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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처음 뵌 것은 1967년 서울 수유리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였다.

돌아가신 강원룡 목사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후에 독일 대통령이 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박사를 초대해 당시 소장 국회의원으로 정계의 주목을 받고 있던 김대중 의원과의 만남주선한 것이다. 이보다 3년 전인 1964년, 김대중 의원은 김준연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 상정을 지연시키기 위해 무려 5시간 19분 동안이나 의사진행발언을 해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당시 아카데미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바이츠제커 박사를 안내하면서, 젊은 나이에 이 거물들의 역사적인 회동에 배석할 수 있었다.

많은 대화 내용 중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은, 북한의 도발에 서울 시민이 한강을 건너지 못해 갖은 고생을 했던 1950년 한국전쟁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한강에 다리를 더 많이 건설해야 한다는 김대중 의원의 말씀이었다. 상당한 신사 국회의원이었던 그가 당시에는 보기 드문 파란색의 미제 승용차를 타고 아카데미 하우스에 매끄럽게 도착하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 1964년 김준연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 상정 지연을 위해 5시간 19분 동안 의사진행 발언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도서관

이 날의 만남이 1994년 가을 독일 본의 대통령 관저에서, 당시 야인이었던 김대중 선생과 독일 대통령이었던 바이츠제커 박사의 면담을 주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인연이 이어져 퇴임한 바이츠제커 박사는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에 나와 함께 참석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와의 인연은 내가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 국장으로 일하던 1983년 미국에서 다시 이어졌다. 당시 그는 미국 워싱턴 D.C에 망명 중이었고, 내가 미국에 출장을 갈 때면 그가 머물고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의 최근 저서인 <WCC 창으로 본 70년대 한국 민주화 인식>에도 편지 사본이 공개되었듯이, WCC의 인권 자금이 당시 곤궁했던 김대중, 문익환, 문동환, 이문영, 이우정 선생 등의 생계에 보탬이 되면서 WCC와 김대중 대통령은 더욱 긴밀한 협력을 하게 되었다.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지면 관계로 몇 가지만 추려서 기술하겠다.

첫째, 노벨 평화상 수상에 관한 사실이다. 내가 스위스 제네바의 WCC에 근무를 시작한 게 1982년 2월부터이다. 나는 그때부터 김대중은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 후보 자격이 충분하며, 잘하면 수상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1985년 그가 귀국하고 나서, 내가 동북아 지역에 출장을 올 때면 서울의 동교동 자택을 늘 찾아갔다. 많은 경우 가택 연금의 시기로 기억된다. 그 때, 그의 저서 중 하나인 <김대중 옥중 서신> 등을 읽게 되고 몇몇의 번역본은 제네바로 갖고 갔으며 그곳의 동료들에게 일독을 권하기도 하였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스위스 제네바의 에큐메니컬 센터에는 루터교 세계연합체 사무총장이었던 노르웨이 출신 주교 구나 스탈셋 목사가 나와 함께 근무하면서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1983년 이미 노벨평화상 최종 심사위원회의 5명 중 한사람이었고 심사위원회 부의장으로 수고하고 있어서 그 책들은 자연히 그에게 전달되었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이 일을 추진하게 되었다. 나는 작년 오슬로의 그의 자택에 초대받아 오랜 시간 당시를 회상하였다. 스탈셋 목사는 오슬로의 대주교를 마지막으로 은퇴해 지금은 동티모르의 민주화 정착에 기여하고 있다. 나 이외에도 많은 국내외 인사들도 김 대통령을 추천했음을 여기서 밝혀둔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의 결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8월 최종 3인의 후보자 중 한 명으로 올라 수상자가 될 가능성 매우 커졌다. 그런데 노벨 평화상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이에 따라 노벨상 심사위원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는 설이 있는데 그렇다면 수상자로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그를 수상 후보(short list) 3인에 넣었고 나는 이 문제를 밝혀야 했었다.

한국에 출장을 왔다. 동교동 조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에게 오랜 숙고 끝에 대통령에 더 뜻이 있어서 평화상은 뒤로 미룬다는 당신의 뜻을 전했고 나는 이를 서울에서 스탈셋 목사를 통해 최종 심사위원회에 통보하였다. 이날이 1987년 8월 14일이었다. 그래서 198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남미 코스타리카의 정치가 아리아스 산체스가 수상하였다. 산체스는 2006년 대통령이 됐으며 오스카르 플랜을 제창하여 남미의 평화 민주주의에 공헌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리는 이유는 아직도 '김대중은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 김정일을 만났으며, 금전이 영향을 주었다'는 억측이 남아 있어서다. 노벨상은 로비를 할수록 수상이 멀어지며 금전의 개입은 어불성설로 이러한 근거 없는 억측들은 우리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꼴이다. 다시 말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1987년에 강력한 노벨 평화상 후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꿈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는 그 후 2000년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2000년 12월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상 연설을 하고 있다. ⓒ김대중도서관

두 번째 얘기는 체코슬로바키아 하벨 대통령과의 관계이다. 내가 이끌고 있는 WCC 아시아국은 대통령 선거에 낙선하고 영국캠브리지에 와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일행을 스위스 제네바의 WCC 본부에 3박4일 일정으로 초청하였다. 그때가 1993년 6월로 기억된다. 많은 얘기가 오갔는데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과의 만남을 원하셨다. 그래서 나는 WCC 유럽국의 마이라 부라이스 국장을 통해서 하벨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두 분은 그 후 의기가 잘 투합이 되어 민주주의, 평화, 인권 등의 세계적인 프로그램에서 많은 협력을 했다. 특히 두 분이 각각 체코와 한국이라는 무대에서 겪은 고초들이 너무나 비슷하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의 세계적인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당시 나는 영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모시고 있던 박금옥 총무 비서관(현재 우석대학교 초빙교수)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사흘간의 제네바 방문 계획을 짰다. 당연히 알프스 몽블랑 산을 가보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착 후 다음날 프로그램을 말씀드렸더니 "박 박사는 내가 고소 공포증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십니까? 나는 비행기는 타지만 산은 오르지 못합니다" 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몽블랑 대신 제네바의 레만 호수 150㎞를 돌아보면서 스위스와 프랑스의 전원 도시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대치했던 기억이 난다.

