전 대통령은 “그가 받은 치욕을 생각하면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고 말했다. 6월11일 6·15 선언 9돌 기념식에서는 “과거 50년 동안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매우 걱정”이라며 “피맺힌 심정으로 말하는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격렬한 반발로 김 전 대통령은 한동안 정치공방의 한복판에 섰다. 서울 동교동 김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는 보수단체 회원들의 항의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항의시위에 시달리는 것은 괴로울 법한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은 매일 오후 4시 ‘동교동 회의’ 때마다 비서진한테 “오늘은 어떤 단체가 몰려왔는지”를 묻곤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게 힘든 일이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각오도 했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으로서 더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최경환 비서관은 전했다.

» 김대중 대통령이 6일 현충일을 맞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방문해 내무반에서 훈령병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논산/진천규 기자 / 1999.6.8

»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12월 10일 오후(현지시각)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식에서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에게서 평화상 증서와 메달을 받은 뒤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슬로/연합 / 2000.12.11

그러나 몸이 날로 쇠약해지는 데 따른 고뇌와 번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6월25일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등 6·15 공동선언 9돌 기념행사 준비위원들과 함께 한 오찬에서 “요즘 잠들기 전 아내의 손을 잡고 ‘우리나라에 위기가 닥쳤는데 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최대한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은 말하는 중간마다 감정에 북받쳐 목이 메어 울먹였다고 한다. 자신의 역할이 다하고 있음을 예지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남겼다. 그로부터 보름여 뒤인 7월13일 그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김재홍 교수(경기대 정치학)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대열의 전면에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서진 않았지만 상징적 구심점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라며 “그의 서거로 범민주개혁평화 진영에 일정 기간 리더십의 약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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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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