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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소득 436만원 이하 가구 유치원비 지원

기사입력 2009-06-10 07:40 김보경 bkkim@asiae.co.kr

다음달부터는 4인 가족 기준 월 소득액이 436만원 이하면 유치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10일 교육과학기술부의 '2009년도 유아학비 지원변경 계획'에 따르면 유아학비 지원대상이 '도시 근로자 가구 평균소득 100% 이하'에서 '영·유아 가구의 소득 하위 70% 이하'로 바뀌어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평균소득으로 따지면 지금까지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평균소득 398만원 이하여야 유아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다음달부터는 월 436만원 이하면 지원 대상이 된다.

지원 액수는 종전과 같다. 만 5세아의 경우 국ㆍ공립 유치원은 월 5만7000원, 사립 유치원은 월 17만2000원을 주고 만 3~4세아는 가구 소득에 따라 국ㆍ공립은 월 1만7100원에서 5만7000원, 사립은 월 5만1600원에서 19만1000원을 지원한다.

변경된 지원 기준이 적용되는 시기는 7월부터 내년 2월까지 8개월간이다.

학비를 지원받으려면 관할 주민센터에서 소득을 확인, 먼저 지원 대상이 되는지파악한 뒤 소득 인정액 증명서를 발급받아 유치원에 제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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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금태양의 세상읽기,통찰력큰사람,지식위지혜실천,과학이종교,무소유가행복,영물인김범,자유정의사랑,파워블로거,풍류선비,올마운틴MTB라이더,대금태양,웹제작 웹디자인 웹마케팅 웹기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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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 전국 확산…고려대도 성명 준비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시국선언이 대학가와 시민사회, 지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강대 교수 43명은 7일 '오늘의 슬픔을 희망으로 바꿔야 합니다'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국민이 보여준 슬픔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별다른 자성의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런 오만은 정권과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부산의 동아대 교수 57명도 이날 현 시국에 관한 선언문을 내고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온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이 땅의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의 통치 아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 성향 사회 원로들로 구성된 '새날희망연대'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독선적 국정 운영 중단을 정부에 촉구했다. 시국선언에는 박재승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과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소설가 조정래씨 등 70여명이 참여했다.

성균관대 교수 30여명은 8일 오전 11시 서울 명륜동 성대 캠퍼스 내 호암관에서 정부의 권위주의 행태를 규탄하고 전면적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 동국대 교수 100여명과 경희대 교수 80여명은 9일 오전 각각 성명을 내고 검찰 개혁, 집회·결사·표현의 자유 보장, 권력 남용 중단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에서도 교수 100여명이 8∼9일 시국성명을 발표키로 하고 선언문 내용을 최종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에서는 부산대, 경성대, 부경대의 일부 교수들이 시국 선언문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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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한 땅 밑으로는 수십개의 북한땅굴이 지나가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국방부는 은폐만 하려 시급하다.



" 우리는 북한을 너무 모른다 " 너무 쉽게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데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경제가 약체의 국가라고 해서 국사적으로도 너무 무시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안보가 소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될지도 모른다. "

ㅎㅎ 괜히 또 이런 글 남겼다고 . 제 2의 미네르바라느니 유명인이 되면 어쩌나? ㅎㅎㅎㅎㅎㅎ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김포 및 연천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들이 ‘땅 속에서 돌 깨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를 했으며, 이를 계기로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북한의 장거리 땅굴 탐사에 매진해 온 사실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 중 보안사 부사관 출신인 故 정지용씨(2002.12사망, 이하 亡者에 대한 존칭 생략)가 대표적 인물인데, 그는 현역 재직 중이던 1980년대 말 우연히 땅굴 관련 제보를 받게 된 것을 계기로 숨질 때까지 북한의 장거리 땅굴 찾기에 매진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생전의 정씨는 땅 속에서 들리는 ‘TBM 소리’는 물론 심지어 ‘북한 말투의 사람 목소리’까지 녹음하는 등의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정씨가 땅속의 소리를 녹음한 방법은 지극히 간단한데, 이는 통상적으로 지상에서 가수(歌手)의 목소리 등을 녹음할 때 사용하는 방법을 그대로 지하 세계에 적용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가수의 목소리 등을 생생하게 녹음하려면 마이크를 최대한 가수의 입 근처에 위치시켜야 하듯이, 정지용씨도 녹음기 마이크(청음기라고도 함)를 최대한 지하갱도 가까이에 위치시키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즉, 이상 징후가 발견된 지역의 땅속으로 지하수 개발용 시추기로 구멍(시추공)을 뚫은 다음, 해당 시추공 속에 마이크(지상의 녹음기와 연결된 것)를 설치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정씨 녹음테이프 음질은 정씨가 ‘소리의 발원지’(지하 땅굴)에 얼마나 가까이 마이크를 위치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다. 그런데 지하 100m 이하 지역에 위치한 ‘소리의 발원지’(땅굴)를 지상의 시추작업으로 정확히 관통(시추봉이 갱도를 뚫는 현상)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개의 경우 정씨의 시추공은 지하 갱도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정씨 녹음테이프의 소리는 그냥 들어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음질이 나빴다고 한다. 왜냐하면 해당 소리는 음원(땅굴)에서 출발하여 상당한 두께의 지하 암반을 통과한 다음에, 시추공 속에 위치한 마이크에 도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일부 테이프에는 매우 선명한 기계소리와 사람목소리 등이 녹음된 것도 있었다고 한다. 즉, 마이크(청음기)를 지하갱도 바로 근처에 위치시키는데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국방부가 ‘조작된 것’이라며 그 가능성을 일축함에 따라 정씨의 노력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렇다할지라도 정씨는 장거리 땅굴의 진실을 규명함에 있어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는데, 이는 그가 지난 1992년 월간조선 취재팀에게 그간의 탐사결과와 물증 등을 제공함으로써 관련 사실을 공론화 시킨 것을 말한다. 즉, 그동안 국방부와 정지용씨간 상반된 주장에 대해 제3자인 월간조선 취재팀을 개입시킴으로써, 땅굴 문제와 관련 객관적인 입장에서 취재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한편 당시에 정씨의 제보를 받은 월간조선측은 현장 답사를 통해 경기도 김포 및 연천 지역의 땅 속에서 착암기 소리가 들리는 등의 이상 징후가 실재했음을 확인하였고 그 결과를 기사화했는데, 다음은 당시 월간조선 5, 6, 7월호에 보도된 내용 중에서 우선 김포 지역과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서울 근교에서 들려오는 地下기계음의 정체〔5월호〕

3초마다 덜거덕거리는 갱차음

취재팀이 김포지역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김OO씨(35?김포군 하성면 후평리)였다. 김씨는 88년 8월부터 자신의 집 앞 텃밭에서 정지용씨가 시추작업하는 것을 계속 지켜봤으며 전자기술자인 그는 89년 3월 정씨에게 청음기〔防水用 마이크〕를 제작해주며 시추작업에 깊숙이 빠지게 된 인물이다.

다음은 김OO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정지용씨와는 언제부터 알게 됐나.
“88년 8월경이다. 정씨는 그 당시 우리 집에서 3백-4백m 떨어진 야산에서 시추작업을 하고 있었다.”

- 언제부터 시추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는가.
“내가 전자기술자인 것을 알게 된 정씨가 89년 3월쯤 청음을 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여러 가지를 궁리하다가 물〔지하수〕속에서도 녹음이 가능한 동 파이프로 싼 청음기〔마이크〕를 만들어주게 됐다.”

- 이상소음을 처음 들은 것은 언제인가.
“89년 4월초였다. 당시 나는 시추공에다 청음기〔마이크〕를 넣은 후 밖에다 스피커를 연결해놓고 있었다. 4월초에 다른 곳에 다녀왔더니 옆집 슈퍼의 할머니 등 여러분이 스피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고 말해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청음활동을 하게 됐다. 이후 갱차 지나가는 소리 등 여러 가지를 녹음하게 되면서 이 지역 지하에 뭔가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 어떤 소리가 녹음됐는가.
“착암기가 돌을 깨는 듯한 ‘타타타타’하는 소리, 당시는 뭔지 잘 몰랐지만 나중에 TBM 장비가 돌 깨는 것으로 추정됐던 소리 등이 있는데 그중 탄광에서 쓰는 갱차가 레일 위를 달리는 듯한 소리가 가장 선명하다.”

- 이곳에서 시멘트로 추정되는 물질이 나왔다는데 사실인가.
“6, 7차 및 12차 시추공에서 시멘트 성분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검출됐다. 그것을 아시아시멘트 시험실에 성분조사를 의뢰했고 나는 별도로 한국화학시험연구소에 맡겼는데 지하 100m 지점에서는 이런 성분이 자연적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게 연구소측의 답변이었다.”

- 만일 그 같은 물질이 시멘트라고 확인되면 그것은 지하에서 만들어진 인위적 구조물의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인데 왜 그 시추공에 대해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지 않았는가.
“시멘트로 추정되는 물질에 대해 군 당국은 처음부터 믿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것의 증명가치가 원천봉쇄된 것이 〔정지용씨가〕다른 곳〔연천지역〕을 찾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집이 흔들렸다.

김OO씨는 우연한 기회에 정씨의 시추작업에 관련을 맺다가 그 후 이 작업에 전념하게 됐다. 김씨는 갱차음 등은 91년 상반기까지 들렸으나 그 후는 고압전기 유도음으로 추정되는 소리만 가끔 들릴 뿐이라고 말한다〔장거리 땅굴의 막장이 이미 김포지역을 통과해서 남하한 상태라는 의미〕.

그 역시 정지용씨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인물이라 보다 객관적인 증언을 듣기 위해 김씨 집 앞에 설치해 놓은 스피커를 통해 처음으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박OO씨(여?57)를 만났다. 박씨가 운영하는 새마을 슈퍼는 김OO씨 집으로부터 30m 정도 떨어져 있다. 다음은 박씨의 증언이다.

“날짜는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여하튼 소리가 난 날 오전 9시쯤 가게 앞의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디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 경운기도 지나가지 않는데 소리가 들리는 게 이상해 김OO씨 집 쪽으로 가보니 김씨 집 앞 텃 밭에 설치해 놓은 스피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침 김씨가 없어 그의 아내와 마을 사람 몇 명과 함께 그 소리를 들었다. 2-3분간 계속된 그 소리는 뭔지 잘 모르겠으나 경운기가 멀리서 지나가는 듯한 감으로 느껴졌다.” 후평리는 북한측의 대남방송이 크게 들리는 접적지역이다. 이런 지형적 여건 때문인지 이 지역에선 예전부터 이상징후에 대한 신고가 많았고 주민들도 ‘땅이 울렸다’는 등의 표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지용씨의 녹음테이프와는 관계가 없지만 참고삼아 이상 징후를 체험했던 홍OO씨(여?37?김포군 하성면 시암리) 집을 찾았다. 홍씨 집은 김OO씨의 집으로부터 북쪽으로 1.5km 더 가야한다.

다음은 홍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게 언제인가.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으나 지난해 이맘때〔1991년 3월초〕였다”

- 당시 그 소리는 어떤 식으로 들렸는가.
“저녁 8시쯤인데 안방 옆에 있는 부엌바닥에서 갑자기 ‘드르르륵’ 하는 소리가 울리며 집까지 흔들렸다. 집안 식구가 모두 놀랐는데 3-4차례에 걸쳐 요란한 소리가 난 후 10여분 후에 조용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 같았나.
“쇠로 돌을 뚫는 듯한 소리였다. 집까지 흔들릴 정도로 강했다.”

-식구들이 모두 들었는가.
“그렇다. 시어머니와 남편도 같이 들었다.”

- 그 외의 이상징후는 없었나.
“주변 사람들이 혹시 우물에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라기에 마당의 우물을 들여다보니 평상시보다 물이 엄청나게 줄어 있었다.”

- 우물물이 그 이전부터 줄었던 것은 아닌가.
“식구들이 매일 그 물을 쓰기 때문에 바로 그 소리가 나던 날 물이 줄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물이 원래의 수준까지 다시 차올랐다...”

테이프는 조작되지 않았다

취재팀은 검증을 두 가지 방법으로 실시했다. 즉 테이프 내용이 신디사이저 등 전자기기로 합성될 가능성이 없는가 하는 검증과 테이프 녹음을 수록할 당시 의도적인 조작이 가능했는가 하는 상황에 대한 검증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녹음테이프는 전자기기로 합성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또 정지용씨가 녹음할 당시 주변에 있었던 현지 주민이나 관련자들은 정씨가 조작할 만한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고 일치된 증언을 하고 있다.

갱차음 규명을 요구한다

취재팀의 뇌리에 강하여 새겨져 있고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갱차음이다. 철로 위를 달리는 궤도차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면서 서서히 커지다가 청음장치 바로 앞을 ‘웽’하는 소리와 함께 지나간 뒤 점차 약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장감 넘치는 이런 소리는 기계분석도 할 필요 없이 육청(肉聽)으로도 충분히 궤도차라는 결론을 내리게끔 해주고 있으며 그런 소리가 4-5회에 걸쳐 녹취되었다. 반경 수십km 안에는 지하철이나 철도가 안 다니는 후평리 지하에서 들려온 생생한 이 ‘소리’를 만약 방송국에서 틀어놓는다면 많은 한국인들은 잠을 설쳐야 할 것이다. 월간조선 취재팀은 이 갱차음의 철저한 규명을 정부당국에 요구하는 바이다...』

이상은 월간조선 5월호 기사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와 같은 월간조선의 기사보도를 계기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경험했거나 알고 있던 내용을 월간조선측에 기고 및 제보하게 되었는데, 다음은 관련 내용을 보도한 월간조선 6월호 및 7월호 기사 내용이다.  

[추적 : 한국의 심장부로 꽂히는 비수 6월호]

김포 북쪽 인민군 6사단 소대장 출신 귀순자의 기고문

나는 애초 귀순 당시 군 기관에 김포 일대 서울 근교에 북한 화곡리에서 출발한 남침용 장거리 땅굴이 있다는 것을 진술한 바 있다. 진술한 내용이 정부에 반영되어 구체적인 토의 대책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월간조선 기사를 읽고 나서 허탈감 비슷한 것이 뇌리를 치는 것 같았다... 지난 번 월간조선에 났던 그 기사 내용과 내가 알고 있던 서울 근교 땅굴설이 너무도 밀착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근사한 면이 많아서 월간조선부를 찾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며칠간 귀순한 동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금이라도 의문되는 점들은 모조리 적어두었다가 이 글을 쓰는데 삽입하기로 했다.

가장 유력한 제공자는 1980년 6월에 월남 귀순한 이OO씨였다. 이씨는... 개성시 판문군 일대에서 당 세포비서, 직맹위원장 등의 직책을 맡아 수행하면서 지도사업차 화곡광산 갱에까지 들어가 본 유일한 증언자인바, 그가 말하는 징후를 소개한다.

첫째 본인(이OO)은... 화곡광산이 민간인 소속이었을 당시에 목격한 내용을 말한다. 76-77년경부터는 광산이 폐쇄되고 군부대가 광산본부를 인수하면서 민간인 출입이 일체 금지되었던 바 그것이 제일 의구심 나는 점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알고 있기에 북한에서도 내로라하는 광석(금, 아연, 연)이 채취되고 그 규모 또한 한 두 손가락에 꼽힐 만큼 1급 기업소였고(노동자 4천여명) 광산작업시 수입이 꽤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폐갱시켜서 군인들을 배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광산 당위원장 사무실에 들어갔던 일이 있는바 그때 벽에 걸린 지도에서 본 기본 진도현황은 한강중심, 즉 군사분계선까지 남하한 것이었다. 기본갱이 화곡광산에서 남쪽으로 직선으로 뻗어 있는바 높이, 너비가 2.5t 화물트럭 2대가 어길 수 있고 [폭 2차선 규모] 기본 갱에서 좌우로 수십개의 곁가지 광석채취굴이 있다. 그 굴의 너비, 높이는 일반 갱차가 서로 어길 수 있는 정도이다.

제1땅굴 목격자인 인민군 민경대 준위 출신 안OO씨의 증언

국군복장으로 굴진 작업

안OO씨는 북한군 비무장지대 내에서 근무하는 인민군 제3사단 민경대 준위로 있다가 지난 79년에 남한으로 귀순해왔다... 안씨는 중요한 증언을 하나 했다.

“땅굴 공사부대에 근무하는 간부가 친구였는데, 이런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땅굴 속으로 작업반을 들여보낼 때는 한국군 복장을 하도록 하고 말씨도 국군 말투를 교육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작업중 남한측에 붙들리는 일이 생길 때에 대비한 위장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의 땅굴 굴착 능력

김OO씨〔귀순자〕는 “1985년 평양 철도대학 재학중 ‘지금도 땅굴을 뚫고 있다’는 제대 군인들의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군대에서 제대한 후배들이 학교에 입학해왔습니다. 인민군 5군단지역(철원지역)에서 근무했던 후배들이 ‘탱크가 다닐 정도의 땅굴을 몇 군데씩 지금도 뚫고 있는데 이 공사에 동원돼 총은 별로 쏘지 못하고 일만 하다 제대했다’는 것이었지요. 후배들은 그 공사의 목적이 ‘대부대를 남조선 후방에 침투시켜 제2전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는데 이것으로 봐도 그 땅굴은 방어용 갱도가 아닌 ‘남침용’임이 분명합니다.”... 월간조선 취재반은 지난 한달 동안 수십명의 한국군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우리는 이들에게 정지용씨가 지하 시추공 내에서 녹음한 굴착음 소리와 갱차음 테이프를 들려주었다.

정씨에 대해서 부정적인 정보를 갖고 있던 이들도 너무나 생생한 기계음에,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도저히 지하 자연음이라고 볼 수 없는 그 소리에 충격을 받고 우리의 질문에 대체로 진지하게 답변하였다.

땅굴 탐사에 직접 관계한 적이 있는 전?현직 군 인사들은 거의 전부가 북한이 장거리 땅굴을 서울 근교까지 뚫었을 가능성에 동의하고 있었다. 현직 군 고위 인사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대강 이런 하소연이 된다.

“땅굴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서울 근교에 장거리 땅굴이 진출했다고 발표하면... 국민들은 불안해할 것이고 그렇다고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물론 군의 땅굴 탐지부서는 기자들에게 ‘북한이 장거리 굴착을 할 능력이 없으며 1980년대 초반에 땅굴 굴착을 중단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것은 결코 군 전체의 합의된 견해가 아니다. 그렇다고 군이 내부적으로 ‘북한은 현재 장거리 땅굴 굴착중’이라는 판단을 내려놓고 체계적인 탐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김포 관측병의 남하하는 지하굴착음 추적 수기〔7월호〕

저는〔당시 한국화성주식회사 사원〕 지난 88년 봄부터 90년 가을까지 경기도 김포군 OOO 관측소에서 육군 모 부대 소속 관측병으로 근무했었습니다.

처음 이상현상을 발견했을 때가 지난 88년 겨울. 관측소 오른 쪽에 있는 김포 시암리 앞 한강의 북한쪽 갯벌 가운데에 일직선으로 금을 그어놓은 듯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갯벌 한가운데가 일직선으로 약간 움푹 패어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이 현상은 남한 쪽 바로 앞에 있는 좀 작은 갯벌에도 나타났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제가 입대하기 이전에 시암리 맞은 편 북한측 지역인 관산포 앞 갯벌이 2백50-3백m 가량 함몰됐던 적이 있었지요. 부대 선임자들 얘기에 따르면 당시 함몰이 일어나자 북한은 병력을 동원해 메우기 바빴는데 함몰된 곳에서 레일과 갱차가 드러나 보였다고 합니다...』

이상과 같은 현지주민 등 관련자들의 증언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다수의 현지 주민들이 땅굴 굴착징후로 의심이 되는 이상현상에 대해 증언하고 있을 가운데, 각각의 증언 내용이 비록 동네는 다르다할지라도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둘째, 전 육군 관측병도 같은 맥락의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포반도 앞 갯벌에 일직선으로 함몰되는 현상이 나타난 적이 있는데다, 특히 이전에 함몰사고가 일어났을 때 북한군이 갯벌 속에서 레일과 갱차를 건져 올린 적이 있다는 주장은, ‘땅속에서 갱차음이 들린다’는 김포 지역 주민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셋째, 김포반도 북쪽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귀순자들 역시 같은 맥락의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화곡광산의 갱도가 70년대 중반에 이미 한강 중간 지점까지 남하해 있는 상태에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폐갱, 군관할로 이관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넷째, 국방부 관계자들조차 사석에서는 장거리 땅굴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방부의 공식입장이라는 것이, 사실은 땅굴과 관계된 군관계자들로부터도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북한의 장거리 땅굴은 배수문제로(굴착과정에서 발생하는 지하수를 북쪽으로 흘려보내야 하므로) 휴전선 지역을 통과할 때에는 기존의 단거리 땅굴보다 훨씬 깊은, 최소 지하 300-400m 지점을 통과한 다음 후방지역으로 갈수록 지표면 쪽으로 상승하는 구조(北深南淺:북심남천)로 굴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를 찾으려면 땅굴이 지표면으로부터 깊이 들어가 있는 휴전선 일대보다는 지표면에 근접하게 되는 후방지역에서 탐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군이 ‘북한은 단거리 땅굴(총 길이 4km 이하)만을 팠다’는 스스로의 도그마에 사로잡힌 나머지, 휴전선 일대에 한해 기존의 땅굴 깊이(45-160m) 정도로만 탐사한다면, 아무리 ‘벌집 쑤시듯’ 해도 찾을 수 없는 구조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국방부가 제4땅굴 이후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개의 땅굴조차 추가로 발견하지 못한 것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한편 생전의 정지용씨는 김포지역보다는 연천 지역에 북한의 장거리 지하땅굴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았는데, 이는 정씨가 해당 지역 땅속에서 “막아, 막아”, “위에서 다 들려요”, “너는 이제 그만이다”, “알았어” 등과 같이 생생한 사람목소리를 녹음한 데 이어 해당 지역 땅 속에서 정체불명의 지하공간까지 발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천 지역에도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초 연천지역에서는 어떤 이상 징후가 있었기에 정지용씨가 이 지역을 주목하게 되었을까. 다음은 월간조선 기사 중에서 연천지역 주민들의 증언 내용만을 발췌한 것이다.

『서울 근교에서 들려오는 地下기계음의 정체〔5월호〕

“따따따따” 하는 착암기 소리

다음은 두일2리 박씨 할머니(이름이 없다고 함)의 증언이다.
“89년 겨울 어느 날인가 밤에 안방 아랫목에서 잠을 자는데 쿵하는 소리가 울리며 몸이 털썩 흔들렸다. 그때가 새벽 한시쯤이었는데 그런 쿵하는 소리가 가끔 나타나다가 2시간쯤에야 잠잠해졌다. 나는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 그게 포탄 터지는 소리인 줄은 짐작했지만 집 밖을 둘러봐도 별 일이 없는 것 같아 그날은 그냥 자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똑같은 소리가 새벽녘에 들렸다. 이때는 며느리(이OO?41)도 같이 들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또 찌그럭찌그럭 하며 뭔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그 소리는 안방 아랫목에서만 들렸고 옆방이나 안방의 윗목에서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 소리는 처음에는 앞마당 쪽에서 오는 듯한 감이 들다가 며칠쯤 후엔 안방 바로 밑을 지나가는 듯했고, 7-8일쯤 후에는 뒷마당 쪽으로 지나가는 듯하다가 10일쯤 지나니까 소리가 그쳐버렸다.”

