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ㅣ장 민기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뜻밖에도 만화책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박시백 화백이 그린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침대 머리 맡에 두고 틈틈히 읽었다. 이 책은 대하역사만화로 김 전 대통령은 총 14권 중 4권 ‘세종-문종실록’부분을 62페이지까지 읽고 일기에 "재미 있고 참고가 된다"는 소감을 적었다.
사단법인 김대중 평화센터는 8월 28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故 김대중 前대통령 생애 마지막 순간들'을 주제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하고 서거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비서실 일정기록, 경호실 근무일지, 담당 비서들과 행사 참석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주제별로 정리했다.
김대중 평화센터는 "김 전대통령께서 <마지막 일기>에서 말씀하신 '아름다운 인생과 발전하는 역사'를 위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오셨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며 자료공개의 의미를 부여했다. 다음은 공개 내용 전문이다.
1. 비서관들의 마지막 업무보고
- 비서관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주요 업무보고를 한다. 마지막 업무보고는 입원하시던 당일 7월 13일 오후 월요일 병원으로 출발하기 전 2층 침실에서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는 박지원 비서실장, 김선흥 국제의전비서관, 윤철구 총무비서관, 최경환 공보비서관이 참석했다.
- 이 때 김 전대통령께서는 다음날(14일)로 예정된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초청 연설에는 “참석할 수 없다. 빨리 연락하라”고 말씀하시고 “국영문 연설문을 보내 주최측이 참고하도록 하라”고 비서관들에게 지시했다.
- 또 5월 중국 방문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 탕자쉬엔 전 국무위원에게 보내는 서신에 “金 大 中”이라고 서명했다.
2. 마지막 연설
- 6월 11일(목)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를 주제로 연설하였다. 이것이 생애 마지막 연설이 되었다. 이날 행사는 건강이 좋지 않아 당초에는 참석이 어려웠으나 5차례나 의사들의 진료를 받고 행사 중간에 참석했다.
※ 미발표 연설문
- 입원하신 다음날인 7월 14일(화) 하얏트호텔에서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초청 연설이 예정되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연설문 제목은 ‘9.19로 돌아가자’였고, 연설문은 완성돼 있었다. 9.19는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 공동선언’을 말한다. 이 연설문은 이후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고, 김대중평화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다.
3. 마지막 국내언론과의 인터뷰
- 6월 27일 토요일 오전 동교동 사저 응접실에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약 1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였다. 이 인터뷰는 국내언론과 가진 마지막 인터뷰였다.
- 당시 인터뷰에서 김 전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하지 못했던 추도사를 말씀했다. 또 민주주의의 위기, 읽어버린 10년, 정치인의 자세, 행동하는 양심 등에 대해 말했는데 이 인터뷰 내용은 <오마이뉴스>가 펴낸《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라는 책의 서문으로 실렸다.
4. 마지막 해외언론과의 인터뷰
- 병원에 입원하기 3일 전인 7월 10일(금) 동교동 자택 응접실에서 영국의 국영방송 의 존 서드월쓰(John Sudworth) 서울 특파원과 인터뷰를 가졌으며 북핵문제, 햇볕정책,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인상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었다. 1시간 동안 녹화 대담을 마친 김 전대통령은 “힘든 회견이었다”고 말했다.
- 이 인터뷰 내용은 7월 17일 BBC World의 Asia Today에서 방송되었다. 인터뷰 내용 전문은 김대중평화센터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다.
- 이 인터뷰가 생전에 김 전대통령께서 하신 마지막 공식일정이다.
※ 김 전대통령께서는 퇴임 후 6년 6개월 동안 총 100여차례 국내외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5. 마지막 해외여행
- 5월 4일부터 8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시진핑 국가부주석, 탕자쉬엔 전 국무위원 등 중국 고위인사들을 만나 한중문제, 한반도 동북아문제, 6자회담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또 베이징대학에서 ‘북핵해결과 동북아의 미래, 중국에 기대한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사회과학원을 방문해 한반도 및 동북아문제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 대통령님께서는 5월 5일자 일기에서 당시 시진핑 국가부주석과의 회담에 대해 “북핵문제(절대 불용), 6자회담 계속, 남북관계 잘 되기를, 미국도 좀더 협력해야 등 많은 문제 의견 일치, 만족스러운 회담이었음”(미공개 부분임)이라고 적었다.