유럽 현대사를 전공한 내 아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여사를 모신 차에 동승했었다. 김 전 대통령에게는 구경이 아니라 공부 시간이었다고 내 아내는 지금도 얘기한다. 스위스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물어보시면서 하나하나를 당신의 수첩에 기록, 본인이 소화하신 일 등은 지금도 즐거운 회상으로 우리 부부에게 남아있다.

또 한 가지가 있다. 둘째 날엔 WCC의 사무총장 이하 간부들과 2시간 동안 간담회를 가졌다. 사무총장 초청 오찬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왼쪽에 당시 보좌관으로 수행한 김상우 박사를 앉게 하고 오른쪽에는 나더러 앉아 혹 당신이 귀가 약하셔서 잘못 알아들으면 도와달라고 하셨고 나에게 통역을 부탁 하셨다. 그런데 처음 서두를 영어로 시작하더니 이후 1시간 동안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영어로 강연하시는 게 아닌가! 모든 간부들이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모임이 끝나고 '선생님은 어디에서 영어를 배우셨습니까?' 하는 나의 물음에 긴 감옥살이 하시면서 영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대답에 나는 놀랬다. 많은 곳에서 인동초(忍冬草)를 좋아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노력하는 분, 늘 공부하시는 분, 그리고 한 순간도 헛되게 주어진 시간들을 허비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세 번째 얘기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투철한 신념이다. 나아가 참된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는 신념이다. 이러한 신념과 행동은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발전이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몇몇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정면 승부를 마다하지 않은, 참으로 값지고 위대한 도전이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 1994년 3-4월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109~126쪽) 당시 싱가포르 수상이었던 리콴유 박사는 '서구에 뿌리를 둔 인권을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려 들지 말라. 왜냐하면 유교의 전통을 가진 아시아의 가치는 서구식 인권 민주주의를 적용할 수 없으며 그보다 더 뜻이 깊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 이전에도 국제 사회에서는 늘 있어왔던 주장이었다. 특히 1993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주최한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 인권 특별 총회에서 당시 말레이시아 수상이었던 마하티르 박사가 리콴유 박사와 비슷한 연설을 하여 후진국과 권위주의 지도자들의 박수를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포린어페어스> 1994년 11-12월호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선생은 리콴유 박사 등이 유교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했음을 지적하면서 유교의 가르침을 오용하여 인권의 위대한 가치를 경제 발전과 대치시킬 수 있다는 착각을 교정하였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고 자유와 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입각한 경제 발전이 정답임을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이는 한국의 경제 발전이 웅변으로 말하고 있지 않는가! 김 전 대통령의 이런 주장으로 전 세계 민주 활동가와 인권운동가들의 찬사를 받게 되었고 그를 세계적인 지도자로 재도약 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네 번째 얘기는 버마와의 인연이다. 선생은 버마 아웅산 수지 여사의 민주주의를 위한 비폭력 평화운동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아주 중요한 우선순위로 실천했다. 잘 알려진 대로 수지 여사는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다. 1988년 가족을 영국의 옥스퍼드에 두고 단신 귀국하여 22년을 비폭력 평화 민주주의 운동을 이끌어 오면서 4000만 버마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그는 작년 11월 18년간의 긴 가택 연금에서 풀려나 제한적 민주주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확신과 실천을 수지 여사의 고난에 접합시켰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돌아가시기 1년여 전인 2008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남북 6·15 합의문 기념행사를 열면서 한국에 와서 이주 노동자로 일하며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수지 여사의 동지들을 전원 초청했다. 이날 밤 그는 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수지 여사 그리고 그녀의 동지들을 격려 하시면서 그날 밤의 모금액 전부를 전달했다.

대통령 재직 중에는 전 세계 지도자가 참가하는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 국제 회의를 개최하면서. 개회 벽두에 수지 여사의 화상 메시지를 보여줘 참석자 전원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오늘까지 한국 정부는 근 10년 이상 유엔 인권이사회의 '버마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한 결의안'에 공동 제안국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이는 4000만 버마인들의 민주화 염원에 우리 모두가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선포한 것이다. 중국, 일본, 그리고 아시아 그 어느 나라도 못하는 일이다.

나 역시 인권대사 재직 중 수지 여사의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 연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당원들이면서 당시에는 학생 신분으로 1988~1989년의 버마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군부의 검거를 피해 지금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버마인 중 열한 사람을 우선 유엔이 인정하는 정치적 난민 지위를 획득하도록 도와주었던 적이 있다. 그 경험을 지금도 난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제네바에서 근무하던 1995년과 1996년 가택 연금 중이던 수지 여사를 두 번이나 만난 사실을 나는 지금도 귀하게 간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직간접으로 그들의 민주화 운동을 돕고 있다. 1970~80년대에 지금의 버마인들처럼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는 버마의 민주화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고 그들을 우리는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한국은 국가 과제로 한반도의 평화 정착, 그리고 한걸음 나아가 평화 통일, 동북아시아 평화 공동체 탄생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경제 성장 하나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한다. 돈 이외에 자유 평화 인권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대내외에 실천함으로써 선진화는 가능해질 것이다.

국내의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은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훨씬 높이 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아프리카에는 만델라가 있고, 버마에는 앞서 언급한 수지가 있으며, 스위스에는 앙리 뒤낭, 미국에는 링컨이 세계인의 인구에 회자되듯이 한국에는 김대중이 외국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음은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그가 남긴 업적을 앞서 말한 선진국 도약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일본도 중국도 이루지 못한 우리가 만들어 낸 민주주의가 하루하루 뿌리를 내리는 데에 그는 분명 커다란 족적을 남긴 분이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가셨지만 그가 평소에 꿈꾸었던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 평화 통일, 자유, 인권의 발전을 위해 지구상에서 아직도 고생하고 애쓰고 있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고뇌에 동참하고 그들을 도와주고 우리의 성공 스토리를 전파하면서 지도급 개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중요하듯이 국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 필자 박경서는 1939년 전남 순천 출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크리스찬 아카데미 부원장을 거쳐 1982년 2월부터 1999년 12월말까지 18년간 스위스 제네바 소재 세계교회헙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아시아 국장과 아시아 정책위 의장으로 일했으며 초대 대한민국인권대사(2001-2007년)와 국가 인권위원회 상임위원(2001-2004),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2005-2008년), 진실과 화해위원회 자문위원(2007-2010) 등을 역임했다.