시추공에서 나는 경유 냄새

다음은 3월 21일 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최OO-이OO씨부부의 증언이다.
이들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면서 구미리에 자주 왕래하고 있는데 구미리 집에는 아들 최OO씨(35)가 혼자 머물고 있다.

- 구미리 집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언제부터인가.
최씨〔남편〕=“90년 5월경이었다. 당시 집안에 우물이 없어 업자에게 우물을 파달라고 했는데 그 업자가 우물을 파다 말고 ‘지하에서 찬바람이 올라온다’고 했다. 그래서 우물 시추구멍에다 얼굴을 대보니 시원한 찬바람이 올라오고 라이터불도 꺼지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인근 군부대에 신고했더니 군인들이 나와서 여러 번 시추한 후 ‘별 이상이 없다’면서 철수해 버렸다. 결국 우물은 못 팠다.”

- 정씨는 언제 만났는가.
최씨=“지난해〔1991년〕 8월이다. 하루는 정씨가 찾아와 우리 집 앞의 축사지역에서 시추작업을 해도 되느냐기에 거절해버렸다. 그 전 해에 군인들이 시추작업을 할 때〔우물 파던 중 찬바람이 올라왔을 때〕 소음과 진동 때문에 시달렸던 우리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정씨가 간청을 하고 또 우물을 공짜로 팔 수도 있을 것 같아 집에서 약간 떨어진 지역에서 시추공을 뚫도록 허락했다.”

- 당시 어떤 상황이 나왔는가.
이씨〔부인〕=“정씨는 8월15일부터 우리 집 부엌에서 왼쪽으로 7-8m 떨어진 지점에서 시추작업을 했다. 그런데 8월17일 밤 자정을 지나 새벽 1시쯤에 〔한여름 무더위로〕목욕을 하고 자려 하는데 갑자기 경유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집에 불이 난 게 아닌가 하고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 냄새는 정씨측이 판 시추공 쪽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그 구멍 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냄새만 나는 게 아니라 ‘쉬익’ 하는 물이 세차게 뿜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안방에서 자는 남편을 깨웠는데 남편도 깨자마자 ‘이게 웬 석유냄새냐’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소리는 2분 정도 계속되다가 끝났는데 그 소리가 멈추자 석유냄새도 서서히 사라졌다.”

- 8월 19일 직후 어떻게 됐는가.
이씨=“그 직후 군인들도 조사하고 가는 등 한동안 시끄러웠다. 한번은 시추작업 중인 인부가 불러 가봤더니 뿌연 물이 시추공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 인부는 ‘우물 파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나로선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 그 이후는 별일이 없었는가.
이씨=“추석을 지난 직후인 10월 5일께도 새벽에 첫 번째 시추공에서 5m 정도 떨어진 곳에 다시 판 시추공에서 예전과 같은 석유 냄새가 난 적이 있다. 그 때는 친척들도 같이 있어 다들 냄새를 맡았었다. 다만 예전과 같은 ‘쉬익’하는 물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부터는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밤을 새는 일이 많았다. 정씨의 녹음기에다 스피커를 부착 해 놓으니 시추공 아래 장치된 청음기에서 잡힌 소리를 안방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장 부녀회장 등 동네 사람들이 라면 끓여먹으며 새벽 4-5시까지 소리를 들었다. 대개 ‘웅웅’거리는 소리와 ‘푸드득’하는 돌 깨지는 소리 등이 들렸다. 그때 이곳에 나와 있던 사병들도 ‘이상하다’고 했는데 보고가 제대로 됐는지는 모르겠다.”』

이상과 같은 증언을 계기로 월간조선 취재팀은 이후 김포 및 연천 지역에 대한 장거리 땅굴 가능성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월간조선측은 연천지역보다는 김포반도 지역에 북한의 장거리 땅굴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관련 경위는 다음과 같다. 생전의 정지용씨는 땅 속에서 나는 소리를 채록한 녹음테이프 약 200여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테이프 소리는 녹음상태 불량으로 그냥 들어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기에 상당수의 녹음테이프들은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김포 후평리에서 녹음된 테이프 중 하나에서 ‘북한 말투’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음이 귀순자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함경도 출신의 귀순자가 문제의 녹음테이프 소리를 듣는 순간, 테이프 중의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비록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자신의 고향인 ‘함경도 사투리인 것만은 틀림없다’는 심증을 갖게 되면서 이를 월간조선측에 제보했던 것이다.

이에 월간조선측이 관련 테이프에 대한 잡음을 제거한 결과, 문제의 테이프 중의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이거 만지면, 일만일천 감전되지”라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거 만지면 일만일천 감전되지”라는 말투는 상급자인 듯한 사람이 주의를 주는 것처럼 들렸고, “예,예”하는 것은 하급자인 듯한 사람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쩔쩔매는 말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만일천”이라는 것도 11,000에 대한 북한식 표현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월간조선 취재팀은 세계적 음향 전문가인 일본의 스즈키 박사(전자공학 및 의학)의 협조로 관련 테이프에 수록된 소리에 대한 음향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테이프에 녹음된 사람 목소리가 3.77m X 3.77m(또는 7.54m) 크기의 갱도 형태를 가진 폐쇄 공간의 막장 부분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추정치도 얻을 수 있었다. 즉, 문제의 목소리 주인공들은, 김포 후평리 땅 속에 있는 3.77m X 3.77m 크기의 지하갱도 굴착 공사장(막장)에 위치해 있던 북한 군인들로 볼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했던 것이다.

이어서 월간조선 취재팀은 문제의 테이프에 녹음된 ‘일만일천’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한 취재활동도 병행했다. 대화내용 중 ‘감전(感電)되지’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일만일천’이라는 숫자가 ‘일만일천 볼트’를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한 월간조선 취재팀은, 당시로서는 국내에 1만1000V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전(韓電)을 통해 확인했다. 또한 전 북한 사회안전부 간부인 김정민씨(갱도 굴착작업 지휘 경험자)를 통해 북한의 배전용 전압 중에 1만1000V가 있다는 사실과, 북한이 과거에 TBM을 스웨덴으로부터 수입한 적이 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근거를 바탕으로 당시 월간조선측은 ‘(연천보다는) 김포 후평리에 TBM 공법에 의한 북한의 장거리 땅굴이 들어와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취재를 일단락 했던 것이다. 다만 월간조선 취재팀은 1만 1000V와 TBM과의 관계를 충분히 입증하지는 못했다. 북한의 배전용 전압 중에 1만1000V가 존재한다는 것과 북한이 TBM을 수입한 적이 있다는 귀순자의 증언은 확보했지만, 1만 1000V가 곧 TBM 전압이라는 것을 밝혀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즉, 북한이 TBM을 사용한다는 단서는 확보했으나, 북한이 실제로 TBM을 사용해서 김포지역 땅굴을 굴착하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단서를 확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국내에서 운용 중이던 TBM의 경우 모두 1만1000V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필자의 추적내용이다. 필자는 한 때 주(駐)남아프리카 공화국 한국 대사관 요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남아공은 지하자원이 풍부한 관계로 광산 개발과 그에 따른 장거리 갱도 굴착 분야에 있어 세계적 수준의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필자는 2001년 6월 13일 TBM 전문가 K씨(R사 소속)를 만나 관련 사항을 질문한 적이 있는데, 다음은 당시 필자의 질문에 대한 K씨의 답변 내용을 직접화법으로 정리한 것이다.

“R사는 세계적인 시추 및 터널굴착 전문회사로서 현재 진행 중인 스위스-이탈리아 국경간 57km의 Gotthard Tunnel 굴착 공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TBM은 Gotthard Tunnel 굴착 공사는 물론, ‘레소토’ 지하수로(1993년 완공)를 건설 할 때에도 사용되었을 만큼 장거리 갱도 굴착에 흔히 사용되는 장비이다.

TBM을 이용하여 지하갱도를 굴착할 경우 최대 직경12m짜리 갱도를 하루에 50m까지 굴착할 수 있으며, 단단한 화강암층이라 할지라도 Tungsten Carbide 비트를 사용하면 얼마든지 굴착이 가능하다. 갱도 길이는 최장 200km까지 가능한데, 이는 기술적인 한계가 아닌 경제적인 한계를 말한다. 어떠한 용도로 굴착하든 일단 지하갱도가 200km 이상을 초과하면 경제성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TBM은 좌우상하로 10도 범위 내에서 움직일 수 있어서 어떠한 모양의 갱도 굴착도 가능하며, 굴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하수 문제 역시 기술적으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우물물이 갑자기 줄어들었다가 다시 차오르는 현상에 대한 이유). 다만 환기 문제가 심각한데, 군사적 목적으로 지하갱도를 굴착할 경우 지상에 설치된 대형 송풍기를 돌려서 터널 속으로 공기를 공급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땅 속에서 찬바람이 올라오는 이유). 하지만 그러한 방식 역시 지하갱도가 일정 길이를 초과하게 되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에, 장거리 갱도를 굴착할 때에는 갱도를 하나만 굴착하기 보다는 갱도를 둘로 나눠서(나란한 쌍둥이 갱도) 두 개의 갱도를 연결하는 환기용 통로를 중간 중간에 설치함으로써 환기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다. 이는 방안을 환기시킬 때 대형 창문 하나를 여는 것(단일 터널)보다 절반 크기의 창문 두 개를 열어놓는 것(나란한 두 개의 쌍둥이 터널)이 보다 효과적인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한편 TBM은 500-1000V의 전압을 사용하지만, 외부에서 TBM까지 전기를 공급할 때에는 보통 11,000V로 승압하여 송전하며, 보다 원거리를 송전할 경우에는 22,000V로 승압하기도 한다. 이는 직경 4m짜리 TBM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TBM은 고가 장비인 관계로 주문자가 원하는 대로 규격을 맞춰 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특정 TBM이 11,000V를 사용한다는 것을 근거로 해당 TBM의 제원을 단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TBM 가격은 약 2천만 Rand(당시 환율로 약 25억 원)로서 이는 우리 회사(R사)에서 사용하는 독일의 Wirth사 제품의 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K씨의 설명 내용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만일천’ 볼트를 사용하는 TBM의 직경이 4m라는 K씨의 설명과, 스즈키 박사가 추정한 수치(3.77m X 3.77m)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수치는 귀순자들이 증언한, 김포 북쪽의 화곡광산의 갱도 크기(2.5t 화물트럭 2대가 어길 수 있는 규모)와도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셋째, TBM이 고압전기를 필요로 한다는 K씨의 설명은, ‘땅 속에서 고압전기 유도음만 들린다’는 김포지역 주민 김OO씨 등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세계적인 음향전문가의 분석 결과와 세계적 수준의 TBM 전문가 등의 설명 내용이 김포 지역 주민들의 증언 내용과 일치한다면, 이는 곧 정지용씨의 녹음테이프에 수록된 북한 말투의 목소리가 실제로 김포 후평리 땅 속에서 굴착 작업하던 북한 군인들의 대화내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정지용씨가 관련 녹음테이프 소리를 조작했을 가능성인데, 이 역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겠다.

첫째, 정지용의 능력으로는 관련 녹음테이프 소리를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웅얼웅얼’ 하는 정도의 소리가 나도록 조작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당시 국내에 단 한 대밖에 없던 첨단 컴퓨터 시스템으로 잡음을 제거했을 때 “일만일천 감전되지”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조작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둘째, 정씨가 테이프소리를 조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정씨가 보상금을 노리고 테이프 소리를 조작했다고 하지만, 보상금이란 실제로 장거리 땅굴을 발견한 다음에나 가능하기에 국방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김포 후평리 지하에 TBM 공법을 이용한 직경 4m짜리 장거리 땅굴이 들어와 있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는 월간조선측의 판단은 정확했다고 할 것이다. 다만 관련 지하갱도의 직경이 4m에 달한다는 점에서, 월간조선측이 장거리 땅굴 대신 ‘장거리 지하터널’로 호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이하 ‘지하터널’로 통일). 같은 맥락에서 지하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북한군의 규모 역시, 과거 단거리 땅굴의 경우처럼 단순한 경보병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무장 기갑부대로 확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1990년대 초에 김포 지역으로 들어와 있던 장거리 지하터널은 그동안 얼마나 더 남하했을까.

이와 관련 월간조선 2003년 3월호가 경기도 화성지역에서도 장거리 지하터널 징후가 발견되었다고 보도한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보도내용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땅속에서도 기계소리와 사람 목소리가 들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굵은 와이어(wire)와 벽돌까지도 땅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땅속에서 와이어 등을 발견하게 된 경위는, 민간인 탐사자들이 시추작업을 하는 도중에 땅 속에서 누군가 시추기 로트(rod)를 끌어 올리지 못하도록 강력한 와이어로 묶은 것을, 강제로 끊는 과정에서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2003년 2월의 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로부터 약 6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장거리 지하터널이 훨씬 더 남하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조1

김한식 목사 미국서 “북 남침용 새 땅굴 팠다” 주장
연합
북한의 남침용 땅굴을 새로 발견했다고 주장해온 김한식(안보와경제살리기 국민운동본부) 목사가 31일(현지시간) '디펜스 포럼' 초청으로 미 하원
레이번빌딩에서 설명회를 갖고 북한이 오산과 군산 미 공군기지 인근까지 땅굴을 팠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목사는 땅굴이 "이미 서울 밑을 지나 서울 남쪽 깊숙이 도달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디펜스 포럼은 미 의회 보좌진 등을 위한 안보.외교정책 토론회 등을 주최하는 단체로 최근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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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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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前대통령 국민장]

盧투신 목격자 있었다 "610분께 툭연이어 들려"

이모씨 부부, 부엉이 바위 바로 밑 고추밭 매며 들어
"
비명소리는 없어경호원이 부축하는 장면 봤다"

"'' '' 하는 소리에 이어 '' 하는 꽤 큰 소리가 들렸어요. "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서거한 23일 새벽 상황을 목격했다는 최초의 목격자 증언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행적에 대한 경호관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최초 목격자가 나와 의혹 투성이인 경찰 수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봉하마을 주민인 이모씨(60)와 김모씨(58) 부부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고추밭에서 일하던 중 '' '' ''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그때는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새벽이라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해냈다.

이씨 부부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550분께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바위로부터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추밭에서 일을 하기 위해 위해 집을 나섰다.

김씨는 "남편은 농약을 치고,나는 김을 매고 있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남편 이씨는 "두 번 정도 제법 큰 물체가 땅바닥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비명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씨 부부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도 "별일이 있겠느냐"며 크게 신경쓰지 않고 밭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경호원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부둥켜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씨는 "부엉이바위 밑에서 한 남자가 또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지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 "그때는 그들이 대통령과 경호관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 말했다. 이는 3명의 경호관이 당시 부엉이바위 밑에서 노 전 대통령 수색작업을 했다는 경찰의 공식 발표와는 다른 대목이다.

이들 부부는 최근 경호관이 진술을 계속해서 번복하고 있는 데 대해 진실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집에서 나와 밭일을 시작하는 데 길게 잡아도 10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 투신 시점을 '610분에서 20' 사이로 추정했다.

또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시간은 630분 전이었을 것으로 기억해냈다. 밭일을 끝내고 귀가한 시간이 630분 전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씨 부부는 또 경호관이 최근 진술에서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정토원에 다녀온 뒤 등산객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고 한 데 대해서도 "밭이 등산로 바로 입구에 있는데, 당시 등산을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모 경호과장, 청와대에 3차례 허위 보고

뉴시스 | 강경국 | 입력 2009.06.01 12:23 | 누가 봤을까? 30대 남성, 제주

 
【창원=뉴시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행한 이모 경호과장이 서거 당일 행적을 청와대 경호처에 허위로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경위를 조사중인 경남경찰청 수사본부는 1일 "이 경호과장이 23일 오후 1시29분, 오후 1시51분, 오후 2시12분 등 3차례에 걸쳐 청와대 경호처에 보고를 했다"며 "조사결과 허위보고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노구 수사과장은 "이 경호과장이 서거 당일 오전 경호실 상위 라인으로 구두 보고를 했고 오후에는 3차례에 걸쳐 청와대 경호처에 문서로 보고하면서 내용을 허위로 꾸며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 경호과장은 경찰 진술에서처럼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엉이바위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뛰어내리셨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달 27일 경찰이 발표한 2차 브리핑의 결과 역시 달라지게 돼 수사에 또다시 혼선을 빚게 됐다.

경찰은 1차 브리핑에서 이 경호과장의 허위진술을 파악하지 못해 '초동수사 실패'라는 뼈아픈 실수를 경험하고도 2차 브리핑에서 "6시45분께 이 경호과장이 노 전 대통령을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발견했다"며 잘못된 수사결과를 밝혔다.

이 수사과장은 "사저 경호실 경호관 6명을 조사하고 휴대전화 및 무선통신 내용을 조사한 결과 이 경호과장이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 시간이 당초 발표했던 시간보다 늦춰진 6시50분에서 51분 사이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 경호과장이 대통령을 놓친 시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 허위로 진술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경호실에서 조직적으로 자신들의 실수를 은폐하려 했던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 후 "하지만 서거 당일 이 경호과장과 통화한 신모 경호관은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직속 상관이어서 외부에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종합>盧 전 대통령 6시51분 발견…수사결과 또 다시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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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뉴시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뒤 경호관에게 발견된 시간은 당초 경찰 발표내용보다 5분 가량 뒤인 오전 6시51분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경위를 조사중인 경남경찰청 수사본부는 1일 "이모 경호과장이 오전 6시47분께 '차 대라'라고 신모 경호관에게 무전 연락을 한 사실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발견된 시간은 오전 6시50분에서 51분 사이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노구 수사과장은 "이 경호과장의 통화내역을 확인한 결과 이 같이 밝혀졌다"며 "진술이 달라진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을 놓친 시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 허위진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경호과장은 23일 오전 청와대 경호처 경위 보고에서도 3차례에 걸쳐 문서를 통해 '노 전 대통령과 투신 당시까지 함께 있었다'는 내용의 허위보고를 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장은 "이 경호과장이 23일 오후 1시29분, 오후 1시51분, 오후 2시12분 등 3차례에 걸쳐 청와대 경호처에 보고를 했는데 이 역시 내용을 허위로 조작해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사저 경호실 차원에서 조직적 은폐 의도가 있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서거 당일 이 경호과장과 통화를 한 신모 경호관으로부터 '직속 상관이어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조직적인 은폐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경찰조사결과 이 경호과장은 서거 당일 오전 휴대전화로 신 경호관과 노 전 대통령 실종과 관련해 6번의 전화통화를 했으며 두 차례에 걸쳐 무전을 주고 받은 것으로 확인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오전 5시45분께 경호동에 '산책나갈께요'라고 연락을 취한 것이 아닌 5시35분께 연락을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장은 "노 전 대통령이 인터폰으로 연락한 시간이 오전 5시35분으로 확인했으며 연락은 신모 경호관이 받았다"며 "신 경호관의 '자전거를 준비할까요'라는 물음에 '자전거는 됐어요'라고 답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유서 저장시간은 당초 발표한 대로 오전 5시44분이었으며 이 경호과장과 함께 사저를 나선 시간은 CCTV 녹화장면 대로인 5시38분인 것으로 확인했다.

강경국기자 kg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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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te.com/view/20090601n16650  (관련 페이지 원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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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 전 대통령, 돈문제 대신 인정하려 했다”

한겨레 | 입력 2009.06.02 07:10 | 수정 2009.06.02 09:30 | 누가 봤을까? 50 남성, 광주

 



[한겨레]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인터뷰


2월께 정상문 100만달러 보고받고 탈진


검찰 중립성·피의자 인권 등 사회적 논의 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1 "노 전 대통령이 도덕적 책임을 통렬하게 느끼면서 법적 책임을 놓고 다퉈야 할 상황을 참으로 구차하게 여겼고, '차라리 내가 다 받았다고 인정하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을 여러 번 말했다"고 전했다.

