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끝은 어디일까. 신종플루 탓에 사회 전반에 번지고 있는 두려움과 근심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10월27일. 최근 사흘 동안 사망자가 13명이나 발생하자 보건소와 거점병원은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난 것 같았다. 한 대학병원 신종플루 검진소 앞에 늘어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얼굴에는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그날 그 병원의 신종플루 검진소를 찾은 사람은 780명. 그 다음 날에도 500여 명이 긴 대열에 끼어들었다.
혼란스럽기는 학교도 매한가지다. 학교장의 재량으로 휴업을 결정하다 보니, 교장과 교사들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서울 ㅅ초등학교의 박 아무개 교장은 “그때(휴업령을 내릴 때)가 언제일지 가늠하기 어려워, 하루하루 두렵고 긴장된다”라고 말했다. 서울 ㅂ초등학교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반 아이가 조금만 늦게 와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과 두려움은 ‘시간이 약’일지 모른다. 정부가 신중히 전국 초·중·고등학교 휴교를 검토 중이고, 나름 짜임새 있게 신종플루 대응 전략을 세워나가고 있으니 말이다(믿음직스럽다는 말은 아니다). 게다가 예방 접종과 항바이러스제 공급도 비교적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10월 말, 종합병원의 신종플루 검진소는 으스스하면서 부산했다. 사망자가 사흘 사이에 13명이나 발생하자, 감기 증세만으로 달려온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어쩌면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종플루를 둘러싼 좋지 않은 소문일지 모른다. 사회가 불안하거나 소란하면 풍문에 쉽게 휩쓸린다. 요즘 알음알음 번지고 있는 ‘설’들도 그런 결과를 낳을 여지가 농후하다. 그 진실을 들여다본다.
■ 신종플루 백신은 위험하다?
신종플루 백신에 대한 ‘좋지 않은 설’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백신의 효능을 더 강화하려 첨가하는 항원 보강제(MF59)가 위험하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길랭바레증후군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다. 보건 당국은 당연히 두 문제에 대해 걱정 말라는 태도다.
신종플루 백신 허가에 참여한 식품의약품안전청 강석연 과장(생물제제과)은 임상을 할 만큼 했고, 부작용도 철저히 검증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내 신종플루 백신 임상은 세 파트로 나뉘어 진행해왔다. 성인·고령자용 백신(임상 대상자 474명), 소아청소년용 백신(임상 대상자 249명), 항원 보강제를 첨가한 백신(임상 대상자 590명)이 그것이다. “다행히 아직 특이사항이나 걱정할 만한 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강 과장은 강조했다.
미국 등지에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스쿠알렌 계통의 항원 보강제 사용 여부에 대해 강 과장은 “정부의 접종 계획량 1716만 명분 가운데 500만 명분에 첨가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소아청소년용은 제외). 덧붙여 그는 MF59가 이미 계절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에 일부 첨가되어 안전성을 검증받았다고 말했다. 실제 유럽연합(EU)에서는 항원 보강제 첨가 백신이 널리 사용된다. 반면, 미국은 항원 보강제 백신을 허가하지 않고 있고, 캐나다는 항원 보강제를 첨가하지 않은 백신만 접종 중이다.
엇갈리는 이유가 있다. 황윤엽 박사(텍사스주립대 의대 연구원·병리학)에 따르면 그 도화선은 1차 걸프전쟁이 제공했다. 당시 미군은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가운데 탄저병 분말 폭탄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탄저병 예방 접종을 받았다. 그런데 접종 후 많은 군인이 시름시름 앓는 게 아닌가. 역학 조사단이 부랴부랴 조사해보니, 스쿠알렌 성분의 MF59를 첨가한 백신을 맞은 탓이었다. 이후 MF59에 대한 거부감이 증폭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황 박사는 스쿠 알렌이 쌀겨나 올리브에도 들어 있고, 인체 내에 항체를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며 안심해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신경 손상 질환인 길랭바레증후군을 둘러싼 논쟁도 비슷하다. 이 질환은 10만 명당 1명 정도에서 발병한다. 증세는 자못 심각하다. 말초신경 장애를 유발해 심하면 자발 호흡을 제어해 환자를 죽음으로 내몬다. 2006년 미국에서 계절 독감 예방접종이 이 질환의 발병 위험을 1.45배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백신으로 인해 이 질환이 발병한 것은 1976년. 그해 미군 한 명이 돼지독감으로 사망하자 미국 정부는 즉각 백신을 다량 생산해 접종했다. 국민의 25%(4000만명)를 접종한 10주 뒤, 예기치 못한 재앙이 터졌다. 500명 이상이 그 병에 노출되고, 그중 25명이 사망한 것이다. 접종은 중단되고 백신에 대한 불신은 폭증했다.
