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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가난 딛고 입지전을 쓰다


ⓒ국민장장의위원회 판사직을 7개월 만에 그만둔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내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말이 달리는 모양처럼 생긴 바위산이 있다. 옛날에 봉화를 올렸다 하여, 이름이 봉화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6년 8월 봉화산 아래 봉하마을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국민장장의위원회 노 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아들 건호군, 딸 정연양과 가족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상급 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순조롭게 넘어간 기억이 없었다. "어릴 때는 동그랗고 뽀얀 얼굴이어서 집안 사랑을 독차지했다"라고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주장하곤 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마에 깊이 아로새겨진 한일자 주름, 푹 파인 볼이 신산했을 그의 성장기를 추측하게 했다. 훗날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처음 하게 된 대정부 질문에서 그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사는 세상이다"라고 말했다. 가난을 뼛속 깊이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국민장장의위원회 노 전 대통령과 아들 건호군이 선산에 앉아 장난감총으로 장난을 치는 모습.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나이 서른에 이르러 입지전을 새로 썼다. 상고 출신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딛고 1975년 늦깎이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아내 권양숙씨는 노 전 대통령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7개월간의 짧은 판사 생활 끝에 변호사로 전업한 그는 제법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전문 분야(조세)가 탄탄하고 승률도 제법 높았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그는 '개천에서 용 난' 세속적 성공 모델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장장의위원회 변호사 생활 초기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은 취미 생활을 즐기고 개인 안위를 추구하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국민장장의위원회 부산상고 시절 친구들과 함께한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노무현 전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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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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