* <프레시안>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독자 여러분의 글을 널리 구합니다. 김대중의 정치적 유산 중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 극복해야 할 과제 등에 관한 진솔한 생각을 담아 webmaster@pressian.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박경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전 인권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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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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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한민국에는 10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현 이명박 대통령. 이 가운데 현직인 이 대통령을 제외한 9명의 전 대통령 중 재임 중은 물론이고 퇴임 후까지 가장 성공적이었던 대통령을 꼽는다면 김대중이 아닐까 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학생들의 유혈 시위 끝에 외국으로 망명해 쓸쓸한 최후를 맞았고, 박정희는 18년 장기 독재 끝에 부하에게 사살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며, 군부 출신의 전두환ㆍ노태우는 퇴임 후 재판에서 쿠데타 주범으로 처벌받는
수모를 겪었다. 또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년 찾아온 IMF 외환위기로 불명예 퇴임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불과 1년여만에 자신에 대한 부패수사와 관련,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반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3번의 낙선과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숱한 고난과 곤경을 겪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한국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게다가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재창출하는 등 성공적인 정치행로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김대중의 정치적 유산에 대한 국내의 평가는 그리 후한 것 같지 않다. 대체로 해외에 비해 국내의 평가가 크게 인색한 데다가, 그에 대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평가도 크게 엇갈린다. 그의 집권을 시작으로 우리는 한국 최초의 진보개혁정권시대 10년을 맛보았지만 이명박정권이 들어서면서 지난 진보개혁정권에서 이루어놓았던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의 발전이 후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관계가 역행하며 민중의 삶이 피폐해지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정권교체가 급선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더 우선적인 과제는 한국 최초의 진보개혁정부였던 김대중정부의 공과 과, 성과와 한계에서 대해 이제 한번쯤 찬찬히 되짚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프레시안>은 이런 의미에서 김대중정부로부터 계승할 것은 무엇이고 극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점검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정치인, 시민운동가, 학자,
문화예술인 등 각계 인사들이 김대중 대통령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들을 연재하는 것이다. 우선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기념도서관인 김대중도서관의 김성재 관장과의 인터뷰로 이 연재를 시작한다. 이 인터뷰는 지난 2월 21일 오후 김대중도서관에서 있었다. 인터뷰 진행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았다.

앞으로 매주 화, 금요일에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회고와 평가의 글을 차례로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


김대중 도서관의 내력, 그리고 '나와 김대중'

프레시안 : 올 8월이면 김대중 대통령 서거 2주년이 된다. 서거 1주년인 지난해 8월 <김대중 자서전>이 발간되면서 그의 일생이 공식적으로 정리됐지만, 아직 김대중에 대한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그의 집권에서 시작된 진보개혁정권 10년 동안(1998-2008년) 진전됐던 민주주의와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 이후 크게 후퇴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김대중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그의 성취는 무엇이며 한계는 무엇이었는가, 다시 말해 계승과 극복의 과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김대중도서관의 김성재 관장 인터뷰를 시작으로 각계 인사들은 김대중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우선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퇴임하면 재임시절 그의 통치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한데 모아 후세의 학자들이 그의 통치시기를 연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김대중 도서관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김대중 도서관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김성재 김대중도서관장, 전 문화부장관 ⓒ프레시안(손문상)

김성재 :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1994년 설립한 '아태평화재단'(Asia-Pacific Peace Foundation)이 그 모체다. 대통령은 대통령재임시인 2002년 말,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본래의 정신에서 이 재단을 연세대학교에 기증했는데, 연세대학교가 이 건물리모델링해서 퇴임 직후인 2003년에 대통령기념도서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정계은퇴 선언을 하고, 살고 있는 동교동 집 외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고 했다. 그 재산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내게 일임했다. 그리고 김대중대통령께서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가서 EU 공동체와 평화에 대한 연구를 했다. 이것은 그분이 평생 가지고 있던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및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평화적으로 실현할 방안을 모색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영국에서 귀국하신 후 94년 아태평화재단을 만드신 것도 이런 목적 때문이었다. 아태평화재단을 만든 재원은 대통령께서 내게 맡긴 그 재산으로 했다. 나는 그 당시 영국에서 안식년으로 연구하던 중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프리오'(PRIO, Peace Research Institute Oslo, 오슬로국제평화연구소)에 초청이 돼 1주일간 방문했는데 큰 감동을 받았다. 프리오는 세계적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이 세운 연구소로 평화문제에 관해서는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께 프리오에 대한 소개와 함께 프리오 같은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의 긴 편지를 썼다. 대통령은 이 편지에 대해 아주 흡족해 했다. 대통령께서 구상한 것에 내가 조금 도움을 드린 것이다. 아태평화재단은 처음에 동교동의 한 빌딩에 임대해서 있다가 김대중대통령 사저 바로 옆에 건축되었는데, 이 자리는 중앙정보부가 김대중대통령을 비밀리에 감시하던 안가였다.

김대중대통령은 연세대학교가 기증받은 건물을 김대중도서관으로 개관하자 매우 기뻐했고, 당신이 애장했던 1만 3000여 권의 도서와 일생동안의 정치활동, 대통령재임시 통치 메모, 국내외에서 활동했던 민주화와 평화통일 관련자료 10만 여점과 노벨평화상 상금 중 3억 원도 기부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최초로 대통령 기념도서관 겸 박물관이 탄생한 것이다.

프레시안 : 김대중 도서관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는가?

