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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과 노무현! 그들은 어떠한 중상 모략에도 역사의 기록되어지는 사실만을 소신껏 그리고 바르게 말한 사람들이다.

(부제) 안택수의 주특기 : 질문하고 답변 안듣기



한편, 이 동영상으로 안택수는 자기 지역(경북 예천)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대 국민들 속에서 침몰하게 되었다.

안택수 쩔쩔 매는 모습도 볼만 하지만, 말 짜르기의 대명사군요.




안택수 쪽팔리게 이런말 왜 한겁니까? 국민들 앞에서 깝치는겁니까?

" 막가자네~ 막가자시는데 어쩔수 없네. 두고 봅시다. "

안택수가 오히려 이해찬보다 더 해서는 안될 말을 그 짧은시간에 더 많이 하는군요!

국회 단상에 올라와서 협박하는 의원은 누가 뽑아준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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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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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단결
(국민참여당 / 유시민 / 2010-05-04)


6월 민주항쟁 승리의 비결 - 진보의 단결

6월 2일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야 5당과 진보적 시민단체의 대연합이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제 막바지 국면에 와 있습니다. 지난 넉 달 야권연대를 추진하면서 우리의 정치사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역사적으로 볼 때 무려 2백여년 만에 탄생한 진보정권이었습니다. 1770년대 후반 조선 정조대왕 이후 권력은 언제나 보수 기득권 세력의 수중에 있었습니다. 정조대왕 시대의 개혁정치는 주권자인 정조가 현군(賢君)이었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800년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함께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는 진보세력이 한 번도 집권하지 못한 가운데 조선왕조가 끝났습니다. 보수 기득권세력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파로, 해방정국에는 친미파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반공을 내세운 군부독재 추종세력으로 변신하면서 오늘날까지 강고한 힘을 유지해 왔습니다.

4.19 혁명으로 수립된 민주당 정권은 뿌리도 내려 보지 못한 채 군부쿠데타로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진보세력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징검다리로 삼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일으킴으로써 군부독재를 끝냈습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진보세력의 즉각적인 집권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진보세력의 집권은 10년 세월이 더 지나서야 불완전한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그나마 10년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진보세력의 집권은 왜 지연되었으며 왜 10년 만에 끝나 버렸는가? 저는 그것이 분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6월 민주항쟁 승리의 비결은 진보세력의 단결이었습니다. 1987년 6월 전국 주요도시의 길거리에서 국민들은 ‘호헌철폐, 독재타도’ 이 구호 하나만을 외쳤습니다. 항쟁의 지도부는 국민운동본부였습니다. 시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인권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사회운동단체는 물론이요 야당인 신민당까지도 모두 국민운동본부의 깃발과 지휘체계 아래 결합해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진보세력 내부에는 서로 다른 사상과 노선이 있었으며 격렬한 내부 대립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아! 나의 조국> 1987년 6월 26일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웃옷을 벗은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다탄두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에게 달려가고 있다. 19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 ⓒ 보도사진집 '그날의거리'

그런데도 1987년 6월의 거리를 뒤덮었던 것은 단 하나의 구호 “호헌철폐 독재타도”였으며 항쟁의 지도부는 국민운동본부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대중이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다른 구호에 반응하지 않았으며, 대오를 흐트러뜨리고 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행동에는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중의 힘이 1987년 6월 진보의 대단결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진보의 집권으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진보의 분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6월 민주항쟁의 승리를 쟁취했던 바로 그 시점부터 분열하기 시작했으며 23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여전히 그 분열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 진보세력은 세 차례, 성격이 조금씩 다른 역사적 분열을 겪었습니다.


진보의 분열 -사회적 정치적 지역적 분열

진보의 첫 번째 분열은 1987년 7월과 8월의 ‘노동자 대투쟁’ 때 일어났습니다. 노동자들은 6월 민주항쟁의 승리가 만들어내 자유의 공간에서 수십 년 동안 억눌려 왔던 요구를 일시에 터뜨렸습니다. 그 투쟁의 주체들은 시민사회와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여유나 경험, 역량이 없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 때 함께 싸웠던 시민들도 ‘노동자 대투쟁’과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6월 민주항쟁 이후 진보가 겪었던 첫 번째 분열, 진보의 사회적 분열입니다. 진보세력은 이 분열을 막을만한 리더십이 없었습니다. 제1야당이 평화민주당에서 집권 열린우리당을 거쳐 제1야당 민주당으로 다시 돌아온 지난 20여 년 동안, ‘중도개혁’을 표방한 자유주의 정당과 백기완 선생 대통령 후보 추대운동에서 발원해 민중당을 거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한 진보정당 사이에 계속 존재해 왔던 정치적 대립은 바로 1987년 여름 일어났던 진보의 사회적 분열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진보의 두 번째 분열은 자유주의 정치세력 안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분열입니다. 1987년 12월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벌어진 양김 분열은 자유주의 좌파와 자유주의 우파의 권력투쟁이 만들어낸 정치적 분열이었습니다. 집권할 수 있었던 유일한 야당이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분열해 각자 후보를 냄으로써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형식적 정통성과 합법성을 획득한 노태우 정권으로 변신해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결국 권력은 보수 기득권 세력의 수중에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진보의 세 번째 분열은 지역적 분열이었습니다. 1990년 1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야당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영남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이끌고 보수 기득권 세력에 투항함으로써 호남을 고립시키는 지역대결의 정치지형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소위 3당합당입니다. 김영삼 총재는 대통령이 되는 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동서 지역분열이 고착되면서 우리 진보의 사회적, 정치적, 지역적 진보의 분열이 완성된 것입니다.


민주정부 10년의 기적 - 분열의 최소화

이런 점을 생각하면 김대중 정부의 탄생은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IMF 경제위기로 보수 기득권 세력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고, 병역의혹으로 인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했으며, 이인제 후보가 경선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함으로써 보수의 득표기반을 분열시켰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김대중 후보가 보수 기득권 세력의 한 축인 김종필 씨와 연합하여 충청지역 유권자를 끌어들였습니다. 정권교체를 열망한 유권자들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김대중 후보에게 표를 몰아줌으로써 진보의 분열을 완화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김대중 후보는 40만 표를 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한 세대를 뛰어넘은 그의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결코 손에 쥘 수 없었을 승리였습니다.

▲ 지난 2003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손을 잡고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 주간사진동공취재단

노무현 정부의 탄생은 더 큰 기적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국정수행지지도가 매우 낮았고 집권 민주당이 극심한 내홍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거둔 승리였기 때문입니다. 보수세력인 정몽준 씨와 후보 단일화 드라마를 펼친 것도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은 국민들이 노무현 후보가 진보의 통합을 도모할 수 있는 후보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였던 1980년대 여러 해 동안 부산 경남 지역 노동운동을 지원했습니다. 노동자를 도우려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초선의원 시절 초기 활동은 전국의 노동쟁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노동조합을 돕고 협상을 중재하는 일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진보의 사회적 분열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6월 민주항쟁 당시의 통합된 야당을 복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사람입니다. 진보의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는 데 오랜 세월을 바쳤습니다. 그는 또한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의 영남 출신 후보로서 진보의 지역적 분열을 완화하는 데 매우 적합한 후보였습니다. 그가 획득한 1,200만 표는 진보가 세 가지 분열을 극복하고 완전한 통합을 이루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득표의 최대치에 상당히 근접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무현 대통령도 진보의 단결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진보의 사회적 분열은 더욱 심각해져 취임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참여정부와 민주노총의 관계는 적대적 대립으로 치달았고 원내 진입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야권연대라는 명분 아래 한나라당과 공조하기도 했습니다. 노사정위원회도 좌초해 버렸습니다. 정치적 분열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직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해 부산시장 후보 추천을 요청함으로써 3당합당 이전의 정당구도를 복원해 보려고 했지만, 성과는 없고 부작용만 컸습니다. 지역적 분열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탄핵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열린우리당을 지원해 영남에서 4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들고 전례 없이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그 정당은 결국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진보의 통합’이라는 정치적 소망을 성취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노무현 대통령이 좌절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그리고 국민참여당. 진보는 무려 다섯 개의 정당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다섯 정당의 지도자와 당원들이 이 분열을 어떤 논리로 정당화하든, 대중의 눈에는 이것이 분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국민참여당 역시 진보의 분열을 나타내는 현상 가운데 하나임을 저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진보란 무엇인가 - 인간을 자유롭게

진보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지니고 있겠지만, 저는 이남곡 선생이 <진보를 연찬하다>라는 책에서 제시한 개념을 따릅니다. 진보는 자유롭게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물질적 결핍, 불합리한 제도, 낡은 사고방식의 억압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진보입니다. 역사가 E. H. 카의 말처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계속해서 확대 발전된다는 믿음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만 보더라도 우리의 현대사는 국민이 이 세 가지 억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진보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은 그 진보의 역사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했던 세력을 정치적으로 대표합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대표인 한나라당 정권이 어떻게 역사를 되돌리고 있는지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 3년 차를 맞은 지금 대한민국과 국민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시민의 자유는 억압되고 있습니다. 평화가 자리 잡아가던 휴전선은 다시 대립과 증오의 현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개성과 다양성의 발현이 제약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다시 진보의 정치적 승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진보의 승리를 실현하는 열쇠는 다시금 진보의 단결입니다. 결선투표가 없는 단순다수제 대통령선거 제도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채택한 우리의 제도적 환경을 고려하면 진보는 하나의 정당으로 결속하는 것이 옳습니다. 독일처럼 모든 정당이 지지율만큼의 국회의석을 얻고 선거가 끝난 후 의회에서 자유롭게 연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진보 진영에 복수의 정당이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보의 모든 정치세력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되는 것, 이것이 역사가 요청하는 최고 수준의 단결입니다. 그런데 우리 진보세력은 그런 높은 수준의 단결을 이루고 유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섯 개 정당으로 분열된 현실은 높은 수준의 단결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결의 당위를 아무리 소리 높이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열의 원인 - 연합하는 능력의 부족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을 생각해 봅시다. 이 분열이 왜 일어났습니까.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결별하도록 한 동력은 아무리 옳은 제안을 하고 아무리 명백한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해도 내부의 정파 대립 구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경험적 절망감’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진단합니다. 건전한 노선경쟁을 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당내에서 다수파가 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따로 당을 만드는 것 말고는 소수파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것입니다.

