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2년, 현재의 관점에서도 진취적이고 다소 파격적인 공약들을 내세우며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때 선거에서 90만 표 차이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석패했지만 당시 발표된 공약들은 그의 국가관과 통일에의 의지, 애민의식 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1971년 3월 24일 발표된 대통령 선거 공약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선 박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 계획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며 "대통령 3선 조항의 1차 중임제 환원과 부칙에 다시 개정 불가능 조문의 삽입"을 약속했다.

또 '무소속 출마금지 조항 삭제', '완전한 선거공영제 실시', '전국구제의 폐지' 등이 공약 사항으로 올랐다.

현재까지 논란이 되는 검찰 중립 문제와 관련해 '검찰의 엄중중립과 처우의 개선'도 약속했고, '중앙정보부 폐지', '일체의 정치보복과 소급법 제정 금지', '농협의 민주화 단행', '언론의 자유보장을 위한 특별 조치' 등도 눈에 띈다.

특히 '대통령의 단독책임 아래 일정시간 내 부정부패의 일소'라는 공약을 통해서는, 당시 얼마나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이를 척결하기 위한 김 전 대통령의 의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급 공무원 재산등록제 실시'와 '공무원의 생활보장과 제한되어 있는 노조활동의 허용' 등의 공약은 현재 실시 중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 공약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 정책으로는 '남북간의 전쟁에 의한 문제해결의 포기와 파괴활동의 지양으로 긴장완화의 실현', '기자교류, 서신교환, 체육교환 등 비정치적 교류의 실시', '미 소 일 중공에 의한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제에 대한 보장확보' 등을 공약했다.

경제 정책으로는 '경제성장의 결과에 따른 대중 소외와 사회적 불균형의 해소를 위한 과감한 소득재분배 정책의 집행', '부유세, 특별행위세 등의 신설로 새로운 세원의 확보와 소비의 억제', '농가수입의 극대화를 위한 강력조치로 농촌의 부흥과 국민경제 전반의 기초확립 및 식량의 자급자족 실현'과 같은 내용이 약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밖에 호화주택 건설 금지, 노조운동의 자주성 보장, 교민청 설립, 교과서 무상공급 등의 공약도 발표했다.
70년대 DJ "공무원 재산등록·호화주택 금지" 공약


그럼에도 그당시에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북한의 속국으로 전략할까봐! 빨갱이가 그리 쉽게 될까봐! 이 공약을 포기하여야만 했다.
블로그 이미지

금태양 金太陽

금태양의 세상읽기,통찰력큰사람,지식위지혜실천,과학이종교,무소유가행복,영물인김범,자유정의사랑,파워블로거,풍류선비,올마운틴MTB라이더,대금태양,웹제작 웹디자인 웹마케팅 웹기획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