김성재 : 김대중도서관은 민주주의, 평화, 빈곤퇴치의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김대중대통령이 퇴임 후 계속 활동한 일들이기도 하다. 김대중도서관은 이 목적을 가지고 크게 다섯 가지 사업을 한다. 첫 번째는 미국의 전직대통령들 기념도서관처럼 전시관을 만들어 김대중대통령의 일생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다. 출생에서 서거까지 모든 사적 자료와 문서, 사진, 영상 자료들 그리고 우리나라 민주화, 평화통일 관련 사료들이 전시돼 있다. 두 번째는 국내외에서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 관련 사료를 발굴, 수집하고, 해제, 연구하며, 중요한 인사들의 구술사 프로젝트수행한다. 세 번째는 도서관 목적에 따른 주제별 연구를 국내외 학자들과 함께 한다. 그리고 국제교류와 학술 심포지엄 및 세미나도 한다. 네 번째는 교육 과정인데, 미국의 케네디 스쿨과 같은 학술연구 및 교육과정으로 김대중평화아카데미 과정 등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고, 연세대 통일연구소와 협력하여 평화통일 관련 석박사 과정도 하고 있다. 다섯 번째는 지속적으로 디지털 아카이브구축하여 정보를 제공하고 도서 및 자료를 출판하는 사업을 한다.

프레시안 : 김성재 관장과 김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은?

▲ 김대중 정부는 정부수립 후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했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가다운 정상적인 국가가 된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김성재 :
김대중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69년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한국신학대학의 명예학장인 장공 김재준목사님이 위원장이었고 김대중의원이 신민당 대표로 참석을 했다. 나는 학생회 대표였지만 이 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고 김재준목사님을 도우면서 김대중의원을 알게 됐는데 개별적인 만남은 없었다. 김재준목사님은 당시 김대중의원을 높이 평가하면서 '김대중선생은 훌륭한 정치인이니 자네들이 민주화운동을 할 때 김대중선생을 도우라'고 했다.

이후 나는 1971년 대선 때 김대중후보를 위해 부정선거를 막는 표지키기 참관인 운동을 주도했다. 1976년 명동성당에서 신구교 합동으로 드린 3.1절미사에서 발표한 '3.1민주구국선언'을
준비할 때, 나는 문익환목사님 등 재야인사와 김대중대통령간의 연락책임을 맡았다. 당시 김대중대통령은 연금 상태였고, 또한 이 일은 비밀리에 성사시켜야 했기 때문에 '한복'이라는 암호를 가지고 연락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의 성명서 초안이 완성되면 '한복이 다됐다'고 연락하는 식이었다. 80년 '서울의 봄' 때는 내가 교수로 있던 한신대에 김대중대통령을 초청해 강연회를 개최했었다. 1987년 김대중대통령께서 평민당을 만들 때는 나에게 정계에 입문하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이후에도 두 번 전국구 의원을 하라고 기회를 주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러나 87년부터 사회복지와 교육 분야 등의 사회정책 자문역할은 계속했다.

프레시안 :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문화부장관도 했는데.

김성재 :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후 대통령자문새교육공동체위원회 상임위원과 일본 대중문화개방 등의 문화정책 자문을 위해 문화관광부자문위원장을 했다. 99년에 국민여론 수렴과 개혁 그리고 공직기장을 위해 신설된 민정수석을 했고, 2000년에는 정책기획수석을 했다. 정책기획수석은 인사, 예산, 정책을 총괄하는 직책이었는데, 대통령께서 개혁적인 국정수행을 위해 같이 일하자고 했다. 이 때 대통령의 뜻을 따라 정보화 정책을 적극 추진했고, 국민기초생활보장 등 인권에 의한 국가복지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후 한국학술진흥재단이사장을 하다가 문화관광부장관을 했다. 김대중대통령 재임 5년 동안 함께 일했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평가에 관하여

프레시안 : 김 관장은 40년 이상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아 왔고,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내각에도 있었으므로, 그를 매우 잘 아는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하겠다. 김대중은 해방 이후 최초의 수평적 권력 교체를 이뤘고,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했으며, 또 최초로 정권을 재창출한 대통령이다. 이 정도면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나?

김성재 : 정말 성공한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과 함께 성공했고, 대한민국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켰다. 김대중 정부는 정부수립 후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했다. 이것을 나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가다운 정상적인 국가가 된 것'이라고 표현한다. 국가부도사태의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국가, 세계 최선두 정보화와 세계10위권 경제발전, 복지국가와 문화국가, 6.15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남북화해협력과 자주적 국제외교, 노벨평화상 수상 등 탁월한 업적을 이루었다. 전세계가 감탄했다. 국민들도 역시 준비된 대통령이었다고 박수를 보냈다. 지금 이명박정부가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역주행시키고 있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결국 다시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맛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재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바람을 보라. 역사는 결코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민주주의와 인권을 누리고, 경제가 발전하고, 인권으로 복지를 보장받고, 남북의 갈등이 고조되어도 평화롭게 살고, 국제사회 주변국에서 중심국으로 위상을 높이고, 우리 국민들이 세계에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외치면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이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국민들이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프레시안 : 오랫동안 김 전 대통령을 봐 왔는데, 김대중 리더십,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나?

▲ 5번의 죽을 고비와 20여 년 간의 투옥, 망명, 연금의 탄압을 당하면서도 한 번도 타협하거나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지도자였다. ⓒ프레시안(손문상)
김성재 : 김대중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분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그분의 투철한 신념과 의지를 말하고 싶다. 본래 김대중대통령은 본인도 그렇게 말했지만,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5번의 죽을 고비와 20여 년 간의 투옥, 망명, 연금의 탄압을 당하면서도 한 번도 타협하거나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또한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지도자였다. 자신을 죽이려했던 박정희,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을 용서하고 화해했다. 자신을 배신하고, 음해한 모든 사람들도 용서했다. 햇볕정책도 이런 화해정신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김대중대통령 장례식 때 장남 김홍일의원이 고문 후유증으로 말도 제대로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박해는 용서할 수 있다고 해도 사랑하는 아들에게 한 행위를 용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너무도 위대하다'고 추모했다. 김대중대통령은 19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난 직후 아들에게 '우리가 용서하고 사랑으로 승리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김대중대통령이 옥중에서 쓴 메모가 있는데, 내용이 이렇다. '용서 없이는 우리 사회, 국가가 발전할 수 없다. 우리는 오랜 당쟁과, 식민지를 거치면서 원한이 너무 많다. 이것은 용서로 풀 수밖에 없다. 우리 민족은 똑똑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이루고 경제발전을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것은 우리 사회에 용서와 화해가 없으면 우리 국민과 국가가 발전할 수 없다' 대통령께서 서거 한 후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하는데, 그 사람들 중에 '나는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판했고, 나쁜 사람으로 알았다. 그런데 돌아가신 후에 진면목을 알게 되고, 또 여기 와서 보니 내가 (그동안) 잘못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더욱 존경을 표하고, 후원에 참여하는 분들도 꽤 많다.