국민참여당의 탄생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참여당 당원들은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공화정의 정신을 내부에서부터 실현하는 민주정당, 특정 지역에 기대지 않고 지역적 대립을 조장하지 않으며 정책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정책정당의 건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추구했으나 온전히 실현하지 못했던 진보적인 정책의 실현. 국민참여당 당원들은 이런 것을 절실하게 원합니다. 민주당에서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면, 열린우리당에 참여했던 것처럼 민주당에 참여해서 노력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모습 그대로의 민주당’에서는 이것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주당이 참여정부 정책노선을 제대로 계승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역주의 정치구도에서 벗어나 정책정당을 지향하려는 각오를 읽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당원에게 합당한 권한을 부여하는 정당민주주의 기본원리도 사실상 부정해 버렸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은 당원으로 참여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소망이 당의 노선에 반영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치인들이 열린우리당을 소멸시켜 버림으로써 마지막 남아 있던 한 가닥 희망조차 다 없애버렸던 것입니다. 참정권을 행사하고 싶은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정당을 스스로 만드는 것 말고 다른 어떤 대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국민참여당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민주당을 비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국민참여당을 태동시킨 현실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통합의 조건 - 정책, 당원제도, 문화

우리의 진보세력은 연합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많은 공통점과 적지 않은 차이점을 함께 지닌 다양한 진보세력이 연합하는 최고 형태는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미국 민주당처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정책, 제도, 문화입니다.

▲ 지난 3월 8일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5당과 시민단체가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정책연합과 관련한 1차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 뉴시스

첫째, 당의 기본정책을 합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6.2지방선거 연대를 위한 ‘5+4 연대회의’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공동정책 합의를 했습니다. 이라크 파병,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정규직 입법 등 날카로운 대립을 일으킨 정책쟁점을 제외하고 지방행정 관련 정책만 다루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공동공약을 만들기는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 야 5당이 중대한 정책적 쟁점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둘째,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당원제도가 필요합니다. 부분적으로 상이한 지향을 가진 세력이 모인 연합정당에는 다수파와 소수파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의 정당에서 높은 수준의 연합을 이루고 유지하려면 당내 소수파의 존립을 보장하는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소수파가 다수파에게 승복하려면 당내 경쟁 규칙이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모든 의사결정권을 다수파가 독점하여 소수파를 배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오늘의 소수파가 내일은 다수파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당원제도입니다. 당원의 자격요건과 권리가 명확해야 하며, 당 지도부와 공직 후보를 선출할 때 당원들이 직접 또는 대의원을 통해서 당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의 소수파가 자기의 노선에 동의하는 당원을 더 모으거나 기존 당원들의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내일은 다수파가 될 수 있는 길을 늘 열어두어야 합니다. 국회의원과 직업정치인, 소수의 리더가 당원들을 지배하고 동원하는 것을 허용하는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당원제도로는 소수파를 지속적으로 통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쟁을 통한 내부 권력교체의 길이 봉쇄된 정당은 민주적인 정당이 아니며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신뢰의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한번 공정하고 합리적인 당원제도와 경쟁의 규칙에 합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규칙을 준수하며 반칙을 반드시 응징한다는 신뢰가 뿌리내려야 연합정당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규칙과 제도는 사람이 만듭니다. 일시적으로 의사결정권을 장악한 다수파가 그 권력을 악용하여 합의된 제도와 규칙을 파괴하면 연합정당은 존속하지 못합니다. 열린우리당의 소멸은 그렇게 해서 벌어진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국민참여당 당원들 가운데는 열린우리당을 경험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새로운 정치를 약속하고 대통령 탄핵 역풍 덕에 총선 승리를 거두었던 열린우리당 다수파가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창당 때 합의했던 당원제도를 공격했고 결국 그 정당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여당 당원들은, 정당개혁에 관한 한 민주당 지도자와 국회의원들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6.2지방선거 - 진보연합의 시험대

이런 이유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진보진영의 여러 세력들이 하나의 정당 안에서 높은 수준의 연합을 이루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서로 싸우면서 분열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들이 진보의 단결을 원하고 있으며, 단결하지 않으면 어느 정당도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진보진영이 모두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는 높은 수준의 단결을 이루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낮은 수준의 연합마저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을 달리하면서도 정책연합을 하고 선거연합을 하고,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한 다음 연합정부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연합은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선거를 통해서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이 빼앗아간 권력을 되찾고, 4대강 죽이기와 부자감세, 기본권 탄압과 국가재정 파탄 등 국민을 해치고 나라를 망치는 나쁜 정책을 중단시키고 진보의 좋은 정책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민참여당의 탄생이 진보진영 분열의 끝이자 연대와 통합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민참여당은 작년 겨울부터 야 5당과 시민사회가 정책연합-지방선거연합-공동지방정부 수립-2012년 총선과 대선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연합노선을 제안했고 지금까지 ‘5+4 지방선거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습니다. 진보의 대연합으로 지방선거 승리를 쟁취하고, 그 성과를 발판삼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연대하기 위한 상설협의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분열과 패배의 쓰라린 기억이 있던 자리에 연대와 승리의 행복한 경험을 채워 넣음으로써 진보를 지향하는 모든 정당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진보세력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여 높은 수준의 연합을 실현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경기도 선거 - 연합정치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자

경기도지사 후보단일화 절차에 합의하지 못한 것이 전국적 지방선거 야권연대 협상 결렬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웠고, 그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협상을 중재했던 시민단체 지도자들을 볼 낯이 없었습니다. 야 4당이 전국적 야권연대에 합의하지 못한 데에는 더 결정적인 다른 요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저에게도 큰 책임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저와 김진표 후보는 경기도지사 후보 문제만 따로 떼서 직접 협상했고 마침내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 민주당 김진표 후보(오른쪽)와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왼쪽). ⓒ 오마이뉴스

경선규칙을 협상하는 분들께 양보하고 또 양보하는 마음으로 협상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상대가 제안하는 규칙이 우리 쪽에 불리하더라도 단일화를 원하는 국민들 여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제가 단일후보가 되면 되는 대로, 김진표 후보가 되면 또 그대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반드시 야당이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대협상 결렬로 큰 어려움에 처한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에 대해서 민주당이 진보진영의 맏형답게 넉넉한 배려를 해 주기 바랍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가 이긴다고 해도 원만하게 행정을 꾸려나가려면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 뒷받침을 받아야 합니다. 기초단체장 후보와 광역의회 후보 단일화에 민주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도덕적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진보의 단결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보의 단결을 호소합니다. 민주당 당원들은 왜 민주당이 진보 전체를 아우르는 정당이 되지 못하며 혼자 힘으로 한나라당을 넘어서지 못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과 우리 국민참여당 당원들 역시 자기들이 그토록 혹독하게 비판하는 민주당이 훨씬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를 헤아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진보의 단결과 국정의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소망을 받들기 위해 노력합시다. 서로서로 상대방 눈에 비친 내 눈의 대들보를 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6.2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도 더 넓고 튼튼하게 연합할 시간이 있습니다. 야 5당과 시민사회가 손잡고 이번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빛나는 승리를 발판삼아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적 연대를 추진해 갑시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국민이 우리를 살펴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2010년 5월 4일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 유 시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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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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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의 도시락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특별히 식사약속을 잡지 않은 날엔 보통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스케줄에 따라 이동하는 차량에서의 식사도 마다 않는다.
ⓒ 남소연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로 연일 민심을 돌보느라 바쁜 가운데에서 차량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한명숙총리


"제가 참 밑바닥에서 별별 고초 다 겪었어요"

 

  
한명숙 전 총리와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
ⓒ 한명숙 전 총리 미니홈피
한명숙

 


한명숙 전총리, 이명박과 한나라당, 검찰의 정치탄압 시나리오에 의해서 죽음직전까지 갔다가 당당하게 살아 돌아온 여전사!
노무현대통령의 죽음이 한스럽다.

이번 사건은 집권정당에 의해 자행된 1970년대에나 있을 법한 사건으로 역사교과서에 ' 한명숙 정치탄압사건 ' 이라고 기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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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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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에 소설이라는 장르가
우리 생활의 상식을 너무도 많이 지배한다는 사실의 위험성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이 진실로써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추적을 하는 증인과 증언의 작업이 꼭 필요하겠지만.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추측을 단지 여론환기와 관심, 재미, 문제제기 측면에서 다루어지는 결과물은 그것이 진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사실이 아닌, 진실이 아닌, 거짓의 글들이 사실이고, 진실이냥 많은 이들의 호주머니돈을 꺼내게 하는 것이 있다.
소설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런데, 이러한 소설의 경우는 거짓을 다루어도 사회에 지탄이나 반감을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의 통로일 것이다.
허구를 인정하는 소설은 유일한 진실을 규정하지 않아도 되는 분출의 장인 것이다.
(독자들은 소설을 선택할때 이점은 항시 유념해야 하는것이 좋겠다.)



그러나, 사회는 오래된 소설의 내용이 사실과 진실로 굳어지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설을 접하는 독자나, 시민들은 '소설은 허구이다' 라는 전제를 가지고 모든 책을 접해야 할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추적를 보면서 이휘소박사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1) 이휘소는 한국이나 북한, 미국 등등의 어떠한 목적을 가진 테러리스트에 위해서 살해 되지 않은 우연한 단순 교통사고 였을 뿐이다.
- 그분의 공적과 업적에 비해서 그의 목숨이 짧게 끝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그의 죽음을 의문사, 타살로 의혹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간 수사결과나 증거, 증언등을 종합해 볼때 그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 였을 것이다. 

사고지점전에 타이어를 고의로 펑크내키고 그 지점에서 이휘소 박사의 차쪽으로 가해자 트럭이 달려가게 하기 위한 고위성은 실험결과 거의 확률상 불가능한것이다. 다른 방향으로도 언제든지 차가 꺾여 갈수도 있는 것이다.




2) 이휘소박사는 공석하선생이 쓴 " 소설 이휘소" 나, 김진명 장편소설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에 나온 핵무기 개발에는 전혀 연관되거나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 이들 책에서만 쓰여진 100% 허구인것이다.
 