문 전 실장은 이날 < 한겨레 > 와 한 인터뷰에서 "법적인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우리는 자신했다"면서도 "그러나 (대통령이) 수사 초기와 달리 돈의 쓰임새 등을 점차 알게 되면서 매우 괴로워하셨다"고 털어놨다. 그는 "권 여사가 처음에 유학비용 정도로 이야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집 사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알고 (대통령이) 더욱 충격을 받았다" "(이 때문에) 여사님도 대통령 있는 자리에 같이 있으려 하지 않고 대통령이 들어오면 다른 자리로 가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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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뉴스]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인터뷰

문 전 실장은 검찰의 수사 방식과 관련해서는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여러가지 수사와 관련된 여러 상황들이 그분을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간 측면은 분명히 있으니 타살적 요소는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100만달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분명히 올해 2월께였다" "정상문 전 비서관이 권양숙 여사에게 '박연차 회장이 돈을 건넨 사실을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사실을 먼저 전하고, 이후 노 전 대통령한테도 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문 전 실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 전 비서관이 봉하에 내려오면 늘 대통령을 뵙는데 그날은 여사님을 먼저 만났다" "대통령은 그 점을 좀 의아하게 생각해 두 분이 있는 방에 들어가니 권 여사가 넋이 나가 있었다. 대통령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제야 이실직고해 대통령이 화도 내고 했는데, 나중에 정 전 비서관 표현에 의하면 '대통령이 탈진한 상태에서 거의 말씀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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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뉴스]아주 떠나가지는 말아요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현 수사팀으로서는 이미 결론을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에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게 불가능해진 것이 아닌가"라고 참모들에게 말했다며, 짜맞추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번 수사 행태를 보면 검찰이 구체적인 범죄 혐의를 먼저 잡고 확인하는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구 털어서 범죄가 될 만한 것이 없는지 찾아내는 수사를 한 것이 아닌가"라며 "이런 식의 수사 행태를 내버려둬도 되는 거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문 전 실장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건을 놓고 검찰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진 않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나 소환자들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검찰의 수사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으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합당한 기준이 필요하고, 검찰도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문 전 실장은 "참여정부 때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어떻게 막느냐 하는 문제에만 신경 쓰다 보니, 우리가 이번에 느꼈던 문제에 대해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게 아쉽다"고도 말했다. 그는 또 "결국 검찰의 중립성이라는 게 다시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는데, 대검찰청에서 유일하게 중앙수사부만이 직접 수사권을 갖는 게 바람직한 건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이수윤 석진환 기자, 박창식 선임기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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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유죄결론뒤 짜맞추기 수사…타살적 요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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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돈, 빚갚는데 쓴게 아니라 집사는데 쓴것 알고 충격
노 전 대통령, 참여정부 가치 매도될까봐 고통스러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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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오후 부산시 거제1동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만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뒤 일주일 동안 치러진 국민장의 여파 탓인지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아직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믿기지 않는 듯 "청천벽력 같은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 전 실장은 이날 < 한겨레 > 인터뷰를 통해 지난 몇달 동안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느꼈던 수사의 문제점을 비교적 담담하고 자세히 지적했다. 또 변호사 생활을 한 동료이자 정치적 동지로서 지켜본 '인간 노무현'에 대한 그의 기억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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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지난주 끝났다. 서거 뒤 소회와 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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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모시는 데 여러가지 부족했지 않나 하는 마음에 비통하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가졌을 고뇌라든지 정신적 고통을 더 세심하게 헤아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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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의 돈'을 처음 안 게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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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3월께다. 정상문 전 비서관이 박 회장 구속 뒤 봉하마을에 여러 차례 내려와 말씀을 드리려다 차마 말을 못하고 되돌아가길 반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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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러 이야기를 처음 듣고 노 전 대통령이 혼절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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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비서관이 봉하에 내려오면 늘 대통령을 먼저 뵈었는데 그날은 여사님을 먼저 만났다고 한다. 대통령이 의아하게 생각해 뭘 하는지 두 분이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권 여사가 넋이 나가 울고 있고 정 비서관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제야 정 비서관이 돈 이야기를 했고 나중에 정 비서관 표현에 의하면 '탈진 상태에서 거의 말씀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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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노 전 대통령 자신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거란 예측을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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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까지만 해도 측근이라 할 만한 주변 사람들 예를 들어 한명숙, 이해찬 총리도 샅샅이 조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그래도 우리 쪽 판단에는 '현 정권이 자꾸 노 전 대통령이 정치 활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대통령의 자금원이나 활동 반경을 제약하려고 주변 조사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작 자기 자신이 수사 대상이 되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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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린 뒤 논란이 가열됐는데, 글 올릴 때 노 전 대통령의 심리적 상태는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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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사과글을 올릴 때는 당시에 권 여사나 정상문 비서관한테 들은 게 있으니까, 노 전 대통령은 부부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고 정 비서관이 형사상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은 정 비서관이 받았다는 3억원과 100만달러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다. 하지만 이후에 돈의 성격이라든지 점점 사실관계를 아시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법적 책임과 별개로 도덕적인 책임을 통절하게 느끼게 됐다. 그 돈이 그냥 빚 갚는 데 쓰인 게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 집 사는 데 쓰인 것을 알고 충격이 굉장히 크셨다. 그런데도 홈페이지에는 수사를 정치적 음모로 보고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글들이 올라오니까 '그건 아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강금원 회장에 대한 글은 좀 별개인데, 당시 강 회장이 뇌종양 상태라는 점 때문에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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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횡령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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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잘못을 넘어서서 공금을 횡령하기도 했다는 면에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일들이 퇴임을 대비해 정 비서관이 준비한 것이라는 점을 아시기 때문에 더 괴로워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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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이 왜 그런 거짓 진술을 했는지 밝혀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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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 이유에 대해 저희 나름대로 짐작하는 바도 있고, 직간접적으로 들은 바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이다. 물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조사 때 스스로 자신이 유죄임을 입증하는 대질에 참여하겠다고 확인서까지 썼다. 이것이야말로 박 회장이 검찰의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은 처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 회장은 작년 11월부터 장기간 검찰 수사를 받아왔기 때문에 검찰이 바라는 대로 진술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와 별도로 대통령은, 기소가 되고 사건이 검찰 손을 떠나면 박 회장이 진실을 말할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법정 다툼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믿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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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시계 선물 등이 보도됐을 때 '참 나쁜 검찰'이라고 비판했는데 수사 방식을 평가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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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재임 때 우리는 수사기관이 고문, 가혹행위 등 불법행위를 하는 걸 어떻게 막느냐는 부분에 굉장히 많은 논의를 하고 상당 부분 진전이 있었다. 그런 문제가 극복됐는데, 이번 수사에서 나타난 현상, 즉 검찰이 수사 과정을 매일 언론에 생중계하듯이 브리핑하고, 그걸 통해서 수사 상대방을 비난하고 결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문제 등은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포토라인에 세워 심리적 압박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런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이번 사건이 절절하게 보여준 것 아닌가. 이번 사건 평가를 떠나 검찰 스스로도 되돌아볼 문제이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기준을 세워야 할 것 같다. 검찰 수사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말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을 놓고 검찰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진 않다. 피의사실 공표나 수사 내용의 생중계가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지 드러났으니 검찰도 이제 고민해야 한다. 또 하나, 이번 검찰의 수사는 유죄라는 결론을 처음부터 내려놓고 모든 조사를 거기에 맞춰서 해나갔다. 나중에 노 전 대통령이 '지금 수사팀에서는 다른 결론 내리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시더라. 두터운 벽을 느끼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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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조사 전후 노 전 대통령의 심리 상태는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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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자신은 소환조사를 받는 사실 자체에는 담담했다. 국가기록물 유출 사건 때도 검찰이 방문조사 이야기를 꺼내길래 '내가 나가서 조사받겠다'고 말할 정도로 담담했다. 대통령을 지낸 분에게 소환조사는 안 된다거나 하는 특권 의식은 전혀 없는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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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소환 조사 때 대국민 사과를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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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과정에서는 대통령이 성의 있게 임하셨고, 예의도 다 차리셨다. 조사하는 검사들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충분히 했다. 다만 조사하는 이들이, 열심히 설명해도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았다. 검찰이 결론을 내놓고 있었던 것이 문제이지, 형식은 무리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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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사용처를 밝힌다고 했기 때문에 신병처리가 늦어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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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아니다. 소환조사를 마친 뒤 며칠 만에 용처 부분을 밝히는 서면진술서를 제출했다. 그것으로 다 낸 것이다. 검찰이 그걸 더 확인하려면 권 여사를 소환해야 하는데 분명한 설명 없이 2~3주를 미룬 끝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부분만 봐도 검찰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천신일씨 수사는 우리와 별개다. 저는 검찰이 천신일씨 수사 때문에 일정을 조정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을 처벌하기에 수사상 미흡했기 때문에 보완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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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소환조사 뒤에 3주 동안 공백이 있었고 그 기간에 피의사실 등이 많이 흘러나왔다. 그 때 노 전 대통령의 심경은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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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인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우리는 자신했다.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였으며, 대통령 진술과 박 회장 진술이 엇갈리는데 박 회장의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도덕적 책임을 통절히 느끼면서, 검찰하고 법적 책임을 놓고 다퉈야 하는 상황을 참으로 구차하게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다 받았다고 인정해 버리는 게 낫지 않나라고 여러 번 말했다. 내가 조사받는 것으로 조사 마무리되길 바랐던 것이고, 다만 용처를 밝히기 위해 권 여사 재소환 정도는 예상했다. 그런데 아들 등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더더욱이나 집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 참여정부의 도덕성이 무너지면서 개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참여정부가 지향했던 가치까지 깡그리 부정당하는 상황이 되니 절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작 우리는 여사님이 자신이 모든 원인을 제공했다고 자책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는 할 수 없이 자리를 함께했지만, 여사님은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들어오면 다른 자리로 가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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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력에 의한 기획수사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향후 국정조사가 이뤄진다면 규명해야 할 대상은 뭐라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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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함의가 담긴 사건일수록 검찰의 정치성이 배제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참여정부에서 굉장한 진전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아직 공고하다고 볼 수 없다. 검찰의 중립성 공고화가 첫 과제인데, 대검 중수부의 존재도 생각해봐야 한다. 강력부든 공안부든 직접 수사 권한이 없는데, 유일하게 특수수사를 맡는 중수부만 직접 수사를 한다. 참여정부 때 해결하지 못했는데, 중수부를 폐지해 기능을 분산하는 방안을 제도적으로 연구해봐야 한다. 이번 사건도 기획수사를 하다보니 생긴 일이다. 강금원 회장 사건도 처음엔 안희정씨 정치자금법 수사하다 그게 자신이 없으니 결국 기업 깡그리 뒤져서 횡령으로 구속했다. 애초 수사 목적은 사라졌는데, 이런 식이면 성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서민에게 주류몫 돌려주려 애쓴 대통령"



-예상 밖의 조문과 추모 열기가 어디서 비롯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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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것이 전부 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나 지지 표현으로 보기에는 … 그렇다면 불과 얼마 전까지 비난 일색이었던 싸늘했던 민심은 무엇이었는지…. 우선은 두 가지가 복합된 것 같다. 첫째로는 이분이 목숨을 버린 다음에야 그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알게 되면서 공감과 안타까움과 자책이 있었던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죽음으로 몰고 간 상황에 대한 분노, 즉 참여정부의 가치들이 깡그리 부정되면서 민주주의나 인권, 복지 등 모든 면에서 후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한 분노가 복합된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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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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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러가지 수사와 관련된 여러 상황들이 그분을 스스로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간 측면은 분명히 있으니 타살적 요소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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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의 파면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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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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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책임론이 대두하는 반면에, 또 한편에선 노 전 대통령이 유서를 통해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기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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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말씀대로 우리 입장에서 누군가를 원망한다거나 미워한다거나 그에 대해서 책임을 추궁한다거나 그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에 드러났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반드시 사회적으로 논의되면서 개선되고 극복되고 이 일이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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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장례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을 '서민 대통령' '국민의 편에 섰던 대통령'으로 기억해냈다.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어떤 인물로 기억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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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을 비주류의 정치인이라고들 표현하는데, 사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주류는 수적 다수로 봐도 서민들이고 지방 사람들이다. 그동안 질서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진정한 주류 아니냐. 그럼에도 소수의 특권적 사람들이 주류 행세를 하면서 진짜 주류 행세를 할 사람들이 소외되고 배제되어 왔다. 진정한 주류한테 주류 몫을 돌려주려고 노력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싶다. 어떤 부분은 성취를 이루고 어떤 부분은 좌절하기도 했지만, 노 대통령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은 분명히 심었다. (그런 과제를) 앞으로 다른 정치 세력이 언젠가 이뤄야 한다는 당위성을 분명히 제시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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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금태양의 세상읽기,통찰력큰사람,지식위지혜실천,과학이종교,무소유가행복,영물인김범,자유정의사랑,파워블로거,풍류선비,올마운틴MTB라이더,대금태양,웹제작 웹디자인 웹마케팅 웹기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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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누군가가 한마디를 하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은 경호원들과 밀약한 자들에 의한 타살이라고 전문가들의 추리 수사후 최종 판결이 났습니다. "


경호원은 계획적인 살해 후, 계속 안절부절 못하고 일관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공포에 질린듯 떨면서....




2009.05.23 토 20:53

역시 나의 분석은 틀리지 않았군!

친필유서가 아니라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파일유서.

그것도 서거 당일날 몇시간 전에 작성.

내용은 급조한 것이 확연히 들어나도록 짧고,조잡한데 제목은 길기도 하지!

파일명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

 

영혼에 베인 습관은 변할 수 없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인터넷을 좋아했어도 나이가 육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유서를 한글타자로 남겼다는건

월드컵 경기를 본 날 야구 꿈을 꿨다는 얘기만큼 독특하군!

내가 범죄심리학에는 일가견이 있거든

죽기 바로 직전 유서를 남기는 자살자들은 99.9% 손목을 긋거나,목을 메지!

음독자살을 하거나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유서를 당일날 작성하지 않아!

왜냐하면 음독과 투신이란 방법에는 사전준비(약,장소)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투신자살하는 사람들이 아무데나 가서 뛰어내리는 것 같지?

그건 나이아가라 폭포나 금문교 같이 물이 끌어당길 때의 얘기이고

사람은 점찍어 두었던 익숙한 장소로 걸어가게 되어 있어!

결국 음독과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사전에 계획했단 얘기이고 유서를 미리 작성해 놓는다는 뜻이지!

기네스북에 오른다면 가장 긴 유서제목이 되겠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렇게 모르나?

만약 진짜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이 자살하러 나가기 전에 급히 작성한 유서의 제목이라면

그 제목은 분명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였을거야!

유서제목이 신기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바람을 대변해주는군!

정말 신기한 일이지!

유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썼는데 왜 유서제목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대변할까?

세상은 속여도 나는 못속이지!

 

 

2009.05.23 토 12:45

그자가 어떤 인생을 살았건,이유가 무엇이건,죽음으로 무엇을 말하고,이루려 했건 자살은 옳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자살이란 선택을 한 당사자가 전직 대통령이라면 그건 더욱 더 옳지 못한 행동인 것이다.

무슨 일이건 일어날 수 있으니 세상이다.

충격받을 일도 아니고,감싸고 이해해줄 일은 더더욱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짜 자살을 했다면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으며,책임감이 결여된 비겁한 도피일 뿐이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발표를 믿지 않는다.

차분히 유서까지 남기고 준비된 자살을 할 사람이

조용히 집에서 죽을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뒤로 한 채

하필 단 한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뒷산으로 향했다는 얘기는 마치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어 바로 앞에 있는 물병뒤에 숨어있던 간장을 마셨다는 얘기처럼 비논리적이다.

물론 목이 마를 때에도 물대신 콜라나 우유를 선택할 수는 있다.

두명의 경호원을 대동했다거나 조용히 혼자 산에 올라가 뛰어 내렸다면 자살발표를 믿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일기가 경호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아니다.

내 머리가 지금보다 조금 나쁘다면 그렇게 의심하겠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동한 단 한명의 경호원] 이란 정의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상상을 사전에 불식시킬 역 알리바이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로 얼마전 헬기를 거부했다.

노무현은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함께 죽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한달전 유시민 전 장관을 만났다.

어떤 방향으로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을 예감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서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그랬다.

아침먹고 멀쩡히 출근했던 가장이 들어올 때는 시신이 되어 돌아오고,

어제 웃으며 안부 전화를 했던 아들이 오늘 사망했다는 전화가 걸려오던 시절이었다.

 

다시 역사가 되돌려지고 조만간 최루탄이 컴백하신단다.

그때처럼 의문의 죽음이 생겨나는 것도 전혀 이상할게 없다.

'노무현 죽이기' 를 하더니 진짜 죽인 것일까?

그런 귀여운 질문은 하지 말아라!

답은 나도 모른다 이니...

 

분명한건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끝까지 살아 남으려면 강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영원히 둘로 갈라져 둘중에 하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야만 할 운명인가 보다.

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국민에게 불행을 헤쳐나갈 용기는 선택이 아닌 필연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인 것이다.

 

 

 

2009.05.24 일 16:08

역시나 의학적 정황들도 나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네요!

올해 63세의 당신은 일명 자살바위라 일컬어지는 30미터 높이 70도 경사각의 암벽에서 추락했어요!

그곳은 30대인 내가 떨어진다 해도 즉사할만큼 위험한 장소이죠!

암벽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뛰어 내리지 않아요!

인간은 암벽을 보면 반사작용으로 주춤하게 되기 때문에

자살자는 무의식적으로 먼곳을 보면서 최대한 멀리 뛰어 내리죠!

그렇게 뛰어내려 바위에 닿는 1차 충격으로 뼈가 부서지면서 장기가 파열되는 거예요!

하지만 당신의 직접 사인은 두개골 골절 등 두부의 손상 이예요!

즉 당신은 떨어져서 구른게 아니라 구르면서 떨어진 것이죠!

스스로 뛰어 내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 뒤에서 밀쳤다는 얘기예요!

당신은 분명 평소의 트레이드 마크대로 양팔을 위로 들고 손을 흔들다가

뒤에서 미는 충격으로 푸쉬업의 자세로 암벽을 짚으며 굴렀어요!

그 충격으로 양팔이 골절된 것이죠!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과정이 당신을 살게 했지요!

스스로 뛰어내렸다면 즉사했을텐데

누군가 뒤에서 밀어 굴러 떨어졌기 때문에 당신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암벽으로 부터 최대한 자신을 방어했죠!

경호원은 분명 거짓증언을 하는게 아니예요!

처음 떨어졌을때 당신은 분명 살아있었어요!

의식이 분명했고,경호원과의 대화도 가능했어요!

당신의 정확한 투신 시간은 23일 오전 6시 45분이었어요!

당신은 멀쩡했고,경호원은 당신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분명했기에

경호원은 초인적인 일념으로 당신을 들쳐업고 달려 자동차를 이용해 30분만에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한 거예요!

여기까지가 1단계예요!

문제는 병원을 옮기는 과정이죠!

당신은 처음 도착한 세영병원에서 청와대에 보고를 한 직후 부산대 병원으로 옮겨졌어요!

23일 오전 7시 34분 까지 당신은 경호원 한명이 부축해 병원을 데려올 수 있을 만큼 멀쩡한 상태였어요!

김해의 세영병원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시골병원이 아니예요!

충분한 의료시설을 갖춘 현대식 병원이죠!

그런데 당신은 이상하게도 조금의 의논도 없이 부산대 병원으로 옮겨졌어요!

마치 그곳이 당신이 죽어야 할 장소인 것처럼...

결국 당신은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완전히 의식을 잃었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부산대 병원 도착 1시간만에 숨을 거두었죠!

정말 신기하죠?

젊은 사람이 실족을 해도 즉사를 할 만한 암벽에서 63세의 노인이 자살을 하려 뛰어 내렸는데

척추등 모든게 멀쩡해서 경호원 한명이 살릴려고 번개처럼 날라다 병원에 모셔다 놓았더니

죽지도 않았는데 청와대로 보고부터 하고 당신은 도토리 키재기같이 비슷한 병원으로

응급처치 기능도 없는 조그만 앰블런스에 실려 느릿느릿 옮겨져

마치 죽을 장소에 도착한 사람처럼 쓸쓸히 눈을 감았죠!

그 나이에 자살하려고 암벽에서 뛰어 내렸는데 어떻게 몇시간 동안이나 살아있었나요?

그래요! 당신은 옛날부터 초인이었으니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죠!

당신 죽으면서 어이가 없어 웃었군요!

요즘 대한민국에 쓸만한 조폭이 없어요!

특A급들은 다 연희동으로 갔거든요!

대통령씩이나 지냈으면서 당신은 왜 세상을 몰랐나요?

그들은 알고 있었는데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갔을 때는 사설경호부대를 운영해야 안전하다는 것을

경호원은 분명 진실만을 말하고 있지만 기억의 퍼즐조각들을 잃고 있어요!

선진국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당장 최면수사에 들어갈 겁니다.

당신의 죽음은 타살일 가능성이 90% 를 넘어요!

타살이 아니라 해도 이건 분명 의문사라고 봐야죠!

당신이 죽어서 누가 이득이냐구요?

그럼 당신이 살아있다면 누가 손해를 볼까요?

김해세영병원에서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옮겨지는 40분동안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건가요?

맘먹고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이 암벽에 머리를 부딪히면 절대 3시간이나 살아 있을 수 없어요!

그것도 그 자리에서 당장의 치료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말이죠!

풀밭에 떨어졌다 해도 피가 흥건해서 혈흔을 일부러 고생해 찾을 일도 없거니와

투신자살을 한 사람을 업고 병원으로 옮기면 옮긴 사람의 옷에 피가 가득 베이게 마련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대한민국을 위해 당신이 품고 있는 블랙박스를 보여주세요!

어떤 것이 먼저였습니까?

암벽에서 굴러 떨어져도 불굴의 의지로 살아있던 당신.

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이 나중 아니었던가요?

아니면 머리를 둔기로 맞고 떨어진건가요?

두정부는 검도를 한 조폭들이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휘두를때 많이 노리는 곳이죠!

암벽에서 구른 사람이 왜 하필 머리 위쪽 부분에 11cm 정도의 찢어진 상처를 남겼나요?

머리가 찢어지는건 각목으로 맞았을 때이죠!

먼저 때리고 암벽에서 굴리는건 조폭들에겐 이미 고전이 된 살해 방법입니다.

 

 

2009.05.24 일 05:41

후후후~ 왕거니가 하나 걸렸군!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문사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해줄 증거는 바로 경호원이 증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말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몽고인이 아닌 이상 300미터 밖의 사람을 보고 사람이 지나간다라 말하지는 않지!

산에는 나무가 있고,5월은 나뭇잎의 무성함이 절정에 달할 때.

아무리 높은 산정상에 서있다 하여도 사람을 보는 것은 바로 밑의 코스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지!

곧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 바로 아래쪽에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는 뜻!

 

첫째 부엉이 바위의 구조는 뒷편은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한쪽면으로만 투신이 가능한 구조.

결국 그 얘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래를 보며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라고 말을 하면

경호원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자 여기선 두가지 상황이 성립되지!

먼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절벽 가까이로 걸어가면 직책상 요인보다 뒷편에 서있는 경호원은 직분상

"각하 위험합니다." 라고 만류하게 되고 (뛰어내리는 것이 불가능 해짐.)

다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경호원이 발걸음으로 이동없이 바로 뛰어 내릴 수 있는 위치까지 간 것이라면

이는 100% 경호과실인 것이지!

즉 한눈을 파는 사이 뛰어 내렸다는 증언은 전혀 말이 안된다는 것.(경호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뒷쪽에 서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

 

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한 다음 그 자리에 앉아 책한권을 읽고 뛰어 내린 것이 아니야!

경호원은 분명 바로 뛰어내렸다고 증언했지!

부엉이 바위의 높이는 30미터.

30미터 절벽위에서 성인남자가 떨어지는데 저기 지나간다던 그 사람이 그걸 몰랐을리가 없지!

봉화산이 서울 시내에 위치한 남산이었다면 저기 지나가던 그 사람은 겁많은 도시청년일 수도 있지!

무서운 생각에 그냥 도망갔을 수도 있어!

그러나 경남 김해의 가파른 암벽 및을 꼭두새벽부터 혼자 걸어가던 그 사람이 소심한 여고생일리는 없는 것!

30미터 절벽위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도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는건 전혀 설득력이 없어!

 

정리하자면

한눈을 파는 사이 뛰어내렸다는 경호원의 증언은 100% 거짓이며,

이 경호원이 인생을 종칠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혼자서 노 전대통령을 수행하며 초긴장을 했을 텐데

그런 경호원이 달음박질 없이 바로 뛰어 내릴 수 있는 위치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면

그건 경호원이 노 전대통령을 죽였다는 얘기나 진배없는 것이라는 것!

사고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목격자부터 찾는 것은 수사의 기본.

그냥 일반인도 아니고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서거 직전 전직 대통령의 입으로 직접 언급한 '저기 지나가던 그 사람(목격자)은 왜 수소문해 찾지 않나?"

 

어째 일제시대부터 우매한 대한민국 국민들 쉽게 속여가며 권력을 유지해오다 보니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부 닭ㄷH가리로 보이던가?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

가끔은 돌연변이로 대한민국에 나같은 사람도 태어나는 것이거든

차라리 "저기 비행접시가 날아가네!" 라 말하고 경호원을 따돌렸다 주장해라!

 

2009.05.25 월 15:50

이 노+ㅁ 들이 전직 대통령을 폭행 살해하고서 대국민 사기극을 꾸미고 있네!

그러나 트릭은 아무리 치밀해도 결국 깨어지게 마련이지!

김해 세영병원 손과장이 말한 세영병원의 도착시간은 오전 7시경.

경남지방경찰청이 24일 오전 2차 브리핑을 통해 밝힌 노 전 대통령의 투신시간은 오전 6시 45분.

양쪽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결국 거짓말은 경호과장이 하고 있는 것이지!

부엉이 바위 위에서 세영병원까지 단 20분만에 도착했다는 얘기인데

경호과장도 부엉이 바위에서 굴러 내려왔나?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오는 시간 + 노 전 대통령을 업고 차로 가는 시간 + 차로 세영병원으로 이동하는 시간 = 20분? 절대 불가능 하지!

노전대통령이 오전 7시 35분에 김해 세영병원을 출발해 양산 부산대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시 13분이야!