그러나 백신으로 인한 ‘대형 사고’는 그뿐이었다. 이후 어떤 백신 접종에서도 길랭바레증후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질병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보고를 안 한 탓인지 몰라도, 아직 국내에서는 예방 접종으로 인한 길랭바레증후군은 보고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 역학 전문가는 매년 미국에서 백신이 아닌 다른 이유로 길랭바레증후군에 걸려 사망하는 환자가 연평균 2270명이나 된다며,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1976년 미국의 사고도 접종 10주 뒤에 발생했으니 말이다.
■ 임신부에게 백신은 위험하다?
질병관리본부 지침에 따르면 임신부는 59개월 소아·65세 이상 노인·만성질환자와 함께 고위험군에 속한다. 따라서 백신 접종도 우선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일부 임신부는 고민이 많다. 임신 4개월째인 한 여성(34)은 “보건 당국과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하다며 접종을 권한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접종을 말리는 글이 더러 보인다”라고 말했다.
엄격히 말하면, 신종플루 백신에 대한 임신부의 안전성은 검증되지 않았다. 국내 신종플루 백신 임상에서 임신부가 빠졌기 때문이다. 미국도 비슷한 듯하다. 9월 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신종플루 백신이 임신부에게 안전하냐?”는 질문에 “독감 백신은 임신부나 태아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일반 계절성 독감 예방주사는 이미 임신부에게 안전하다고 확인되었다. 신종플루 백신은 계절 독감 백신과 같은 설비와 방법으로 제조된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독감 백신이 안전하니 같은 설비와 방법으로 만든 신종플루 백신도 안전하다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조금 더 지켜보다가 맞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까. 그러나 김철환 교수(서울백병원·가정의학과)는 “그 정도 걱정이면 맞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차 사고가 무서워 차를 안 몰고 다닐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황윤엽 박사는 임신부에게 인플루엔자는 백신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1918년 스페인독감의 경우, 감염 임신부 1350명 중에서 27%가 사망했다. 같은 기간 미국 시카고대학병원에 스페인독감으로 입원한 임신부들은 86명 중 45%가 사망했다. 아시아독감 유행 때에는 미국 미네소타에서 사망한 사람의 20%가 임신부였다. 올해 신종플루 피해도 그 수준은 아니지만 심각하다. 임신부의 사망률이 전체 사망자의 6%나 되는 것이다. 인구 대비 임신부의 비율이 1%니까, 꽤 위험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CDC 자료에 따르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태아에도 영향을 미친다. 직접 태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바이러스와 싸우는 모체에서 발생하는 면역 작용(염증 등)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체의 인플루엔자 감염이 소아백혈병·정신분열증·파킨슨병과 연관이 있다는 내용도 있다.
태아가 직접 인플루엔자에 노출되면 지능이 낮거나 키가 작아질 수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미국의 한 연구진은 “태아 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60세 이상이 되었을 때 심장질환 유발 확률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20% 이상 높다”라고 보고했다. 접종은 임신부 자신이 선택하는 것. 이 모든 점을 감안해 선택하면 ‘부작용’은 그리 크지 않으리라.
10월27일, 병원 종사자들이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대상자 90%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바이러스 돌연변이와 타미플루 내성 바이러스가 출현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돌연변이 능력이 뛰어나다. 전문가들은 지난 여름부터 신종 플루 바이러스(H1N1)가 돼지나 조류의 몸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H5N1)나 여느 바이러스와 결합해 ‘슈퍼 바이러스’로 대변이할지도 모른다며 걱정했었다. 만약 그 같은 바이러스가 출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
먼저 지금까지 만들거나 만들고 있는 백신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타미플루 같은 항바이러스제도 효능이 떨어지거나, 무익해질 수 있다. 또 바람이 춥고 건조해지면서 슈퍼 바이러스가 더 멀리 더 많이 확산돼 지금보다 많은 환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 물론 중증 환자도 급증해 병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은 혼란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10월 말 현재 돌연변이는 보고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류가 언제까지 이 같은 행운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경고한다.