- 박정희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났다는 것도 소설로서 극적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쓰여진(독자들의 주머니돈을 털어내기 위한 요소일뿐) 허구일 뿐이지, 실제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휘소 박사의 가족들이나 고인의 미망인도 소설에 내용데로 핵개발에 연관되어 죽었다는 내용에 대해 분개하였고, 그 저자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한 사례를 통해 알수도 있다. 

그 소설에 내용으로 인해 위대한 과학자인 이휘소의 명예를 순수과학자가 아닌 정략적 과학자로 변질시키지 말라는 것이였다.


이휘소는 그저 평범한 순수 과학자이자 소립자 물리학 연구가였을 뿐이였다.


물론, 그 분야에서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위대한 과학자였다.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수석들이 모인 엘리트들 중에서도 군계일학으로 손꼽히고 그의 이름이 칭송되는 인물일 뿐이다.

또 하나, 이휘소박사가 연구한 소립자 물리학하고 핵물리학하고는 분야가 완전히 다르다.  연구분야가 전혀 일맥상통하지 않기에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연구는 전문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거의 날조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3) 이휘소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었다.

- 나라와 연구기관들은 제발 건물과 시설에 투자하지 말고, 사람과 기술에 투자하라고 하였다.

- 그리고 책만 보는 이론상의 공부보다는 연구와 독창적인 비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 이휘소박사는 산업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과 수익이 발생되는 생산의 연구만 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기초이론의 공부가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기술만 개발하여 수익과 돈벌이만 생각하는 투자로 인한 성장은 반드시 기초이론분야에서 근본적으로 투자한 나라의 국력에게 역전을 당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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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 서울시장 출마 - 서울을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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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주기 기념,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출간
인간 노무현, 인권운동가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의
꿈과 희망, 실패와 좌절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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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기념 출간!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이 책을 펴냅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왔고 앞으로도 더 나오겠지만, 출생에서 서거에 이르기까지 인생역정 전체를 기록한 ‘자서전’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 문재인


 

노무현재단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맞아 ‘노무현 사후 자서전’을 펴냈다. 고인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과 각종 인터뷰 및 구술 기록을 토대로 출생부터 서거까지 일목요연하게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 기록을 일관된 문체로 정리하는 작업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았다.


 

이번 자서전은 노 대통령 안장식 직후 ‘봉하 전례위원회’가 유족들의 동의를 받아 유시민 전 장관에게 정본 자서전 형태의 출간작업 정리집필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유 전 장관은 2009년 8월부터 2010년 2월까지 꼬박 6개월 동안을 정리작업에 매진했다. 고인의 모든 자필, 구술 기록물들을 살펴 일대기로 정리하고, 빈틈은 유족과 지인들의 인터뷰, 공식 기록 등을 통해 보완했다. 또 고인이 남긴 여러 기록들 중 퇴임 후 서거 직전의 미완성 회고록 노트를 기본으로 문체를 통일하는 작업도 거쳤다. 유족과 재단 관계자들, 그밖에 가까이에서 고인을 지켜봐 온 지인들의 검토를 통해 사실 관계를 철저히 확인하여 오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하였다.


 

자서전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는 자서전의 집필 시점(고인이 회고록 초안을 위해 메모를 시작하는 시점)인 서거 직전의 상황을 담고 있다. 1부 ‘출세’는 출생에서부터 부산상고에 입학해 공부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까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 ‘꿈’은 부림사건을 맡은 이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게 된 이야기부터 정치에 입문해 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경선에 나서기 전까지 이야기가 담겼다. 3부 ‘권력의 정상에서’는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부터 대통령 재임기간의 일을 담고 있다. 4부 ‘작별’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 새로운 꿈을 꾸고 실패한 후 서거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정리자인 유시민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상황을 정리했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상임이사가 감사의 말을 썼다.


 

자서전은 두 종류의 판본으로 만들었다. 양장본은 특별히 부록 화보를 추가하고 독특한 케이스에 담아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뜻깊은 선물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반양장본은 더 편리하게 책을 활용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실용적으로 만들었다. 양장본과 반양장본 모두 본문에 올 컬러 사진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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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년, 서거 1주기를 맞아 출간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지난 일 년간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며 자서전을 정리한 유시민 후보와

참여정부 인사들이 다시 봉하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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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에 자서전을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시면 회고록을 유시민 후보가 쓰기로 

약속을 했었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당신의 자서전 조차 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시고

유시민 후보는 회고록 대신 대통령의 자서전을 써서 당신의 묘역에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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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평생의 동지이자 벗이었던 분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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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대통령님도 읽고 계시겠지요?

님의 어린아이처럼 해맑던 웃음이 그립습니다.   

 

 

 

사진 출처 - 봉하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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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겉에서 보기 보다 매우 가정적" 
[인터뷰] 대선후보 유시민 부인 한경혜씨, 79년 예비고사 제주도 전체수석 '유명세'


2007년 08월 29일 (수) 07:53:06 양김진웅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 꿈'을 위한 대선 주자들의 제주행보가 잇따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자의 모습에도 시선이 쏠리기 마련. 특히 대통합민주신당 9룡 후보 가운데 최근 제주를 방문한 유시민 후보(49)의 부인 한경혜씨(46)는 제주출신이란 사실이 점차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지난 26일 제주를 찾아 공식 출마선언을 한 유 후보는 부인 한씨와 4.3 평화공원을 방문, 나란히 참배를 올린 내용이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 제주시 남문통에서 낳고 자란 한경혜씨는 대학시절 만났던 유시민 후보와 88년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정치적 후견인으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씨는 아버지 본적이 제주시 조천읍일 뿐 어릴적 부터 낳고 자란 남문로터리 제주의료원(옛 도립병원)근처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초.중.고를 다녔다. 결혼 후 경기도 일산에 둥지를 튼 그는 지금도 제주에 올 때마다 제주여중.고 동창생을 만나 '수다'를 나눌 정도로 고향 벗들과 두터운 정분을 나누고 있다.

 

한 씨의 일가 친인척엔 유명한 공직자들이 적지 않은 내력을 갖고 있다. 현재 조천 비석거리에  이름이 올려진 독립유공자 한만숙옹을 비롯해 외가에는 초대 제주지방법원장을 지낸 최원순씨가 있다. 60~70대 사람들에게 '최판사집'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초대 농업고등학교장을 지낸 최계순씨가 외할아버지며, 초대교육감이자 신성여중.고 설립자인 최정숙 교육감은 이모뻘이다.

 

79년 예비고사 당시 제주도 전체수석을 했을 정도로 '수재'였던 그다.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 92년부터 2000년까지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구텐베르크 대학에서 수학사를 전공한 '수학박사'이다. 수학사는 국내 대학에는 흔치 않은 학문으로 역사와 철학, 수학의 접경에 있는 학문분야다. 현재 인하대와 순천향대에서 '대우교수' 직함을 갖고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의 중.고등학교의 한 친구는 "중학교때까지 활발했었는데 이후 말수는 줄었던 것 같다"며 "공부만큼은 지독해 책 12권을 쌓아놓고 한꺼번에 읽은 적도 있다"고 기억했다. 열 한살 터울로 1남 1녀(고 1학년과  초등교 1학년)를 둔 그는 언뜻 평범해 보였지만 한 때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일했을 정도로 어두웠던 시대에 맞선 '뜨거운 젊은 여성' 중 한 명이다.

 

유 후보의 대선 행보로 인해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그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와 아내가 보는 대선후보 유시민에 대해 들어봤다. 유 후보와 부인 한씨는 3살차. 학번으로는 78학번과 80학번으로 입합하자 마자 광주항쟁이 터져 모든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하고, '새시대가 오지 않을까하'는 강렬한 희망을 갖고 있던 학생 중 한 명 이었다고 기억한다. 여고시절에는 학도호국단 당시 단지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연대장'을 맡았던 기억도 새롭다.

 

-아내가 보는 남편 유시민은 어떤 사람인가?

 

"보기와는 다르다. 원칙적이고 딱딱하게 보이지만 (집안에선 그렇듯이)누구보다 부드럽고 가정적이다. 뭐랄까,집안 내력인 것 같다. 남편은 2남 4녀를 둔 가정에 태어나 '여성적'인 감수성이 풍부한 반면 오히려 저는 4남 2녀 중 5섯 번째로 '남성적'인 스타일이 강하다. 그래서 서로가 보완되는 측면이 많다. 특히 가정환경에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아들딸을 차별없이 똑 같이 대하는' 풍토에서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밴 것 같다."

 

-언제 유 후보를 만났나. 유 후보 여동생의 친구라고 하던데.

 

"당시 학생 유시민은 서클 친구의 오빠였다. 당시 서울대 대의원 의장으로 멀리서만 봤다. 마르지 않은 체격에 다소 건장해 보였다(실제 유 후보의 키는 174cm다. 목이 길어 TV화면에선 작아보인다고 한다). 그 무렵 유 후보는 시위하다 잡혀 보안사에 갖혔다가  군대를 갔다오기도 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창립회원으로 활동했던 그를 만나 그후 88년 11월에 결혼했다. 시대적 상황에서 볼 때 유신시대의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 의식만을 갖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만난 남편은 다소 이념적으로 경도된 이들과는 달랐다고나 할 까. 좀 더 현실적이고 균형감각이 있는 면을 갖고 있었다. 그게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점으로 보였다. 그게 매력의 전부는 아니지만...(웃음)"

 

-그 때 당시의 대학생활은 어땠나, 지금 되돌아 본다면

 

"20대에서는 누구나 그렇듯 흔쾌한 기억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 뭔가 주위에 죄를 짓고 있다는 기분이랄까. 그런 생각들이 지배했던 시대였던 것 같다. 그 때 강렬한 시대를 만났던, 모두가 시대에 빚을 든 느낌이었을 것이다. (밝히고 싶지 않지만) 결혼전에는 전태일기념 사업회에서 조금 일을 했다. 시대의 진 빛을 갚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던 흔적들이다."

 

-언제부터 유 후보가 정치적인 길로 들어선 것인가?

