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고구려 고분 벽화, 내가 사려고 거래한 적 있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말 도굴된 고구려 벽화의 행방과 아무런 관련이 없나요?” 그와 인터뷰하는 동안 똑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던졌다. 그가 참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핏대를 세웠다.
“조작이고 음해라니까요. 그 일로 지난 한 해 동안 압수수색을 네 번 당했고, 언론에서 10차례나 두들겨 맞았어요. 고구려 벽화가 국내에 있으면 지금 당장 제가 사겠습니다.”
김종춘 회장은 강진청자 고가매입 논란, 사라진 고구려 고분벽화의 행방, ‘증도가자(證道歌字)’ 발견 등 고미술 관련 뉴스의 핵심 당사자로 꼽힌다.| 김세구 선임기자 k39@kyunghyang.com |
무엇보다도 그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사이에 일어난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의 장천(長川) 1호분과 삼실총(三室塚) 고구려 고분벽화 도굴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한국고미술협회 고위 간부’에 의해 한국으로 넘어간 고구려 벽화 반환에 협조해달라며 한국 정부에 보냈다는 공식 서한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물론 ‘협회 고위 간부’는 김 회장을 지칭한다.
- 중국 정부에서 보냈다는 공식 문서가 가짜라니 놀랍다.
“국제적인 망신이다. 나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수사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범인뿐 아니라 배후세력까지 찾아내야 한다.”
흔히 고미술시장을 ‘복마전’이라고 한다. 특히 지금 고미술계는 고미술 감정을 둘러싼 파벌싸움으로 반목과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 김 회장은 이 싸움에서 대체로 공격을 당하는 입장이다. ‘진실게임’처럼 진행되고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관련 의혹과 사활을 건 고미술계 ‘암투’에 대해 당사자의 해명을 들어보고 싶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 경운동 수운회관 내 다보성고미술전시관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모든 인물의 이름을 거침없이 밝혔다. 심지어 “기사에 실명을 밝혀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 고미술계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왜 그렇게 싸우는가.
“모든 것이 강진청자 ‘감정가 부풀리기’와 연결돼 있다. 고미술계 원로 정모씨, 박물관장 최모씨 등이 짜고 고려청자를 비싸게 감정해 강진청자박물관에 팔도록 했다. 2009년 말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2억원대 청자 두 점을 20억원에 샀다고 문제삼았다. 이때 고미술협회가 성 의원의 의뢰로 시가 감정을 해줬다. 이 일로 정씨, 최씨 등이 협회에 앙심을 품었다. 그들이 인사동에서 가짜를 유통시키는 고미술상들과 똘똘 뭉쳐 나를 집중 공격한다. 나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다. 그래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국가 공문서까지 위조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 김 회장을 공격해 그들이 얻는 이익이 뭔가.
“옛날에는 고미술협회 감정위원과 고미술상들이 담합해 가짜를 진짜로 감정했다. 내가 협회장이 되면서 가짜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진짜 감정서를 끊어달라고 사정하다 끝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척을 지게 됐다. 이 바닥에서 내가 없어지길 바라는 사람이 많다. 그래야 가짜가 활개를 칠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수사·사정기관의 특별조사만 스물 네 번이나 받았다. 그렇지만 1원짜리 하나도 걸린 것이 없다.”
- 그들이 김 회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구려 벽화 건을 터뜨렸다는 말인가.
“그렇다. 잊을 만하면 수사기관과 언론에 내가 고구려 벽화를 보관하고 있다는 음해성 제보를 했다. 조작된 녹음테이프를 증거물로 함께 보냈다. 그때마다 집과 회사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했다. 새벽에 가족들을 깨워놓고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또 내가 오랫동안 거래해온 박물관에 투서를 보내 거래를 방해했다. 진절머리가 난다.”
- 강진청자 사건은 사법적인 결론이 내려졌나.
“최근 감사원이 청자의 원래 소장자인 이모씨 통장에서 청자 매매를 주도한 최모씨 통장으로 8000만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이씨가 이미 캐나다로 출국한 뒤여서 수사가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 그동안 보도된 내용만 놓고 보면 김 회장이 사라진 고분벽화와 무관치는 않아 보이는데.
“그들은 내가 조선족을 동원해 고구려 벽화 도굴을 사주했고, 돈을 주고 벽화를 국내에 들여왔으며, 국내에서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팔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말 교묘하게 짜맞춰진 소설이다. 내가 벽화를 사려고 했던 것도, 벽화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것은 3년의 사차를 두고 따로따로 이뤄진 일이다.”
- 2000년 여름 중국 옌지(延吉)의 한 호텔에서 김 회장이 벽화를 사고 돈을 건네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다.
“2000년 7월에 중국이나 외국에 나간 적이 없다. 그 전에도 옌지에 가본 적이 없다. 이○○이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해서 충격받았다. 누군가에게 약점을 잡히고, 협박 공갈을 당하고 금전에 매수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동네가 그렇다.”
