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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사표'내자, 노조 "김우룡 퇴진"
[진단] 엄기영 MBC 사장은 왜 사표를 던졌나?
09.12.09 19:24 ㅣ최종 업데이트 09.12.10 09:12 장윤선 (sunnijang)
  
엄기영 MBC 사장이 사표를 던진 배경은 무엇일까.
ⓒ 유성호
엄기영

한국 방송의 상징적 앵커였던 엄기영 MBC 사장이 결국 방송문화진흥회에 사표를 던졌다.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이 지난달 30일 열린 이사회에서 "뉴MBC플랜의 성과가 없으니 공언한대로 스스로 책임지라"고 한 뒤 7일 만이다.

 

엄 사장은 지난 7일 김세영 부사장을 비롯 6명의 본부장(기획실장, 보도본부장, 제작본부장, 편성본부장, 기술본부장, 경영본부장) 사직서를 모아 방문진에 일괄 제출했다. MBC 임원 전체가 방문진으로부터 재신임을 받겠다는 절차다.

 

이에 따라 방문진은 10일 오후 2시 이사회를 열고 재신임 여부를 공식 논의할 예정이다. MBC노조는 "이명박정부가 YTN, KBS에 이어 MBC마저 장악해 언론장악을 완성하려는 것"이라며 "10일부터 김우룡 퇴진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9일 오후 5시 30분 서울MBC에서 긴급 대의원대회를 열고 투쟁계획을 결정한다.

 

KBS가 MB특보 출신 낙하산 사장 반대운동을 벌이는 가운데, MBC도 김우룡 이사장 퇴진투쟁에 나서게 되면서 연말 언론계는 대정부투쟁으로 상당히 술렁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KBS노조가 파업부결에 따른 책임을 방기하는 상황에서 공정보도 가치실현을 목표로 삼는 '제2노조 건설'이 본격화 하고 있어 '언론의 대정부 투쟁' 교두보가 마련되고 있다는 평가도 흘러나온다.  

 

무엇보다 MBC 안팎에는 엄기영 사장의 사표가 던지는 의미가 무엇이냐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돈다. 내년 2월 주주총회를 불과 2개월 앞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계에는 방문진이 내년 2월 주주총회까지는 엄기영 사장의 임기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정연주 KBS 사장의 후폭풍이 너무 거셌기 때문에 MB정권이 무리하게 엄 사장을 해임할 리 없다는 분석 때문이다. 해임하더라도 꼴을 갖춰 해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것이 내년 주주총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그러나 엄 사장은 7일 임원 전체와 함께 전격 사표를 던졌고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 같은 절차에 대해 차기환 방문진 이사(대변인)는 9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엄기영 사장 스스로 약속한 바"라며 "내일(10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임원 전체를 유임할지, 해임할지, 부분적으로 유임이나 해임을 결정할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엄 사장은 지난 8월 31일 방문진에 '뉴MBC플랜'을 제출했다. 공정성위원회를 만들어 한쪽에 치우친 입장을 대변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지 않도록 하고,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 가운데 공정방송 담보조항을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3개월간 가시적 성과를 내고 평가받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노조와의 협상은 만만치 않았다. 뉴라이트 출신 방문진 이사들은 엄 사장을 통해 <PD수첩> 등 '문제 프로그램'과 단협사항 손보기를 관철하려고 했지만, MBC노조가 이를 받을 리 만무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엄 사장은 빈손이 됐다. 이를 두고 MBC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나름 완충지대에서 타협벨트를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잘 안 된 것이 아니냐"고 분석했다. 엄 사장이 방문진으로부터 달달 볶이다가 이 과정에서 사표를 던졌다는 게다.

 

방문진 입장에서 보자면 내년 2월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일단 엄 사장 스스로 11월 30일까지 말미를 정하고 뉴MBC플랜의 성과를 내겠다고 했는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점에 대한 '방문진표 심판'이 필요했다는 게다.