 

"그는 성향으로만 본다면 정치적 성향은 아니다. 호불호가 강해서 정치를 제대로 해낼까라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소신이 강한데다 대중을 이해하려는 힘이 누구보다 강했다. 어쩌면 그가 걸어온 길에서 나타나듯이 시대적 여건 속에서 떠밀리는 상황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오지 않았나 한다.

(유 후보는 결혼하기 직전인 1988년 9월부터 이해찬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했다가 결혼 후 1991년 2월경에 그만뒀다. 이후 92년 함께 독일 유학을 떠났다. 각각 수학사와 경제학을 전공으로 했던 그들은 한 씨는 박사학위까지 유 후보는 석사만 마치고 2년간 한겨레신문 국제부 해외통신원(독일)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후 독일에서 돌아와서 일산에서 둥지를 틀었다.)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남편에 대해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상대방(남편)도 만찬가지겠지만 서로 취향이 다르다. 보기와 다르게 축구와 낚시, 당구도 좋아한다. 전 음악을 좋아하고 공연관람을 즐기는데  서로 다르다. 그는 제주도 올 때마다 낚시를 할 정도로 '낚시광'이다. 그만큼 같이 보내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다른 후보와 달리 경조사를 돌아보는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정치활동에 애로도 있다. 하지만 지역구가 비교적 넓지은데다 젊은 유권자 층을 비롯해 내용을 갖고 평가해주는 유권자들이 많아 두번이나 당선된 것 같다. 물론 매스컴의 주목이 많은 도움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유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과 너무 닯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제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국정운영에 직접 참가하면서 이전에 원칙만 강조했던 부분에서 현실과 어떻게 절충하고 타협하느냐의 문제가 현재 비쳐지는 변화의 모습이 된 것 같다. 노 대통령과의 문제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결정을 따라줘야 한다는 입장일 것이다. (유 후보는) 실존적인 측면에서 자유주의의적인 입장이 있다. 가령 FTA, 이라크 파병문제 등 대통령의 고충을 헤아리는 과장에서 입장 변화가 생기지 않았나 한다."

 

-제주에는 가끔 오는 편인가, 유 후보는 제주나 경주에서 살고 싶다고 애기했는데..

 

"어려웠던 유학시절에도 1년에 한 두차례 제주도를 꾸준히 찾았다. 단 한번도 제주도를 잊어본적이 없다. 지금도 제주에서 부부동반으로 만나는 고교친구들이 10여명이 있다.(이날 기자와 만나는 한 씨는 고교 동창 3명과 함께 나왔다). 유 후보와 선거 관련한 동행은 처음이다. 이제 막 걸음을 떼려 하고 있다. 고향이어서 반겨주는 사람이 많아 편안한 기분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남편이 대선 후보다. 어떤 자세로 임했으면 하는가?

 

"저도 그렇듯이, 일단 수구보수적인 성향인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깊이 있었을 것이다. 역사의 반동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상 곳곳에 남아있는 수구적이고 보수적인 모습들을 조금 변화시키고, 약간의 힘만 실어준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선거라는게 꼴지도 당선될 것 같은 환상이 있고 그게 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동안은 역사를 뒤로 돌리지 않는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혈연과 동창회, 인척을 갖고 말하기 보다 공약과 정책, 비전을 갖고 말했으면 한다. 그게 들리고 통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남편과 함께 4.3평화공원을  방문했는데 첫 느낌은 어땠나

 

"사실 4.3평화공원은 처음 방문했다. 문득 광주를 역사적 사실로만 여긴 채 먼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4.3도 그랬다. 처음 4.3평화공원을 방문해 조형물만을 봤을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후 위패봉안소에 마련된 빼곡히 적힌 명패를 봤더니 무언가 모를 '전율'을 느꼈다. 결코 먼 옛날의 사건이 아닌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상투적이지만 다시는 이런 아픔이 되풀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1962. 제주시 삼도1동 출생
1968. 3 ~ 1974. 2 제주 남초등학교
1974. 3 ~ 1977. 2 제주여자중학교
1977. 3 ~ 1980. 2 제주여자고등학교
1980. 3 ~ 1984. 2 서울대 수학교육과 졸업
1988.11. 유시민과 결혼
1992.10 ~ 1997. 6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학(석사)
1997. 7 ~ 2000. 6 독일 마인츠 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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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펀드> 마감, 3일 만에 40억 초과

1300명 약정자들 입금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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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펀드>가 마감되었다. 4월 19일에 시작한 펀드가 22일 9시 30분, 사흘 만에 41억이 입금되어 통장계좌를 닫았다. <유시민 펀드>의 상한액은 40억 7천 3백만원으로 경기도지사 선거 법정선거비용 상한액이다.

 

○<유시민 펀드>는 유시민 후보 본인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예비후보후원회제도가 없어진 현재, 현역 정치인이 아닌 유시민 후보는 5월 13일 후보자 등록신청일까지 후원회를 할 수 없다. 깨끗한 선거자금으로 선거를 치르고자 고민한 후보와 선대위 관계자들은 약정액을 입금하면 CD금리 2.45%로 8월 10일에 원리금을 전액 갚는 방식으로 선거비용을 공개모금을 하기로 했다.

 

○<유시민 펀드>는 약정희망자들이 유시민 후보 홈페이지(www.usimin.net) 펀드 게시판에 정확한 개인정보를 올리면 계좌번호를 따로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지자들이 무기명 후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일정액수를 약정한 8000여 명 중에서 아직 입금을 못한 1300명은 더 이상 입금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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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참여자들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적금을 깨고, 중국펀드를 깨고, 성형수술을 취소했다는 등의 개인 소개를 남겼다. 어떤 참여자는 “암수술 치료비를 내겠다“고 게시판 댓글을 남겨서 캠프 관계자가 직접 통화하여 말리기도 했다. 국내외 많은 펀드 참여자들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꼭 유시민 후보로 단일화되어 김문수 지사를 이기기 바란다며 승리를 기원했다.

 

○유시민 후보 선대위 이정상 홍보본부장은 “펀드가 3일 만에 마감되는 바람에 온라인팀이 시리즈로 올리려 했던 펀드광고 홍보물을 <감사인사>로 바꾸는 중이다”며, “이렇게 빨리 마감될 줄은 우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시민 후보 선대위 김희숙 대변인은 “답답한 정치상황 속에서 뭔가 지지의사를 표현할 방법으로 펀드를 선택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펀드모금은 ‘단일후보가 되어서 끝까지 뛰겠다’는 다짐을 담은 것이다”고 덧붙였다. 유시민 후보는 김문수 지사와 대결하는 본선에서 15%이상 득표해야 선거비용을 보전 받는다.

 

○유시민 후보는 “과분한 사랑과 귀한 정성을 40억의 몇 배가 넘는 노력과 헌신으로 반드시 갚겠다.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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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항쟁

1987년 6월 9일, 다음날 열릴 예정인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후의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22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일부 전경이 시위진압 도중 시위대를 겨냥해서 최루탄 SY44를 총처럼 수평으로 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머리에 맞은 것이다.

당시 이한열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같은 대학 학생 이종창에 의해 부축당한 채 를 흘리는 사진을 당시 로이터 사진기자였던 정태원이 촬영[1]중앙일보, 뉴욕 타임스 1면 머릿기사에 실리기도 하면서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의 잔인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장례

87년 7월 9일 '민주국민장' 이라는 이름으로 장례식이 진행되었는데, 연세대학교 본관 → 신촌로터리서울시청 앞 → 광주 5·18묘역의 순으로 이동되며 진행되었다. 당시 추모 인파는 서울 100만, 광주 50만 등 전국적으로 총 160만 명이었다고 한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한 청년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전두환 정권의 잔인성에 대해 전 국민적인 분노를 이끌어 내었고 6월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독재정치야 듣거라! 이번이 마지막이다!
앞으로도 다시는 이 땅에 독재하는 놈을 대통령으로 뽑아주거나 남아난다면.........
 
국민들아 듣거라! 이 아까운 목숨들을 희생한다고 울부짓지나 말고. 
그토록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당신의 손가락을 자르자고 맹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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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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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을 찾아, 공동대책위원회 회의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한명숙

한명숙 전 국무총리 무죄판결 후폭풍이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책임론으로 번지고 있다. 한명숙공동대책위원회(이하 한명숙공대위)는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소재 노무현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법무장관 및 검찰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한명숙공대위는 "한명숙이 무죄면 유죄인 사람들이 있다, 그 유죄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며 이 같이 요구했다.

 

공대위는 먼저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해 "전임자 예우 잘 하겠다고 해놓고 비루한 보복수사로 전직 대통령의 참담한 서거를 맞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직 총리가 똑같은 수법으로 이런 황당무계한 일을 당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며 "대통령이 비겁하게 뒤로 숨을 일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과 관련해서는 "국회에서 혐의 입증이 충분한 것처럼 말하면서 허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시치미를 떼는 등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며 "부끄럽게 자리를 지키지 말고 책임지고 깨끗이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공대위는 김준규 검찰총장을 향해서도 "취임하면서 수사관행을 고치겠다고 했지만 물불 안 가리고 무고한 사람 엮으려다 검찰이 법정에서 사상 초유의 굴욕을 겪는 일이 발생했다"며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해 책임지고 물러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권력 사주 없이는 불가능한 사건... 검은 권력 실체 드러내야"

 

공대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는 "피의사실이 <조선일보> 1면에 보도되고 판결 하루 전 또다른 혐의를 씌우는 게 권력의 사주 없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며 "검은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공대위는 또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위반 수사와 관련 "명백한 흠집내기"라며 수사 중단을 촉구했다.

 

공대위는 "검찰의 수사는 무죄판결을 염두해 둔 치졸한 '망신주기 수사'이자 한 전 총리가 다른 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불법 선거개입 정치수사"라며 "한번 찍으면 끝까지 괴롭히는 조폭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냐"고 꼬집었다.

