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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낭성면 귀래리 싱하 조관호 선생님께서 별세하였습니다. 

2021년 2월 22일 그는 이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공식 사망일은 23일)

 

 

그는 참 부지런히도 세상을 살았습니다.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왕성하게 하셨고, 첫직장생활로는 기자생활을 하였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시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농부로서 농사도 지으시고

부모님과 같이 손수 집을 지어 농촌생활도 영위하였습니다. 

 

[ 낭성면 귀래리에 조관호선생님께서 직접 지으신 집]

 

 

 

그러다, 세상의 오판과 오류에 눈을 뜨고 바로 잡기 위해 가진 재산을 모두 팔고 도시로 나와서 

시민운동을 왕성하게 하시면서 청주 남문로에 애술가라는 상호로 터를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북문로에 하늘북이라는 상호로 이전하였고, 최근에는 내덕동 안덕벌 하늘북에 계셨습니다. 

 

기자에서 농부로 시민운동가, 민중운동가, 농민운동가, 통일운동가, 계몽가 이셨습니다. 

그의 사상은 통일사상에서 빛을 내었습니다. 

여기서 그의 직업은 무엇이냐고 하면 농부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는 올해 다시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지을려고 계획을 하셨습니다. 

 

그는 험난한 운동현장에서 솔선수범하며 거친 황원을 내 일처럼 다니셨던 분이셨습니다. 

저 멀리 세월호 진도앞바다부터, 강정마을 제주도까지 그는 어느곳이든 거침이 없으셨습니다. 

그의 생계와 가족은 그래서 뒷전이셨습니다. 

 

싱하 조관호 선생님은 불의와 부패, 부정에 상식적이지 않다고 바로잡으려고 하는 행동하는 양심이셨습니다. 

시민시민 하나를 팩트와 진실로 깨우쳐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모든 사람 하나하나를 등안시하는 법 없이 모두 가슴으로 마음으로 미소로 품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부터 최근 이 나라의 정의 민주주의 운동에 빠짐없이 최전선 현장을 지키셨던 분입니다. 

어려운 정치를 유머와 해학으로 재미있게 풀어서 남녀노소에게 찬찬히 설명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정의로운 분들을 모셔서 늘 감사해하고 찬사를 보내주며 강연회를 열고 널리 알리고자 하신 분이셨습니다. 

문화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문화를 시민들과 함께 누리고 나누며 즐기고자 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사업에 헌신하셨고, 소녀상 건립에 앞장섰으며, 친일파나 독재자의 동상 철거이전을 하였습니다.

청주 낭성면 귀래리의 신채호사당 마을에 신채호선생추모와 고드미마을 건립에 동참하셨습니다.

자신의 발전보다는 사회의 발전 시민의 발전을 꿈꾸시던 분이셨습니다.

가장 큰 업적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몸소 실천해온 수장으로 큰 일을 하셨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선두에서 실천해온 싱하 조관호

40대 중반의 조관호선생님의 모습

 

 

그는 낙천적인 사고로 느긋하였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셨으며,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셨습니다. 

성품이 온화하면서 따뜻하셨고, 모든이를 부드럽게 감싸앉아주셨으며 박애주의를 실천하신 이 시대의 예수이십니다. 

재치있는 유머로 상대를 편하게 해주셨고, 순발력있는 부드러움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친화력을 끌여들이셨습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나름의 유머와 해학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지식이 풍부하였고, 지혜가 있으셨으며, 영성에도 눈을 뜨신 분이셨습니다.

선비정신이 있으셨으며, 예의가 바르고 품의가 있으셨으며, 책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모든 문화와 문학을 예찬하며, 싱그러운 하루, 싱그러운 하늘을 늘 꿈꾸며 살고 싶어하였습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술을 갈수록 좋아하셨습니다.