엠블런스에 싣고 도로를 달려가도 40분이 걸리는데

그 많은 일들을 겪으며,놀라서 손이 부들부들 떨려 사고가 안나면 다행인 상황에

부엉이 바위 위에서 세영병원까지 도착하는데 그 절반인 20분이 걸렸다고

니가 무슨 슈퍼부엉이냐? 아니면 본래부터 죽일 계획이라 심장이 평온했던 것이냐?

혹시 너도 고향이 봉하마을이라 세영병원 가는 길을 통달했던 것이냐?

아니면 범행전에 미리 동선 코스를 답사해놨던 것이냐?

봉하마을 택시기사가 가도 니보다는 느리겠다.

결국 답은 하나.

최종적으로 일을 마무리한 장소가 부엉이 바위 아래가 아닌 세영병원에서 가까운 장소였다는 뜻이지!

 

더 간이 오그라들게 만들어 줄께!

거기에 세영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과장과 노전대통령만 왔던 것이 아니라

경호실 차량에 비서진과 경호팀이 동승했다고 증언하고 있어!

이건 무엇을 증명할까?

이동시간이 플러스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

사저를 나갈 때는 둘이서만 나갔는데 비서진과 경호팀이 동승해서 세영병원에 왔다는 말은

결국 이과장이 노전대통령을 싣고 사저에 들러 비서진과 경호팀을 태웠던지,

아니면 이과장이 무전을 해서 비서진과 경호팀이 사고장소로 왔다는 뜻이지!

어때? 부엉이 바위 꼭대기에서 세영병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20분이 아니라

이 시간만 해도 20분은 걸리지!

결국 답은 하나.

틀린 그림을 찾았나?

그렇지 바로 그거지!

노전대통령과 이모과장은 차를 타고 나오지 않았어!

즉 이모과장이 무전을 해서 사람들을 불렀다는 뜻이지!

다음 과정을 볼까?

심장이 멈추도록 만들어 주지!

 

경남지방경찰청은 이렇게 발표했지!

"수행 경호과장이 사고 직후 무전 등으로 문모 비서관에게 연락했고 문 비서관으로부터 다시 연락받은 박모 비서관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유서를 처음 발견했다."

유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동행한 이과장으로부터 무전을 받은 문 비서관에게 연락을 받은 사저의 박모비서관 이었어!

이거 완전한 그림이 나오잖아?

이과장은 현장에,박모 비서관은 사저에,그럼 문 비서관은 어디에 있었던 건데?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서 이동시간이 빨랐던 것!)

그리고 노전대통령이 추락했다는 무전을 받고 노전대통령의 컴퓨터 바탕화면부터 확인한 박 비서관은 뭐하는 ㅅH낀데?

이거 완전히 ㅁI친노+ㅁ아닌가?

세상에 어떤 상식있는 인간이 전직 대통령이 암벽에서 추락했다는 무전을 듣고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부터 확인하나?

상식적으로 경호원이라면 추락했다는 무전을 받자마자 만사를 제쳐두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거 아닌가?

방으로 들어가려면 권여사에게 먼저 알렸어야지!

처음부터 컴퓨터 조작하는게 임무가 아니라면 어떤 ㅁI친노+ㅁ이 추락했다는 무전받고 노전대통령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부터 확인해?

이건 완전히 책을 나눈 조폭들이야!

현장(행동대원)조,운송대기조,마무리조.

 

다시 현장으로 이동해 볼까?

너희들은 한가지 사실을 간과했지!

거기엔 노전대통령을 진짜 지켜주려는 착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

경비3초소에 있던 순진한 전경 1명이 오전 6시 20분 경호상황실에 '현재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있다'고 보고했어!

25분 전에 부엉이 바위 위에 있는 것을 목격한 전경,

그리고 25분 전에 부엉이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을 보고받은 경호실 요원들이 모두

200미터 뒤 30미터 암벽에서 성인남자가 추락하는 것을 보지도,듣지도 못했다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며느리 들인가?

 

세영병원으로 가보지!

세영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노전대통령은 피범벅 이었어!

게다가 피가 많이 묻은 노전대통령의 상의 또한 발견됐지!

어머! 그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노전대통령은 피범벅이 되어 세영병원에 실려오고,노전대통령의 피묻은 상의는 발견이 되었는데

어째 현장에서 노전대통령의 혈흔은 하루가 지나도록 발견을 못한거야!

아직까지도 어디서 얼마만큼의 혈흔이 발견되었다는 정통한 소식이 없네!

참 신기하기도 하지?

피범벅이 된 사람,피묻은 상의가 벗겨진 사람이 왜 현장엔 그토록 혈흔찾기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을까?

답은 하나.

노전대통령은 그곳에서 살해된게 아니었기 때문이지!

 

후후후~ 범인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릴줄 아는 노+ㅁ이었지만 법의학 상식이 부족한 노+ㅁ이었어!

암벽에서 추락을 해도 상의는 벗겨지지 않는 단 사실을 몰랐던 것이지!

머엉청한 범인은 노전대통령이 이곳에서 굴렀다는 증거를 꾸미기 위해

상의와 등산화 한짝을 이용했지!

그런데 바보같은 노+ㅁ이 상의의 위치를 잘못 잡은 거야!

상의는 낙하지점으로부터 11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어!

나무에도 걸리지 않았는데 상의가 벗겨져 11미터 밖으로 도망가 버리는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왜 11미터 일까?

답은 두개야!

하나는 부엉이 바위 위에서 상의를 던진 것이지!

둘은 다른 곳에서 급하게 그 지점에 상의를 갖다 놓느라고 아무데나 놔버린 것이지!

 

경찰은 상의가 이과장이 노전대통령을 업고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졌을 것이라 말했어!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결국 경찰도 추락하는 동안은 상의가 벗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인데

추락하는 동안에도 벗겨지지 않던 상의가 업고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져?

그렇다면 그것은 떨어진게 아니라 일부러 벗긴 것이지!

범인이 피해자의 옷을 벗기는 이유는 단하나.

피해자가 항상 품에 간직하고 다니던 물건을 노릴 때이지!

 

여태까지 내가 올렸던 모든 추론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사건을 대충대충 넘겨 빨리빨리 끝내기 위해 국민들을 속이려고 하지만

미리 서로 입을 맞춘 것이 아니고 사건의 진행동안 변수가 생겼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이 어긋나고 있는게 분명해!

먼저 노전대통령을 수행한 경호과장의 진술은 100% 신빙성이 없으며

그에 따라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23일 오전 6시 45분에 뛰어 내렸다는 부분부터 다시 재고가 되어야 해!

일단 떨어진건 떨어졌다 하더라도 그게 밀려 떨어진 것인지,아니면 위협을 피해 뛰어 내린 것인지도 분명치가 않아!

분명한건 단 한가지 사실 뿐이야!

노전대통령과 이모경호과장이 단둘이 사저를 나갔다는 것!

그게 산책이었는지,그 방향이 부엉이 바위였는지,둘이서 밖으로 나간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무 것도 결론을 내릴 수 없어!

 

ㄱH판.

수사법이 바뀌어야 해!

사건이 일어나면 지방경찰은 국과수가 올 때 까지 현장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일체의 출입을 금지 시켜야 해!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동네경찰이 수사를 한다는게 말이 되나?

정말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졌다면 사저의 경호원들은 바로 통제에 들어가야지!

23일 오전 6시 45분 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들락거리고 사건현장을 오갔나?

무개념.

그 자체가 이미 범행인거야!

 

 

2009.05.25 월 08:32

난 대한민국 경찰의 노력과 양심은 믿지만 실력은 인정할 수가 없어!

노력이고 양심이고 간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지능이고,실력인거야!

미국이나 영국의 수사팀이 와서 조사후 자살발표를 하기 전에는

내 홈피에서 만큼은 타살로 잠정 결론 내리겠다.

 

추리는 상상이 아니라 검증과 실험을 통한 과학적 인과론이야!

추론을 음모론이라 칭하는 무식한 나라는 미개한 후진국 한국이 유일하지!

내가 가진 최고의 의문점은

63세의 노인이 자살을 마음먹고 30미터 높이 70도 경사각의 암벽 위에서 뛰어 내렸는데

과연 3시간 동안이나 특별한 조치도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게 가능할만큼 살아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야! (그것도 사인이 두부손상인데 말이야)

지금 많은 네티즌들이 가장 의문을 갖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이 추락했으면 척추를 비롯 온몸의 뼈가 다 절단이 났을텐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경호원 혼자 업고 가서 승용차로 병원까지 데리고 갈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인데

그건 아주 간단한 문제야!

즉 척추도 온몸의 뼈도 멀쩡했다는 뜻이지!

추락해서 절단난 사람을 어떻게 혼자 업고 갔느냐? 가 아니라 멀쩡했으니 혼자 데리고 간 것이지!

여기선 두가지 결론이 성립되는 거야!

하나는 자살하려고 뛰어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고 몸을 보호해서 죽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은 처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암벽에서 추락한게 아니라는 것이지!

봉화산은 경남 김해에 위치한 시골산이지만

부엉이 바위는 사저에서 20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고

알잖아? 당시 사저 주변에 얼마나 많은 기자들과 사람들이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특종거리와 볼거리를 노리고 있었는지

그런데 30미터 높이에서 먼지가 아닌 성인남자가 추락하는 것을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어!

시골마을 고요한 아침 조그만 돌멩이 하나가 굴러 떨어져도 그 소리는 상당한 파장력을 소유하지!

사람은 자살을 한다 해도 긴 비명은 아니라도 충격으로 인한 단말마의 소리라도 내지르게 되어 있어!

아무도 보지 못했고,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

덧붙여 새로운 사실 하나가 나왔지!

권양숙 여사도 산행에 동행하려 했어!

분명 혼자 올라간 남편이 궁금해서 봉화산 쪽을 수시로 쳐다봤을 거야!

아니 일부러 쳐다보진 않았다 해도 신경이 봉화산 쪽으로 쏠려 있었겠지!

왜 암벽에서 떨어진 사람이 머리가 깨져야지 하필 정수리 부분에 찢어진 상처를 남기나?

궁금하면 머리통을 바위에 박아 보라고 과연 정수리가 찢어지나?

박은게 아니라 맞은 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것은 어떤 분야로도 논리적인 설명이 안돼!

범죄 심리학적으로 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분명 몇주전부터 계속 우울한 기미를 보였다고들 증언했어!

그런데 유서를 자살하러 나가기 20분전에 남기나?

법의학적으로 살펴 볼까? 3백미터 암벽에서 추락해도 점퍼는 벗겨지지 않아!

점퍼가 벗겨지려면 팔을 벌려야 하는데 추락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팔을 웅크린다고

성인남자가 떨어지는데 나뭇가지 정도에 걸릴 거 같나?

걸리더라도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점퍼가 찢어지지!

나무에 걸렸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았어야지!

나무에 걸려 살아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점퍼를 벗어 버리고 도망치는데 쫓아가서 각목으로 후려쳤다면 말이 되지!

지능이 모자라기 때문에 추론이 나오면 소설을 쓴다고 빈정대는 거야!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

이번 사건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그려 원래 계획대로 죽었어야 하는데 안죽었으니 어쩌겠나?

범인은 목표가 어긋나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후회가 밀려 오는거야!

죽일 사람이 멀쩡하니 최선을 다해 살리는 수 밖에

그런데 살아있던 사람이 진짜 죽었어! 언제?

청와대에 전화하고 병원으로 이동해서 도착하는 동안에

40분전엔 가망이 있어서 큰 병원으로 옮기는데

40분뒤엔 이미 심폐소생술도 못할만큼 저승사람이 되어 버리나?

누굴 바보로 아나?

그건 니들같은 닭ㄷH가리들이나 속아 넘어가는 것이고

죽을 사람이면 세영병원에서 죽게 내비두고 사저의 권양숙 여사한테 먼저 전화를 하는게 순서이고

옮겨서 살 사람이 40분만에 송장이 됐다는건 옮기는 40분동안 죽였다는 뜻이지!

처음부터 세영병원은 예정에 없던 돌발수였지!

암벽에서 추락해도 바로 죽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변수였으니까

원래 계획은 암벽에서 추락. 즉사하거나 의식이 없었다면 바로 부산대병원으로 가는 것이었지!

그러니까 니가 바보인 것이지!

청와대에 중간 보고는 왜 하나?

그러니까 니가 똥줄타는 아마추어인 거야!

봐라!

청와대에 보고를 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완전히 서거한 다음에 하는 것이 정상이지!

그게 아니고 그토록 급하게 먼저 해야 했다면 떨어지자 마자 했어야지!

세영병원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다는건 뭔가?

일이 틀어졌단 얘기 아닌가?

마지막으로 내가 여기다 싸인하나 해주지!

난 이모과장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 3 의 인물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임무를 완수하면 니노+ㅁ은 살 수 있을 것 같나?

니노+ㅁ도 삼년안에 죽을테니 두고 보라고

그리고 집착해서 기다릴 필요도 없어!

내가 아무리 베플을 즐겨한다 해도 이런 내용을 공론화 시키지는 않으니까

중요한건 어떤 글이냐 하는 것이지,어디에 쓰면 어떠한가?

내가 쓴 글은 돌고 도는 동안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엔 들어갈 사람 귀에 다 들어가더라고

 

 

2009.05.25 월 03:54

많은 사람들이 고 안재환 씨의 누나를 욕했지만

난 안재환 씨의 누나와 타고난 성격이 비슷한 사람이기에 그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분이 동생의 불행과 의문의 죽음을 해결할 수 있기를 아직까지 응원하고 있다.

 

무기력하고 무지하며 가증스런 인간들.

그게 한국인들의 공통점이다.

국장? 꼴 값떨고 있네!

자살한 전직 대통령이 무슨 명예가 있다고 국장을 치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자살로 끝나면 노무현의 명예는 없는 것이다.

노무현이 죽음으로 누가 이득을 보냐고?

노무현이 자살을 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노무현 자신이다.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측은하고,불쌍한 대통령으로 남는 것은 명예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분향소를 찾아가지만

그 눈물과 발걸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국민들이 흘렸던 그 눈물과 발걸음이 아닌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이 서거가 되고 노무현의 명예가 지켜지기 위해선 그의 죽음의 본질적 원인 자체가 격상 되어야지

장례형식 따위가 격상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명복은 무슨 얼어죽을

허구한 날 명복을 빌면 죽은 사람이 살아오나?

죽으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지

죽은 다음에 눈물 흘리고,아쉬워 하고,명복 빌고 다 부질없고 가증스런 짓거리들이다.

진짜 애정은 그런게 아니다.

진짜 애정은 우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진짜 애정은 떠난 자의 영혼이 잘됨을 비는 것이 아니라 떠난 자의 이름이 잘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진짜 애정은 잊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 하는 것이다.

진짜 애정은 분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은 루트를 답사하는 것이다.

사랑은 주먹으로 발로 심장으로 하는 것이지! 세치 혀로 하는게 아니다.

장난하나?

노무현이 담배 못피워 한맺힌 사람인가?

유시민이 대표로 한대 피게 했으면 됐지!

뭘 줄나라비를 서서 담뱃불을 붙여놓나?

한국인들은 그저 모든게 형식. 오직 같잖은 형식일 뿐이다.

 

모든 추측을 미루고서 라도 본래 경찰의 공식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죽음은 그냥 죽음일 뿐이다.

지금이야 공식발표가 나왔지만

이 나라는 어찌된게 경찰의 공식발표가 나오기도 전까지 사람이 죽기만 하면 무조건 다 자살이다.

야 이거 진짜 죽어도 한국에서는 죽지 말아야지!

나처럼 자살을 혐오하는 사람이 어느날 죽어도 이 나라에선 바로 자살로 종결 처리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절대 자살을 안할 사람들은 미리미리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죽으면 그건 절대 자살이 아니라고 알려두어라!

그래야 당신이 죽었을때 주변 사람들이 자살이 아님을 알거 아닌가?

이 나라에선 꿀먹은 벙어리처럼 살다간 어느날 억울하게 죽어도 당신은 분명 자살자로 처리된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자가 죽어도 이토록 사건을 빠르게 종결하지는 않는다.

언제 제대로 된 수사라도 한번 해보았는가?

이건 완전히 "죽었다. 끝났다." 이다.

당연히 죽을 사람이 죽은 것처럼,이미 죽어있던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지지자들 마저 집단최면에 홀린 듯이 총체적 무지에 빠져 깊은 영혼의 웅덩이를 헤메고 있다.

 

무기력한거 착한거 아니다.

ㄷH가리 나쁜거 자랑 아니다.

남들하고 똑같이 사는거 올바르게 사는거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못된 새ㄲI들,죽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새ㄲI들이 바로 음모론을 펴지 말라는

노+ㅁ들이다.

사이버수사대는 인터넷에서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주자] 는 노+ㅁ들을 전부 잡아다가 조사를 해야 한다.

역사는 증명한다.

"대대로 입다무는 것들 치고 죄없는 노+ㅁ 없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머리가 좋은 죄 뿐!

무식한 인간들이 내글을 이해 못한다고 해서 내글이 틀린 글이 되는 것은 아니요,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내글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3년 뒤에 이민갈 계획인가?

한나라당은 3년 뒤에 대통령 후보 내세우지 않을 작정인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정부여당을 위해 전직 대통령의 죽음엔 한점 의혹도 없는 객관적 수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건 타살이 아니라도 의문사이다.

제대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의 길을 막고 물어보라!

예순 넘은 우리 어머니도 노무현은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 했다.

이 나라엔 젊어도 늙은 노+ㅁ들,무기력하고 무식하고 착한척 하는 역겨운 위선자들로 가득차 있다.

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인 범인이라면 인터넷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 줍시다."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주자는 노+ㅁ들 글과 내글은 이미 문장의 레벨 자체가 다르다.

사람들이 니노+ㅁ보다 할일이 없어서 의문을 제기하겠는가?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대충 대충 좋은게 좋은거 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들을 전부 쓸어내야 이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걱정마라!

니가 죽었을 때는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줄 테니...

 

 

2009.05.26 화 05:21

이건 또 무슨 ㄱH소리인가?

아마추어가 노전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가 제 무덤을 파고 있네!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25일 발표하기를

노전대통령이 서거 당일(23일) 정토원에 갔었다고 말을 했네!

 

대한민국엔 범죄심리학자가 단 한명도 없단 말인가?

이렇게 완벽한 증거가 나와도 그냥 자살로 처리하고 화장을 해?

봐라!

정토원이란 곳은 노전대통령이 뛰어 내렸다는 부엉이 바위에서 2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야!

그리고 노전대통령과 경호과장이 정토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6시 30분.

그런데 내가 앞선 글에서 분명히 언급했었지!

경비3초소에 있던 전경 1명이 오전 6시 20분 경호상황실에 '현재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있다'고 보고했다고

그렇다면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거야?

자살하는 사람이 일단 부엉이 바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정토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부엉이바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렸다고?

푸하하하~ 플로리다에서는 그렇게 증언하면 정신병동행이다.

자살하는 63세의 전직대통령이 혼자도 아니라 경호원을 대동하고 일단 부엉이 바위 위로 올라가서

전경에게 자신이 부엉이 바위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다시 200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정토원으로 내려가서 "저 자살하는거 맞습니다." 하고 흔적을 남겨주고

또 다시 200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부엉이 바위 위로 올라가서 뛰어 내렸다고?

천만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어!

첫째 자살자가 자살할 장소에 왔다가 그곳을 벗어나 다시 그곳을 찾아와 자살을 했다는건 범죄심리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얘기이고,

둘째 무슨 유격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몸도 안좋았다는 63세의 노인이 험한 산길을 25분안에 왕복했다는건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돼!

봐라!

오전 6시 20분에 부엉이바위 -> 오전 6시 30분에 정토원 -> 오전 6시 45분에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컨디션도 안좋은 63세의 할아버지가 무슨 바쁘게 자살할 일이 있었나?

만약 진짜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까지 올라왔다 내려가 정토원에 들러 다시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자 말했다면

그순간 바보가 아닌 정상적인 경호원이라면 모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거야!

그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노전대통령을 그대로 절벽가까이 가도록 놔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중대한 경호과실이지!

 

이 트릭을 깨주지!

너희들은 언제나 한명이야!

대동한 경호원도 한명,부엉이 바위위에 있는 노전대통령을 목격한 전경도 한명.

내가 저번글에 언급한대로 노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진게 아니었어!

처음부터 노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 가지 않았어!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위에 가지 않았다면 경호원이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오는 시간은 없어지기 때문에

세영병원에 얼마나 빨리 도착했건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이지!

6시45분에 투신을 했는데 세영병원 도착시간은 7시라는건 도저히 말이 안되지만

6시40분에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폭행을 당했다면 세영병원 도착시간이 7시라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것이지!

처음 계획은 노전대통령을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 버리는 것이었지!

그래서 뛰어내렸다는 정황을 만들기 위해 전경 한명이 목격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었어!

그런데 변수가 생겼어!

자신의 위험을 직감한 노전대통령이 갑자기 정토원으로 발걸음을 돌려버린거야!

확실한 공포가 엄습해 올 때 피해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지만

위험이 직감적으로 느껴질 때 피해자는 싸인을 남기는 법이지!

정토원은 노전대통령이 남긴 표식이야!

어떡하나? 따라가는 수 밖에!

그런데 거기서 부처님의 도움이 계셨지!

선진규 정토원장은 경호원과 눈이 마주치자 마자 이렇게 물었어!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이게 무슨 뜻인가?

사람이 정토원에 찾아오면 그 첫인사를 "무슨 일이 있으시냐?" 로 하는 원장이 세상에 어디 있나?

그만큼 무슨 일이 있어보였던거야!

그런데 재밌는건 선원장은 자살하려던 노전대통령을 보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던게 아니라

따라온 경호원과 눈을 마주친후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어!

왜 그랬을까? 경호원이 자살하려고 맘먹은 것도 아니었는데 경호원의 눈에서 뭘 느꼈길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을까?

그런데 여기서 경호원의 대답이 해답을 말해주지!

무슨 일이 있냐는 선원장의 질문에 경호원은 이렇게 대답했어!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게 상식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

경호원의 정상적인 대답이라면 "네 각하께서 오셨습니다." 였겠지!

아무 것도 아니다란 대답은 뭔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

누가 갑자기 "너 뭐하냐?" 라고 물어오면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대답하는 것이지!

한마디로 사람은 상대방이 나에게 많은 말을 걸어오지 않기를 바랄 때,빨리 이 상황이 끝나주기를 바랄 때

바로 아무 것도 아니란 대답을 하게 되어 있는 거야!

 

어디까지 연결되고 누구까지 엮여있니?

24일 있었던 경찰의 브리핑에선 노전대통령이 정토원에 들렀다는 사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어!

경찰이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스스로 은폐한거니?

그건 아니었겠지!

그런데 왜 25일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표가 나왔을까?

목격자인 정토원 원장님은 매수를 못했기 때문이지!

게다가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니 정토원에 들렀다고 발표를 하는게 자살의 당위성을 높여줄거라 착각했던거야!

그러나 너희들은 대한민국에도 나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지!

여기가 만약 미국이나 영국이었다면 뒤집어질 일이야!

한국에서 권력을 누리는걸 하늘에 감사하고 겸허하게들 살아라!

내가 왜 이런 글을 자꾸 올리냐고?

자존심이지!

내 머리에 대한 자존심.

난 내가 억울하게 죽는건 용서해도,바보같이 속아 넘어가는건 절대로 용서못해!