 

  
한명숙공동대책위원회가 11일 오전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에서 대통령 사과와 법무부장관·검찰총장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한명숙공대위

공대위는 검찰 개혁에 나설 뜻도 분명히 밝혔다. 공대위는 "대통령 사과, 법무부 장관-검찰총장 사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검찰이 국민이 낸 세금과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허투루 쓰고 함부로 남용하는 일에 대해 국민과 함께 근원적 혁파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찬 전 총리도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 검찰이 얼마나 사악하고 치졸한 권력의 앞잡이었는지 입증한 사건"이라며 "검찰이 전혀 있지도 않은 사실로 기소하고 인격모독 하는 것을 보면서 검찰 개혁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은 지금까지 한번도 반성하거나 자기 개혁을 한 일이 없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민과 함께 대대적인 검찰 개혁 운동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은  "검찰이 애당초 죄가 되지 않는 사실을 조작하고 죄를 덮어씌워 먼저 기소해 놓고 나중에 증거를 찾아 해메는 코미디를 보여줬다"며 "검찰이 정치권력이 지명하는 거물정치인에 대해 사실을 조작해 죄를 만드는 범죄제조기라는 사실을 판결로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박 최고위원은 "더 이상 검찰이 국민의 인권을 위협하는 흉기가 아니라 보호막이 되도록 개혁이 이루어져야한다"며 "민주당은 다른 야당과 힘을 합쳐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검찰 개혁을 이루는 역사적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법정에 선 이명박 정권, 국민이 심판해야"

 

"공작수사, 표적수사를 자행한" 이명박 정권을 지방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번 사건은 권력 정점의 뜻이 전달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권을 국민의 법정에 세우고자 한다, 국민이 심판해 달라"고 말했다.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도 "이명박 정부는 수십만 촛불의 외침도 듣지 않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는 조문객들의 울음과 호소도 외면해 왔다"며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고 검찰의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거혁명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한명숙 전 총리는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한 전 총리는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 공대위 회의에 참석해 이번 재판 결과의 소회를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지난 4개월 동안 당해보니 터무니없는 사실로 망신과 모욕을 주는 참으로 견디기 어렵고 험난한 과정이었다"며 "그런데도 검찰은 선거를 앞두고 또 시작이다, 참으로 사악하고 치졸한 정권이다"라고 말했다고 양정철 공대위 대변인이 전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1일 오전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을 찾아, 이해찬 전 국무총리,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등 공동대책위원회 회의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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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11일 오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린 법회에서 '안상수 외압 폭로 기자회견'을 막기 위해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이 직접 김영국 거사를 회유협박했다는 등 청와대 직접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 권우성
명진스님
  
▲ [풀영상②]"이동관이 직접 회유... 나중엔 욕설도"
ⓒ 오대양
봉은사

[기사 보강 : 11일 오후 2시 40분]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봉은사 외압은 모두 사실이다"고 말한 김영국(전 조계종 총무원장 종책특보, 현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씨의 기자회견을 막기 위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직접 나서 회유·협박했다고 명진 스님이 폭로해 파문이 예상된다.

 

조계종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11일 강남 상성동 봉은사에서 열린 법회에서 "김영국 거사가 기자회견을 하기 전날 대통령 직속기구에 소속된 인사를 만났는데, 이 인사가 그 자리에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전화를 해 직접 김 거사를 바꿔줬다"며 "당시 이동관 수석은 김 거사에게 '선거법 위반으로 사면 복권이 아직 안 됐을 텐데, 모두 풀어줄테니 기자회견 하지 말라, 네가 원하는 것 다 해주겠다'고 회유했다"고 말했다.

 

이어 명진 스님은 "김 거사가 기자회견을 취소할 수 없다고 하니 이동관 수석이 전화기에 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다 했다"고 김 거사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김 거사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성남시장 후보를 돕는 과정에서 선거법을 위반해 피선거권이 제한된 상태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11일 오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린 법회에서 '안상수 외압 폭로 기자회견'을 막기 위해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이 직접 김영국 거사를 회유협박했다는 등 청와대 직접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 권우성
명진스님

 

"청와대가 봉은사 사태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명진 스님은 "이 정도로 청와대가 봉은사 사태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며 "그런데 청와대는 무엇이 두려워 김 거사의 기자회견을 막나, 이렇게 더럽고 추잡한 회유와 협박을 하는 걸 보면 이명박 정권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 지극히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동관 수석은 11일 오후 미국 출국에 앞서 보좌진을 통해 "이미 밝혀듯이 김영국씨와 통화한 적이 없다"며 "그런데도 왜 터무니없는 발언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명진 스님의 폭로를 부인했다.

 

이어 청와대 홍보수석실 쪽은 "해당 발언이 어떻게 나왔는지 따져본 후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봉은사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6일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7일 "(이동관 홍보수석)의 개입은 사실이 아닌 걸로 안다"며 "이 수석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명진 스님은 자승 현 조계종 총무원장이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돕기 위해 노골적으로 나섰다고 주장했다

 

명진 스님은 "지난 2007년 대선 막바지에 당시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을 맡고 있던 자승 스님이 힐튼 호텔에서 이명박 후보 측과 회동을 가졌다"며 "이 자리에서 자승 스님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건배사를 했다, 이게 중이 할 짓이냐"고 폭로했다.

 

이어 명진 스님은 "봉은사 직영 사찰 전환 안건을 조계종 중앙 종회 총회에 상정한 지난 3월 3일 원담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이 청와대에 들어갔다"며 "원담 스님은 왜 그날 청와대에 들어갔는지,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밝히라"고 촉구했다. 

 

원담 스님은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11일 오전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다래헌을 나오고 있다.
ⓒ 권우성
명진스님
 
  
▲ [풀영상③]"불교 개혁의 싹이 봉은사에서 올라오고 있다"
ⓒ 김윤상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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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한명숙 노 前대통령 묘역서 눈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10일 선고 이후 첫 행선지로 부산과 경남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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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0일 낮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시묘역에 참배한 직후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고,부산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전 총리가 친노세력 재결집을 위한 본격 행보를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 전 총리는 이날 낮 12시20분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고,사저에서 권양숙 여사와 오찬을 함께 했다.

 한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길고 험난한 길을 뚫고 무죄판결을 받은 후 노 전 대통령을 꼭 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국민이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저를 지켜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의 봉하마을 방문에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기지사 후보인 김진표 전 국무총리,김정길 전 행정자치부장관,이광재 의원,임종석 전 의원,정윤재.최인호 전 청와대 비서관 등 친노인사가 대거 동행했다.

 그는 이어 부산으로 이동,서면 교보문고에서 자서전 ‘한명숙: 부드러운 열정,세상을 품다’ 사인회를 가졌다.

 부산시장 선거출마를 선언한 김정길 전 장관과 저서교환 행사를 가진 한 전 총리는 “부산시민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고,발전시키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역사 속에 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에서 저서 사인회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를 수행한 정윤재 전 비서관은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 중인 한 전 총리가 부산.경남지역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과 정책공조 등을 통해 연대할 경우 상승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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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뜨거운 사람이다. TV 시사토론 진행자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첫 출근길에 ‘복장 검열’에 걸리더니, 정치 입문 후 진행자에서 패널로 바뀐 그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도끼와 단검이 쏟아져나왔다. 이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구구절절이 맞는 말을 하는데도 감성적으론 호감을 얻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고, 한국 사회에서 호불호가 가장 뚜렷하게 갈리는 정치인이 됐다.

 

바로 이 점이 정치인 유시민의 자산이자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진면목을 미디어에 비친 모습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좋든 나쁘든 미디어라는 거울에 비치는 얼굴과 실제 얼굴이 일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인들이 쓴 책은 진면목을 간파하는 중요한 코드다.

 

적지 않은 정치인이 책을 내지만, 그들의 무의식에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포부와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이는 대개 나르시시즘에 기인한다. 원론적으로는 정쟁 때문에 생긴 오해와 왜곡, 그로 인한 의도적 비하로 불운해진 정치인들이 기탄없는 견해를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정치인이 드골이나 처칠의 자서전처럼 의미 있는 책을 낸 기억은 없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참여정부 정통성의 중심에서 공과(功過)를 걸머진 처지라 할 말이 없을 리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가 책을 낸다면 ‘유시민류’의 거침없는 주장이 가득한 통렬한 내용의 회고록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야인으로 돌아가 첫 번째로 낸 책은 의외로 ‘청춘의 독서’(웅진 펴냄)다. 상투적인 기대에 대한 의외의 일격일 수도 있고, 유시민다운 정교함에서 나온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제목부터 그러하다. ‘청춘의 독서’는 다분히 중의적이다. 일견 이 시대의 청춘에게 권장하는 도서목록으로 읽힐 수도, 정치인 유시민이 청춘기에 마주한 독서일기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펴 읽어보면 유시민이 품고 있는 포부와 정치적 지향을 독서라는 코드로 치환한 자서전의 성격이 짙다.

 

그가 청년기에 읽었던 책을 다시 돌아보며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독서’라는 매개를 통해 우회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달라진 유시민의 모습이 여기에도 숨어 있는 것이다.

 

과거의 그였다면 분명 ‘나는 말한다’와 같은 제목을 달고 거침없는 논리를 전개했을 터. 하지만 그는 책에서 저자의 생각과 사상을 빌려 자신의 견해를 녹여나가는 소프트한 방식을 들고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은 정치인 유시민의 수상록 혹은 정견록이라고 해도 좋다. 한 시대의 풍운아로 살아온 정치인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만하다.

 

언뜻 한 지식인의 독서 체험을 쓴 것 같지만, 사실상 자신의 논지를 독자에게 설파하는 정치인의 책을 써낸 것이다. 이 책은 일단 이런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볼 수 있다. 논지를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정치인 중 스스로 책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은 역량이 부족하고, 두 번째는 독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이 둘을 모두 가진 사람이고, 그는 스스로 이 장점을 알고 활용한 셈이다.

 

책으로 돌아가보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출발해 ‘공산당 선언’ 등 총 14권의 독서 체험을 다뤘다. 목록만으로도 유시민이 이 책을 단순히 독서 혹은 책읽기에 대한 에세이로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숙독하다 보면 두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우선 책 자체의 매력이 크다는 점, 다시 말해 그의 지적 역량과 인식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날카로운 사람인지를 간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책은 일단 읽기 쉽고 편하다. 또 이 책을 읽은 다음 굳이 원전을 따로 읽지 않아도 될 만큼 전달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이 책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유시민은 한 사람의 지식인이기 전에 이미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지자로서 읽는 사람은 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 모르나, 중립적 위치에서 읽는 사람은 스스로의 중심을 잡고 비판적으로 읽기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유시민은 이 책을 통해 대중에게 스스로를 발가벗긴 셈인데, 어쩌면 자서전을 쓴 것보다 더 분명하게 벗긴 것이니 앞으로 그의 행보와 이 책의 일치점을 교차해 바라본다면 재미있는 관찰이 될 듯하다.