가족을 떠나 홀로 사시면서부터 그는 생계유지로 인해서 책을 보는 독서는 갈수록 어려워하셨고, 많은 인맥들의 연락과 술친구요청 등으로 시간은 바쁘게 보냈습니다. 유일한 낙은 스마트폰으로 문화생활을 하시는 거였습니다. 

하늘북의 운영자금 지원중단으로 그는 상심과 낙심이 매우 컸을 것이고, 스트레스도 심하였을 것입니다.

허나, 그는 경제적 자립을 줄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업을 꿈꿔오셨지만 차분히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개인사보다는 정치사 세상사 거사를 늘 걱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의 쉴 시간도 없이 그는 일을 하여 생계유지를 하였고 세상걱정과 본인걱정을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그나마 그는 그의 생계를 위해서 하늘농부 영농법인회사의 운수업을 담당하며 생계를 유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꿈꾸는 것들을 어떻게 구현할까 하는 스트레스로 하루하루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국민기본소득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는 자신의 몸을 보존하는 시간도 가졌을 것입니다. 등산을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는 자신의 건강에 투자하는 시간도 가졌을 것입니다. 그는 한시도 일을 안하면 급여를 받지 못하기에 일을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단한 일을 마치면 줄곧 늦은 귀가후 집에서 술로 위로와 위안을 삼으셨습니다.  

 

참 인간의 삶이란 것이 슬픈 여정입니다. 

슬픈 여정에서 인간은 꿈과 희망으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허나, 우리몸은 쉴시간을 그리 많이 주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 피우고 싸고 놀고 운동해도 몸이 늙어지고 세포가 분화하여 노화로 갑니다. 노화를 늦추려면 덜먹고 덜피우고 덜 마셔야 하는데요. 행여 마시고 먹고 피우고 일을 하고 하면 그 만큼 그것들을 안하는 회복의 시간을 적어도 2배이상은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참으로 기다려주지 않고 쉽지 않습니다. 한번 쾌감을 주고 재미를 준 것은 우리 몸은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세지를 보면서 기록하고자 합니다. 

그의 발자취를 남겨볼까 합니다. 

 

그는 떠나시기전에 나를 싱하로 불러달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호는 싱하 라 불러달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심정을 여실히 느낄수 있는 자기 소개 문구

 

 

 

아래는 그가 떠나기전에 몇일간 주고받은 메세지라서 그의 유언과 같아서 기록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떠난 후 홀로 남아서 어딘가 남아있는 술을 방가워 하심을 표현한 글

 

화요일밤 그날은 너무 호탕하고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여서 

셋이 모이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간다.

시간이 정말 금방 간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뉘며,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며 

세상이야기, 통찰이야기, 음악이야기, 술이야기, 통일이야기, 집이야기, 서로 근황이야기 등을 나뉘었다.

 

 

 

 

그분께서는 이제부터는 나의 호를 싱하라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는 꿈꾸웠습니다. 

 

싱싱한 하루를

싱싱한 하늘을.............

 

이때 그는 별이 되고싶다는 말을 왜 우리는 그냥 스쳤을까

 

오늘도

로 가는

여행 또는 

연습의 하루 

 

2021년 2월 22일 월요일에 보낸 이모티콘을 읽지 못하시고 

계속 1로 남겨놓으시고 

그리고 그는 부고 소식을 주셨다. 

 

이런 비통함이 어디 있나 ㅠㅠ

 

 

그의 장례식은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루어졌으며, 장지는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시동리의 성요셉공원에 묻혔으며, 그의 현장 갤러리 사진입니다. 

 

 

낙천적이고 넉넉한 분 싱하 조관호

여유로워보였지만 새삼 마음속은 복잡분주하고 바쁜 사람

 

그가 참 안타깝게 떠나서 많이 슬픕니다.  많은이들이 그러합니다.

 

 

그의 보이지 않는 많은 업적을 기립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는 가고 우리는 남았네 ....... 

 

우리는 해야할 일들이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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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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