뭘 고개를 갸우뚱 거리니? 미련한 노+ㅁ아!

나를 죽이는 남은 용서해도,속아 넘어가는 내 자신은 용서하지 못한다고...

 

2009.05.27 수 00:27

하하하~ 어떠니? 핏덩이들아^^

몸에 힘좀 있으니 사람 죽이는게 쉬워 보였지?

*만한 핏덩이들이 이 넓은 세상에 어떤 잘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깝치고 있네!

나원 같잖아서

 

내가 얘기했지?

위협을 직감한 노전대통령이 발길을 정토원으로 돌렸다고

거기서 니가 정토원장이랑 눈마주쳐서 버벅대는 사이에 노전대통령이 자살하러 부엉이 바위로 혼자간게 아니라

살기 위해 도망을 친 것이지!

놓쳐? 뭘 놓쳐?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작당을 한게 아니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전을 왜 치나?

노전대통령이 자살할 거란걸 미리 알고 있었어? 아니잖아!

니가 무전을 칠 그때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때 였어!

그런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무전을 왜쳐?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잖아!

넌 깜짝놀라 무전을 쳤지?

왜 쳤을까?

바로 유서를 맡은 노+ㅁ 때문이었지!

난 처음부터 왜 유서가 바탕화면에 떠 있었을까? 생각했어!

바로 이제 그 이유를 알게됐지!

사저에 남아있던 공범은 노전대통령의 컴퓨터가 있던 방에 두번을 들어간거야!

한번은 유서를 작성하러,그리고 또 한번은 놓쳤다는 무전을 받고 유서를 삭제하러

그런데 인기척이 들리자 미쳐 유서를 삭제못하고 급하게 컴퓨터도 못끈채 방을 나와버렸지!

무전의 내용을 한번 살펴볼까?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

넌 형사가 아니라 경호원이야!

전직 대통령이 무슨 범죄자니?

니가 쫓아가서 뭔가를 해야할 입장이 아니라면 놓쳤다란 무전은 맞지가 않지!

폭행치사가 아니라면 노전대통령의 시신을 일본인 의사에게 정밀검사 하도록 맡겨봐!

한국은 독립할 지능이 안되는 나라.

난 일본인 만큼은 믿는다.

그래!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 고 치자!

그리고 노전대통령이 널 따돌리고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고 치자!

그럼 너는 정말 용한 점쟁이로구나!

부엉이바위는 정토원 바로 옆에 있는 바위가 아니야!

아무리 봉화산이 뒷산이라도 거긴 서울이 아니지!

녹음이 우거진 5월의 시골산에서 200미터나 떨어진 부엉이바위 아래 노전대통령이 쓰러져 있을 줄 넌 도대체 어떻게 알았던 것이니?

내가 치명타를 날려 줄께!

너희들은 한노+ㅁ이 아니었던 것이지!

도망치던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다른 노+ㅁ과 마주쳤던 거야!

바로 등산객이 만났다던 혼자 거닐던 경호원은 니가 아니라 그노+ㅁ이었지!

정토원에서 놓쳤다고 무전을 치던 니가 부엉이바위 아래 쓰러져 있던 노전대통령을 찾았다는건 말이 안돼!

넌 뒤에서 쫓아가고 한노+ㅁ은 부엉이 바위 아래 숨어 대기하고 있었지!

왜?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버리는게 애초 계획이었으니까 그노+ㅁ이 거기 있었던건 본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던거야!

만약 노전대통령이 정토원에 들렀다 도망치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셨겠지!

그런데 도착해야 할 시간에 도착을 안하니 궁금해서 숨어있다 나온 것이지!

그래서 등산객을 만나게 된거야!

너더러 사람들이 순간이동 했냐고 하더라!

어떻게 부엉이 바위에서 세영병원까지 20분만에 노전대통령을 옮기며 도착했는지

이젠 답이 나오잖아!

처음부터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올 일이 없었고,너흰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분명 세영병원에 도착했을때 너희들은 한명이 아니었다고 증언이 나왔지!

먼저 각목으로 두정부를 내리쳤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 노전대통령의 양발을 붙잡고 배쪽으로 내리 눌렀니?

그래서 등산화를 양쪽다 벗겼다가 생각해보니 이상해서 한쪽은 다시 신겼니?

노전대통령이 도망치는 사이 메모라도 남겼을까봐 주머니를 뒤지려고 상의를 벗겨니?

직접사인은 두부손상,그리고 뼈들은 이곳저곳 부러졌는데 신기하게도 장이 파열됐다는 소견은 듣지 못했거든!

난 처음부터 의심을 했었지!

암벽에서 자살하려 한 63세의 노인이 어떻게 저렇게 오랫동안 숨이 붙어 있을 수 있으며,혈흔 찾기가 힘이 들었을까?

니가 한번 30미터 암벽에서 죽기로 마음먹고 뛰어내려 볼래?

니몸이 어떻게 되고 추락장소에 혈흔이 얼마나 남나?

그래서 니들은 아마추어.

폭행으로 추락사를 꾸미려니 대충 모양새는 유지했는데 장들 파열을 못시키고,뼈들을 분산시키지 못하고,피를 많이 뽑지 못했던거야!

하지만 의사들이 바보는 아니야!

언제 의사들이 제대로 된 정밀검사라도 할 여유가 있었니?

그대로 세영병원에 남아 있었다면 의사들도 의문을 제기했을 거야!

그런데 병원을 옮겼지!

왜?

세영병원은 애초에 목적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왜 세영병원으로 갔을까?

엔딩타임 오전 7시 20분을 초과했기 때문이지!

원래 계획은 오전 6시 30분에 노전대통령을 부엉이바위에서 밀어버리고

곧장 양산부산대병원으로 가는 것이었지!

그런데 도망친 노전대통령 때문에 시간이 초과되니까 일단 세영병원으로 갔던 것이지!

 



결론 핵심요약 및 추가

 

 

 

1. "놓쳤다 못찾겠다"

무언가 낌새를 차리고 도망갔다는 의미.

언론은 계속 1명의 경호원만 있었다고 했는데 최소 보고하는 자와 보고받는 자 2명 이상이라는 뜻.

그렇다면 사고 발생시 왜 1명의 경호원이 업어서 내려왔을까.

 

 

2. 새벽에 같이 등산가자고 부른 권여사를 따돌리고 급하게 먼저 출발

아마도 무언가 불길한 기분에 부인이 위험에 처할수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낀건 아닌지.

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으나 옷 입을때 그냥 먼저 성급히 따돌리고 나간건 아닐런지.

 

 

3. 문서작성시간

문서파일은 시간설정변경으로 간단히 저장정보를 왜곡할 수 있음.

예를 들어 밤10시에 작성한 것도 시간을 바꿔놓으면 새벽 5시로 저장됨

 

 

4. 바탕화면 문서

최근 기술로는 원격조종이 가능함. 즉 제3의 컴퓨터에서 유서파일 작성 뒤

노대통령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는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음.

또한 HWP는 저장시 첫번째 문장이 자동으로 파일명으로 저장이 되나 노대통령의 유서는

두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됨.

 

 

5. 유서를 발견한 비서관

이것은 평소에 노 대통령의 사재를 자기 방 드나들듯 다닌다는 이야기?

VIP가 보이지 않는다고 덜컥 사재에 들어가 컴퓨터를 확인? 상식적으로 자살을

예감한다면 유서를 찾기위해 노트나 책상서랍을 뒤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언론은 유서를 오후 1시경에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기사는 11시 부터 났었음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13946&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6. 유서의 신뢰도

법적 효력 이런것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오래전부터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아침일찍 일어나 깨끗이 속옷을 갈아입고 정갈한 마음으로 종이에 적어서 살포시

올려놓고 가지 않는가? 실제로 자살과 관련한 여러 사례와 연구를 보면 자살을

앞둔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등 여러가지 징후를 보인다(군대 다녀온 사람은 알것임)

 

 

7. 손목골절

추락하며 손이 먼저(만세자세) 바닥에 닿았다는 의미. 자살하는 사람이 왜 충격을 저지하려는

자세를 취하였는가

 

 

8. 혈흔

30미터 절벽에서 떨어진 시신의 착지지점과 피투성이가 돼어있을 그의 잠바,

그리고 그 시체를 업고 왔다는 경호원의 옷.. 어디에도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9. CCTV 미공개

사저와 정문, 경호원 별채등 CCTV 출입기록만 공개되면 거의 모든 비밀은 풀리게 되어있다.

특히 유서를 쓰러 갔다는 시간의 실내CCTV 기록만 공개되면..

 

 

10. 정토원

정토원 보살의 말로는 경호원이 혼자 올라왔다고 하며, 결정적으로 경호원을 만나 잠시

같이 산행을 한 목격자의 진술.

 

 

11. 시체의 상태

뼈마디가 다 으스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시체를 40대 경호원이 업어서 하산.

그러나 나중에 확인한 시신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하고 온화했다.

 

 

12. 사건전날

사건전날 담당 경호원이 바뀜. 그리고 사건 전날 이례적으로 경호원들을 일찍 퇴근시킴.

 

 

13. 발표시간

OO일보에서 9시14분에 9시30분 서거로 기사가 뜸. 또한 최초 음독사로 의심된다는 기사도 있었음.

 

 

14. 자살발표

사건이 일어난 이후 부검이나 일체의 구체적인 정황조사없이 모든 언론이 자살이라고 일제히 방송.

대부분 속보는 사건사실만 최초보고 한후 후속보도나 추가보도를 하는데 당일 언론은 이미 오전에

편집영상 및 각종 분석까지 준비된 듯 내보냈음.

 

 

15. 화장

고인은 2004년 장기기증 서약을 하였음.

"화장해라" = "부검하지마라"

뿐만 아니라 사고 직후 정부는 "고인의 예우차원에서 부검은 실시하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부검여부는

가족들이 결정해야 할 사안임.

 

 

16. 이동시간과 시체이동

45세의 경호관이 63세의 노인을 업고 하산해서 차량에 싣고 병원까지 도착하는데 걸린시간이

단 20분. 팔팔한 20대의 나이에 20kg대 군장들고 산타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알것.

 

 

17. 경호원의 진술

경호원은 일관되게 자신이 행동했던 것을 증언한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걸' 증언하고 있다.

즉, 그는 산 아래나 다른 위치에서 노대통령을 지켜본 경호원이고 산위-노대통령의 옆에 있던

경호원은..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

 

 

18. 경호원의 초기대응

자신이 경호하는 VIP가 낙상을 당했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리시버를 통해서 다른 경호원이나

사저로 연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119도 부르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사실상 헬기가 제일 먼저 왔었어야 한다.

경호라인을 통해 청와대에 최초 보고를 한 뒤 사저의 다른 경호원 도움없이

혼자 병원으로 이송했다. 물론 응급조치는 하지 않았으며 골절환자를 개인도수운반으로 날랐다.

 

 

19. 새벽에 경호원와 맞닿은 등산객

경호원이 VIP를 놓친 상황이라고 하면 "노 대통령 못 보았냐?"라고 물어보는 것이 정상.

하지만 그는 놓친 VIP를 찾는 것이 최우선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있냐는 질문에 그냥 등산하러

왔다고만 대답

 

 

20. 조선일보 홈페이지 로고

홈페이지 왼쪽 위 노무현대통령 서거 애도하는 로고 logo_090522.gif 를 보면

서거일은 5월23일인데 파일명은 5월 22일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12963&hisBbsId=best&pageIndex=1&sortKey=&limitDate=-30&lastLimitDate=

 

 

 

21. "쿵 쿵" 하는 두번의 소리

중간에 한번 부딛히고 나중에 한번 더 부딛히는 바운드되는 소리일 수도 있고,

둔기로 한번 맞고 추락할 때 한번 부딛히는 소리일 수도 있고.

참고로 사인은 두개골 손상. 그러나 손목골절도 있음.

 

 

22. 혈흔의 다른 미스테리

현장에는 혈흔이 없었뜨나 현장에서 떨어져 발견된 상의에는 혈흔이 있었다.

상의는 왜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을까? 살해당한 사람이 두명이었을 가능성.

예를 들어 그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거나 그 상황을 저지하려고 시도하던 제3의 인물의

상처가 상의에 묻을수도.

 

 

23. 시체의 상태

30미터의 절벽에서 머리부터 떨어졌다면 사실상 두부는 거의 파손될 수 밖에 없음.

추락시체 목격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파트 10층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져도 시체는 산산조각이

난다고 하는데, 시체의 모습은 '편안히 잠든' 모습이라고 함.

 

 

24. 잠바와 등산화

왜 잠바와 등산화는 사망장소에서 떨어진 곳에서 발견이 되는지?

피가 뭍어 있는 상태라면 사후에 벗겨진 것이라는데.

등산화는 그냥 벗기려고 해도 잘 안벗겨지는 신발인데.. 사후에 그냥 슬리퍼 벗겨지듯이

등산화가 벗겨질수가 있는가?

 

 

25. 다른 경호원들의 동향

사고직후 사저내에 있던 다른 경호원들은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그리고 그들이 청와대에 보고한 내용은? 최초 산에서 무선으로 보고를 받았으면 VIP를

병원까지 옮기기 위해 산으로 뛰어 올라가던지 아니면 산아래에서 접선해서 같이 병원에

가야하는게 최우선이 아닌지?

 

 

26. 경비의경의 진술

경비의경이 사저에서 올려다 보니 부엉이바위에 노통이 경호원 둘과 같이 있는 걸 봤다고

진술했다고 OO뉴스에 뜸. 그 뒤로 그 기사가 사라짐.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14395&hisBbsId=best&pageIndex=1&sortKey=agreeCount&limitDate=-30&lastLimitDate=

 

 

 

27. 기자들의 부재

평소 사저주변에는 파파라치 처럼 많은 기자들이 새벽에도 항상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음.

특히 마을 뒷산은 사진 앵글이 잘 잡혀서 사진기자들이 상주했던 장소이기도 함.

그러나 권양숙 여사 소환일이었던 사건 당일 사저앞에는 단 한명의 기자도 없었음.

 

 

28. 유서내용의 부실성

현학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나, 평소의 어투와는 전혀 다른 문체를 쓰고 있음.

특히 평소에 늘 언급하던 부인, 가족(자녀), 국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문맥상 뜬금없이

화장하라는 말을 강조함

 

 

29. 경호원의 행동

경호원이 경호대상자 놔두고 담배가지러 갔다 올까요? 라고 물어봄.

경호원을 아는 정토원장에게 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함. 하지만 이 두가지 사유도 경호원이

vip를 놓쳤다고 가정하면 모두가 거짓말이 됨

(참고로 위 경호원이 사건 전날 교체된 경호원이라면 정토원장이 경호원을 알아본다는 것도

말이 맞지 않음)

 

 

30. 목격자의 부재

그러나 이런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호원들과 경비의경, 유가족, 등산객,

정토원, 병원의사등의 목격담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되거나 은폐되고 있음. 신변안전확보가 필수적임.

 

 

31. 부엉이바위에 관한 대화내용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유래와 부엉이가 사느냐는 질문을 경호원에게 했다고 하는데

어렸을적 봉화마을 뒷산에서 살다시피 한 노통이 그걸 전날 새로 온 경호원에게 질문함?

실제로 현재 동영상 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의 유래에 관한 설명을 하는 동영상도 있음.

 

 

32. 주차장 오보?

사건당일 오전 8시 30분경 생방송 도중 노무현 전대통령의 시신이 주차장에 방치되어 있다고 방영됨.

하지만 생방송 도중 주위에서 고함으로 방송을 방해하여 잘 전달되지 않고 묻힘.

 

 

33. 일정하지 않은 사망시각

MBC

방송사는 사건 당일 방송시 양산부산대학병원 한관계자와 전화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사망시각을 08시30분으로 1시간동안

방송했는데, 동시간대에 KBS는 09시30분으로 사망시각을 보도하여 양방송사간에 무려 1시간이나 차이가 났었음. 11시 30분경

병원의 공식 발표때는 09시 30분으로 사망시각이 MBC의 방송내용과 달리 1시간 늦은 시간으로 발표됨. 사망시각도 석연치 않음

 

 

 

34. 환자복의 미스테리

조선일보 "부산대병원 의료진이 전하는 노 전대통령의 마지막"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오전 8시 13분쯤 노 전 대통령이 김해 세영병원 환자복을 입고 머리에 붕대를 감으채 도착했다"라는 기사가 있음.

위급한 상황에.. 그것도 30미터 절벽에서 떨어져 뼈가 다 으스러진 사람, 그것도 피떡이 되었을 그런 응급환자를..

환자복으로 갈아입힌다는게 의료적으로 타당한것인가?

 

 

 

 

 

 

 

 

35. 전에 없는 북한의 맹공, 신종플루의 전국적 확산

왜 몇년에 한번 있을 국가적인 재앙이 연달아 일어나는지..

 

 

36. 봉하사저 도청설 (필독)

http:www.jpnews.kr/sub_read.html?uid=383§ion=sc1§ion2

 

 

 

37. 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는가? (추가)

투신시각은 06시40분, 양산부산대병원 도착시간은 08시30분 서거시각은 09시30분. 무려 2시간의 공백이 있었다.

세영병원으로 이동할 20분 거리내에는 종합병원이 몇개나 위치해 있다. 그리고 양산부산대병원까지

1시간여 지체. 통상 응급환자가 생기면 119에 연락하여 최소 5분~10분내 도착하여 급하게 응급실로

실어나르고 특히 낙상사고의 경우 산악지형이기 때문에 구조헬기가 와서 이송한다. (더욱이 전직 대통령인데)

하지만 경호원은 119에 신고도 하지 않은채 도와줄 사람 없이 혼자서 승용차에 피투성이가 된 그를 싣고

무려 2시간을 보호장비도 없이 방치하였다. 왜?

 

 

38. 경호원 없이 혼자였다?

노대통령은 최초 경호원 1명과 함께 등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1명도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절벽위에 노대통령 혼자 있었다는 이야긴데, 그것은 누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아무런 증인이 없는데. 같이 올라갔던 경호원 A외에 제3의 인물이 산에 미리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 CCTV 내역 전부 공개하라 전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보안상 CCTV1대만 공개한단다..ㅋㅋㅋㅋ

핑계거리라도 만들어서..속일라구 해봐라. 잔머리 잘돌아가자나? 니들?

- 경호원 및 병원의사, 관련인들의 신상을 안전하고 공개된 곳으로 이동시켜라

- 시신 화장 및 장례를 연기하고, 즉시 사체부검을 실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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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금태양의 세상읽기,통찰력큰사람,지식위지혜실천,과학이종교,무소유가행복,영물인김범,자유정의사랑,파워블로거,풍류선비,올마운틴MTB라이더,대금태양,웹제작 웹디자인 웹마케팅 웹기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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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70억, 전두환 대통령은 7000억!!


지금 당신의 옆에는 친구 홍길동이 있고 당신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홍길동 친구는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고, 당신은 큰 기업의 회장이 되었다고 하자. 그렇게 가까운 오래된 20년, 30년, 50년 지기의 친구인데 그 홍길동이라는 친구에게 당신은 그냥 친구로서 얼마의 돈을 주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기업에서 10억이 어찌 돈이 되겠느냐?
그러한 돈도 그냥 받기 미안했던 사람인지라 거절도 많이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비자금은 전두환대통령의 그것보다 초라하다.

하지만 현정권은 전정권의 치부를 샅샅이 찾으려 혈안이 되어서 그것을 찾아서 들추고 엄정한 수사를 요구하고, 자잘한 작은 일까지 끄집어 내는 집요한 수사력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것으로 경제살리기, 실업자해결에 대한 부담은 좀 줄어들만큼 연일 노무현만 흔들어됐다.
현정권의 수장인 이대통령은 과거 전두환 대통령에게 세배를 한것으로 매스컴에 보도되어, 국민들 가슴속에 어떤 사람인지 새겨넣은 적이 있다.

전대통령의 7000억 횡령사건은 검찰이 전두환에게 압박하지 않고 큰소리도 내지못하고 수사하였지만
(또한, 수사하면서 각하 좋게 잘 될것입니다. 기운내십시요. 이런 대화까지 하면서 수사했다고 한다.)

이번 노대통령죽이기 수사는 너무 집요하고  노대통령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현정권과 검찰의 전 정권 죽이기(일명 노무현죽이기) 작전으로 수사한 바 그들의 뜻대로 전정권이 몰락은 커녕, 실제로 완전 죽어버리게 된 것이다. 

가진자들의 무서움. 즉, 현 정권의 바람대로 그렇게 이루어진것이다.


현정권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한나라당의 행태를 국민들은 잘 알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가서 상당히 국가적으로 망신을 시키고,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고,
한나당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상당히 잘 할 것처럼  노대통령을 유린하였다.  
국민들의 탄핵반대촛불시위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가지고 노는
건달, 양아치, 조직 집단으로 밖에 납득이 안가는 것이다.

또한 자기들끼리도 싸운다. (이명박 VS 박근혜) 


집안이 시끄러운 데 무슨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정치를 하겠느냐?

과거의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이순신, 김구, 신사임당, 대조영, 세종대왕 등등의  인성, 심성도 가지고 있지 못한 자들이 우두머리에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믿고 앞으로 이 나라의 국정을 맡기겠느냐는 이야기이다

또한, 몇달전 장자연 사건도 외압을 넣어서 검찰수사가 흐지부지 사그러 졌지만 분명히 장자연을 자살로 몰고간 사람이 있을터인데도 검찰은 어떤 관계여서인지 짧막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조용히 수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너무 현 정권은 국민을 상대로 똥침막대 휘두르듯 가벼히 하는게 문제이다.


또한, 신랄하고 집요하고 고통스러운 수사를 강요하던 현 정권은 그 수사의 영향으로 아무래도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한 것이 분명한데도!
자살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냥 사망이라고 보도하게 하였다.
살고자 열망하던 연예인도 자살하는데 대통령이라고 자살하고 싶지 않겠소? 대통령도 사람이였단 말이요.


이것은 엄연한 살인이요, 협박살인이요, 살인방조이다.


국민이 수사를 촉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1주일에서 10일이면 사건을 끝내 버리면서 이 노태통령 뇌물 사건은 벌써 2~3달 , 몇달째 수사를 하고 있다.

상대를 흉기로 죽이는 거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는 육체적, 정신적 살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행여, 지금 정권의 이대통령도 입장을 바꾸어서 언론플레이와 함께 죄를 들쳐내어 수사를 2~3달 계속 압박하고 가족들을 괴롭히고, 대통령의 자존심도 무시한채, 수사를 집요하게 했다면 과연 노대통령과 같은 결과가 안나왔을까? 
누구나 사람이면 다 그러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피디수첩죽이기사건, 촛불시위무력진압, 용산참사사건, 장자연사건, 노무현대통령 서거, 등등 무수히 많은 사건을 오히려 현 정권이 만들어 가고 있으며 앞으로 역사에 어떤 정권으로 길이 남을지 보다는 현정권에서 고통받고 시름하는 국민들의 무매함과 무능이 비통할 뿐이다.


바위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기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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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금태양의 세상읽기,통찰력큰사람,지식위지혜실천,과학이종교,무소유가행복,영물인김범,자유정의사랑,파워블로거,풍류선비,올마운틴MTB라이더,대금태양,웹제작 웹디자인 웹마케팅 웹기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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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태통령이 서거하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북핵 실험이 발발하여 그의 서거 뉴스가 북핵으로 서서히 묻힐지 염려가 된다.