 

그래서 김우룡 이사장이 "성과가 없다"는 시그널을 지난달 30일 이사회에서 피력했고, 이에 대한 답으로 엄 사장과 임원진이 사표를 낸 격이라는 분석이다.

 

방문진이 움직이고 있다는 시그널을 청와대 등 이명박정부 언론정책 상층부에 알리기 위한 조처라는 해석도 있다. 일단 11월말까지 성과가 없으면 책임지기로 했는데 아무런 행동 없이 내년 2월 주주총회까지 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퍼포먼스 차원에서라도 뭔가 행동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KBS에 '김인규호'가 생각보다 빠르게 안착한 것도 자진사퇴를 불러온 핵심 포인트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이 있다. 구본홍 YTN 사장과 달리 30년간 KBS에서 일해온 김인규 사장은 KBS를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장악한 만큼 이 참에 MBC도 밀어붙이자는 정권 차원의 '자신감의 발로'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MB정부의 언론장악 수순으로 해석하는 시각이다.

 

실제로 엄 사장은 지난 8월 김우룡 이사장 취임 이후 4개월간 지속적으로 자진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김 이사장을 비롯한 여권 이사들은 회사가 노조와 맺은 '공정방송협의회 운영규정(공정방송과 관련해 임직원 보직변경 요구가능 조항 등)'을 개정하라고 요구하면서 압력을 행사했다. <PD수첩>과 <100분토론>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엄 사장은 "방문진의 부당한 간섭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은 이 같은 엄 사장의 입장에 박수쳤다. MB정권에 굴복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지난해 강제 해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도 "역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포클레인으로 당신을 강제로 들어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버티셔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MBC노동조합도 MB정권의 끊임없는 공영방송 사장 흔들기에 맞서 '지키기'로 일관해왔다. 엄기영 사장 개인의 차원을 넘는 의제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엄 사장은 이 같은 국민적 요구를 뒤로 한 채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엄 사장이 불현듯 사표를 내면서 노조 입장도 당혹스러워졌다. MBC노조는 그동안 엄기영 사장 개인의 문제와는 별개로 공영방송 사장 지키기 노선을 고집했다. MB정권 출범 이후 정연주 KBS 사장 강제해임과 이병순 사장 선임, YTN 구본홍 사장 등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대거 방송에 포진하고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에 맞서기 위해서는 '엄기영 사장 지키기'가 필요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MBC노조는 엄 사장이 '뉴MBC플랜'을 세우고 협상을 하자는 제안을 뿌리치지는 않았지만 협상 내내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했다. 엄 사장이 뉴라이트 방문진 이사들의 입장을 노조에 묻고 관철하려는 지점에서는 몇 차례 파열음도 생겼다.

 

노조 입장에서는 지금도 엄 사장이 방문진과 대립 각을 세우면서 공영방송 사장의 표본역할을 해주면 선명성 있게 활동할 수 있지만 돌연 사표를 내고 재신임을 받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MBC의 한 관계자는 "엄 사장은 방문진의 요구에 거세게 반발하지 않았다"며 "공영방송 MBC의 관점에서 여러 문제를 노정하고 싸웠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엄 사장의 돌연 사표는 '연임을 위한 쇼'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방송민주화운동의 산물인 국장책임제와 공정방송협의회 무력화 시도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질타했다.

 

이근행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상황이 어쨌든 간에 "정권의 언론장악 로드맵에 따라 방문진 압력에 굴복해 결국 사표를 낸 데 대해 지극히 실망스럽다"며 "더 이상 정권이 공영방송의 목줄을 잡고 흔드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방문진의 MBC 통제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퇴진투쟁에 돌입한다"고 피력했다. 공영방송 MBC를 권력의 대리인에게 넘겨주고 권력의 눈치나 보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여 강조하기도 했다.

 

내일(10일)로 예정된 방문진 이사회에서 엄 사장의 거취가 어떻게 결정될지 현재로서는 관측하기 어렵지만, 전원 해임되거나 유임되든, 일부 해임되거나 유임되든 MBC 내부의 격랑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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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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