김대중, 그리고 김대중정부에 제기됐던 비판적 지적들

프레시안 : DJ의 재임 5년간 성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관계 등을 그의 업적으로 꼽고 있다. 반면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비판이 경제 분야에서 신자유주의를 적극 받아들여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부분이다. 물론 현재 상황에 대해 김 전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기는 좀 그렇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3년을 지내왔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이같은 평가에 대해 어떻게 보나?

김성재 : 우리사회 양극화 문제를 잘 못 인식하는 것 같다. 우리사회를 양극화 체제로 만들고 항존하는 빈민계급을 탄생시킨 것은 박정희군사정권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제발전은 박정희 대통령, 민주화는 김대중 대통령, 이렇게 얘기하는데, 절반만 맞는 잘못된 인식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물론 경제개발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국가 정책으로 빈민을 의도적으로 양산한 불의한 독재개발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박정희군사정권은 산업기술 집약이 아니라 단순노동집약 정책으로 수출주도형의 경제개발을 하면서 저임금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명분으로 저곡가정책을 했다. 저곡가정책은 농민을 빈민으로 만들었다. 빈민이 된 농민은 농토를 버리고 서울과 공업단지가 있는 도시로 이농해서 저임금노동자와 도시빈민이 되었다. 이미 저임금 노동인데도, 빈민농민이 대거 몰려들자 노동자 공급과잉으로 저임금이 정당화되고 더 낮아졌다. 당시 노동자 임금으로는 살 수가 없어 잔업을 포함해서 16시간씩 코피 쏟으며 화장실도 못가고 일해야 겨우 연명할 수 있었다. 군사정권은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이런 비참한 살인적인 노동현실을 국민들이 알지 못하게 했다. 전태일 열사는 이런 극한에 처한 노동자의 비인간적인 현실을 알리려고 '우리는 인간이지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것이다.

박정희군사정권은 경제성장을 빌미로 노동자, 농민, 빈민들을 희생시켰다. 당시
노조결성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민중들의 정당한 권리와 분배요구는 무자비하게 탄압되었다. 심지어 빨갱이들의 짓이라고 반공법으로 처벌했다. 반면에 도리어 산업기술과 경제가 일본에 절대적으로 예속당하는 산업 체제를 만들어 일본 경제를 살찌웠다. 이 결과 지금까지도 IT 분야외의 기술은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본에 더 많은 로열티를 주어야 한다. 현재도 1년에 수백억 달러의 로열티를 일본에 주고 있다.

또한 군사정권은 권력유지와 부정한 특혜로 재벌과
대기업들을 갑자기 만들어 내었다. 현재 재벌들과 대기업 상당수는 이렇게 군사정권과 유착한 특혜로 된 것이지 정당하게 땀 흘리고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치 자기들이 노력해서 된 것처럼 거짓 성공신화를 만들어 국민을 속이고, 지금까지도 특혜, 탈법, 착취의 불의한 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박정희군사정권 때의 경제성장은 결코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때 우리나라 경제기반을 만들고, 성장시켰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것이 우리사회가 빈부로 양극화 된 근본 원인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김영삼정부가 도입했다. 김영삼정부의 최대 슬로건이 '세계화'였다. 1990년을 전후해서 구소련이 해체되고 동구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세계는 국경 없는 단일 자본주의 시장체제가 되었다. 이에 따른 새로운 세계시장 질서를 만든 것이 세계무역기구(WTO)였다. 미국은 이 WTO를 통한 신자유주의로 세계경제를 지배했다. 이렇게 변화된 세계경제 상황에서 김영삼정부는 OECD에 가입하고 외화자유 정책을 폈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대책도 없이 정치적 과시용으로 성급하게 경제 개방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세계 자본주의시장에 무작정
편입이 돼 버린 것이다. 결국 외환위기가 초래됐고, 국가 부도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이 때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프레시안 : 양극화 등 현재 드러나고 있는 여러 경제적 문제가 DJ의 잘못이기보다는 YS의 성급한 개방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김성재 : 그렇다. 김영삼정부가 어설픈 세계화를 통해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경제를 파탄 낸 것을 김대중대통령이 조기에 극복하고 우리나라 경제를 세게 10위권으로 발전시킨 것은 국민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이런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신자유주의 병폐를 막으려했다. 이미 세계화된 시장경제체제에서, 특히 우리나라 경제가 80% 이상 해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지만 신자유주의 폐해를 막기 위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추진했다. 민주적 시장경제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그리고 무너진 국가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공공, 기업, 금융, 노사 등 4대 개혁을 했다. 당시 이런 개혁적 구조조정을 서서히 단계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개발 이후 30 여 년간 쌓여진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과 준비없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김영삼정부의 실패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김대중대통령은 신자유주의 병폐를 예방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실업문제들을 해결하고, 국민의 존엄한 생존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생산적복지 정책을 함께 추진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중3무상의무교육 완성, 의료, 연금, 고용, 실업 등 4대 사회보험을 실현했다.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이 의료사회보험을 도입하려고 할 때, 이것은 미국 헌법정신, 곧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반대한 것을 생각해 보면, 김대중대통령은 결코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김대중대통령은 민노총과 전교조를 합법화시켰다. 신자유주의라면 김영삼정부에서도 불법이었던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특히 신자유주의는 정부가 시장개입을 못하게 하는데, 김대중대통령은 대통령직속으로 중소기업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직접 중소기업을 챙겼다. 재벌과 대기업문어발식 경영 체제를 개혁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영역에는 진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진입 규제를 노무현정부 때 풀었고, 현 정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벌과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판국이 되었다. 또한 김대중대통령은 하청도, 납품도 다단계나 불공정하게 하지 않도록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엄격히 감시하고 수시로 보고 받았다. 그런데 현 이명박정부에서는 재벌들과 대기업들이 권력의 비호와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중소기업으로부터 하청과 납품과정에서 몇 배 이상의 이윤을 챙기고 있다. 이것은 결코 자유민주주의도 시장 경쟁 논리도 아니다. 재벌과 대기업들의 막대한 이익실적은 정상적인 경영의 결과라기보다 상당액이 중소기업들의 희생을 통해 얻은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중소기업인들과 소상공인들마저 빈민으로 전락시키고, 파렴치하게도 저들이 망하는 것은 무능하고 게으름의 부도덕한 결과라고 말한다.