이명박정권 그리고 노태통령과 전부터 대립관계에 있던 검찰이 노태통령을 자살하도록 괴롭혀서 끝내 목숨을 잃게 하였는데

그러한 뉴스도 비중있게 다루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이야기도 집권당 측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서거한 뉴스 또한 서서히

묻혀졌으면 하는 모양새다.


예전에 의경집단에서 자살사건이 있었을 때 그 사건에 가담한 관련자들 모두 구속이 되었었다.

즉, 의경 상사와 동료들이 후배 하나를 못살게 괴롭히고 언어폭력을 쓰고, 정신적으로 오랫동안 시련과 고통을 주자

그 후배 의경은 창 밖으로 과감하게 자신의 목숨을 던져 자살한 사건을 연일 뉴스를 통해서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 사건의 결과는 어떠한가?

그 의경을 괴롭힌 무리들은 바로 검찰에서 잡아 구속시킨 사례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복무소에 복역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예와 노전 태통령과 무엇이 다른단 말인가?

그 사건은 책임소지를 가려서 벌을 주려 안간힘을 쓰는데 이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연일 방관만 한체 안타까워서 참배만 한다고 아우성이며, 조문만 하겠다고 연기아닌 연기들을 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관여한 검사들은 모두 특검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국민의 의견과 지혜가 중요합니다.

어제 밤에는 심기가 불편하고 떠나신 고인의 지혜와 용기가 불쌍하여 집안에 있기 답답하여 옥상에 올라가 노 태통령이 좋아하셨던

담배를 입에 물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그리도 잘보이던 달이 노 태통령이 서거한 날 부터 어제밤 까지 달 마저도 보이지 않더군요.

달 마저도 하늘 마저도 슬픔을 아는지 사방을 둘러봐도 달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 몇일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거한 날 양산 대학병원에서 봉하마을로 시신이 운구되었던 그 날에 다른지역에서는 폭우는 커녕 비 구경도 못했다는데 유독

그 동네에서만 폭우가 잠깐 내려 쏫아졌다고 하는군요.

하늘도 알아주는거 보니 위인은 위인이셨나 봅니다.

연일 인터넷과 티비에서는 북한 핵, 미사일 발사 속보만 연일 방송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마 이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렇다고 인정하실 겁니다.


노 태통령 서거 소식은 이제 그늘에 가려질 심산입니다.

노 태통령은 하늘도 알아주는 우리 시대의 이순신장군, 대조영 장군, 링컨장군 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생전에 그가 썼다는 책들은 이미 온라인 서점이나 중고서점에서 품절을 일으키고 있으며,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의 말을 들으면

최근에 전화문의로 노무현 이란 단어를 말하면서 책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정신혼쭐없게 온다고 하더군요.

국민들은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가슴속에 노 태통령을 묻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이 생계에 빠져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니 국민들의 말, 행동으로 노무현 태통령에 자살에 대한 책임공방과

현 정부에 잔인성을 지적하지 않는 듯 합니다. 그저 조용히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에서 크게 슬퍼하지도 않고 크게 분노하지 않으며

크게 통곡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담담할 뿐입니다. 그리고 눈치만 볼 뿐이죠.

어제는 라디오에서 개그맨 최양략씨가 떠나는 노무현 태통령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고싶다고 하여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그에 대한 존경과 감사함에 대한 마음을 길게 발하더니 끝에

배칠수씨께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를 듣게 해달라며 노 태통령님의 성대모사를
부탁 했다는데

참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메이기 하였다고 하는군요.

담담하면서 차분하게 인사하는 멘트가 너무도 애절하게 들렸던 것입니다.



노무현 태통령의 홈페이지에는 지금 많은 이들이 그가 생전에 쓴 '말과 글'에 대해서 스크랩하고 복사하고 저장하느라 요즘 많이들

접속인원이 폭주한다고 하더군요. 동영상은 물론이거니와 가벼운 노무현태통령의 인사말까지도 개인이 소유하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자~ 정말 이제 영영 떠나기전에 화장하기전에 그에게 잠깐이라도 조의와 묵념을 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밤에는 딸내미 손잡고 가까운 분향소가서 참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행동도 중요한 것이죠.

또한, 조중동 얼마나 노무현 태통령을 미워했는지 툭하면 꼬투리 잡기식으로 열을 올린 신문을 발간하면서 그의 정신적 폭력에 일조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도 이번 노태통령 자살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신문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당분간은 조중동의 간사한 전략대로 북핵문제로 노무현 태통령 가는 소식을 묻히게 하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따라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 신문사별로 신문 헤드라인을 보았는데요. 역시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헤드라인에

노태통령 얼굴도 제대로 싫으려 하지 않고
그리고 그 분의 기사를 비중있게 다루지를 않았네요.

얼렁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큰가 봅니다. 벌써 신문 헤드라인에서 그를 빼려는 의도가
너무 무더나는 아침 신문이였습니다.

다른 신문들에서는 노태통령에 조문하는 사람들의 사진컷이라도 헤드라인에 들어가 있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이제는 국민들께서 진정한 시각과 정신, 지혜와 관점으로 세상사를 읽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결단과 판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겠습니다.


인터넷만으로는 절대 국민의 의도와 심중은 보여지지 않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적극적인 표현과 행동이야 말로 참된 역사를 그려낼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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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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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70억, 전두환 대통령은 7000억!!


지금 당신의 옆에는 친구 홍길동이 있고 당신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홍길동 친구는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고, 당신은 큰 기업의 회장이 되었다고 하자. 그렇게 가까운 오래된 20년, 30년, 50년 지기의 친구인데 그 홍길동이라는 친구에게 당신은 그냥 친구로서 얼마의 돈을 주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기업에서 10억이 어찌 돈이 되겠느냐?
그러한 돈도 그냥 받기 미안했던 사람인지라 거절도 많이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비자금은 전두환대통령의 그것보다 초라하다.

하지만 현정권은 전정권의 치부를 샅샅이 찾으려 혈안이 되어서 그것을 찾아서 들추고 엄정한 수사를 요구하고, 자잘한 작은 일까지 끄집어 내는 집요한 수사력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것으로 경제살리기, 실업자해결에 대한 부담은 좀 줄어들만큼 연일 노무현만 흔들어됐다.
현정권의 수장인 이대통령은 과거 전두환 대통령에게 세배를 한것으로 매스컴에 보도되어, 국민들 가슴속에 어떤 사람인지 새겨넣은 적이 있다.

전대통령의 7000억 횡령사건은 검찰이 전두환에게 압박하지 않고 큰소리도 내지못하고 수사하였지만
(또한, 수사하면서 각하 좋게 잘 될것입니다. 기운내십시요. 이런 대화까지 하면서 수사했다고 한다.)

이번 노대통령죽이기 수사는 너무 집요하고  노대통령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현정권과 검찰의 전 정권 죽이기(일명 노무현죽이기) 작전으로 수사한 바 그들의 뜻대로 전정권이 몰락은 커녕, 실제로 완전 죽어버리게 된 것이다. 

가진자들의 무서움. 즉, 현 정권의 바람대로 그렇게 이루어진것이다.


현정권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한나라당의 행태를 국민들은 잘 알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가서 상당히 국가적으로 망신을 시키고,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고,
한나당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상당히 잘 할 것처럼  노대통령을 유린하였다.  
국민들의 탄핵반대촛불시위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가지고 노는
건달, 양아치, 조직 집단으로 밖에 납득이 안가는 것이다.

또한 자기들끼리도 싸운다. (이명박 VS 박근혜) 


집안이 시끄러운 데 무슨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정치를 하겠느냐?

과거의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이순신, 김구, 신사임당, 대조영, 세종대왕 등등의  인성, 심성도 가지고 있지 못한 자들이 우두머리에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믿고 앞으로 이 나라의 국정을 맡기겠느냐는 이야기이다

또한, 몇달전 장자연 사건도 외압을 넣어서 검찰수사가 흐지부지 사그러 졌지만 분명히 장자연을 자살로 몰고간 사람이 있을터인데도 검찰은 어떤 관계여서인지 짧막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조용히 수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너무 현 정권은 국민을 상대로 똥침막대 휘두르듯 가벼히 하는게 문제이다.


또한, 신랄하고 집요하고 고통스러운 수사를 강요하던 현 정권은 그 수사의 영향으로 아무래도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한 것이 분명한데도!
자살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냥 사망이라고 보도하게 하였다.
살고자 열망하던 연예인도 자살하는데 대통령이라고 자살하고 싶지 않겠소? 대통령도 사람이였단 말이요.


이것은 엄연한 살인이요, 협박살인이요, 살인방조이다.


국민이 수사를 촉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1주일에서 10일이면 사건을 끝내 버리면서 이 노태통령 뇌물 사건은 벌써 2~3달 , 몇달째 수사를 하고 있다.

상대를 흉기로 죽이는 거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는 육체적, 정신적 살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행여, 지금 정권의 이대통령도 입장을 바꾸어서 언론플레이와 함께 죄를 들쳐내어 수사를 2~3달 계속 압박하고 가족들을 괴롭히고, 대통령의 자존심도 무시한채, 수사를 집요하게 했다면 과연 노대통령과 같은 결과가 안나왔을까? 
누구나 사람이면 다 그러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피디수첩죽이기사건, 촛불시위무력진압, 용산참사사건, 장자연사건, 노무현대통령 서거, 등등 무수히 많은 사건을 오히려 현 정권이 만들어 가고 있으며 앞으로 역사에 어떤 정권으로 길이 남을지 보다는 현정권에서 고통받고 시름하는 국민들의 무매함과 무능이 비통할 뿐이다.


바위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기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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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선 광명시장, 市 차원 분향소 설치 끝내 거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철거하라며 막말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이효선 경기도 광명시장이 시 차원의 공식 분향소 설치도 거부했다.

26일 이효선 광명시장은 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민간단체인) 국민장 광명장례위원회로부터 시 차원의 공식분향소를 설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미 철산역에서 운영중인 분향소가 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철산역 분향소는 이 시장이 철거를 요구했던 시민 분향소가 철수한 뒤 자리를 옮겨 마련된 것이다.

이 시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마음 아프지만 사고로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검찰조사를 받던 중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시민회관이나 시에서 운영중인 시설은 이미 대관 일정이 잡혀있어 장소도 없다"며 분향소 설치거부 이유를 밝혔다.

앞서 '노 전 대통령 국민장 광명장례위원회' 이승봉(52) 위원장 등 3명은 25일 오후 이 시장을 만나 현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철산역 분향소 대신, 장소가 넓은 곳에 '광명시 공식분향소'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시장은 또 지난 24일
오리문화제와 평생학생축제가 열렸던 광명실내
체육관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한 것을 보고 "당장 시설물을 치우라"고 고성을 지른 것에 대해서는 "주최 쪽의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한 잘못"이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 시장은 "
행사 마지막날이었고 당시 4시간정도 후면 행사가 끝나는데 그런 상태에서 분향소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치우라고 말한 것"이라며 "그들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건지 즐기는건지 모르겠다"고 이 위원장을 비판했다.

특히 이 시장은 존칭도 없이 '치우라'고 시민들에게 반말한 것에 대해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나에게 반말을 하는데 시장이라고 반말하면 안 되느냐"며 반박했다.

당시 이 시장은 '시설물을 치우라'며 삿대질을 하고 '사기꾼'이라고 막말을 하는 등 언성을 높이다 존칭도 없이 '치우라'고 시민들에게 반말해 반발을 샀다.

현재 광명시청 홈페이지는 소식을 접한 많은 시민들이 비난의 글을 올리기 위해 한꺼번에 방문자가 몰리면서 다운된 상태다.

한편 한편 이 시장은 지난 2006년 7월 취임 후 "전라도 X들은 이래서 욕먹어"라며 호남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한나라당을 자진 탈당했으며,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발생한 '
김밥할머니 폭행사건'에 대해 "노점상인들은 범죄집단"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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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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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극단적 선택 왜? 전문가 분석
"명예 실추로 존재이유 상실"
"스트레스로 우울증 겪은 듯"
"모방·추종 자살 경계해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한 심리적 배경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등 전문가들은 "도덕적 이미지가 실추된데다 '망신주기식'으로 진행된 수사를 더 이상 견디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또 자살 모방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평생 쌓은 도덕적 이미지가 최근 뇌물수수 혐의로 다 깨지면서 심리적으로 크게 타격을 받은 것 같다"며 "이미지 실추로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자살로 내몰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남궁기 교수는 "자신의 사회적ㆍ도덕적 위상의 추락으로 인한 '무통제적ㆍ무규범적 자살'(Anomic suicide)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길을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에서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를 찾아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김대진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 자신과 주위 사람이 힘들다고 생각한 점, 삶과 죽음을 같은 것으로 봤다는 점, 책을 읽을 수 없다고 한 점 등은 전형적인 우울증 증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울증 중에서도 갑작스러운 스트레스가 계속되면서 일어나는 '반응성 우울증'으로 짐작된다"며 "검찰 수사과정에서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적응장애를 겪었을 것이고 이 점이 결국 자살로 내몰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부연구위원은 "자신을 잃고 좌절하게 되면 적지않은 사람이 죽음을 '차악(次惡)의 선택'으로 보게 된다"며 "노 전 대통령이 도덕성이란 가치가 무너지면서 고통이 너무 심해 차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살 이유를 개인적 책임감에서 찾는 해석도 있다.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과 최준호 교수는 "일반적으로 유서에는 억울함이나 한스러운 감정이 잘 나타나지만 노 전 대통령 유서에는 그런 점이 없다"며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 아버지로서 책임감과 죄책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이은 '모방 자살'이나 '추종 자살' 움직임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모방 자살은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자살방법 등을 따라하는 행위가 이어지는 것을 말하고, 추종 자살은 자살할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추종자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것을 일컫는다.

한앙대 구리병원 정신과 박용천 교수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 자살하면 모방 자살이 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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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 기억 속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첫 모습은 광주학살 청문회에서입니다.

광주학살을 저지른 전직 대통령들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재산이라고는 29만원 밖에 없다면서도 뻔뻔스럽게 골프치고 돌아다니는데,

그들을 질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먼저 떠나야 합니까.


다산 정약용은 길고 긴 유배생활 중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불렀지요.  

그 절망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것이었구나, 싶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안타까움도 많았습니다.

이라크 파병이며, 한미FTA며,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물러설 때며,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정을 떼게 하는 그 모습에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를 좋아했습니다.

부산시장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진 뒤,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그는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출근길에 들은 그 한 마디에 그가 좋아졌습니다.


6월 항쟁의 주역들이 모인 어느 모임에서 제가 본 그의 모습은,

흐르는 역사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숙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작 한 두 시간 지켜본 그 옆 모습에 그가 미더워졌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한 시도가 제가 바라는 역사의 흐름과 똑같지 않았더라도,

그가 10.4 선언으로 대통령 임기를 마감했다는 하나만으로도,

그가 구시대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 했다는 것만으로,

그가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야, 기분 좋다”고 외칠 수 있었던 것만으로,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합니다.  


 

가슴 아프게, 떠나보냅니다.

편히 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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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간부, 술자리서 ‘대통령제 옹호’ 발언으로 철창행”

 

북한 내각의 한 간부가 사적인 자리에서 현 권력세습 체제를 정면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가 수감됐다고 온라인 북한 소식지 '열린북한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이 소식지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 북한 내각의 한 국장급 간부는 지난 10일 "지금처럼 한 사람이 계속 해 먹으면 발전이 없다"면서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들처럼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간부는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한다면 모든 기간 동안 다 잘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처음에는 잘 하는 시늉이라도 할 것이다. 백성들의 삶이 처음 기간만이라도 좋아질 것이다"며 "애비가 해먹고 다음엔 아들이 해먹고 계속 이런 식으로 한다면 그 사이에 힘든 것은 백성들 밖에 더 있냐"며 현 세습체제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고 소식지는 전했다.

이 간부는 중국과의 무역거래를 위해 신의주의 한 여관에서 투숙 중이었으며 절친한 친구 두 명과 술자리를 함께 하던 도중 이같은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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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경량화… 흠집 자동복원… 5년후 전체 부품 60%에 적용

현대자동차는 올 9월 출시하는 쏘나타 후속모델(프로젝트명 YF)의 도어실(차문턱) 무게를 현재 모델인 쏘나타 트랜스폼보다 20% 줄일 계획이다.

나노복합재를 사용해서다.자동변속기 기준 11.5㎞/ℓ인 연비가 다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노공학이 차세대 자동차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경량화를 통한 연비개선은 물론 실내 박테리아 확산을 막거나 외관 흠집을 스스로 복원할 때도 사용되고 있다.박종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나노과학연구본부장은 “나노기술이 향후 가장 많이 응용될 수 있는 분야가 자동차”라며 “나노가 자동차의 미래를 확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게 줄이고 흠집까지 없애줘

현대·기아자동차는 길이 100~200nm(나노미터),지름 2~5nm의 나노복합재를 차체 및 엔진룸 부품 등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차량 무게를 줄여 연비를 높이기 위해서다.YF 등 신차의 도어실을 나노 소재로 바꾸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금속의 내부구조를 나노미터 크기로 밀집시키면 가벼우면서 강도높은 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 회사가 이미 개발에 성공한 하이브리드카와 수소연료전지차 등에도 나노기술을 많이 응용하고 있다.하이브리드카의 축전지와 연료전지의 전해질,촉매 등을 나노소재 기술로 제작하는 방식이다.조원석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총괄본부 선행개발센터장(전무)은 “지금은 초기단계인 나노공학 기술이 향후 수 년간 폭발적으로 발전할 것 같다”며 “어떤 기업이 얼마나 많은 나노기술을 확보하느냐가 미래 자동차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닛산의 고급차 브랜드인 인피니티는 작년 말부터 국내에서 출시한 FX,G37,M35 등 신형 모델에 ‘스크래치 쉴드 페인트’ 기술을 적용했다.나노공학을 응용해 차량 표면의 긁힌 흔적이나 흠집을 자동으로 복구하는 게 특징이다.신축성있는 합성수지 페인트가 흠집을 스스로 메워주는 방식이다.여름철이면 1시간 내에 자기재생이 가능하다.웬만한 차 표면의 흠집을 원상복구하기 위해 수리를 받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새 자동차 내장재에서 나오는 오염물질로 인해 발생하는 ‘새차 증후군’ 현상까지 해결해준다는 얘기다.

닛산은 특수 오일과 결합한 무수소 다이아몬드형 카본(DLC) 코팅필름도 개발했다.DLC 필름이 나노미터 두께에 불과하기 때문에 종전 엔진보다 마찰을 40% 줄여준다.내구성과 연비가 획기적으로 좋아진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포드는 리튬이온 배터리 등 친환경 자동차의 에너지 저장기술이나 배출가스 제어장치 등에 나노기술을 접목하고 있다.차량 실내외 먼지나 얼룩을 스스로 없애주는 나노공학 기술도 포드가 야심차게 개발 중인 분야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현대차 유럽기술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승용차를 둘러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 회장이 살펴보고 있는 이 승용차가 헤드램프 등의 모습을 감안할 때 차세대 쏘나타인 YF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15년 차부품의 60%에 나노기술


자동차업계가 나노공학 기술을 직접 응용하는 비중은 현재 5% 이내로 추정되고 있다.국내에선 현대·기아차 정도만이 관련기술을 개발하고 있을 정도다.

이종문 전북대 고분자 나노공학과 교수는 “나노공학이란 분야가 생긴 역사조차 오래되지 않았다”며 “지금은 차체 강성을 높이기 위한 금속연구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나노공학은 조만간 자동차 생산에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잡을 전망이다.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나노공학 기술이 오는 2015년까지 전체 자동차 부품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무공해와 고연비,고성능의 미래형 자동차를 나노기술이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인 헬무트 카이저 컨설턴시는 자동차 분야의 나노기술 시장이 2004년 86억 달러 규모였다고 분석했다.2010년 542억 달러,2015년 1374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용어설명 ]
 
◆나노공학

나노는 마이크로의 1/1000인 10억 분의 1을 의미하는 단위다.1nm는 원자들 중 가장 작은 수소 10개를 일렬로 세운 길이다.나노공학은 1~100nm 크기의 미세한 물질을 조작하고 제어하는 기술이다.나노 구조화를 통해 나노복합재 등을 만들 수 있는데,자동차 항공 의학 등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다만 생산비용을 낮추는 게 관건이다.

<자동차분야의 나노기술 선두업체>

▷차체: 도요타 GM 현대·기아차
▷엔진: 포드 피아트
▷표면: BMW 벤츠 닛산
▷전자장비: 볼보 보쉬
▷타이어: 브리지스톤 미쉐린 금호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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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2차 대국민 안보보고서(총14쪽)

前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김영환

저는 지난 1월 15일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인터넷상에 공개함으로써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남침 임박」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 직후 북한은 “전면대결태세 진입”을 선언(1.17)한데 이어 ‘전군에 대한 전투준비태세 명령’을 하달(3.9)함에 따라 북한의 정규군은 물론 노농 적위대(민방위조직), 교도대(예비군), 붉은 청년근위대(학생군사조직)까지 전투준비에 돌입하는 등 남침준비를 완료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남침에 따른 미국의 개입가능성을 사전차단하기 위한 장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함으로서(대미 핵공격능력 과시) 오늘날 한반도 안보현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 정부와 언론 등은 북한의 미사일발사 이후, 마치 현 위기상황이 종료되기라도 한 듯이 또 다시 국내 정치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저는 지난번에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공개할 때 동일한 보고서를 국정원 지휘부에도 제출했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 지휘부는 저의 보고에 대해 “정신 나간 주장”이라는 공식 검토의견을 통보(2.5)한데 이어, ‘임의로 전쟁을 경고했다’는 이유로 저를 강제해직(2.12)시켰습니다. 또한 국방부 관계자도 저에게 직접 항의성 전화를 함으로써(2.2) 장거리 지하터널의 존재를 인정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확인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남침 임박」을 경고하거나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할 정부기관이나 부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안보현실을 있는 그대로 우리 국민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저는 또 다시 대국민 안보보고서를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즉, 더 이상 ‘방위태세가 튼튼하다’는 우리 국방부의 주장을 믿고 있다가는, 과거에 “경제의 펀더멘틀이 튼튼하다”는 재경원 주장을 믿다가 IMF 위기를 맞았듯이, 이번에는 안보분야의 IMF, 즉 과거 임진왜란과 6.25 등과 같은 미증유의 재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에 지금 당장 행동해주실 것을 호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고서 목차】

1. 긴박한 상황 對 안일한 대응-------------------------------2

2.「전술(戰術) 땅굴」對「전략(戰略) 지하터널」------------------2

3.「산업용 지하터널」對「군사용 지하터널」-------------------- 6

4. 극소수 군인의 안보 對 전체 국민의 안보---------------------13

 

1. 긴박한 상황 對 안일한 대응

 

지난 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기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번의 로켓발사는 기존의 도발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그간 북한이 말로만 했던 “불과 불, 철과 철이 맞부딪치게 될 전쟁 접경”, “가장 무자비하고 단호한 결판, 실천으로 보일 것” 등과 같은 남침협박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무력시위임과 동시에 장거리 지하터널을 통한 기습의도를 숨길 목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허공에 고정시키려는 성동격서 전법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방부는 여전히 가장 시급한 과제인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을 외면한 채 “최단 기간내 승리” 등과 같은 공허한 주장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지난 6.25 직전에 국방부가, ‘민심안정’을 기한다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말로만 다음과 같이 북진통일을 호언장담했던 전례를 반복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그 방법(북진통일)은 군기밀이라 언급할 수 없으나, 백번 승산이 있으니 국민은 안심하라. 그리고 38선이 터지는 그 날만 두고 보라...”

