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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100권을 혼자 번역한 사람   2009/04/13 23:58
http://blog.chosun.com/deam/3863833 

 

전국책(戰國策) 정관정요(貞觀政要) 육도(六韜) 삼략(三略) 시품(詩品) 당재
자전
(唐才子傳) 명심보감(明心寶鑑) 설원(說苑) 박물지(博物志) 열녀전(列女
傳)
안씨가훈(顔氏家訓).

 

동양고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들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리 없다.
후대의 숱한 서적들에서 끊임없이 인용된 고전 중의 고전들이지만 또 다른 공통점
을 지녔다. 임동석(林東錫·60)이란 학자 이전에는 국내에 제대로 된 완역이 존재하
지 않았고, 그들 중 상당수는 출간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임동석 건국대 중문과 교수에게 2009년은 필생의 숙원이 이뤄지는 해다. 모두 100권
분량의 총서
임동석 중국고전 100(동서문화사)이 올해 빛을 보기 때문이다. 55종의
주요 고전을 완역한 이 총서는 6월까지 50권, 연말까지 그 나머지가 출간될 예정이
다. 임 교수가 대만 유학시절부터 30년 동안 작업에 몰두한 끝에 내놓은 원고지 20만
장 분량의 결과물이다.

 

 

임동석1.jpg

                                                                                                                                           사진=전기병 기자 

 

 

한문만큼 재미있는 게 없었습니다.

 

임동석은 1949년 충북 단양에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도 조팝나무꽃이
하얀 쌀알갱이처럼 피는 5월이 오면, 보릿고개 시절 먹을 것을 찾아 산속을 헤매던
유년기가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일제 말 징용을 다녀온 아버지는 학문을
몰랐고, 그는 어머니로부터 한글을, 동네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워야 했다.

 

열 살이 돼서야 비로소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들어간 임동석은 중학교
2학년 때
십팔사략(十八史略) 원전을 처음으로 읽었다. 원(元)나라의 증선지
(曾先之)가 송(宋)나라까지의 중국 역사를 간추린 이 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그는 꿈을 가졌다.
언젠가 나도 이런 훌륭한 고전들을 우리말로 옮겨 낼 수 있을까.

 

산전(山田) 파먹고 사는 고향땅이 싫었던 그는 중학교를 마친 뒤 서울로 달아났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조선일보를 배달하며 고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봐 오던 한문
고전들을 뒤적거리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다. 서울교대를 나와 국제대(현 서경대)
국문학과 야간대학원에 들어간 것도
한문을 잘 하니 공부를 더 해 봐라는 주위의
권유 때문이었다.

 

낮에는 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대학원생이 됐다. 수시로 우전
(雨田) 신호열(辛鎬烈·1914~1993) 선생을 찾아가 한학을 배웠다. 1978년 유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그는 이듬해 전재산 23달러를 꼭 쥐고 대만행 비행기를 탔다.
4년 뒤, 배 곯던 화전민 소년은 중화민국 국가박사학위를 얻어 귀국했다.

 

교수가 된 그는 드디어 번역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기뻐했다. 매일 새벽
5시에 도시락 2개를 싸서 학교에 출근한 뒤 냉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5층 연구실
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저녁 7시20분까지 작업에 전념했다. 이 일과표는 농사짓는
일과 똑같았는데, 아침 10시30분까지 하루 작업량의 3분의2를 마치는 것도 그랬다.

 

강의 사이 쉬는 시간 10~15분 동안에도 작업을 했고 식사 도중에도 늘 책장을 넘기
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른 교수들이 대학원생 제자들에게 번역 업무를 나눠 주는
일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상황에서도, 그는 번역은 물론 원문 입력이나 인덱스
작업마저도 대학원생을 쓰지 않고 혼자서 다 해 냈다.
그걸 남에게 맡기면 누가
다시 교정을 보겠느냐
는 것이다.

 

학술진흥재단의 고전번역 지원도 받지 않았는데 그 복잡한 신청서 쓰는 시간이면
책 한 권을 더 번역할 수 있기 때문
이었다. 끈질긴 강행군 때문에 고혈압과 당뇨까
지 생겼지만 ‘논어’에서 증자가 처음 말하고 제갈량이 ‘후출사표’에서 다시 썼던
사이후이(死而後已·죽은 다음에야 그만둘 수 있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견뎌냈다.