▲ "김영삼정부가 어설픈 세계화를 통해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경제를 파탄 낸 것을 김대중대통령이 조기에 극복하고 우리나라 경제를 세게 10위권으로 발전시킨 것은 국민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이런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신자유주의 병폐를 막으려했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현재의 경제적 곤경에 DJ의 잘못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김성재 : 현재 서민과 빈민들의 고통이 김대중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에 근거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이다. 보수정권과 보수세력도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데, 일부 진보진영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물론 김대중대통령이 모두 다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대통령의 정책은 분명히 옳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내외 상황에서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책임전가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사실 정부수립 50년만에 자민련과 연합해서 첫 정권교체를 한 상황, IMF외환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정책들도 많았다. 국민과 시민단체들은 강하게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실업을 발생시키는 구조조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개혁과 실업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라는 요구를 했는데, 이런 요구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개혁에 대해 보수기득권세력만 저항한 것이 아니다. 진보개혁세력들도 자신들의 기존 이익을 지키려고 했다. 그래서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노무현정부가 뒤를 이어 출범했을 때 미진했던 개혁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개혁은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나름대로의 정치적 입장에서 새판짜기를 하면서 김대중정부가 이룩해놓았던 근간을 흔들고 무너뜨렸다. 사실 노무현정부를 김대중정부보다 더 진보적이고 심지어 좌파라고 말하는데, 경제와 사회정책만이 아니라 남북관계나, 한미, 한중, 한일 관계를 보면 원칙 없이 상항에 따라 상당히 좌우로 왔다갔다 했다. 노무현정부가 생각은 진보적으로 했지만 정책 추진과정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혼선을 빚었던 측면이 많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김 관장이 보기에 김대중 리더십의 단점이나 아쉬운 점은 없나?

김성재 : 김대중대통령도 사람인데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일반적으로 김대중대통령께 너무 완벽한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 같다. 국가 정책은 어느 한 영역이 아니기에 국내외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다양한 국민적 요구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영역 또는 관점에서 보면 비판 할 것이 있다고 본다. 당시 개혁을 좀 더 시스템적으로 강하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개혁 논쟁에서 수술환자가 비유로 등장 했는데, '환자가 체력이 약하면 수술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체력을 기르면서 개혁해야 한다. 아니면 기업이 죽는다'는 논리로 개혁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 평가는 열려있다.

프레시안 : DJ에 대한 비판 중에 하나가 87년 대선 과정에서 YS와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것이다. 민주화가 됐음에도 정권을 군부세력에 내준 것은 물론이고 이후 민주화세력 자체를 분열시킴으로써 우리 정치에 두고두고 해악을 끼쳤다는 비판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김성재 : 김대중대통령은 후에 '그 때 내가 단일화를 양보했어야 했다'는 후회를 했다. 그러나 김대중대통령은 후보단일화 논의 과정에 2가지 불공정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당시 후보단일화를 위해 재야 모든 단체들은 고려대에서 두 후보를 초청해서 강연을 듣고 결정하기로 했다. 재야단체는 강연 후 거의 절대적으로 김대중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소수 김영삼후보 지지 재야단체의 반대 때문에 후보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김대중대통령은 후보단일화 과정을 공개경쟁으로 하기를 원했는데, 정치적으로 진행된 것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병에 걸려 후보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대통령병만으로 그 숱한 박해와 시련을 이기고 3전4기하며 대통령이 되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87년 후보단일화 실패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김대중대통령께서 대통령이 된 후에, 그리고 퇴임 후에도 결코 권력으로 사리사욕을 취하려 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우리가 87년 후보단일화 실패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과거의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에 이에 대한 평가는 공정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에게만 역사적 멍에를 씌우는 것은 불공평하다.

남북 관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비판들에 대해

▲ "물리적 흡수통일은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더 큰 민족의 비극을 가져 온다. 동서독의 예를 살펴보라."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김대중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 가치를 별로 높게 보는 것 같지 않다. 게다가 보수 일각에서는 로비를 통해 받은 상이라고 폄하하는 분위기도 있다. 실제 노벨상 수상을 위해 돈이나 뇌물을 건네는 불법적 로비를 했나.

김성재 : 전혀 사실이 아니다. 며칠 전에 노벨위원회 자문인 한영우 박사가 언론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는데, '당시 김한정 부속실장이 와서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 받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 사실이 있고, 서양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김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리기 위해 자료를 번역해서 설명을 하는 등의 활동은 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나 다 당연히 하는 것이고 로비가 아니다. 도리어 돈이나 뇌물을 건네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노벨위원회를 모독하는 것이고 이 노벨상 제도를 폄하하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비판도 정도와 품격이 있고, 금기가 있는데, 시장모리배 같은 사고로 계속 떠드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뿐 아니라 다른 숨겨진 불순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에서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대통령을 정말 존경하고 있다.

프레시안 : 또 6.15정상회담도 김정일에게 돈을 갖다 바치고 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있는데.

김성재 : 이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비아냥은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동서독의 관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독일이 통일된 것을 구서독의 흡수통일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구서독과의 협상으로 구소련의 군대가 구동독지역에서 철수하자 구동독에서 촛불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이 결과로 민주적인 선거가 실시되고 압승을 거둔 기독교민주당 의회가 구서독의 통일 절차에 따른 통합을 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구서독이 흡수한 것이 아니라 구동독주민들이 원해서 통일이 되었다. 구동독주민들이 구서독과 통일하도록 마음을 갖게 한 중요한 원인은 구서독정부의 동방정책 때문이었다. 구서독은 동방정책으로 매년 20억 달러씩 20여년간 구동독에 지원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소원인데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지 않고 어떻게 통일을 할 수 있나? 물리적 흡수통일은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더 큰 민족의 비극을 가져
온다. 따라서 남북화해와 협력을 주창한 김대중대통령이 1억 달러를 지원한 것은 동족에 대한 인도적 차원이었다. 당시 김대중대통령은 1억달러 보내는 것을 야당과 협의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참모들이 이것으로 논란을 하게 되면 정상회담도 불가능하게 되고,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해서 통치적 차원에서 결정했다.