 

2. 「전술(戰術) 땅굴」 對 「전략(戰略) 지하터널」

물론 오늘날의 상황은 과거 6.25때와는 전혀 다르며, 또한 군사력 면에서도 우리가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현재와 같이 우리 군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여 비상경계 태세까지 유지하고 있다면 섣불리 남침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즉, 이번의 로켓발사 등은 ‘일전(一戰)을 불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한-미 양국 등으로부터 정치․경제적인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벼랑 끝 전술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쟁을 원치 않는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본 결과(mirror-imaging)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김정일 시각에서 본다면, 현재와 같은 북한의 대내외 상황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체제 또는 정권이 붕괴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비록 승산은 희박하다할지라도 남침을 감행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가 경고하고 있는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에 대해서도, 국방부가 진작부터 ‘단거리 땅굴을 이용한 북한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따른 대책까지 수립한 상태라면, 크게 염려할 필요 없다는 반박도 가능할 것이다. 즉, 장거리 지하터널이나 단거리 땅굴 모두 지하갱도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만큼 국방부가 별도로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수립을 외면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기존의 단거리 땅굴은 고작해야 전술(戰術) 차원의 지하갱도에 불과한 반면, 장거리 지하터널은 전략(戰略) 차원의 지하갱도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전술땅굴이란 휴전선 일대(한강 이북지역)에서 전개될 개별 전투의 승리를 위한 지하갱도를 말하며, 전략지하터널은 개전과 거의 동시에 우리의 심장부를 점령함으로써 일거에 전쟁자체의 승부를 결정짓기 위한 지하갱도를 의미하는데, 이처럼 기존의 전술땅굴을 전략지하터널로 확대발전시킨 것의 군사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히틀러의 전격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격전이야말로 모두들 전술무기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던’ 탱크를, 전략무기로 ‘통 크게’ 활용함으로써 일거에 전쟁자체의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에 독일만 탱크를 보유했던 것은 아니며 또한 독일제 탱크의 성능이 가장 우수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탱크는 프랑스제였으며, 그에 비해 독일제 탱크는 한 세대 뒤떨어졌다고 할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프랑스 국방부는 “최첨단 무기와 세계최고의 방어요새를 보유하고 있다”고 큰소리쳤으며, 참모총장 가믈랭은 전쟁발발(1940.5) 3개월 전까지도 “만일 독일이 우리를 침공하는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10억 프랑을 주겠다”며 조롱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독일군 수뇌부도 처음에는(폴란드 점령 직후) 히틀러의 프랑스 침공계획에 대해 “무모한 전쟁”, “범죄와 다름없는 전쟁계획”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이와 같은 전력상의 열세를, ‘전격전’이라는 작전개념상의 우위를 통해 극복했던 것이다. 즉, 독일은 탱크의 기동성을 높일 경우, 전쟁자체의 승부를 조기에 결정지을 수 있는 전략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해 탱크의 화포와 장갑을 희생하는 대신 탱크의 속도를 높였던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 등은 탱크에 대해 개별 전투(참호전)에 있어 보병의 진격을 지원하는 전술무기 정도로 인식한 나머지, 탱크의 기동성보다는 장갑과 화포를 강화하는 데에 치중했다. 그 결과 프랑스군은, 독일군이 침공할 것이라는 사실은 물론, 심지어 탱크를 앞세우고 침공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미리 알고 그에 따른 ‘완벽한’ 방어계획까지 수립했음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독일군 기갑부대의 신속한 공격 앞에 여지없이 붕괴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무기에 대한 사용 방법상의 혁신을 통해 상대를 기습하는 것을 ‘작전교리상의 기습’(doctrinal surprise)이라고 부른다.

한편 ‘전격전 신화’의 배경에는 히틀러가 상대방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 공격방법을 선택한 것도 또 다른 결정적 승인(勝因)으로 작용했는데, 이는 그가 독일군 기갑부대로 하여금 ‘탱크는 절대 통과할 수 없다’는 아르덴느 삼림지대(森林地帶)를 돌파토록 함으로써, 영-프 연합군의 배후를 기습한 것을 말한다. 아르덴느 삼림지대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나, 프랑스군 지휘부는 ‘나무와 계곡 등으로 인해 탱크는 통과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기에 이 지역에 대한 방어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프랑스군 내부에서 이 지역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일부 프랑스 장교 등이 그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지만, 국방장관 페탱 원수가 1934년 상원 육군위원회에 출석, ‘이 지역은 탱크가 절대 통과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군 내에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것이다. 즉, 프랑스 국방부는 ‘독일군 기갑부대가 아르덴느를 통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가설(假說)을 공식입장으로 정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38년(전쟁 2년 전) 제2군 사령관 프레틀라 장군이 실제훈련 결과를 바탕으로 ‘독일군이 아르덴느로 기습할 경우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상부에 보고했을 때, 참모총장 가믈랭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보고내용을 철저한 비밀에 부치도록 명령했는가 하면 그를 문책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침공직전 주(駐)스위스 프랑스 무관이 독일군 주력부대가 아르덴느 방향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 보고한 내용과, 영국 정찰대가 독일군 탱크들이 아르덴느 지역에 집결중임을 발견한 사실 등도 끝내 프랑스 최고 지휘부에는 전달될 수 없었다. 그 결과 아르덴느 지역을 통한 히틀러의 기습계획은 이미 성공을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보다 확실한 기습효과를 노리고 상대를 기만했다. 즉, 조공(助攻:보조공격)부대로 하여금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토록 함으로써, 마치 제1차 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북부를 노리는 것처럼 위장했다. 이에 영-프 연합군은 정예부대를 벨기에 영토로 진격시킴으로써 보다 남쪽의 아르덴느 지역을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켰다. 이틈을 노리고 독일군 주력 기갑부대가 ‘나무를 베어내면서’ 아르덴느 삼림지대를 돌파하자, 연합군은 ‘절대 불가능한’ 방향에서 출현한 독일군의 공격과,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을 정도로 신속한 독일군 기갑부대의 진격 속도에 놀란 나머지 모두들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처럼 히틀러의 전격전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의 안보 상황이 패전 직전의 프랑스와 비슷한 면이 적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김정일을 대표하는 정치적 구호가 ‘속도전’(전격전의 북한식 표현)인데다, 그가 굴착한 장거리 지하터널 역시 ‘작전교리상의 기습’(전술 땅굴⇒전략지하터널)을 노린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군도 지난 1992년 국방장관 명의로 기자회견을 한 것을 계기로,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장거리 지하터널을 이용한 북한의 기습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공식입장을 고수해온 점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군도 배후의 기습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데, 일례로 과거 6.25 기간 중에 있었던 현리전투(1951.5)의 경우, 우리 군은 미국의 군사원조 덕에 상대보다 압도적인 화력과 장비를 보유한 상태였음에도, 고작 1개 대대 정도의 중국군이 배후(오마치 고개)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1개 군단이 순식간에 붕괴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군단장은 비행기타고 도망갔고 사단장 등은 계급장 떼고 사병들 틈 속에 숨어 달아났을 정도로 혼비백산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군 지휘관들이 겁쟁이였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데, 그들은 이전의 영천대첩(군단장)과 춘천대첩(사단장)의 주역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행동은 기습을 당하면 누구나 겪기 마련인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심리적 충격효과’를 노리는 전격전(속도전)의 경우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오늘날의 국방부 대책에 대해 ‘안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따라서 국방부는 더 이상 ‘북한군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설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장거리 지하터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에게 「승산=0」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만이 임박한 남침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우리 안보현실에 비춰볼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군사를 쓰는 법은, 적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적이 (장거리 지하터널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내가 조치한 바를 믿는 것이다(故用兵之法... 無恃其不攻 恃吾有所不可攻也)』

3. 「산업용 지하터널」對「군사용 지하터널」

 

하지만 현재와 같이 장거리 지하터널의 길이와 구조 등에 대한 기본정보조차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대책을 수립할 것인가.

이와 관련 우선 김정일의 입장에서 기존의 단거리 땅굴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부터 검토한다면 대책수립이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할 것이다. 즉, 기존의 단거리 땅굴로는 한강 이북지역에 대한 기습은 가능해도, 이후 남진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은 과거 6.25 때처럼 또 다시 한-미 연합공군의 공습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거리 지하터널은 우리의 후방 지역 어디까지 들어와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과거 월남전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데, 월남전의 경우 월남공산군이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미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정글이 아닌, 땅굴」을 이용한 게릴라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땅굴 덕분에 월남공산군은 미군의 공습 등에도 불구하고 병력과 군수품을 ‘안전하게’ 목표지점까지 수송할 수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즉, 월남의 땅굴은 단순한 지하갱도가 아니라, 다수의 군사적 거점을 서로 연결해주는 일종의 지하 네트워크로서 기능을 했다는 것인데, 그중 대표적인 쿠치 땅굴의 경우, 캄보디아 국경에서 사이공(현 호치민시) 외곽을 연결하는 총 연장 250km의 장거리 땅굴로서, 내부에 무기고 및 탄약고는 물론 식당, 병원, 극장(정치교육용)까지 갖춘 일종의 지하 소도시 역할까지 담당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북한군도 비록 극소수이기는 했으나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그 중에는 땅굴 요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김일성이 지난 1971년 ‘땅굴굴착’ 지시를 내리게 된 배경에는 월남전의 경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당시는 월남의 공산게릴라들이 1968년 장거리 땅굴을 이용한 ‘구정공세’를 통해 승기를 잡기 시작한 직후였음). 하지만 김일성의 땅굴은 곧 우리 군에 의해 발각됨으로써 ‘결정적 기습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 아들 김정일은 기존의 단거리 땅굴을, 전략차원으로 ‘통 크게’ 확대발전시킨 것이 바로 장거리 지하터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해, 월남의 장거리 땅굴을 ‘통 크게’ 확대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도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 250km 이상은 남진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김정일 입장에서 보았을 때, 월남공산군이 수작업(手作業)으로 250km의 장거리 땅굴을 팠다면, 첨단 장비(TBM)를 보유한 북한군이 그 정도를 굴착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전문가에 따르면 기술적인 문제는 없다함). 그런 점에서 지난 2002년(약 7년전)부터 경기도 화성 등의 땅속에서도 ‘TBM 작동음’은 물론 심지어 ‘전화 받는 사람목소리’까지 들렸다는 민간인들의 신고가 있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동안 단 한 개의 장거리 지하터널조차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을까. 진작부터 다수의 장거리 지하터널이 우리의 후방 깊숙한 곳에까지 들어와 있었다면 그 동안 남한 사회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지하철 공사 등 각종 개발사업에도 불구하고 왜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장거리 지하터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위치, 예를 들어 지하 100m 이하 지점을 통과했을 가능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평양 지하철이 지하 100m 지점에 건설되었다는 사실과, 기존의 단거리 땅굴(제2, 제4땅굴)조차 지하 145-160m 지점에서 발견된 전례 등이 있기 때문인데, 그랬다면 장거리 지하터널이 그동안 우리의 개발사업 현장(지하철은 지하 20-30m 지점에 위치)에 의해 발견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할지라도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를 굴착할 때에는, 갱도막장이 지표면에 접근할 수밖에 없기에 그 과정에서 우리의 지하철 공사 및 대형 빌딩의 기초공사 현장 등과 조우할 가능성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의문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부분이, 다음의 그림과 같이 지표면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부터 극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의 출구는 독가스(공기보다 무거움) 공격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북한군이 땅 속에서 ‘기어 올라오는’ 형태가 됨으로써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갱도가 지표면에 접근할수록 천장이 얇아지게 됨에 따라 공중폭격에 의해 쉽게 붕괴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군이 땅속에서 기어 올라올 것’으로 지레짐작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과 같은 산업용 지하터널의 구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해 군사적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특히 과거 월남군이, 쿠치 땅굴을 구조를 ‘교묘하게’ 굴착함으로써 미군의 독가스 및 물(水) 주입공격을 무력화시킨 전례가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례를 잘 알고 있는 김정일이라면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가스 공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그가 다음의 그림과 같이 지하터널의 출구부분을 굴착함으로써, 가스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물론 북한군으로 하여금 우리 군의 ‘발밑에서 올라오도록’ 하지 않고 ‘머리 위로 내려오게’ 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다음의 그림은 외국 갱도 전문가의 의견 등을 참고하여 그린 것임).

 

 

 

 

 

 

게다가 이러한 형태의 출구는, 천장이 두터운 암반층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적이 드문 산속에 출구가 위치할 경우 지하철 및 상하수도 공사 현장과 조우할 가능성도 거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상과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은,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 남방 약 250km 내외에 걸친 지역에까지 남진한 가운데, 출구는 해당 지역 내에 위치한 높이 100m 이상 되는 산 중에서, 주요도로와 접해있는(신속한 기동을 위해) 산속에 개척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게다가 그런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우리의 각급 군부대가 주둔(산기슭)해 있을 뿐만 아니라, 레이더 및 통신기지, 미사일 기지도 배치(산 정상)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 군은, 미군 전쟁 지휘소가 있는 청계산과 미2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소요산, 그리고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관악산 등에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의 출구가 개척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청와대의 뒷산격인 북악산 또는 북한산에도 장거리 지하터널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는데, 김정일 입장에서 볼 때 청와대만큼 최우선적인 타격목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지난 1968년에 ‘1.21 사태’를 도발한 전례가 있기에 더욱 그러다. ‘1.21 사태’란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의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을 말하는데, 당시 국군 복장을 한 31명의 무장게릴라들은 황해도 연산을 출발, 휴전선-법원리(파주시)-노고산(구파발 부근)-진관사(진관외동)를 거쳐 북한산(비봉)에 도착한 다음,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을 ‘보무도 당당하게’ 2열종대로 행군함으로써 청와대 앞 500m 지점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상한 군인들’에 대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종로경찰서장에 의해 검문을 받게 되자 무고한 시민 등을 향해 총을 난사하면서 도주한 것이 바로 1.21 사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때에도 우리 군은 북한의 목표가 청와대인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이미 무장공비에 대한 신고를 받고 비상경계령까지 내린 상태에서, 게다가 북한산(당초 목표는 북악산까지 산악구보로 접근하는 것이었음) 등지에서 공비들이 흘리고 간 탄피와 음식물까지 발견했음에도 청와대가 목표인줄은 ‘감히’ 생각조차 못했다고 하는데, 다음은 당시의 국방장관 회고내용이다.

 

“(법원리에서) 서울 진관외동의 진관사까지 산악 코스로 행군을 하면 해병대도 이틀(48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진관사를 거쳐 북한산 비봉의 승가사 아래까지 도착(10시간 만에 주파)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는 기겁을 했지요. 중무장하고 야간 산악 행군으로 북한산까지 올 수 있다는 건 제 군대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철통같은 방어선을 펼쳤는데 하루 만에 그 지역을 통과하면서 유실물(실탄과 탄창 등) 흔적을 남겨두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전례가 있기에 오늘날 국방부는 북한의 남침용 지하갱도에 대해, 고작 휴전선 부근에만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미 북악산 또는 북한산에까지 도달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에 산이 없는,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 보았을 때 최우선 타격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국방부와 공군기지 등에 대해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은 어떻게 접근했을까.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땅 밑에서 곧바로 상륙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때에도 상기 두 번째 그림과 같이 인근의 산속에 있는 대형 터널에서 분기(分岐)하는 ‘보다 작은’ 지하터널을 통해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기습에 실패했다하더라도, 해당 출구부분만 점령당할 뿐 출발지 산속에 위치한 지하터널은 방어하기에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북한군이 지하세계의 고지를 장악한 형국).

이처럼 청와대 및 국방부, 그리고 각급부대와 공군기지 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장거리 지하터널을 통해, 북한군 특수부대(총18만 명)와 기갑부대 등이 국군복장을 한 상태에서, 우리 군이 잠들어 있는 틈에 ‘기습상륙’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2월 16일 김정일이 자신의 생일을 맞아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며 자신감을 보인 적이 있다는 사실과, 북한의 언론 매체도 다음과 같이 승리를 호언장담한 사실 등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3월 15일자 노동신문).

 

“우리 군대의 대응조치에는 한계가 없고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으며... 우리 혁명무력은 수십 년 세월 다져온 모든 군사력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적들에게 천백 배 무자비한 섬멸적 보복타격을 가하고 최후 승리를 이룩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 가공할 위력의 기습방법일수록, 그만큼 취약점도 정비례하기 마련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전격전의 경우에도 독일군 기갑부대 등은 아르덴느 삼림지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인해 수십 km에 달하는 극심한 교통체증에 갇히게 되었고 그 결과 프랑스 공군의 공습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프랑스 국방부의 확고한 ‘공식입장’(아르덴느에 대한 돌파는 절대 불가능) 덕분이었는데, 다음은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독일군 장교의 회고 내용이다

 

“단일 도로상에 이토록 천천히, 밀집대형으로 기동하고 있는 우리 사단은 적 공군에게 가장 좋은 표적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프랑스 정찰기는 단 한 차례도 출현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장거리 지하터널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즉, 장거리 지하터널의 경우에도, 기존의 단거리 땅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공할 위력이 있는 만큼, 그에 정비례해서 단거리 땅굴에 없는 치명적 약점도 있을 수밖에 없음에 착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그 동안 장거리 지하터널 징후가 발견된 지역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땅 속에서 찬바람이 올라온다’는 신고가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상은 외부에서 송풍기 등을 이용하여 지하터널 내부로 공기를 강제 주입한 결과, 지하터널 내부의 기압이 지표면보다 높아짐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장거리 지하터널의 경우 갱도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라 그만큼 환기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현상은 환기구를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지표면은 남한 영토) 지하터널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그 동안 김포 및 연천, 그리고 화성 등지의 땅속에서 갱차 소리와 함께 “웅-” 하는 고압 전기 유도음이 들린다는 신고가 있었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갱차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철로가 부설되어 있다는 것이며, 고압 전기 유도음이 들린다는 것은 고압 전선이 매설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징후들은 장거리 지하터널 내부에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라는 것이다.(내연기관은 매연 등으로 인해 환기문제를 더욱 악화시킴).

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당연히 이와 같은 장거리 지하터널의 치명적 약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즉, 북한군이 상륙하는 즉시 지하터널 내부를 향해 소이탄(燒夷彈) 등을 이용한 화공(火攻)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출구 부분의 갱도는, 오히려 훌륭한 굴뚝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지하터널 내부는 화재와 연기 발생, 그리고 그에 따른 산소부족 및 고열(高熱)등으로 인해 아비규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재발생으로 인해 지하터널 내부의 고압전선마저 합선된다면, 정전사태까지 발생함에 따라 터널내부에 대한 공기공급은 물론 전동차 운행까지도 중단될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때 북한군이 입게 될 피해규모는 지난 2003년 2월에 발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를 생각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당시 2급 지체 장애인이 전동차 내부에 고작 10ℓ 밖에 안 되는 인화물질에 불을 붙였음에도 무려 300명 가까운 사상사가 발생하는 엄청난 재앙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에도 화재로 인한 정전사태마저 발생함에 따라 터널 안은 암흑세계로 변했고 그 결과 승객들은 출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으며,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반대편에서 접근하던 또 다른 전동차에도 불이 옮겨 붙음에 따라 전동차 12량이 순식간에 소실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군의 각급부대는 이제부터라도 주둔지 인근의 산기슭, 부대 주변의 인적이 드문 곳, 그리고 하수도 등을 통해 국군복장을 한 북한군 특수부대요원들이 ‘상륙’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중 하수도의 경우, 과거 스탈린그라드 전투(독일군의 구소련 침공) 당시 기습통로 역할을 한 적이 있다는 점과, 특히 구소련의 군사교리를 도입한 북한도 평양 시내의 하수도를 군사기밀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4. 극소수 군인의 안보 對 전체 국민의 안보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 국방부가 필자의 주장대로 장거리 지하터널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랫동안 고수해온 공식입장을 하루아침에 번복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다, 그럴 경우 국방부의 권위 실추는 물론 그 동안 민간인들의 신고 내용을 고의로 묵살 내지는 은폐해 온, 국방부내 몇몇 군인들에 대한 책임문제까지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는, 그 발단 및 전개과정에 있어 ‘수지김 사건’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안기부도 지난 1987년 ‘황급히’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람(수지김)을 ‘북한 여간첩’이라고 발표하는 실수를 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직후 안기부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은 수사과정에서 그녀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수지김은 간첩’이라고 공식발표한 뒤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안기부는 ‘수지김=간첩’이라는 공식입장을 무려 15년 동안이나 고수하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안기부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이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제적으로나 북한에게 망신당할 우려가 있다”는 핑계를 내세우면서 사건의 진실을 대외적으로는 물론 심지어 대내적으로도 숨겨왔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마치 오늘날 국방부내 극소수의 관계자들이 관련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여타 국방부 직원은 물론 심지어 전후방의 야전군들에게조차 장거리 지하터널의 실체를 숨기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던 중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수지김 사건의 진실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는데, ‘수지김 사건’에서 보듯이, 장거리 지하터널 문제 역시 국방부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우리 국민들이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 국방부를 대신해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가 장거리 지하터널의 실체를 우리 국민들에게 입증해줄 날이 머지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다음의 사례에서 보듯이 당장이라도 남침할 수 있는 준비를 모두 완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 최근 들어 북한 전투기들이 집중적인 실전훈련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하루 평균 100회 출격) 노동신문은 인민군 총참모부가 중대보도를 통해 “고도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보도(4.4)한 데 이어 조선중앙방송 역시 이를 5차례나 재방송함으로써 북한 주민들 사이에 “전쟁전야 같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의 전쟁 분위기 조성

●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4월 8일 평양 개최 ‘로켓발사 성공 환영 군중대회’에 참석,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최악의 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만약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감히 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대응타격을 가할 것”임을 직접 경고(북한은 지난 3월 30일 남한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할 경우 “조선반도에 전쟁의 불 구름을 몰아오는 도화선이자 선전포고”라며 “즉시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한바 있으나, 우리 정부는 조만간 PSI 참여를 발표할 예정)

● 4월 9일 김정일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전시상태와 동원령을 선포할 헌법적 권한을 가지는 국방위원장에 재취임 함으로써, 자신의 남침결심이 전체 북한주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무모한’ 남침 결행에 따른 군부의 반발 가능성 등 사전 봉쇄)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필자는, 더 늦기 전에 국방부로 하여금 장거리 지하터널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우리 국민들이 뜻을 한데 모아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구체 행동계획에 대해서는 저의 블로그에 들어오셔서 토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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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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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만, 도요토미 히데요시 호위무사로 日 영화 출연…네티즌 맹비난
 

격투기 선수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의 영화 출연에 네티즌들이 맹비난을 하고 나섰다.

최홍만은 지난 1일 개봉한 일본 영화 ‘고에몬(Goemon)’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호위무사인 ‘아왕(我王)’역을 맡아 영화에 출연했다. 그가 맡은 아왕이란 인물은 자신의 주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지키는 무사로 검술의 강자로 등장하지만 악역이다. 그는 최근 “아왕의 멋진 모습에 매료돼 출연을 결심했다”고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최홍만의 영화 출연에 대해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비난 일색이다.