-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자. 벽화를 입수하려고 했던 정황을 자세히 듣고 싶다.
“2000년 가을이었다. 10년 넘게 중국 단둥(丹東)에서 골동품을 거래하던 김○○이 전화를 했다. 고구려 벽화를 38상자로 나눠 컨테이너에 실어놨으니 사라고 했다. 그가 30만달러를 요구했다. 가격 흥정을 하느라고 2주일 정도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때 국내에서 장천 1호분이 도굴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사람은 이 보도 때문에 중국 공안에 물건을 모두 압수당했다고 알려왔다. 이것이 내가 본 적도 없는 고구려 벽화 얘기의 전부다.”
- 사진을 가지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뭔가.
“사진은 97년 일이다. 당시 (문화재청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단속반장 김무준씨(사망)가 벽화조각이 든 상자와 사진 몇장을 가져왔다. 현직 공무원 신분이어서 곤란하니 사진을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가져다 보여주라고 부탁했다. 당시 정모 관장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중국에 이런 벽화가 나왔다는데 박물관이 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 정 관장은 사진을 보고 관심을 보였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가짜인지 진짜인지도 모르겠고, 이런 건 취급 안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 관장한테 보여준 사진이 딱 표적이 되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고 있다.”
- 어쨌든 고구려 벽화를 거래하려고 한 것 아닌가.
“당시 사정을 알아야 한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중국을 통해 북한 고미술품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고, 중국 것도 쏟아져 들어왔다. 사찰 벽에 있는 것도 뜯어서 벽화라고 가져왔다. 벽화만도 수십 박스는 들어왔을 거다. 조각이 숱하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벽화는 세트가 다 맞아야 한다. 쪼가리는 쓸모가 없다. 김씨가 보여준 사진은 지안시의 벽화가 아니었다.”
- 그렇다면 2000년 김○○씨에게 구입하려고 했던 벽화는 도굴된 고구려 벽화인가.
“그 친구가 확실하게 말한 것은 아니다. 나는 벽화를 중국 정부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중국 쪽에서 문제 제기가 없지 않나.”
- 그렇다면 김씨가 벽화 행방의 열쇠를 쥐고 있을 수 있는데, 그후 김씨를 만났나.
“지금 대구에서 고미술상을 하고 있다. 당시 그 일로 경찰과 문화재청에서 전화로 그 사람을 조사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벽화였다고 말을 바꿨다. 싸움에 얽히기 싫은 것도 이해가 간다.”
- 어쨌든 두 번씩이나 벽화를 거래하려고 시도했다. 도굴품을 그런 식으로 거래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그렇게 치면 도굴품 아닌 것이 어디 있나. 이미 중국 단둥까지 유출된 유물이다. 우리가 사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수 있다. 중국 고분을 도굴했는지, 북한에서 나온 것인지, 박물관에 있던 것인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우리 역사와 관련된 문화재니까 당연히 우리가 입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구려 벽화가 제3국으로 유출되기 전에 국립박물관이 사들여서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 회장은 그다지 친절하게 설명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조금은 퉁명스러운 말투에 이야기는 자주 건너뛰고, 설명도 부정확했다. 몇번씩 다시 따져물어야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좀 성격이 급한 면은 있다. 원래 숨기거나 꾸미질 못한다. 그런 데다 사람을 쉽게 믿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잘해주고도 손해볼 때가 많다”고 말했다.
- 고미술계에도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가짜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최모, 정모, 신모, 공모, 김모, 이모씨가 대표적이다. 가짜 낙관을 1000개나 가지고 있는 고미술상도 있다. 옛날 그림이나 글씨에다 가짜 낙관을 찍는 ‘후낙’으로 가짜를 만든다. 진품을 가짜로 감정해서 귀중한 문화재를 해외로 유출한 경우도 있었다.”
김 회장이 들려준 ‘용문양큰항아리’(용충)의 일본 유출 사건은 고미술품 복원 사기극을 다룬 영화 <인사동 스캔들>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2002년 부산의 고미술상들이 조직폭력배를 시켜 일본 도쿄의 고미술 컬렉터 사카모토의 집에서 골동품 18점을 훔쳐왔다. 그중에서 높이 51㎝짜리 국보급 문화재인 용충을 인수한 고미술상이 부산의 유명 고미술 컬렉터에게 18억원에 팔았다. 그런데 정모, 최모씨가 이것을 가짜로 감정해 일본에 밀반출됐다. 이 용충은 다시 원래 주인인 사카모토에게 200억원에 팔렸다. 김 회장은 “내가 이런 뒷얘기로 소설을 써도 몇 권은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운영하는 다보성갤러리는 지난해 9월 “ ‘직지’(1377년) 활자보다 130년 앞서는 금속활자”라며 ‘증도가자’를 공개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만들어진 가짜라는 의혹이 따랐다.