 

평범한 번역이 아니었다. 부록까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우리말로 옮겼고, 모든
책의 장(章)마다 체계적인 일련번호를 붙였다. 각국의 판본들을 비교하고 용어를
자세히 해설한 주석을 붙인 뒤 비슷한 내용이 담긴 다른 책의 원문까지 일일이 찾
아 부기했다. 분명히 어느 책에선가 봤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 1주일 동안 다시 찾
는 일도 있었다.

 

설화집 수신기(搜神記)에 등장하는 고구려 동명왕 신화의 경우 광개토왕비
삼국사기는 물론 후한서 위략 논형 만주원류고 제왕운기 동명왕편의 관련
내용까지 모두 뽑아 수록했다. 이런 번역본은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었다.

 

그의 엄청난 작업량에 일부에선 백화문(중국 현대어로 쓴 글) 번역본을 재번역한
게 아니냐
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동양 각국과 고금(
古今)의 판본들이 모두 내 자료이고, 백화문은 그 일부일 뿐
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조선시대 판본은 물론 중국 베이징(北京)대 도서관, 대만 국립도서관을 이
잡듯 뒤졌고, 일부 고전은 베트남 판본까지도 참고했다는 것이다.

 

 

임동석2.jpg

                                                                                                                      사진=전기병 기자 

 

 

그의 노력은 1996년에 결실을 보는 듯 했다. 한 출판사에서 한전대계란 제목의
전집을 기획해 그의 번역본 5권을 출간했다. 그러나 곧바로 닥친 IMF사태로 나머지
책의 출간이 좌절됐다. 그 뒤로는 가시밭길이었다. 출판사들은
요즘 세상에 그런
책들이 팔리겠느냐
다이제스트로 내지 그러느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교정
직원은
한자가 너무 많아 읽을 수가 없잖느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학문의 뿌리가 되는 것이 고전인데 이 시대가 어려운 것을 싫어하고 있구나! 좌절
한 그는 한때 원고를 죄다 고향으로 가지고 내려가 불태우려다 주위의 만류로 그만
뒀다. 여러 출판사에서 한 권씩 책을 내는 게릴라식 전술을 쓰며 버텼다. 원고가
난도질당하거나 자비로 출판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이제 곧 나올 100권의 전집은 사운(社運)을 걸고 해 보겠다”는 출판사측의 결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동석 중국고전 100’은
문·사·철의 수많은 전공자들을 들뜨게
 할 고전들로 가득 차 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대해 주자(朱子)의 주와
조선시대의 언해본까지 주요 주석을 집대성한
 사서집주(四書集註)’와 ‘노자 ‘장
같은 기본적인 고전은 물론, 조선시대 관리가 의무적으로 읽었던 당 태종의 정치문
정관정요, 맹모삼천의 고사를 담은 열녀전, 붓글씨 이론서 서보(書譜), 어린이
훈육서
몽구(蒙求)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됐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낳은 안자춘추(顔子春秋),
고대 역사서인
국어(國語), 당나라 재사들의 전기 당재자전, 가정교육서 안씨
가훈
, 처세서 채근담(菜根潭), 우리에게 알려진 판본의 두 배 분량인 명심보감,
불교 연구에 필수적인 원전
고승전(高僧傳)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 도교문학
의 대표서
신선전(神仙傳), 손자 오자 삼십육계 등을 망라한 군사서의 고전
무경칠서(武經七書)도 눈에 띄는 완역본들이다. 어린 시절 그를 한없이 들뜨게
했던 십팔사략’ 역시 전집에 포함됐다.

 

임 교수는 동양고전은 인간의 삶과 도덕·지혜, 과학과 문화예술이 다 들어 있는
무궁무진한 샘과 같다
고 말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핏줄 속에도 여전히
DNA가 남아 있는 것이죠. 이 책들이 개인의 행복과 우리 인문학 발전의 밑바
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임동석 중국고전 100'(동서문화사)을 곧 출간 예정인 임동석 건국대 교수 인터뷰.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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