[출처]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작성자 시골의사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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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결국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인 한명숙을 흠집내기 위한 모략이라는 멍에를 짊어지어야 했다.

국가기관이 어떻게 국민의 한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나쁜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이 정권의 썪어빠짐을 확인시켜준 증거가 되었다.

법원 “곽영욱 ‘5만달러 줬다’ 신빙성 의심” 한명숙 무죄
“위기 모면하려 기억과 다른 진술…짧은 시간 돈봉투 처리 의심”
검찰 ‘유력 서울시장 후보 무리하게 기소’ 비난 면하기 어려울 듯
유강문 기자
» 한명숙 전 총리가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9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 선고공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핵심 쟁점인 '5만달러 수수'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쟁점을 ▲5만달러 수수 ▲공기업 사장 취임에 관한 청탁 및 한 전 총리의 지원 ▲5만달러를 준 사실이 인정되면 청탁에 따른 대가성 여부 ▲뇌물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주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받았는지 등으로 간추린 뒤 "5만달러를 전달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만큼 나머지 쟁점은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에 앞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줬다는 진술은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공소사실로 기재된 돈의 전달 방식에 대해 재판부는 "오찬 직후에 5만달러를 받아 숨기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며, 짧은 시간에 돈봉투 처리가 가능한지도 의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곽씨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기억과 다른 진술을 하는 성격으로 보인다"며 "곽씨에 대한 검찰의 심야조사 등 조사시간이 진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곽씨에 대한 심야조사가 면담이었다는 검찰의 해명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곽씨가 구치소에서 계속 수감돼 있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궁박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검찰에 협조적인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에서 "금품공여자 등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어야 하며, 신빙성 판단에 있어서는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전후의 일관성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됨, 그 진술로 얻게 되는 이해관계 유무 등도 살펴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한편 재판부는 뇌물공여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곽영욱 전 사장에게는 뇌물공여와 전체 횡령액 55만달러 중 5만달러 횡령 혐의는 무죄로, 나머지 50만달러 횡령 혐의는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권오성 부장검사)는 2006년 12월20일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곽 전 사장에게서 미화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한 전 총리를 지난해 12월22일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한명숙 전 총리는 “진실을 밝혀준 사법부에 감사 드린다”며 “다시는 저처럼 억울하게 공작 정치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검찰이 한명숙 죽이기를 다시 시작했다”며 “참으로 치졸한 일이다”라고 검찰을 비난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재판이 끝난 뒤 “진실이 밝혀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참으로 길고 험난했다. 진실을 밝혀준 사법부에 감사 드리고 국민 여러분께도 머리숙여 감사 드린다”며 “다시는 저처럼 억울하게 공작 정치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또 “검찰은 한명숙 죽이기를 다시 시작했다”며 “참으로 치졸한 일이다. 그러나 한명숙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한명숙 전 총리가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재판부는 3차례의 공판 준비기일과 13차례 공판기일을 열었고 사상 처음으로 총리 공관에서 현장검증을 하는 등 집중심리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해 왔으며, 검찰은 한 전 총리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5만달러를 구형했다.

검찰은 이번 무죄 선고로 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를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검찰의 무리수는 핵심 증인인 곽영욱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예견됐다.

 그러나 한 전 총리와 검찰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선고 하루 전 한 전 총리가 불법정치자금 10억원을 수수했다는 추가 혐의를 터뜨렸다. 5만달러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와 상관없이 한 전 총리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신호다. 한 전 총리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5만달러 사건 항소심에도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곽씨의 진술 증거를 보강하고, 한 전 총리와의 연관 관계 등 친분을 밝히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들 유학자금 등 한 전 총리 가족에 대한 수사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 전 총리는 5만달러 사건 무죄 선고를 강조하며 10억원 수수 혐의를 방어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강문 기자, 연합뉴스, 뉴시스 종합 moon@hani.co.kr

◇2009년

▲11월6일 =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대한통운 비자금 횡령 혐의로 곽영욱 전 사장 구속

▲11월25일 = 검찰, 특경가법상 횡령 혐의로 곽씨 구속기소

▲12월4일 = 한명숙 전 총리 5만달러 뇌물수수 의혹 제기

▲12월7일 = 한 전 총리측, 비상대책회의서 "돈 받은 사실 없다"며 부인.

검찰, 前청와대 비서관 문모씨 등 참고인 소환

▲12월9일 = 검찰, 한 전 총리에 11일자 출석 통보

▲12월11일 = 한 전 총리 출석 거부. 검찰, 14일자 2차 출석 통보

▲12월14일 = 출석 재차 불응

▲12월16일 = 한 전 총리 체포영장 청구ㆍ발부

▲12월18일 = 한 전 총리 체포영장 집행ㆍ강제구인. 검찰, 8시간 조사.

▲12월22일 = 한 전 총리 불구속기소. 곽씨 뇌물공여 혐의 추가기소

▲12월23일 = 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배당

◇2010년

▲3월8일 = 한 전 총리 첫 공판서 "5만달러 받은 적 없다" 혐의 부인

▲3월11일 = 곽씨 증인신문서 "총리 공관 식당 의자 위에 돈 봉투 두고 나왔다"

▲3월15일 = 강동석 전 장관, 곽씨 부인 김모씨 증인신문

▲3월17일 = 박남춘 전 청와대 인사수석, 골프숍 관계자 등 증인신문

▲3월18일 = 한 전 총리 경호원 윤모씨 증인신문

▲3월19일 = 총리 수행과장 강모씨 의전비서관 조모씨 증인신문

▲3월22일 = 총리공관 현장검증

▲3월24일 = 이원걸 전 산자부 2차관, 산자부 석탄산업과장 김모씨 등 증인신문

▲3월26일 =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국동 전 대한통운 사장 증인신문, 검찰 공소장 변경신청

▲3월29일 = 전 총리 경호2팀장 최모씨, 경호원 강모씨 증인신문

▲3월31일 = 한 전 총리 검찰의 피고인 신문 거부

▲4월1일 = 검찰, 재판부 검토 거쳐 한 전 총리 신문, 한 전 총리 진술거부

▲4월2일 = 검찰, 한 전 총리에 징역5년 추징금 5만달러, 곽씨 징역 3년6월 구형

▲4월9일 = 서울중앙지법 한 전 총리에 무죄 선고

(서울=연합뉴스)


이렇게 된 이상 보수는 진보의 청렴결백을 가지고 문제 삼는 일은 앞으로 두고두고 없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노무현대통령의 뇌물수수사건도 한명숙사건을 확대해석하면 무죄라는 결론으로 도출될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대통령은 타실이라는 결론으로 도출되어진다.

이명박은 책임지어야 한다.

현정권, 이명박정권의 살인정권을 개탄한다.


이명박을 탄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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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의 일곱 번째 인터뷰 특강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첫 주인공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현재의 정치적 위상으로 보면 1등과 거리가 먼 노 대표와 역시 1등급은 아닌 듯 보이는 청중 300여 명이 서울 서강대 곤자가 컨벤션에서 만났다. 2시간30여 분에 걸친 강연과 질의응답 끝에 참석자들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보 정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동물의 왕국을 인간의 왕국으로 바꾸려면 진보 정치 외엔 방법이 없다”고 역설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지방선거 후보 단일화 70일이나 남았다

노 대표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난항에 빠진 야권 연대에 대해 “후보 단일화는 수단일 뿐 목표는 승리다. 상식과 양식에 기초해 국민의 요구를 정확히 수용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아직 70일이나 남았다”고 말했다. “결정적 시점에 양보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냐”는 사회자 김용민씨의 질문엔 “양보받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노회찬(이하 노): 2008년 총선 때 출마했던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는 로또 1등이 가장 많이 나온 가게가 있다. 그 가게에는 ‘로또 외에 방법 없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참으로 서글픈 구호다. 직장 다니고 월급 받아 생활하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1등·1등급이 될 가능성이 없다. 차라리 로또가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찬양한다. 그렇게 무한경쟁이 좋다면 완벽한 시장의 자유가 살아 있는 곳, 동물의 왕국으로 보내드리겠다.



진보신당이 바라보는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 즉 고용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비정규직을 썼을 때 실익이 적은 데 반해 우리나라는 크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더 많다. 우리는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폴리텍대학이란 곳은 비정규직이 48%인데, 이곳의 악덕 기업주는 정부, 노동부다. 공공부문이 이렇다.

이상으로서 ‘결과의 평등’은 실현하기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소한 기회는 평등해야 하지 않나. 교육에서도 기회의 균등이 망가진 상태다. 돈이 있어야 성적이 좋고, 부와 가난이 세습되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졌다. 그런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나. 1등을 그냥 기억만 하는 게 아니라 1등급에 들어야만 인간답게 사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양극화를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자리 정책이다. 우리나라 경제수치는 좋다. 그런데 지속적인 사회 양극화 때문에 내수시장이 망가졌다. 국민 다수가 비정규직이다 보니 구매력과 가처분소득이 떨어졌다. 물건을 적게 사고, 물건이 적게 팔리니 적게 만들고… 이런 악순환에 갇혀 있다.

둘째, 복지다. 복지에 쓰인 돈이 생산요소로 투입되는 분야가 교육·의료·주택이다. 노르웨이는 석·박사까지 학비가 무료다. 부유세가 있는 프랑스는 대학 등록금이 30만원이다. 심지어 스리랑카도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그 아이들이 잘되면 나라에 도움이 되고 그 도움이 결국 내게로 온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다. 돈이 남아서 복지를 하는 게 아니다. 철학의 문제다. 여기서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거다. 한 나라가 생산해낸 국내총생산(GDP) 중 얼마를 나누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우리나라 복지 예산은 28%다. 프랑스 50%, 미국 35%, 스웨덴은 57%이다. 0%인 나라도 있다. 동물의 왕국이다.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해마다 복지 예산을 올려서 인간의 왕국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동물의 왕국으로 갈 것인지.