- 탕자쉬엔 전 국무위원은 이번 대통령님 영결식에 중국 정부의 조문 사절단 대표로 방한했다.
6. 마지막 국내여행
- 4월 24일(금) 고향 하의도를 14년만에 방문했다. 하의도에서 선영을 둘러보고,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고 모교인 하의초등학교와 덕봉서당, ‘큰바위 얼굴’ 등을 둘러보았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KTX 열차를 타고 왕복했다. 이 고향방문이 생애 마지막 국내여행이었다.
- 이날 일기장에는 “14년만의 고향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이다.
7. 마지막 보낸 서신
- 지난 5월 중국 방문 후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탕자쉬엔 전 국무위원에게 당시 환대에 대한 감사와 북핵문제에서 중국의 역할 등을 담은 서신을 보냈다. 이 서신은 병원 입원 당일날(7월 13일) 대통령의 친필서명을 받아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각각 전달했다.
8. 마지막 외부 만찬
- 5월 18일 저녁 김 전대통령은 방한한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하얏트호텔 양식당에서 만찬을 했다. 김 전대통령은 클린턴 전대통령에게 북핵문제의 본질과 해결방안 등을 정리한 글을 별도로 전하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도 전달할 것을 요청했다.
- 당시 만찬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마지막 일기>에 다음과 같이 남기셨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게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 지난 8월 23일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 전대통령 서거 후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의 전화를 해서 “당시에 김 전대통령께서는 저에게 미국의 정책을 좀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셨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9. 마지막 외부 오찬
- 6월 27일 토요일 신촌의 거구장에서 양성철·조찬형 전 의원 부부와 오찬을 하셨다. 대통령께서는 참석한 분들의 자제들의 근황을 묻는 등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10. 마지막으로 수여한 위촉장
- 김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시면서 혹은 아태재단이나 김대중평화센터 직원들에게 꼭 형식과 예를 갖추어 임명장 혹은 위촉장을 수여하였다. 이를 통해 각자의 책임과 역할에 사명감을 갖고 일하도록 하셨는데 마지막 위촉장 수여식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다.
- 7월 9일 연세대 동문회관 이라는 중식당에서 제3차 김대중평화센터 이사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께서 김 전대통령을 대신해서 김선흥 사무총장, 김택근 자서전 편집위원, 장옥추 자서전 편집위원보, 변주경 통역보좌역에게 각각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김대중’ 이름으로 위촉장을 수여했다.
11. 내외분이 함께한 마지막 드라이브
- 평소 꽃 구경과 드라이브를 즐기시는 대통령님은 여사님과 함께 7월 5일 일요일 오후 약 50여분간 서강대교에서 행주대교까지 올림픽대로를 타고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이것이 김 전대통령 내외분이 즐기던 마지막 드라이브였다. 김 전대통령은 이렇게 한강변 드라이브를 즐기셨는데 “언제봐도 한강은 좋다”고 자주 말씀하곤 했다.
- 이에 앞서 5월 10일 결혼기념일에는 지인 몇 분들과 63빌딩에서 결혼 47주년 축하 오찬을 한 후 한강변 드라이브를 했다.
- 또 4월 2일 오전에 연세대 뒷길의 진달래꽃과 여의도 윤증로를 드라이브하며 벚꽃 등을 보셨는데 이날 일기장에는 “여의도에 벚꽃이 만발했다. 아내와 같이 드라이브하며 구경했다.”(미공개 부분임)라고 기록되어 있다.