10월30일부터 동네 의원과 약국에서 타미플루를 처방·조제하고 있다. 그 덕에 더 많은 사람이 비교적 간편하게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신종플루 환자의 급증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거점 병원·약국의 벽을 허물었겠지만, 무리수라는 지적도 있다. 열이나 기침 같은 일반 감기 기운에도 “타미플루를 처방해달라”고 요구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타미플루 남용은 나중에 큰 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10월27일 현재 WHO에 보고된 타미플루 내성 바이러스는 28건. 그 가운데 타미플루 사전 사용과 관련이 있는 내성 바이러스가 12건이나 된다. 즉 병이 발생하기 전 타미플루를 복용한 뒤 신종플루에 감염되면 타미플루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우흥정 교수(한강성심병원·감염내과)는 “증상만 보고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면 내성 발생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라며 주의를 당부한다.
■ 사망자 속출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는 더 기승을 부리고, 날씨는 더 활동하기 유리한 조건(딸린 기사 참조)으로 변하고 있어서이다. 10월 넷째 주에도 사흘 동안 13명이 목숨을 잃었다(10월30일 현재 34명 사망). 정부는 최악의 경우 국내에서 2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리라 예측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신종플루의 위력과 다른 나라의 피해 정도를 보면, 의외로 사망자가 적게 발생할 수도 있다. 10월24일 현재, 신종플루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브라질이다. 1368명으로 미국의 사망자 수(1004명)를 앞섰다. 우리나라와 반대로 겨울을 보낸 아르헨티나(585명)·칠레(136명)도 꽤 많은 수가 사망했다.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아르헨티나가 1.5명으로 가장 많다. 브라질과 미국은 각각 0.7명과 0.3명. 아시아·오세아니아 권에서는 호주(186명)와 태국(176명), 말레이시아(77명)에서 많이 사망했다.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는 호주가 0.8명으로 가장 높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신종플루 사망자 수는 최종 몇 명이 될까. 아르헨티나 기준(10만명당 사망자 수)으로 추정하면, 우리나라 인구가 4800만이 조금 못 되니까 730명쯤 발생한다. 호주 기준으로는 380명쯤이다. 물론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나오면 아르헨티나 사망자 수를 크게 웃돌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호주보다도 10만명당 사망자 수가 적으리라 예상한다. 이미 겨울을 겪은 나라들과 달리 백신과 항바이러스제가 비교적 풍부하고,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단 발병 위험이 큰 학생들이 12월 중순부터 방학에 들어가 흩어지기 때문이다.
■ 우선 접종 순위, 잘못 정했다?
보건 당국의 신종플루 예방 접종 순서를 놓고 여기저기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보건교사는 우선 접종하면서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사는 왜 빼놓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60대 암환자 아버지를 모시는 한 30대 주부는 “(아버지가) 언제 신종플루에 감염될지 몰라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건강한 군인들보다 오히려 병로한 분들이 먼저 접종받는 게 맞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른 나라와 그 순서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①의료 종사자·방역요원·군인 ②초·중·고 학생 ③6개월~만 6세 어린이와 임신부 ④노인·만성 질환자 순으로 신종플루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이에 따라 10월 말~11월 초에는 ①군이, 11월 중순에는 ②군이, 12월에는 ③군이, 내년 1월에는 ④군이 우선 접종받는다(물론 건강한 성인은 접종비·백신비를 다 지불해도 맞을 수 없다).
반면 미국 CDC 접종 순위는 임신부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6개월 이하 어린이와 그들과 함께 사는 부모 및 보모이다. 의료 관련 종사자, 6~24세 젊은층, 25~64세의 인플루엔자 고위험·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그 다음. EU는 6개월 이상의 인플루엔자 고위험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접종한다. 임신부와 의료 관련 종사자는 그 다음이다.
영국도 비슷해서 가장 먼저 6개월~65세 미만의 인플루엔자 고위험·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을 접종하고, 그 다음에 임신부와 면역 결핍 환자를 접촉하는 사람 그리고 65세 이상의 고위험·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투여한다.
WHO는 의료 관련 종사자와 임신부를 가장 먼저 접종하고, 그 다음으로 인플루엔자 고위험·만성질환이 있는 6개월 이상의 사람들, 15~49세의 건강한 사람들, 50~60세의 건강한 사람들, 65세 이상의 건강한 사람들 순으로 접종하라고 권고한다.
건강한 군인들이 최우선 순위에 오르고, 교사들이 빠진 이유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장은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WHO, CDC 기준을 참고하고, 국내 상황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된 것으로 안다. 각 층의 불평불만을 수렴하면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제, 건강한 사람은 달리 신종플루를 피할 방법이 없는 듯하다. 손을 깨끗이 씻고, 스스로 면역력을 키워 비탈에 선 나무들처럼 꼿꼿하게 버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