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강국? Active-X 왕국! | |
통제권 넘겨주는 특정 프로그램 설치 강요하는 한국 웹 실명제·사이버 모욕죄·저작권 등 몰상식법 ‘고립 자초’ | |
구본권 기자 | |
김기창 지음/디지털미디어리서치·1만5000원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앞서 초고속 인터넷망을 갖추고 전 국민이 인터넷을 통해 쇼핑, 은행, 게임, 증명서 발급 등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정보기술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한국은 정부와 국민 대부분이 자부하는 것처럼 ‘인터넷 강국’인가.
지난 몇 년 동안 오픈웹(openweb.or.kr)을 통해 웹페이지 표준화 운동을 펼쳐온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의 대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한국은 스스로 인터넷 강국이라 여기고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국 웹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후진적이다.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라는 인터넷에서 한국 웹은 고립돼 있어 국내에서만 통용되고 국내 이용자들은 다른 나라의 사용자들은 겪지 않는 불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처럼 온라인으로 쇼핑이나 금융 업무를 할 때 대여섯 개씩의 액티브엑스 프로그램을 사용자 피시에 내려받은 뒤에야 거래가 허용되는 곳은 없다. 오로지 한국에서만 이런 불편을 강요당하는데 이용자들은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며 감수하고 있다. 한국은 “액티브엑스 설치 경고창이 나타나면 무조건 ‘예’를 눌러 설치하십시오”라는, 정보사회에서 몰상식으로 여겨지는 요구를 ‘상식’으로 받아들여, 액티브엑스 깔기를 국민적 스포츠로 만든 나라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아닌 웹브라우저를 통해서도 인터넷뱅킹 등에 필요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소송을 몇 년째 진행하고 있다. 이 소송은 1, 2심에서 패소한 뒤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모질라재단의 파이어폭스나 구글 크롬 등과 경쟁하며 세계시장에서 60%대 점유율을 보이며 갈수록 하락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99% 점유율이 흔들림 없이 공고하다. 이 책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한국 웹의 이런 현실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왜곡된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가를 지적한다. 김 교수가 소송대상으로 삼은 게 ‘액티브엑스만을 통한 공인인증서 발급’인 데서 보듯, 결정적 고리는 액티브엑스이지만 책에서는 다양하게 일그러진 한국 웹의 현실을 고발하고 그 이면을 들추어낸다. 액티브엑스는 자신의 피시에 대한 통제 권한을 넘겨주기 때문에 해커의 악성코드 배포에 동원되는 대표적인 기술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 보안전문가들이 거의 채택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마저 문제점을 인정해 사실상 폐기한 기술이다. 2000년 7월부터 웹브라우저가 128비트 수준의 보안접속을 지원하기 때문에, 웹브라우저의 보안 기능을 활용해 얼마든지 안전한 전자상거래가 가능해졌다. 이베이나 아마존닷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국제적으로 전자상거래가 가장 활발한 사이트에서는 거래를 위해 사용자 피시에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하지 않으며, 익스플로러가 아닌 다른 브라우저에서도 전혀 불편을 겪지 않는다.
글쓴이는 국제 표준을 따르지 않으면서 경쟁을 저해하는 한국 웹의 기괴한 현실이 결과적으로 한국 정보기술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특정 업체의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기술로 국가와 산업의 인터넷 환경을 만들어서는 전자상거래 기업 등의 국외 진출도 힘들고,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이 고사하게 된다. 더욱이 모바일 인터넷 환경에서는 더 이상 엠에스의 지배가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이 말하는 것들이 국제 무대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라는 게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 좀비피시 많은 이유 “액티브엑스에게 물어봐” ■ 지은이와 함께 / 김기창 교수
변호사이자 민법학자이지만 김기창(46·사진) 교수는 눈길을 끈 재판 1, 2심에서 패소하고 대법원에 상고한 원고다. 국내에서 법률가들이 사회문제나 인권과 관련된 공익 소송에 참여하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웹의 표준화와 같은 기술적 문제를 갖고 공익 소송에 나선 것은 유례가 없다. 웹브라우저는 수용자에게 어느 미디어 단말보다 많은 시간 노출되는 필수적 환경이지만, 이것이 공정한지 올바른지를 묻는 사람은 일부 과학기술인을 빼고는 거의 없었다. 김 교수도 본디 마이크로소프트 사용자였다. 그는 1994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유학 시절 아이비엠(IBM) 노트북 피시를 구입해 윈도 3.0을 설치해 사용했다. 자주 다운되는 피시에 불만을 갖고 있던 그는 1997년 영국 대학원생들의 추천을 받아 처음으로 리눅스를 설치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불편 없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피시를 사용해오던 그가 한국 웹의 현실과 마주친 것은 2003년 귀국하면서부터다. 리눅스 환경에서 한국의 웹은 제대로 구현되는 페이지가 드물었다. 그동안 이 문제를 지적해온 과학기술인들의 도움을 받아 법률가로서 문제의 공론화와 법적 강제 시도에 나서게 됐다. 2006년 오픈웹이 생겨나고, 소송이 개시됐다. -소송을 거치면서 변화가 있었나? “공인인증서를 특정 기업의 상품을 통해서만 발급하는 한국 웹의 현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공부문, 전자정부 웹사이트에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정부는 앞으로 모든 공공기관의 웹사이트가 최소 세 종류 이상의 브라우저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대법원이나 법제처 같은 사이트는 소송 당시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이용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웹 표준을 충실히 준수해 어떤 브라우저에서도 구현되는 모범적 사이트가 됐다. -김 교수도 액티브엑스를 사용하는가? “인터넷뱅킹과 온라인쇼핑, 내가 일하는 대학 업무용 포털서비스 접속을 위해 3가지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다.” 고려대는 보안접속을 이유로 액티브엑스를 요구해오던 것을 올해 안에 바꾸기로 하고 이번 주에 전 교직원에게 공지메일을 보냈다. 보안접속을 할 때 액티브엑스 없이 브라우저의 보안 기능만으로 충분하다는 김 교수의 설득과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특정 업체 상품에 의존한 서비스에 국내 이용자들은 별 불만 없이 쓰고 저항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용자들 불만이 없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용자들이 다른 서비스를 경험하지 못해 불편을 불편으로 느끼지 못하고, 불가피한 절차로 세뇌당한 탓이다. 저항이 없는 것은 이용자가 기술을 몰라서 저항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무지와 기술적 장벽을 이용한 사업자들의 상술이다.” “한국에 유난히 좀비피시가 많은 배경에도 액티브엑스가 있다. 악성코드 배포로 활용되는 액티브엑스 설치에 대해서 정부기관 사이트부터 시작해 모든 사이트들이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예’를 눌러 설치하라고 하고 보안환경을 최저로 설정하도록 권장해오는 등 이용자의 보안의식을 무장해제시켜온 게 현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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