프레시안 : 인도주의적 지원이라고 했는데, 정상회담 하기 직전에 5억 달러가 갔다는 것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대가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삼는다.

김성재 : 정상회담 전에 5억 달러 주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특검에서 문제된 것도 1억 달러였는데 5억 달러라고 하는 것은 현대아산의 남북 경제협력 사업까지 뭉뚱그려 하는 말로 정략적인 것이다. 이런 논리로 말하자면 김영삼정부 때에 북한에 지원한 돈은 이 보다도 훨씬 더 많다.

프레시안 : 이런 비판도 있다. DJ의 남북화해가 이른바 보수세력을 포함한 '전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루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마뜩찮게 생각했던 보수를 등에 업고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완전히 대북정책을 거꾸로 돌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데?

김성재 : 그런 주장이 아주 합리적이고 멋있는 것 같지만, 사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현재와 같은 갈등의 정치상황에서 어떻게 여야가 남북관계에서 컨센서스를 이룰 수 있나? 또 컨센서스 없는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남남 갈등이 더 불거졌다고 하는데, 그것은 책임 전가와 핑계일 뿐이다. 사실 김대중대통령은 정상회담 전에 야당대표와 대화하려고 했고, 정상회담하고 난 후에도 그 결과를 설명하려고 했지만 야당이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들은 항상 햇볕정책을 지지했다. 지금도 그렇다. 이것은 국민적 컨센서스가 분명히 있는 것 아닌가?

노무현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특검 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상호주의와 공개주의인데, 이것 때문에 남북관계가 더 발전하지 못했다. 후에 노무현정부도 상호주의와 공개주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했다. 또 '컨센서스'를 말하는 사람들이 독일의 예를 드는데, 독일의 경우 구서독 사회민주당 정부의 동방정책을 보수당인 기독교민주당이 보수당이지만 협력하고 자기들이 집권했을 때도 계속 추진한 것은 '하나의 독일' 정책을 국내 정치로 정략화하지 않는 정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은 동서독 간에 전쟁을 하지 않았고, 구서독의 사회민주주의 체제와 구동독의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우리처럼 극과 극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비판을 보수세력이 하면 모를까, 소위 진보적인 인사라는 사람들이 하는 것은 책임전가 또는 사이비 진보의 자위의식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프레시안 :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국내에서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의 평가가 뚜렷이 대비되는 한편, 국내의 평가에 비해 외국에서의 평가가 훨씬 우호적인 것인 것 같다. 왜 그럴까?

▲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애증과 오해가 많은 것은 무엇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정치적으로 그에게 덧씌운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호남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호남차별과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천형 같은 조작 선동은 정말 사악한 짓이다. 그런데 군사정권이 30년 동안 줄기차게 주입시키고, 이에 편승한 보수세력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면서 이것이 마치 사실처럼 되어버렸다." ⓒ프레시안(손문상)

김성재 :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애증과 오해가 많은 것은 무엇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정치적으로 그에게 덧씌운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호남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호남차별과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천형 같은 조작 선동은 정말 사악한 짓이다. 그런데 군사정권이 30년 동안 줄기차게 주입시키고, 이에 편승한 보수세력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면서 이것이 마치 사실처럼 되어버렸다. 이에 반해 국제사회는 김대중대통령에 대해 이해관계를 넘어 객관적 평가를 하지 때문에 세계적인 훌륭한 지도자로 존경한다. 내가 만난 일본과 중국지식인들은 김대중대통령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없는 자기들은 부끄럽고,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프레시안 : 요약하면, 한국 국민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그 이유는 김대중에 덧씌워진 군사독재시절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라는 말인가?

김성재 : 그렇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김대중대통령을 국내처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면 김대중대통령 생전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고, 미국, 중국, 영국,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세계주요 국가들의 유명한 대학들이 김대중대통령께 명예박사학위나 명예교수직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김대중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뉴스위크>는 세계와 사회를 변화시킨 11사람의 트랜스포머 중 한 사람으로, 인류에게 영원히 기억될 36명의 인사 중 한사람으로 추모했는데, 이것도 국내 부정적 평가 기준으로 보면 <뉴스위크>가 잘못된 정보로 선정하고 추모했거나 거짓된 보도를 한 것이 된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해외의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용서와 화해에 바탕을 둔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중동 문제 등 국제적 분쟁에 중요한 해결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높이 평가한다. 미국의 대북특사인 보즈워스도 북핵문제 해결은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 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보수는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진보는 컨센서스가 부족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박정희군사정권의 부정한 조작 이미지만이 아니라 김대중대통령에게 배 아픈 사람들이 만든 부정한 이미지도 있다고 본다. 상고 나온 주제에 잘난 척 한다고 배 아파하는 사람도 있다. 김대중대통령 재임 시에 한국의 빠른 발전 모습을 보고 전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인 제프리 존스가 '나는 한국이 두렵다'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이 이런 방향에서 이런 속도로 발전하면 30년내에 미국을 앞지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단한가지 조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병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너무도 뼈아픈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프레시안 : 지난 해 발간된 <김대중자서전>에 대해 일부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솔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하기보다는 너무 정당화만 해서 차라리 자서전을 안 쓰는 게 나았겠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는데.

김성재 : 김대중대통령께서 자서전을 준비하기 전에 저명인사 몇 분들이 김대중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 그 분에 대한 누명과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약 30여명 정도 글을 쓸 계획을 세우고 대통령께 의논한 적이 있다. 내가 간사 역할을 해서 김대중대통령께 이런 의견을 전했더니 대통령께서 '웃으며, 그런 것은 나 죽은 후에 해야지 내가 살아있을 때 하면 나를 의식해서 좋은 말만 할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이 계획은 추진되지 않았다. 또한 대통령께서는 자서전도 사후에 출판하도록 했다. 김대중대통령은 국민과 역사가 자신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해주기를 바랐다.