네티즌들은 “사람이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다. 아무리 돈을 벌고 싶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사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고 했고, “최홍만의 팬으로서 제발 운동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곧 있을 칸세코와의 경기에서 또 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작년에 5연패하고 영화가 찍고 싶은지 묻고 싶다. 이럴 거면 차라리 선수 생활을 접고 연예계를 데뷔하는 편이 낫겠다”는 의견을 냈고, “칸세코에게 크게 져서 이번 행동이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그의 각성을 바라는 글도 있었다.

영화 ‘고에몬’은 일본 전역에 개봉한 블록버스터 급 영화로 스타배우 에구치 요스케 주연, 키리야 카즈아키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한편, 최홍만은 오는 26일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열리는 ‘드림(Dream) 9’에서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 6회 선정에 빛나는 스타 야구선수 출신의 호세 칸세코와 일전을 벌인다. 현재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경기 성립 자체가 난센스라고 비난할 정도로 최홍만에게 쉬운 상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칸세코가 20년간 무예타이 태권도 등의 격투기를 꾸준히 해왔다고 자신해 이들의 경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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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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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재환 유족, “정선희, 안재환 행적과 40억 사채 진실 밝혀라”
안재환의 큰 누나 안광숙씨가 정선희에게 죽기 전 안재환의 행적과 40억 사채의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안씨는 24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초아트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는 재환이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화장한 것도 후회하고 있다. 나중에 차량에서 죽은 사진을 경찰에 요구해 세 번이나 봤다"면서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다. 정선희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안씨는 이어 "22일 SBS로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고, 편지만 전했다. 또한 23일 처음 정선희에게 전화했지만 아직까지 답신이 없다. 심지어 삼오제 때도 오지 않았다"면서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겠다"고 말했다.

안재환 가족이 여전히 정선희를 원망하는 건 안씨 사망 후 정선희의 석연찮은 언행 때문이다. 정선희가 장례식장에서 사채에 대해 처음 얘기를 꺼냈고, 이에 대해 속시원히 얘기를 하지 않아 유족들의 의혹이 커진 것이다.

안씨는 정선희에게 보낸 12장의 편지 내용도 공개했다. 안씨는 "재환이가 신혼 거처를 마련하고 연락이 두절됐다. 부모님과도 연락이 안 됐다"면서 "항상 정선희가 '아무 문제 없다'고 했지만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특히 죽기 전 3개월 간의 행적을 밝혀 달라"고 강조했다.

안씨는 "40억 사채설은 지난해 9월 8일 정선희의 입에서 처음 나왔고, 경찰에서도 사채 빚으로 자살했다고 하지만 금융기관에 알아보니 그런 흔적이 없었다"면서 "2008년 5월 6일 정선희가 자신 명의의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2억 5000만원을 안재환에게 빌려줬다고 했다. 같은 날 안재환 명의의 아파트가 3억 7000만원에 담보가 잡힌 사실을 확인했지만 재환이의 통장 내역에서 돈의 흔적은 없었다. 숨기지 말고 거래 내역을 공개해 달라"고 말했다.

안씨는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 부모님은 정선희가 진실을 밝힌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것"이라면서 "동생 죽음의 원인과 함께 정선희와 만나 재환이의 모든 짐을 돌려받고 싶다. 동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옷을 깨끗이 돌려받고, 그러고 나서 인연을 끊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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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일본 혼 퍼트리겠다” 日여성들,명동서 욱일승천기 행진 물의
[쿠키뉴스] 2009년 04월 24일(금) 오후 02:15   가| 이메일| 프린트
[쿠키 톡톡] 젊은 일본인 여성 2명이 일본의 혼을 퍼트리겠다며 서울의 중심부인 명동 한복판에서 일제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들고 퍼포먼스를 벌여 물의를 빚고 있다.

24일 일본의 유명 커뮤니티에는 ‘한국에 야마토 다마시(日本魂)를 과시하고 왔다’는 제목의 글이 큰 인기를 끌었다. 야마토 다마시란 일본 문화나 정체성을 태동시킨 일본 정신을 가리키는 단어다.

해당 글은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에 패배한 한국이 앙심을 품고 ‘봉중근 열사’ 티셔츠 등을 마케팅화하며 불쾌한 언동을 일삼았다. 이같은 무리에게 야마토 다마시를 과시하려고 서울에 다녀왔다”는 설명과 함께 시작된다. 즉 한국인들이 ‘봉중근 열사’ 이미지와 티셔츠 등으로 먼저 일본에 도발했기 때문에 이같은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치로의 시애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을 찾은 이들은 김포공항내 한국관에서 욱일승천기를 들고 찍은 사진과 서울 명동 길거리에서 욱일승천기를 들고 활보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함께 올렸다.

40여초짜리 동영상에는 이치로 티셔츠를 입은 여성 두 명이 욱일승천기를 나란히 들고 명동을 걸어다니는 장면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들의 행동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설명글에서 “서울에서 이런 일을 벌이면 살해당할 수 있다는 사전 경고를 받았지만 다행히 거리의 한국인들은 우리의 행동을 신경쓰지 않았다”며 “서울의 중심부 명동의 거리를 욱일승천기를 들고 걸어다니며 이치로의 훌륭함과 일본의 힘을 알리고 왔다”고 적었다. 이들은 이같은 장면을 지켜보며 다소 황당해하거나 웃어넘기는 한국 여성들의 모습을 캡쳐해 올리기도 했다.

이 여성들의 발칙한 퍼포먼스를 담은 동영상은 유튜브에도 올라 전세계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그러나 “한국인들은 모두 이치로에 앙심을 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치로 티셔츠를 본 한국인들은 오히려 반가워하는 등 어딜 가도 반일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며 “일본에서 가깝고 항공권도 싸고 불고기도 맛있고 일본어도 잘 통하는 훌륭한 이웃인 한국을 자극해 조금 미안하긴 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일본놈년들은 하는짓도 밉상여 --; 야동이나 찍지 여긴 왜 왔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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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만든 거대 ‘두루마리 눈(雪)’ 화제

 

[서울신문 나우뉴스]

바람이 눈을 돌돌 뭉쳐 만든 '두루마리 눈'이 미국 북서부에서 포착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소방관 팀 티브보어(Tim Tevebaugh)가 지난 달 31일 아이다호 주 크레이그몬트 지역 근처 대초원에서 두루마리 눈 수십개가 형성돼 있는 것을 최초로 카메라에 담았다고 소개했다.

목격자인 티브보어는 "퇴근하고 집에 가는 도중에 우연히 발견했다. 아침 출근길에는 없었던 것으로 미뤄 이후 몇시간 동안 바람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지역에는 작게는 45cm에서 최대 60cm에 달하는 거대한 두루마리 눈 수십개가 평원에 만들어져 있었으며 주변에서 사람의 발자국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두루마리 눈은 약간 경사가 진 초원에서 바람이 눈을 굴려 거대한 원통형 눈덩어리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특별한 기상 조건들이 만들어내는 희귀한 자연현상으로 알려졌다.

기상 전문가들은 "언 눈 면 위에 쌓인 부드러운 눈이 적당한 습기를 가지고 바람에 날려 형성되는데 적당한 기온과 바람 눈과 습기 등이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흔히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희귀한 현상이 포착돼 기쁘다."면서 "흔히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눈덩이들은 기온에 따라 쉽게 깨지기 때문에 보존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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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윤도현이 방송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가?
2009.04.10 16:22
http://tong.nate.com/yojazzy/48854594

요즘 kbs 윤도현사건을 아시나요?

윤도현을 죽이기위한 배후가 누구일까라고 생각하시는데.. 참 국민의 혈세를 먹고사는 양반이 더럽고 한심한 일이나 하고 있네요. 국정업무는 안하고..그런 정치인은 내려오게 해야합니다. 비싼 국민들의 세금이 아깝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대통령, 한나라당, 정부, 특히 국무총리 한승수

 

이분들 너무 감정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잊은듯 한데 말이죠.

 

 

윤도현이가 미움의 대상이라고 모든 방송에 출현 금지시키라고 방송국에 압력을 넣었다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KBS방송에서 윤도현에게 일방적으로 출연정지한다고 통보를 하였다고 합니다.

 

윤도현이의 노래나 가사가 비판적이라고 하더래도 표현의 자유와 소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이거 예전에

 

서태지와 아이들때문에 문제 생겼다가 폐지되었자나요. 심의 관련해서 말이죠.

 

보통 50년대부터 ROCK이라는 장르음악은 시대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데 말이죠.

 

락커라면 적어도 저항의 상징 이잖습니다. 락커가 핵무기를 반대하고, 로비문화를 까발리고, 성상납, 성비리 등등

 

 

그러한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자기 입맛에 맞지 않다고 ... 그렇게 감정적으로 사소한 일까지

 

다뤄야 합니까?  저 과거의 소인배 무리들이나 하는 짓인줄 알았는데

 

우리의 비싼 세금으로 해야할 일들은 방치하고 안하고

 

저런 위 양반들이 자잘한 감정싸움이나 하게 나둬서 되겠습니까?

 

 

" 나라의 국정업무를 맡아야 할 위인들이 말이죠. 사사로운 연예가수 죽일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죠 "

 

 

 

[뉴스에서 발췌]

 

-=-=

윤도현은 지난해 가을 개편 때도 장수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KBS 2TV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라디오 '윤도현의 뮤직쇼'에서 연이어 하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광우병 촛불 집회 공연 등 진보 성향의 활동에 나섰던 그의 전력이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퍼졌다. 게다가 최근 발표한 새앨범도 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어 외압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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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납 수사 막는 보이지 않는 손

성상납 수사 막는 보이지 않는 손

일요신문 | 입력 2009.04.10 12:13 | 누가 봤을까? 40대 남성, 전라

 




장자연 문건 파문 수사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늑장 수사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경찰 수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매스컴의 특종 경쟁이 수사를 선도했지만 최근 들어선 이마저도 한풀 꺾였다. 게다가 경찰의 수사 방향 역시 사회적 이슈가 된 성상납에서 술 접대 강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물론 문건 작성자가 이미 세상을 떠난 터라 성상납의 경우 수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항간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성상납 수사를 막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연예계 성상납 폐해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에 대한 수사는 단 한번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말 연예계 성상납 수사를 막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는 것일까.

연예계를 둘러싼 다양한 비리는 연예계와 그 역사를 같이한다. 그만큼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는 몇 년 간격으로 실시되는 검찰의 연예계 전반에 대한 비리 수사다. 지난 75년과 90년 두 차례 검찰의 대대적인 연예계 비리 수사를 담당했던 심재륜 변호사는 "75년 수사는 인기 드라마의 배역을 둘러싼 로비에 집중됐고 90년 수사는 가요계 비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며 "당시에도 성상납이나 술 접대와 같은 얘기가 있었지만 방송국 PD들이 연예인이나 연예기획사로부터 불법적인 돈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더 심각했다"고 회상한다.

성상납이나 술 접대보다 방송국 PD의 비리에 수사의 포커스가 더 집중된 데에는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한몫했다. 오늘날에는 연예인이 선망직종이 될 정도로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딴따라'로 불릴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비밀리에 이뤄지긴 했지만 정·재계 고위층의 술자리에 연예인이 동석하는 사례가 빈번했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90년대 중·후반을 거치며 연예계는 급성장을 거듭했다. 연예계가 산업화하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인 시장이 확대됐고 스타라 불리는 연예인의 영향력도 급성장했다. 더 이상 연예인이 강요에 의해 술 접대를 하고 성상납까지 하는 상황을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검찰은 지난 2002년 대대적인 연예계 비리수사에 돌입했고 이 과정에서 'PR비'와 '성상납'이라는 연예계의 오랜 고름의 존재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애초 PR비와 관련해 시작된 수사는 성상납까지 확대됐고 검찰이 중간 수사발표를 통해 성상납의 실체를 추적 중이라고 밝히면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처럼 검찰이 강력한 수사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애초 의도처럼 PR비 관련 수사로 마무리되고 만 것. 게다가 수사 도중에 담당 부장검사가 바뀌었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부장검사이던 김규헌 검사가 충주지청장으로 발령 난 것.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좌천 인사라는 얘기까지 들려왔다.





그러자 용두사미가 된 연예계 비리수사에 대해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국정감사에서 "현직 국회의원들이 연예인으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고 주장한 것. 게다가 "수사팀이 관련 진술을 확보하는 등 진상을 파헤치려 했으나 켕기는 것이 있는 정치권의 간섭으로 부장검사가 지방으로 쫓겨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 의원의 지적대로라면 2002년 검찰의 연예계 성상납 관련 수사를 막은 이는 국회의원들인 셈이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김규헌 검사의 입장은 다르다. 우선 좌천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 김 검사 측에선 외형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 검찰 인사 분위기나 다른 임용 동기 검사들의 인사를 볼 때에도 좌천이라 얘기할 순 없다고 설명한다. 성상납 수사에 대해서도 첩보가 있어 수사에 착수했으나 구체적인 단서가 포착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성상납의 경우 첩보와 진술만으로는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한계가 분명히 있다.

지난해 또 한 차례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가 이뤄졌지만 이번에도 방송국 PD들이 주식 등 새로운 형태로 PR비를 받는 비리로 수사 범위가 한정됐다. 그런데 장자연 문건 파문이 불거지면서 이번엔 경찰이 연예인 성상납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경찰 수사가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수사 흐름에서 결정적인 포인트로 보이는 대목을 경찰이 아닌 매스컴이 먼저 지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 것. 대표적인 사례가 고인의 소속사 전 사무실이다. 침대와 샤워시설까지 갖춰져 성상납 장소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곳의 실체 역시 매스컴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사건 초기 경찰은 소속사 현 사무실 등 아홉 곳을 압수수색했지만 문제가 된 전 사무실은 제외됐다. 주변 관계자에 따르면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들러 물건을 챙겨갔다고 한다. 이미 결정적 증거물이 될지도 모르는 물품이 모두 치워진 뒤에야 경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

또한 경찰 수사 방향 역시 서서히 성상납에서 술 접대 강요로 흘러가고 있다. 수사의 핵심으로 부각됐던 성상납 리스트가 담긴 문건 확보 역시 요원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누군가 성상납 수사를 막고 있는 것일까. 2002년 국정감사에서 문제 제기를 했던 홍 의원은 매스컴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성상납 의혹을 받았던 기획사 대표와 장자연 씨가 소속된 기획사 대표가 동일인"이라며 "그때 제대로 수사가 이뤄졌더라면 지금 '장자연 리스트'와 같은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의 소속사 김 아무개 대표가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에서도 성상납 의혹을 받았다면 이번에도 국회의원과 같은 정계 고위층 인사들이 '보이지 않는 손'일까. 이번 장자연 문건 파문이 기존 연예계 비리 수사와 달라진 가장 큰 차이점은 정계 고위층 인사의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번에는 금융업 관계자, 대기업 관계자, 언론사 관계자, 방송국 PD 등이 성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고 조폭의 영향력도 사라진 뒤 정계 인사들까지 성상납 의혹에서 멀어졌지만 그 자리를 재계 인사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이 대신한 셈이다.

항간에는 현재 수사 선상에 오른 이들은 술 접대를 받았을 뿐이고 성상납을 받은 핵심 인물들은 아예 수사 선상에도 오르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현재 수사 선상에 오른 이들은 공개된 문건에서 실명이 거론된 자, 유가족이 성매매 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자, 다른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 고인과의 술자리에 동석한 정황이 있는 자 등이다.

실질적인 성상납 리스트가 담긴 문건은 경찰이 확보조차 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정·관계 고위층 인사부터 검찰과 경찰 관계자까지 다양한 이들의 실명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은 문제의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들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이런 까닭에 경찰이 리스트가 담긴 문건을 이미 입수했지만 그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물론 이번 경찰 수사에 '보이지 않는 손'이 관여하고 있다는 추측 역시 확인된 사안은 아니다.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와 마찬가지로 성상납 수사 자체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어 우선 확인이 가능한 술자리 접대 등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이 오해를 불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한 경찰이 늑장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치열한 특종 경쟁으로 매스컴이 너무 앞서 나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 논란은 향후 경찰의 수사 결과가 얼마나 만족스러우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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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 총리의 PD수첩 수사 압박


피디수첩의 끈질긴 수사의 의지를 -----> 장자연 사건 수사도 그렇게 좀 해라~!! (너무 이중인격자적인 모습 아닌가?)

분류없음 2009/03/29 22:06 유창선

PD수첩에 대한 검찰수사가 방송계 안팎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국무총리까지 PD수첩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승수 총리는 어제(29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외신 특별세미나에서 참석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PD수첩을 비난하며 ‘법의 심판’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한 총리는 PD수첩과 YTN 사태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PD수첩은 광우병에 대해 완전히 조작된 거짓말을 함으로써 국민을 혼란시키고 100만명 이상이 데모를 하게 해 사회를 어지럽혀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그동안 1년을 끌어왔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이어서 “그러다 보니 당사자였던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고소했으며 법의 심판에 의해 가려질 것이다. PD수첩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줘야 하는데 거짓 정보를 줘서 국민에 불안을 조성했고 사회를 혼란시켰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사진=오마이뉴스

YTN 사태에 대해서도 “검찰이 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을 검거하고 구속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검찰이 만일 어떤 사람을 구속했다면 언론의 자유를 방해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렇게 놔두지도 않는다. 그것은 법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건 모두 현재 검찰이 수사중인 사안이다. 그런데 국무총리가 나서서 ‘법의 심판’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은 검찰의 독립적 수사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일이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현재의 검찰수사가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검찰은 PD수첩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수사팀을 교체하면서까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법의 심판’을 시도하고 있다.


어차피 한승수 총리의 말은 검찰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이심전심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검찰이 수사를 계속하고 있고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은 사안을 갖고 총리가 완전히 조작된 거짓말을 했다느니, 국민을 혼란시키고 100만명 이상이 데모를 하게 해 사회를 어지럽혔다느니,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느니, 이런 식의 말을 공개석상에서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총리가 그런 가이드 라인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는데 검찰이 다른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결국 최근 검찰이 PD수첩의 이춘근 PD를 체포하는 무리수를 저지른데 이어, MBC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검토하는 초강경 대응을 하고 나서는 배경을 읽을 수 있는 발언이었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가 PD수첩을 얼마만큼 불온시하고 있는가를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결국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사실상 정권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사임을 한승수 총리는 시인하고 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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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칼럼) PD수첩 체포검사, 사표검사

시사비평 2009/03/26 08:11 손석춘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프로듀서(피디)가 전격 체포됐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제작진의 한 명인 이춘근 피디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포했다. 담당부장은 전현준 검사다. 그뿐이 아니다. 검찰은 조능희 책임피디와 김보슬 피디를 비롯해 방송작가 2명에 대해서도 강제 신병 확보에 나섰다.

전현준 부장검사

YTN기자 이어 MBC피디 전격체포


두루 알다시피 2008년 6월 농림수산식품부가 피디수첩을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의뢰하면서 검찰수사는 시작됐다. 정부가 정책에 비판적인 방송사 프로그램을 상대로 수사를 의뢰하는 살풍경을 보며 적잖은 사람들은 그 뜬금없음에 차라리 실소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어이 피디를 체포하는 저 야만을 보라. 이미 저들은 와이티엔(YTN) 노종면 노조위원장을 체포해 구속했다. 노 위원장 또한 가족이 보는 가운데 체포당했다.

기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지난 수사팀이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까지 공공연하게 시들방귀로 여겼다. ‘제대로 된 수사’가 아니었다고 혹평했다. 제작진을 상대로 어떤 경위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했는지 조사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좋다. 전현준 부장검사의 지휘아래 지금 벌어지고 있는 피디 체포에 대해 그의 ‘소신’을 존중해주자. 다만 두 검사의 이름을 명토박아 기록해두자. 전현준 수사팀이 혹평하는 지난 수사팀의 부장검사는 임수빈이다.

임수빈 전 부장검사

체포검사 전현준, 사표검사 임수빈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의 임수빈 부장검사는 “공적 사안을 다룬 보도”이고 “명예훼손의 피해가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체포를 하거나 압수수색까지 실시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임수빈 검사는 결국 올해 초에 사표를 냈다.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은 게 원인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임수빈 부장검사는 재직 중에 쓴 글에서 검찰 형사부를 일러 “명예를 먹고 사는 고독한 존재”라고 표현한 바 있다. 임 검사 자신이 ‘공안’ 쪽을 두루 거쳤기에 그 말은 더 뜻 있었다. 그러나 보라. 명예를 먹고 사는 고독한 존재로서 형사부가 공안 검사를 뺨치고 있다.

물론, 임수빈 검사는 권력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 사표를 내고 전현준 검사는 용춤추는 모습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모습, 대한민국 어느 조직이든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임수빈과 전현준은 그 차원을 넘어서 있다. 언론의 자유, 민주주의의 밑절미를 ‘법’의 이름으로 훼손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정권의 영원한 시녀’인가?

지금 당장은 임수빈이 초라할 수 있다. 그는 청춘을 바친 조직을 떠나 쓸쓸하게 개인사무실을 냈다. 전현준은 권력의 총애를 받아 커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다름아닌 전현준 부장검사와 형사6부에 묻고 싶다. 검찰은 ‘정권의 영원한 시녀’라는 말, 그 말은 칼 든 검찰에 대한 명예훼손인가? 아닌가?

나는 ‘시녀’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렇게 쓰고 있다. 더구나 나는 농림수산식품부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 전체가 쇠고기 협상과정에서 검역주권을 포기했고 국민 건강권을 훼손했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써왔고 지금도 거듭 명토박아 쓴다. 그래서다. 대한민국 검찰에 묻는다. 왜 이춘근 피디만 체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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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되면 日핵무장 가능성"
美 의회조사국 보고서 日전문가들 "핵가진 통일한국이 '핵무장 北'보다 위험"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상황에서 한반도에서통일이 이뤄질 경우 비핵화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일본이 핵무기 보유를 추진할 수 있다고 미국 의회 산하기관인 의회조사국(CRS)이 전망했다.

CRS는 지난 달 19일 발간한 `일본의 장래 핵문제:정책논의, 전망 그리고 미국 국익(Japan's Nuclear Future: Policy Debate, Prospects, and U.S. Interest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한반도에서 통일이 이뤄질 경우 일본은 핵정책에 대해 재검토하게 될수 있다"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서 남북한이 통일되고, 새 통일국가가 핵무기를계속 유지하기로 하면, 일본은 다른 계산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보고서는 "일부 일본 전문가들은 핵무장한 통일한국이 핵무기를 가진 북한보다 (일본에) 더 위협이 된다고 주장해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보고서는 일본의 핵무장 여부 정책 결정은 한반도에 수립되는 새국가의 정치적 태도, 미국과의 관계, 통일한국 정부의 대일(對日)관계 등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이 지난 1965년 외교관계를 정상화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혹독한 식민통치로 인해 일본에 적대감을 갖고 있다면서 인접한 한국인들이 일본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면 일본은 핵무기 능력을 개발하도록 더 많이 강요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한미동맹과 6자회담에서의 주도적 역할 등으로 인해 어떤 형태로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든 미국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반도 미래에 대한 향후 미국의 비상사태 계획에는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일본의 계산도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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