그러려면 정치가 변해야 한다. 정치가 바뀌어야 경제가 바뀐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과거를 묻지 말고 다 모여야 한다. 그게 진보 대통합이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 남은 2년 동안 차분하게 논의해봤으면 한다. 진보신당이 촉매제가 되겠다. ‘로또 외에 방법 없다’ 대신 ‘진보 정당 외에 방법 없다’는 간판이 내걸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4대강 예산 어디에 쓸지 국민대토론회를

청중1: 고3 딸아이를 둔 부모다. 교육감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단체장과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교육감과 단체장이 러닝메이트가 되어 현재의 교육을 개혁할 수는 없는가.

노: 교육이 단체장과 교육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추진 방향을 완전히 바꿀 필요는 있다. 사교육비로 30조원을 쓰는 나라가 어딨나. 그것도 학력을 높이는 데 쓴 게 아니라 줄 세우는 데 쓴 돈이다. 대학 서열화부터 풀어야 한다. 국공립대를 상향 평준화하고 통합 학사 관리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부하고 오래 노동하는 사회다. 서울시장이 되면 이런 문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맞짱 뜨겠다. 청와대와 시청 사이의 광화문에 전운이 감돌게 하겠다. (청중 웃음)

청중2: 부산에서 온 대학생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면 해가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투표 말고 내가 진보신당 같은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노: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꿈이 현실이 된다. 투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매일 하는 건 아니다. 더 적극적인 방법은 같은 꿈을 꾸는 무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정당에 참여해야 한다. 진보신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 같은 곳에 참여해라. 아니면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에 가입해 행사에 참여하고 강좌도 부지런히 들으면 준정당 참여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 그 길이 힘들지만 지름길이다.

청중3: 1등이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단 무엇을 기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대학생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사회 참여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지….

노: 요즘 학생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수화되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표피적으로는 사실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어느 때보다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 수가 적고 취업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기 때문에 대학생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인생·역사·철학이 무엇인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여유 있게 보낼 수 없다. 사회가 그렇게 조장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바뀌어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상황이 주는 압박으로 인해 당면한 문제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제도를 바꿔야 한다. 한 명의 힘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구제하기 위한 노력도 하면서 동시에 제도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청중4: 4대강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4대강 사업 예산 22조원이 있다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어디에 돈을 쓰고 싶나.

노: 전에는 4대강 하면 나일강·유프라테스강이었는데…. 강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청중 웃음) 국민 대토론회를 열고 싶다. 우리 국민을 위해 쓰는 돈에 대해 직장·가정·학교에서 토론하고 우리의 꿈이 무엇인지 얘기하면, 다양한 이해를 조정해가면서 합의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자퇴하려면 나를 찾아와라

청중5: 짧게 질문할 테니 짧게 답해달라. 고려대 여학생의 자퇴 선언문을 보면서 나도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노회찬: 많이 고민을 하라. 잠을 푹 자라. 생각이 맑아져 결론을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나를 찾아와라. 학교 다니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일들을 추천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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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의 주제곡 작곡가로 잘 알려진 음악 감독 최창권씨가 향년 지난 25일 오후 10시경 74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우리나라 원로 음악감독으로서, 로보트 태권브이외도 많은 영화음악과 뮤지컬음악을 만드시고 그 공로로 여러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출생 : 1934년 10월 26일
출신지 : 평안남도 평양
직업 : 음악감독, 작곡가
학력 : 서울대학교
데뷔 : 1966년 영화 '영광의 부루스' 음악감독
경력 : 공연윤리위원회 전문심의위원회 위원, 뮤지컬협회 초대이사장, 예그린악단 음악실장, 동양방송(TBC) 라디오 관현악단장, 서울시립가무단 대표, 서울예대 교수, 한국영화음악작곡가 협회장등

필모그라피 (네이버 링크 참고)

수상경력
제14회(1975)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 - 삼포가는 길
제16회(1977)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 - 문
제20회(1981)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 - 초대받은 사람들
(1986)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음악상 - 뽕
(1996) 옥관문화훈장
제3회 (2007)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영화음악상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월이 가면’ 등을 부른 가수 최호섭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고인은 1976년 김청기 감독의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의 주제곡을 작곡해 어린 관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태권브이 주제가를 불렀던 어린이가 당시 둘째 아들인 최호섭씨였습니다.(세째인 최귀섭씨가 깡통로봇 주제가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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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당신은 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조금이라도 치유하기 위해 말이 아닌 몸으로 솔선수범을 보여준 숨겨진 영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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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던 신해철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과 관련해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그는 최근 홈페이지 ‘신해철닷컴’에 ‘무혐의 유감(ㅋ)’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기고 “무혐의 처분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신해철은 “이 사안은 표피적으로 보면 단순한 해프닝”이라면서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뉴스가 된 이유는 현 정권에서 시작된 대국민 겁주기 및 길들이기라는 민주주의의 명백한 퇴보 현상이 이 해프닝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미사일 경축’ 발언을 한 이유에 대해 “증오와 공포의 무한 재생산이라는 방법을 끊임없이 휘둘러대는 사람들에 대한 반발과 조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며 북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신해철은 “일개 가수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신의 생각을 쓸 수 있는 권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목숨을 잃은 대가로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이라며 “나는 일개 음악인이지만 또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주로 내가 생각하고 말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신해철은 지난해 4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해 또한 적법한 국제 절차에 따라 로켓의 발사에 성공했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고 적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보수단체 라이트코리아와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서울중앙지검에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 고무 조항을 위반했다”며 신해철을 고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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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업무처리는 소외당하는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는 신념을 지키며 법원의 신성불가, 독립기관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것이다.































한나라당 정권은 이용훈 대법원장과 법원 마저도 자신의 종속 기관으로 두려는 음모를 즉각 포기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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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연설문을 쓰지 못하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국회에서 재미있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정치인들에게 말이 중요하니 말과 관련해 웃지 못 할 일들이 많다.

#에피소드 1
상임위 위원장의 회의 진행은 해당 상임위 전문위원이 써준다.
대체로 법률적 형식(의결 등)이 필요하므로 그대로 읽는 경우가 많다.
초짜 위원장,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다.
동료의원들 ‘잘하는데...’
이게 웬 걸..
잘 나가다가 “의사봉 3타”라고 말씀하신다.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려야 하는데 써준 글에 “의사봉3타”라고 써 있으니 의사봉 3타라고 읽어버렸다.(부끄부끄)

#에피소드 2
의원과 보좌관 사이가 편한 사이도 있고, 상하가 엄한 사이도 있다.
아무리 친해도 다소 간극은 있다.
보좌관이 의원의 지역구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보좌관들은 국회의원을 협박(?)해서
지역구에서 지방의원이나 단체장 공천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보좌관이 의정활동을 대부분 하는 것은 현실이다.

의원이 보좌관을 혼을 내주었다. 보좌관은 내심 ‘한문도 잘 모르면서.... 의원이 너무 권위적이다.’
보좌관은 너무 너무 화가 났다. 보좌관은 국회의원에게 질문서를 만들어 주었다.
보좌관이 쓴 질문서를 읽으려고 회의장에 앉아 서류를 꺼내는데 이게 웬일인가? 전부 한자로 질문지가 써 있다.
앗.. 이 외에 재밌는 일들이 많다.

각설하고..

#기억 하나,
88년 노무현 국회의원이 첫 당선되었고 노동 분야 대정부 질문을 맡았다. 우리는 자료를 수집하고 노무현 의원은 연설문을 직접 쓰셨다.

대정부 연설은 좋은 평을 받았다.

13대 첫 본회의다 보니 이런저런 말들도, 평가도 있었다.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
“연설문을 자기 손으로 쓸 수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많이 와 닿는 말씀이었다.

정치인들의 천편일률적인 연설은 감동이 없다.
나도 국회의원을 하지만 ‘정치인들이 쓰는 단어를 다 합치면 몇 백 단어나 될까’하는 회의가 들 때가 많다.

#기억 둘,
노무현 국회의원은 글을 매우 신중하게 천천히 쓰시는 분이었다.

원고지 10매 쓰시는데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이셨다.
강연을 준비하려고 하면 자료 조사도 많이 해야 한다.
(자료를 모으고 인용 시에는 반드시 근거자료 페이지를 명기할 것을 요구하셨다.)

‘10분 말하려면 100시간은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강연 주제를 정하면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수집한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 의원실은 국회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가는 방이 되기도 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독서카드(자료)를 만든다.
완성된 문장을 직접 만드시기에 카드로 자료 준비를 한다.

보좌관인 입장에선 오늘 강연에서 내가 드린 카드를 몇 장이나 쓰실까가 신경 쓰인다.
보통 한 강연에 30장 - 50장 정도의 자료를 밤새 준비한다.
그러면 많이 쓰시면 5장 정도이다.
어떨 땐 1 - 2장 쓰실 때도 있다. 그럴 땐 정말 맥이 탁 풀린다.

나도 꾀가 생긴다. 그런데 노대통령의 비상한 기억력은 노동시간을 배가시킨다. 자주 쓰시는 카드는 up-date를 계속해 나간다.
그리고 안 쓰는 것들은 나도 차츰 잊어버린다.

그러다 차를 타고 가시다가 문득 오늘 가지고 오지 않은 카드 내용 중 하나를 물으신다.
예를 들어, “영국 왕립위원회에서 아동 노동실태 조사를 한 후, 공장법이 만들어진게 몇 년이지?”

몇 년??(…) 꿀 먹은 벙어리…

난 내가 준비를 했었으니까, 머리를 굴려서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받았으니까 1789년 넘고 등등을 생각해서 1810년이라고 말씀 드린다.

노무현 국회의원의 말씀 “1810년?? 1802년 아니냐??”
(당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모르실 것, 그 화끈거림)

순간, 창피한 마음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아 내가 만든 독서카드를 다 보시는 구나, 강연에 쓰시지 않을 뿐이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감사한 마음도 들고 그랬다.

