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화 / 진행  :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삶 속에는 굴곡 많았던 우리 정치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은 내란음모 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벌어진 구명운동 덕분에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에 1982년 미국 망명길에 오르는데요. 이 시간에는 이 아픈 시절을 故 김대중 前 대통령과 함께 했고 또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교육부총리로 함께 일했던 한완상 前 부총리 연결해서 정치인으로서 또 지도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모습, 추억해 보겠습니다. 한완상 선생님 나와 계시죠?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예.


☎ 김미화 / 진행  :

참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그렇습니다. 아주 어렵게 돌아가셔서 당신께서 꿈꾸던 남북 간의 평화와 우리 한국의 민주화, 이것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이런 시점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픕니다.


☎ 김미화 / 진행  :

네, 1980년대 초에 내란음모 사건을 한완상 전 부총리께서 이제 함께 겪으셨고 故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 사형선고 받으실 때도 함께 계셨고요.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그렇죠.


☎ 김미화 / 진행  :

당시 상황을 회상해주시겠어요?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그렇습니다. 제가 그때 그 사건에 휘말려서 같이 군사재판을 받으면서 가장 마음속에 감동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요. 사형구형 받고 나서 최후 진술을 하셨어요. 최후 진술하셨을 때 그 최후 진술은 정치인의 진술이 아니고 역사와 미래를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한 경륜가라고 할까, 한 사상가라고 할까, 한 종교인이라고 할까, 이런 높은 차원의 간디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최후 진술을 했는데 마지막 제가 기억나는 건 그런 말이에요. 내 죽음으로써 다시 정치 보복은 이 땅에서 끝장나길 바란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때 나는 문뜩 아, 저런 장엄한 말씀은 정치인의 입에선 절대 나올 수가 없다. 책략가 입에서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저것은 간디 같은 그런 높은 수준의 경지에 올라가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 같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딱 최후 진술하고 나서 전부 다 눈물 흘리면서 애국가를 부른 기억이 납니다.


☎ 김미화 / 진행  :

그러셨군요. 미국 망명 시절에도 故 김대중 前 대통령과 가까이 계셨던 걸로 아는데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으실까요?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은 82년 10월 23일 날 워싱턴에 도착하시고 곧 첫 번째  일요일 날 워싱턴에 있는 큰 가톨릭 성당에 미사 드리러 갔어요. 제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미사를 드리는 중에 일본 기자들 카메라맨들이 와서 사진을 찍으니까 그때 선생님이 벅차오르는 그 감동, 슬픔, 여러 가지 섞여서 아주 정말 목 놓아 우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러니까 그 울음 속에는 자유롭게 됐다고 하는 단순하게 해방의 울음보다도 아직도 나는 워싱턴에 왔지만 이 조국에는 민주주의가 아직도 꽃피지 못하고 고생하는 많은 동지들과 우리 백성들을 생각해서 우신 것 같아요.


☎ 김미화 / 진행  :

그러면 그 시절에 故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는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이겨내셨을까요?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그것은 이런 거겠죠. 이제 김대중 대통령 몸은 워싱턴에 와 있지만 민주화를 바라는 조국에 있는 많은 백성들의 성원과 기도가 있었을 것이고요. 미래에 반드시 우리나라가 정치 선진국이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겨냈던 것 같아요.


☎ 김미화 / 진행  :

故 김대중 前 대통령과는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교육부총리로 함께 일을 하셨는데 가까이서 본 지도자 김대중, 어떤 분이셨나요?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그때 교육부총리를 했는데 세계에서 최초로 학교, 보통교육, 학교의 모든 정보화 실시를 다 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먼저 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을 예를 들면 남북관계 개선에도 공헌을 했지만 정보화로 정보화를 잘 이뤄 내가지고선 세계 선진 참여 정치국가로 만드는데도 참 큰 공헌을 했습니다.


☎ 김미화 / 진행  :

인간 김대중 前 대통령을 기억하신다면 어떤 분으로 기억하세요? 인간적인 면.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인간적인 면을 보면 굉장히 센티멘털 하고요. 굉장히 뭐라고 그럴까, 겉으로 보면 아주 근엄하고 그런데요. 보면 굉장히 따뜻한 정이 많이 흘러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워싱턴 큰 성당에서 아주 복받쳐 우시던 모습,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그때 경복궁 가셨을 때도 그 우시던 모습이 내가 바로 워싱턴에서 본 우시던 모습이거든요. 그만큼 대통령까지 되신 분인데 어떤 분은 그걸 못 참느냐 그러는데 그거 아니에요. 그분 굉장히 인간적인 분이에요. 그런 인간적인 뜨거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늘 이렇게 넘쳐흐르는 것이죠. 그래서 잘 숨기는 게 정치를 잘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굉장히 비인간적인 존재죠.


☎ 김미화 / 진행  :

김대중 대통령께서 만나는 사람들 이름하고 얼굴을 절대 안 잊어버리신다고 그만큼 인간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이런 거겠죠?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그런 게 있는데 제가 겪은 건 뭐냐 하면, 대개 대통령 된 사람이나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어른은 감옥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틈이 있으면 책을 읽으시는데 한번은 1970년 중턱에 감옥에 갔다 오셔서 저하고 이야기를 할 때 내가 감옥에서 한 박사의 무슨 무슨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정치인이니까 그저 기분 좋게 하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 후에 몇 달 후에 동교동에 가서 서재에 들어가서 내 책을 빼 보니까요. 책에 여백 있지 않습니까? 책 여백에다가 깨알처럼 막 쓰셨더라고. 내 글에 대해서 비판도 하시고 그거 보고 이 분은 정말 학자 이상으로 책을 사랑하고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좋은... 그런 분이구나 하는 걸 내가 느꼈어요. 정치인들 그렇게 안 하거든요. 껍데기만 책 제목이나 보고 슬쩍슬쩍 넘어가는데 그 어른은 참 그런 점이 뛰어난 분이에요. 사람 기억하는 건 말할 것도 없겠죠.

☎ 김미화 / 진행  :

그러시겠죠. 故 김대중 前 대통령과의 수십 년 인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지금 한번 추억하신다면 어떤 일이 있을까요?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제일 추억에 남는다면 역시 아까 말씀드린 사형구형 받고 최후 진술이 제일 남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참 가슴이 아픈 것은 미국 망명 시절 저희 집에 와서 한국 음식 먹고 싶다고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육개장을 잘 끓여놨는데 저하고 국내 문제 가지고 이렇게 좀 설왕설래 하다가 내가 좀 김대중 대통령을 섭섭하게 해서 비판했거든요. 그래서 육개장 다 못 잡수시고 워싱턴 가신 것 그게 마음에 늘 부담으로 남아 있어요. 그런 건 마음이 아픕니다.


☎ 김미화 / 진행  :

예, 이미 늦긴 했지만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을 다시 만나신다면 어떤 얘기를 좀 해드리고 싶으세요?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선생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위로 드리고 싶고요. 특히 우리 김대중 선생님께서는 남북관계 평화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보화를 앞당겨서 정치 후진국에서 막 두 단계 뛰어서 정치 선진국으로 발전시킨 것에 대해서 정말 치하 드린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 김미화 / 진행  :

예,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완상 / 前 교육부총리  :

네, 감사합니다.


☎ 김미화 / 진행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완상 前 부총리였습니다. 
출처 ; MBC FM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인터뷰전문보기 http://www.imbc.com/broad/radio/fm/worldnus/interview/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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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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