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의 일곱 번째 인터뷰 특강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첫 주인공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현재의 정치적 위상으로 보면 1등과 거리가 먼 노 대표와 역시 1등급은 아닌 듯 보이는 청중 300여 명이 서울 서강대 곤자가 컨벤션에서 만났다. 2시간30여 분에 걸친 강연과 질의응답 끝에 참석자들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보 정치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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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후보 단일화 70일이나 남았다
노 대표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난항에 빠진 야권 연대에 대해 “후보 단일화는 수단일 뿐 목표는 승리다. 상식과 양식에 기초해 국민의 요구를 정확히 수용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아직 70일이나 남았다”고 말했다. “결정적 시점에 양보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냐”는 사회자 김용민씨의 질문엔 “양보받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노회찬(이하 노): 2008년 총선 때 출마했던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는 로또 1등이 가장 많이 나온 가게가 있다. 그 가게에는 ‘로또 외에 방법 없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참으로 서글픈 구호다. 직장 다니고 월급 받아 생활하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1등·1등급이 될 가능성이 없다. 차라리 로또가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찬양한다. 그렇게 무한경쟁이 좋다면 완벽한 시장의 자유가 살아 있는 곳, 동물의 왕국으로 보내드리겠다.
진보신당이 바라보는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 즉 고용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비정규직을 썼을 때 실익이 적은 데 반해 우리나라는 크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더 많다. 우리는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폴리텍대학이란 곳은 비정규직이 48%인데, 이곳의 악덕 기업주는 정부, 노동부다. 공공부문이 이렇다.
이상으로서 ‘결과의 평등’은 실현하기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소한 기회는 평등해야 하지 않나. 교육에서도 기회의 균등이 망가진 상태다. 돈이 있어야 성적이 좋고, 부와 가난이 세습되는 메커니즘이 만들어졌다. 그런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나. 1등을 그냥 기억만 하는 게 아니라 1등급에 들어야만 인간답게 사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양극화를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자리 정책이다. 우리나라 경제수치는 좋다. 그런데 지속적인 사회 양극화 때문에 내수시장이 망가졌다. 국민 다수가 비정규직이다 보니 구매력과 가처분소득이 떨어졌다. 물건을 적게 사고, 물건이 적게 팔리니 적게 만들고… 이런 악순환에 갇혀 있다.
둘째, 복지다. 복지에 쓰인 돈이 생산요소로 투입되는 분야가 교육·의료·주택이다. 노르웨이는 석·박사까지 학비가 무료다. 부유세가 있는 프랑스는 대학 등록금이 30만원이다. 심지어 스리랑카도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그 아이들이 잘되면 나라에 도움이 되고 그 도움이 결국 내게로 온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다. 돈이 남아서 복지를 하는 게 아니다. 철학의 문제다. 여기서 진보와 보수가 갈리는 거다. 한 나라가 생산해낸 국내총생산(GDP) 중 얼마를 나누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우리나라 복지 예산은 28%다. 프랑스 50%, 미국 35%, 스웨덴은 57%이다. 0%인 나라도 있다. 동물의 왕국이다.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해마다 복지 예산을 올려서 인간의 왕국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동물의 왕국으로 갈 것인지.
그러려면 정치가 변해야 한다. 정치가 바뀌어야 경제가 바뀐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과거를 묻지 말고 다 모여야 한다. 그게 진보 대통합이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 남은 2년 동안 차분하게 논의해봤으면 한다. 진보신당이 촉매제가 되겠다. ‘로또 외에 방법 없다’ 대신 ‘진보 정당 외에 방법 없다’는 간판이 내걸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4대강 예산 어디에 쓸지 국민대토론회를
청중1: 고3 딸아이를 둔 부모다. 교육감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단체장과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교육감과 단체장이 러닝메이트가 되어 현재의 교육을 개혁할 수는 없는가.
노: 교육이 단체장과 교육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추진 방향을 완전히 바꿀 필요는 있다. 사교육비로 30조원을 쓰는 나라가 어딨나. 그것도 학력을 높이는 데 쓴 게 아니라 줄 세우는 데 쓴 돈이다. 대학 서열화부터 풀어야 한다. 국공립대를 상향 평준화하고 통합 학사 관리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부하고 오래 노동하는 사회다. 서울시장이 되면 이런 문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맞짱 뜨겠다. 청와대와 시청 사이의 광화문에 전운이 감돌게 하겠다. (청중 웃음)
청중2: 부산에서 온 대학생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면 해가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투표 말고 내가 진보신당 같은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노: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꿈이 현실이 된다. 투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매일 하는 건 아니다. 더 적극적인 방법은 같은 꿈을 꾸는 무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정당에 참여해야 한다. 진보신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 같은 곳에 참여해라. 아니면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에 가입해 행사에 참여하고 강좌도 부지런히 들으면 준정당 참여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 그 길이 힘들지만 지름길이다.
청중3: 1등이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단 무엇을 기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대학생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사회 참여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지….
노: 요즘 학생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수화되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표피적으로는 사실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어느 때보다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 수가 적고 취업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기 때문에 대학생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인생·역사·철학이 무엇인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여유 있게 보낼 수 없다. 사회가 그렇게 조장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바뀌어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상황이 주는 압박으로 인해 당면한 문제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제도를 바꿔야 한다. 한 명의 힘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구제하기 위한 노력도 하면서 동시에 제도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청중4: 4대강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4대강 사업 예산 22조원이 있다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어디에 돈을 쓰고 싶나.
노: 전에는 4대강 하면 나일강·유프라테스강이었는데…. 강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청중 웃음) 국민 대토론회를 열고 싶다. 우리 국민을 위해 쓰는 돈에 대해 직장·가정·학교에서 토론하고 우리의 꿈이 무엇인지 얘기하면, 다양한 이해를 조정해가면서 합의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자퇴하려면 나를 찾아와라
청중5: 짧게 질문할 테니 짧게 답해달라. 고려대 여학생의 자퇴 선언문을 보면서 나도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노회찬: 많이 고민을 하라. 잠을 푹 자라. 생각이 맑아져 결론을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나를 찾아와라. 학교 다니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일들을 추천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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