“증도가자 공개에도 역시 악의적인 흠집내기가 있었다. 활자는 개성에서 출토된 것이 틀림없다.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15년쯤 전부터 한 개, 두 개씩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대구의 컬렉터 등 전국에 흩어져 있던 것을 서지학자인 경북대 남권희 교수가 한자리에 모아 연구결과와 함께 공개했다.”
- 증도가자의 제작 연도에 대해 진척된 연구결과가 있나.
“한국지질연구원에 이어 일본의 한 연구기관에서도 활자에 남아 있는 먹을 탄소 측정한 결과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적어도 ‘가짜 의혹’은 벗었다. 이달 말에는 또다른 국내 연구기관의 측정결과가 또 나온다.”
김 회장에 대한 일방적인 인터뷰로 진실을 밝혀낼 수는 없다. 사라진 고구려 고분벽화의 행방을 알기는 더욱 어렵다. 다만 그가 고미술계의 주도권을 놓고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가짜 중국서한 사건, 고미술계 ‘암투’의 현주소 생생하게 보여줘
중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보냈다는 고구려 고분 벽화 반환 요청 공문서가 ‘가짜’로 밝혀진 것은 고미술계 ‘암투’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중국 국가문물국이 지난해 말 한국 측에 보냈다는 공식 서한은 “도굴된 고구려 고분군 벽화가 한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벽화 도굴꾼 3명은 한국고미술협회 고위 간부로부터 교사를 받아 범행했으며, 이 벽화가 한국으로 넘어갔다고 공통된 진술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15일 “중국 국가문물국 산지샹(單霽翔) 국장이 이건무 문화재청장에게 공식 문서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초 주한 중국대사관 측이 “이런 문서를 보낸 적이 없다”며 “이 서한이 진짜인지 의심된다”는 뜻을 한국 정부 측에 알려왔다.
이 서한은 국제항공 우편 택배를 통해 문화재청장 사무실에 배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중국대사관 측은 중국의 공식적인 외교문서 전달 과정이 다르며 국장 직인, 공문서 양식, 내용 등이 모두 조작됐다고 밝혔다.
국가간 공문서에 대한 진위논란이 불거지면서 문화재청은 민감한 문화재 반환과 관련한 업무 협조 서한을 중국대사관 측에 확인하는 절차도 없이 경솔하게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찰은 문화재청 관계자를 불러 이 공문서의 전달경위 등을 조사하는 등 공문서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문감정인 60여명 활동 고미술협회 회장 5회 연임-
김종춘 회장은
한국고미술협회는 1971년 고미술상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국내 유일의 고미술품 전문 감정기관이다. 현재 회원 700여명, 전문감정인 6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전북 남원 출신인 김종춘 회장은 70년대 초 고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88년 다보성고미술전시관을 개관했다. 97년 한국고미술협회 18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임기 3년의 협회장을 5회 연속으로 하고 있다. 15년째 장기집권이다.
김 회장은 회장 취임 초부터 고미술계 정화를 내세웠다. 당시 고미술계는 위작 만들기, 감정 조작, 가격담합 등의 비리와 부정이 팽배해 있었다. 애호가들은 협회와 고미술상인들을 불신했다. 김 회장은 2002년부터 5년에 걸친 소송을 통해 ‘도난문화재를 무조건 보유자로부터 몰수하도록 한 문화재보호법은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을 얻어냈다. 같은해 70만명의 서명을 받아 서화·골동품 양도소득세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2006년 고미술품 유통 및 거래 윤리강령을 만들었다. 협회는 ‘진짜와 가짜전’ 등 전시회 개최와 함께 고미술품감정아카데미 등을 운영하고 있다.
김종춘 회장은
한국고미술협회는 1971년 고미술상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국내 유일의 고미술품 전문 감정기관이다. 현재 회원 700여명, 전문감정인 6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전북 남원 출신인 김종춘 회장은 70년대 초 고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88년 다보성고미술전시관을 개관했다. 97년 한국고미술협회 18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임기 3년의 협회장을 5회 연속으로 하고 있다. 15년째 장기집권이다.
김 회장은 회장 취임 초부터 고미술계 정화를 내세웠다. 당시 고미술계는 위작 만들기, 감정 조작, 가격담합 등의 비리와 부정이 팽배해 있었다. 애호가들은 협회와 고미술상인들을 불신했다. 김 회장은 2002년부터 5년에 걸친 소송을 통해 ‘도난문화재를 무조건 보유자로부터 몰수하도록 한 문화재보호법은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을 얻어냈다. 같은해 70만명의 서명을 받아 서화·골동품 양도소득세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2006년 고미술품 유통 및 거래 윤리강령을 만들었다. 협회는 ‘진짜와 가짜전’ 등 전시회 개최와 함께 고미술품감정아카데미 등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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