그 결과는 뻔하다. 내 노동 강도는 더 강해질 수 밖에 덕분에 계속해서 책을 보고, 자료를 보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다.

장&#8228;차관이나, 청와대 참모진들은 이 글을 보면 기억나는 것들이 한 두 가지씩은 꼭 있으리라고 본다.

장관 하신 분들하고 모임을 한 어느 날이었다.

“보고서가 두 달 전에 낸 것하고 인용하는 통계가 다른 것 같은데, 논리가 왜 바뀌었지요? ”라고 물으셔서 쩔쩔 매었다는 어느 장관님...
(보고서는 전부 전자 문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께서는 문서를 즉시 검색할 수 있다.)

그 장관님은 “노대통령께서 끝 없이 진화하시는 것 같다.”고 하시며 더 큰 문제는 대충 넘어 갈 수 없다는 점이다.

늘 겉만 보시지 않고, 꼼꼼히 자료를 보시는 노대통령의 연설문은 거의 직접 다 쓰신 것이다.


#기억 셋,
강연을 하러 가시면 모시고 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이런 저런 말씀을 하셨다.

‘글을 직접 쓰는 지도자’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런 생각은 하시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요약하면 이렇다.

『대전서 판사를 그만두고 부산서 개업을 했다. 부산에서 변호사를 할 때 아마
당시는 변호사들이 판사나 검사들과 자리를 할 때 접대를 하곤 했다.
어느 날 모임에서 변호사들은 직접 변론서를 쓰지도 않는다는 등의 모욕을 당한 일이 있었다.
노무현 변호사 밥상을 뒤집어엎고 자리를 나왔다.

다음날부터 모든 사건은 변호사가 직접 상담하고 변론서도 직접 썼다.
승소를 많이 했다. 억울한 사람들의 애기를 직접 듣고, 자료를 찾고 했다.』

노대통령님의 글은 짧다. 그리고 쉽다. 연설에는 삶이 있다.
‘여보 나 좀 도와줘’ 책을 쓰시고, 책 제목도 직접 정하셨다.

“원고지 8-10매가 제일 어렵다.“ 고 말씀하시던 그때가 생각난다.
출처 : 이광재의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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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금태양의 세상읽기,통찰력큰사람,지식위지혜실천,과학이종교,무소유가행복,영물인김범,자유정의사랑,파워블로거,풍류선비,올마운틴MTB라이더,대금태양,웹제작 웹디자인 웹마케팅 웹기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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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인터넷 대통령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나는 오늘날 세계 최초 인터넷 대통령(전자신문제목이었음)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되돌아본다.

88년 5공화국 청문회가 있던 때이다.

비서진의 능력이 모자라 그랬는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일했다.
노무현 국회의원도 정말 열심히 하셨다.

청문회에서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가장 늦게 의원회관의 불이 꺼지는 방,
국회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가는 방으로 기사화 되기도 했다.

청문회가 있다보니 자연히 국회의원과 참모가 회의도 많고,
준비할 일도 많았다.

당시는 수동 타자기를 쓰다 보니까 속도에 문제가 있었다.

일정도 많고, 일도 많고 보통 국회의원들은 모든 일을 수행비서와 함께 다니면서 처리했다.
비서가 필요 할 때도 있었지만 국회의원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핸드폰, 인터넷, pc 이런게 없었다.)

노무현 의원은 회의에서 결론을 내셨다.
첫째, PC를 산다.
타자기, 이것 가지고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없다.
(당시의 PC는 엄청난 고가였다.
최초로 PC를 쓰게 되었고, 직원들의 학원비를 사무실에서 보조해 컴퓨터를 배웠다.)

둘째, 내가 전자 수첩을 쓰겠다. 일정을 일일이 알아서 챙기고,
필요하면 수행을 붙이고 해서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자.

# (전자 수첩에 얽힌) 에피소드 1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국회의원들이 더 권위적이었다.
노무현 의원이 전자수첩에 일정 관리 등을 입력하고 하면 국회의원들이 구경을 했다.
이게 뭐냐고.. 전자 수첩이라고 하면 처음에는 신기해하다가 ‘그런거 다 비서 시키면 되지 체면 깍이게 들고 다닌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차츰 컴퓨터에 관심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왜 대한민국은 똑같은 또는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똑같이 허둥대고 그럴까? 왜 정치에는 축적되는 지식이 없는 걸까,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대응해 가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고민을 계속해서 털어놓으셨다.

전산화(기계화)가 진행되며 왜 실업자가 생기는지 우리는 알게 되었다.

93년, 어느 날 안희정, 나, 서갑원 의원 등을 부르시더니 컴퓨터로 워드를 치라고 하셨다.
일하는 모든 것을 data base화 해 달라.
그래서 너희들이 언제든지 해고해도 data가 있어서 일을 해 나가는데 문제가 없도록 해 달라.

워드로 서식을 만들어 입력하고, 보관하니, 효과적이지 못했다.

자료 분류와 data base에 대해 공부할 것과, PC는 물론이고, 그때부터 우리는 문서 분류,
자료 관리 이것을 파일링 하는 회사를 방문하면서 배워야 했다.
그래도 생산성에 문제가 있었다.

어느 날, 명인 프로그램을 보시더니 직접자료, 인명관리 program을 설계하시겠다고 말씀 하셨다.

# 에피소드 2 :

당연히 컴퓨터에 대해 관심은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자택을 방문했는데 온 집안이 컴퓨터를 분해해 놓은 것으로 어지러워져 있었다.
여사님께 무슨 일인가 여쭈어 보았더니

“컴퓨터 관련 책을 세 권 사시더니 몽땅 외우고 나셔서 아들과 더불어
컴퓨터를 사가지고 오셔서 분해해 보면 원리를 알 수 있다 하여 분해 하였으나,
조립을 다 못해서 그렇다.”는 말씀.

건호씨는 나가고 없고 조립에 열심이시다.

어어지는 사모님 말씀
“언제는 낚시를 배운다고 하시더니 낚시 책을 사가지고 오셔서 ‘음 원리가 이렇군’ 하시곤,
낚시와 관련된 물품을 죄다 사가지고 오셔서 낚시 도구가 한 몇 가방 돼요.”

“집에 전기불을 갈거나 두꺼비집 같은 것 가끔 손 볼 때가 있는데, 이에 대비해야 하신다고
공구 통을 사가지고 오셔서 집에 없는 공구가 없어요.”

노대통령의 사물에 접근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책을 본다. 외운다. 물건을 산다. 분해한다. 원리를 이해한다.
아 그렇구나!

이 컴퓨터는 건호씨가 결국 조립을 했고,
이런 영향인지 건호씨는 연세대 법대에 들어가고서도 컴퓨터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졌고, 가장 좋아하는 분야가 되었다.

노대통령님의 program 설계는 집요하게 계속 되었다.
“A4 용지 1만장은 들어갔다.”고 말씀하였다.

정치 생활을 해야 하고, 자금도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 어려웠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조금씩 진화를 했다.

프로그램 등록도 하고 몇 copy 팔기도 했다.

“언젠가 끝을 내야지” 하셨다.

우리는 그 집념에 놀랐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program 회의는 늘 일요일에 열렸다.)

과학과 기술, IT에 관심은 나날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던 거 아닌가 싶다.

대통령 선거와 인터넷도 어느 날 캠페인이 아니라 축적된 mind 때문에 생긴 일이라 본다.

대통령에 당선 되셨다.

청와대 직제 개편을 하시는데 “과학 기술 보좌관이 필요하다”고 말씀 하셨고, 나는 그 이유를 200% 이상 알 수 있었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가 보좌관으로 발탁되셨다.
더 나아가 “과학 기술 부총리를 만들어 과학기술 위상을 높이겠다.”는 약속도 지키셨다. 국가 R&D 예산을 대대적으로 들이셨다.

또한, “나라 운영에서 매뉴얼, 기록, Data가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은 제 2단계 사업으로 발전했다.

청와대, 정부 내 모든 보고서, 결재, 자료 관리 등이 이루어지는 이지원시스템을 창출하신 것이다.

국장급 공무원 노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메일을 받은 공무원들은 기절하셨으리라
(이 공무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노대통령 접속 시간은 한 밤중이었다고),
이 과정을 겪다보니 온라인으로 보고해야 하고, 수석과 장관들은 컴퓨터를 배우고,
쓸 줄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 되었다.(열심히 배우는 장관들 여럿을 보았다.)

더 나아가 이는 국가 기록물 관리 시스템으로 법률적으로 정착되었다.

학자들은 국가 기록물 관리의 한 역사를 장식했다고 평가한다.

문제의 본질과 근원에 충실하고,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 분은 원칙주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 최초 인터넷 대통령은 이제 영원히 로그아웃 하셨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세상과,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우리가 log in 해서 소통하시길 원할 것이다.

평화로 하나 되는 조국,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와 생활이 존중되는 조국,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충만한 나라.

이제 모두 log in 해 볼까요?

권력은 짧다는 것, 그러나 나라는 무한하다는 것
국민을 이기려는 위정자가 가장 바보라는 것
머리를 맞대어 진전하는 역사를 만들어 볼까요?

출처 : 이광재 의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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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 통해 전 세계가 북한 현실 주목하길”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

지난 25일 두만강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 재미교포 인권운동가 로버트 박씨가 중국으로 출국 전 녹화한 비디오에서 이같이 각오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입수한 영상 자료에 따르면, 로버트 박씨는 “자신의 북한행은 자살 행위가 아니라며, 자신의 죽음을 통해 전 세계가 북한의 현실을 주목하고, 지도자들이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죽음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 시민권자인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북한 주민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 기독교인들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길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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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박 ⓒ 뉴데일리

박씨는 또 “중국에서 비밀리에 탈북자를 도왔지만 이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말하고 “지난 여름 두만강에서 기도를 하던 중 북한에 들어가야 한다는 영감을 받아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영상에서 성탄절에 두만강을 건너는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서 가장 추운 시기일 뿐 아니라 성탄절은 전 세계가 가장 행복을 누리는 날이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 것을 모른 채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26일 ‘미국의 소리’ 방송에 로버트 박에 대한 소식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추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며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북한 역시 26일 현재 로버트 박의 체포 여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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