12. 마지막으로 쓴 휘호
- 김 전대통령께서는 생전에 지인들과 여러 곳의 요청으로 많은 휘호를 쓰셨다. 주로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인여천(事人如天)’, ‘실사구시(實事求是)’, ‘行動하는 良心’ 등의 글귀를 한자로 썼는데 미국 망명 중에는 휘호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휘호를 써 넣은 도자기를 만들어 국내외 인사들에게 선물로 사용했다.
- 마지막으로 쓰신 휘호는 4월 24일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에 보낸 휘호다.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을 한자로 써서 보냈다. 이 휘호는 지금 하의도 기념관 건물 전면에 새겨져 있다. 이것이 생애 마지막 쓴 휘호다.
- 이에 앞서 올해 3월 비서관으로 근무하다 주이라크 대사로 부임하는 하태윤 국제의전비서관(김대중평화센터 사무총장 겸임)에게 “만방일가(萬邦一家)”, 또 최경환 공보비서관에게는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휘호를 써 주며 비서관들을 격려했다.
13. 마지막으로 읽으신 책
- 독서가이신 대통령님께서는 건강이 여의치 않고 눈도 침침해 지셨지만 서재나 침실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다음의 3가지 책을 주로 읽었다.
① 제국의 미래(에이미수나, 비아북)
② 오바마 2.0(김홍국, 나무와 숲)
③ 조선왕조실록(박시백, 휴머니스트)
-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대하역사만화로 총 14권 중 4권 ‘세종-문종실록’부분을 62페이지까지 읽었다. 4월 4일자 일기에는 “박시백 화백이 만화로 그린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는데 재미있고 참고가 된다.“(미공개 부분임)고 적었다.
14. 마지막 저서 친필 서명
- 김대중 전대통령은 <옥중서신>,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21세기와 한민족> 등 자신의 저서에 직접 서명을 해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시기를 좋아했다.
- 6월 29일 동교동 사저 경비를 지원하고 있는 마포경찰서 이상정 총경에게 <옥중서신>에 서명해 선물로 주었는데, 이것이 생애 마지막으로 저서에 서명해 준 책이다.
15. 마지막 도서관 집무실 출근
- 김 전대통령의 집무실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건물 5층에 마련돼 있다. 김 전대통령은 4월 16일 영국에서 온 <국제사면위원회(AI, Amnesty International)>와 인터뷰를 위해 집무실에 출근했다. 이것이 김 전대통령이 집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본 마지막 일정이다.
- 이날 인터뷰는 영상 녹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됐다. <국제사면위원회>는 김 전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삶, 특히 사형제 폐지를 위한 노력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전세계 사형제 폐지 캠페인을 위해 이 인터뷰를 사용할 예정이다.
※ 병원 입원과 서거로 실행하지 못한 일정
① 비서실 격려오찬 : 중복을 맞아 비서실·김대중도서관 직원과 경호실·경찰 간부 등 전 직원과 함께 7월 23일 거구장에서 격려오찬이 예정되었다. 김 전대통령님께서는 해마다 복날이 오면 직원 격려오찬을 해 왔다.
② 36주년 생환기념행사 : 8월 13일 동경납치사건에서 생환한 날을 기념하여 매년 열리던 생환기념 미사와 행사는 취소되었다. 당일 행사는 중환자실에서 서교성당의 신부님과 이희호 여사님과 가족들이 함께 기도와 찬송을 하고 케익의 촛불을 끄는 것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③ 미국방문 : 9월 18일로 예정된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NPC) 연설과 9월 23일 뉴욕에서 열리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 행사도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5월 18일 하얏트 호텔에서 클린턴 전대통령과 만찬 때 김 전대통령께서는 “꼭 참석하겠다. 9월 뉴욕에서 만나자”고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약속하셨다.
④ 여름휴가 : 8월 19일부터 22일까지 강원도 양양 솔비치 호텔로 3박 4일 일정으로 여름휴가가 예정되었으나 가지 못했다.
⑤ 언론회견 : , 월간지 <민족21>,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 시사 주간지 <시사IN>, 영국의 지, 독일의 <슈테른>지 등과의 회견도 약속을 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연기되면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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