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한 진흙 냄새, 창문을 부술 듯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에 눈을 떠보니
허리까지 온통 진흙더미에 파묻혀 있습니다. 몸을 빼보려 발버둥을 쳐봐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못 한 채 나를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
그것은 ‘악몽’이었습니다.
폭우와 폭설, 그리고 태풍. 한 해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몇 번이고 삶의 터전을 속수무책으로 휩쓸어버리는 자연재해들.
수년간 그 속을 헤매고 또 헤맸건만, 매번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좀체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취재 뒤, 현장은 이렇게 꿈속에서 어느 때보다
더 끔찍하게 살아나 재생됩니다.
하물며 그저 현장을 기록하는 일밖에 하지 않은 기자도 이러한데,
죽음의 기로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사람들.
이 악몽이 현실이었던 사람들은 이 악몽의 그림자에서 언제쯤이나 벗어날 수 있을까요.
서울 강남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서초구, 우면산.
오전 tv 뉴스를 통해 봤던 것보다 현장의 상황은 훨씬 심각했습니다.
저택들 사이의 도로는 시커먼 급류의 길이 돼버렸고,
여기저기 쳐박힌 자동차와 부서진 집들은 전시상황이라해도 모자랄 판이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압도될 틈도 없이 취재진이 해야 하는 것, 아니 할 수 있는 일은
밤이 새도록 걸음을 재촉하며 마을을 구석구석의 피해상황을 담고,
주민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밤을 지새워도 이 재앙을 적확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가장 피해가 심각했던 전원마을. 눈물을 흘릴 새도 없이 필사적으로 진흙과 싸움을 벌여야 했던 건 저택의 주인들이 아닌, 지하 단칸방에 사는 세입자들이었습니다. ‘살면서 이런 폭우는 처음’이라던 일부 사람들과 달리 세입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지난 해 9월 이미 한 차례 예고됐던 물난리가 흙폭탄이 되어 돌아왔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tv에선 쉴 새 없이 ‘100년 만의 폭우’라며 아우성인데, 작년에도 올해도 비가 올 때면 늘 ‘100년 만의 폭우’인 걸까요.
등산로와 약수터, 공원까지 갖춰진 동네 주민들의 자랑거리였다가 순식간에 공포의 대상이 돼버린 우면산. 비가 그친 뒤 산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습니다. 마치 물이 가득 찬 무거운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다 한꺼번에 쏟아버린 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면산 정상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저수지’를 빗대 한 말입니다. 이 저수지는 원래 작은 웅덩이였는데, 서초구청이 생태교육에 활용하겠다며 최근까지 확장공사를 해왔습니다. 산 정상에서부터 4개의 계곡 물이 모두 모이는 저수지에는 정작 밑으로 물을 흘려 내릴 통로가 사람 어깨 너비만한 수로 하나 뿐이었습니다. 둑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충분히 납득이 가고도 남았습니다.
여기에 주말농장이며 돌로 바닥을 정비해놓은 등산로까지. 온 산을 파헤쳐 겉치장을 해놓고,
비가 왔을 때 비를 흡수하거나 흙이 쏟아지는 걸 막을 수 있는 치산대책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1970년대 개발당시의 기후특성에 맞춘 배수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고층빌딩에 겉모양만
화려하게 포장한 산 너머 강남 한복판의 물난리 사태와 꼭 같은 모양인 셈입니다.
2011년, 서울의 신도심 강남에서 벌어진 후진국형 재앙.
무엇이 원인이라고 아무도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물난리와 산사태는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인가 라는 의문 하나는 확실히 던져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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