대통령께서 자서전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말했다. 첫째는 신념과 철학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솔직하고 정직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은 국민에게 솔직하게 자기 일생과 통치기록을 남기는 것이 의무라고 했다. 자서전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께서 자서전을 진솔하게 써서 매우 감동적이라고 했다. 김대중대통령은 본인이 서자라는 것도 밝혔다. 그러므로 이 자서전이 솔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와의 관계

프레시안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DJ가 권양숙 여사를 붙잡고 통곡한 장면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 또 노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방 후 우리 국민이 가진 두 분의 진보개혁 대통령 김대중과 노무현, 두 분은 어떤 관계였나?

김성재 :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김대중대통령은 참으로 좋아했다. 나에게 '이제 내가 마음 편히 청와대를 떠날 수 있게 됐다'고, 기쁜 마음으로 퇴임을 했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북송금 특검을 강행하자 크게 섭섭해 했다.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 헌신적으로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될 뿐 아니라, 보수세력에게 빌미를 주어 국가와 민족에게 초래될 불행을 염려했다.

프레시안 : 당시 반응을 들은 것을 말해줄 수 있나?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압박으로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노무현대통령은 아직 젊은데, 잘 이겨내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라도 검찰로부터 매일 모욕당하고 여론으로 압박당하는 처지에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했다." ⓒ프레시안(손문상)

김성재 : 직접적이라기보다, 포괄적으로 얘기하겠다. 대북 특검은 정치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DJ정부를 딛고 일어서야 된다는 정치적 생각이 있었다고 본다. 내부에서도 그런 논의가 있었다는 것도 들었다. 처음에는 (대북송금 특검을) 안 할 것이라고 했다. 국무위원도 다 반대했고, 주변 참모들도 다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특검 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김대중대통령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노대통령 최측근인 청와대 고위인사가 내게 특검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접 말했다. 그래서 내가 김대통령께 보고했다. 대통령께서 안심했는데, 뒤집어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을 분당 했을 때 김대통령께서 정말 분노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속으로 감추고 이렇게 말했다. '김장관, 어쩌면 노대통령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그렇게 분노를 했음에도 '김 장관 그러나 우리가 참읍시다.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이 큰 틀에서는 결국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갈 거요. 한나라당에서 대통령이 됐다면 돌이킬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을 거 아뇨. 그걸로 위안을 삼읍시다' 이것이 당시 대통령의 말씀이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자시절에 대통령께 찾아와서 대통령님의 정책을 계승할 것이라고 말했고, 대통령께서는 흡족해했다. 그러나 계승보다 판을 엎어 놓았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로 사분오열되고 분당으로 몰려가는 처지에 있었다. 그런데 대북특검을 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한나라당은 얼씨구나 하고 뭉쳐서 공격했고, 민주당과 개혁세력은 분열됐다. 결국 이것이 분당으로까지 치달렸고,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을 승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김대중대통령께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믿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할 것을 권유했고, 정상회담 후에는 관계가 좋아졌다. 특히 이명박정부가 민주주의, 남북관계, 민생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힘을 합쳐 이명박대통령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압박으로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노무현대통령은 아직 젊은데, 잘 이겨내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라도 검찰로부터 매일 모욕당하고 여론으로 압박당하는 처지에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사, 김대중대통령께서 얼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아꼈는가를 말하려고 한다. 내가 정책기획수석을 할 때 노무현 전 의원이 부산 총선에서 낙선한 후 나를 만나자고 했다. 나는 노무현 전 의원과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같이 한 친숙한 관계였다. 인사동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김수석 내가 대통령후보로 나가려고 하는데 나를 좀 도와주소'라고 했다. 나는 '좋은 생각 같은데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했더니, '대통령하려면 국정 수행경험이 필요해요' 했다. 이후 대통령께 노무현 당시 전 의원을 만난 보고를 했다. 대통령께서 '노무현 의원은 참으로 정의롭고 소신있는 유능한 정치인이요. 앞으로 기회를 봅시다'고 했다. 얼마 후에 노무현 전 의원은 해양수산부장관에 임명되었다.

▲ "김대중정부의 복지정책은, 복지를 인권에 의한 국민의 권리로 인식해서 시민권, 사회권으로서의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따라서 김대중정부에서 복지는 분야별 복지와 함께 통합적인 경제사회정책으로 추진되었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요즘 복지가 정치판의 최대 화두가 됐다. 대체로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의 시작은 김대중 정부부터라고 얘기 하는데,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을 확대 계승 했다고 보나?

김성재 : 솔직하게 말하면 노무현정부는 복지에 대한 철학이 부족했고, 따라서 김대중정부의 복지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어떤 의미인가?

김성재 : 김대중정부의 복지정책은, 복지를 인권에 의한 국민의 권리로 인식해서 시민권, 사회권으로서의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따라서 김대중정부에서 복지는 분야별 복지와 함께 통합적인 경제사회정책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노무현정부는 복지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복지를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로 생각하지 않고 지방정부로 이관했다. 국가의 책무를 방기했고 지역이 경제, 사회, 문화적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지방정부의 2/3정도가 한나라당 정부라는 것도 간과했다. 그리고 지방의 복지재벌, 토호세력들이 정치권과 결탁하고 정부 지원예산을 거의 독식하고 있다는 현실도 외면했다.

그리고 노무현정부가 복지예산을 많이 증액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복지예산 총액에 당시 건교부 서민
주택 예산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의 일반 예산에서의 복지예산은 줄었고, 기금 등의 특별예산으로 일부 보충됐다. 특별예산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기금 운용에 따라 언제든지 가변적이 된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할 때, 인권의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재정의 한계선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장애인 차별에 대한 시정 권리가 축소되어 이 법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계는 노무현정부를 비판하고, 이 법이 통과된 직후부터 개정운동을 시작했다. 보육도 시장에 맡겼고, 의료민영화도 추진하려고 했다. 그래서 시민, 복지단체와 장애인계로부터 노무현정부는 복지를 도리어 후퇴시켰다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편 재벌과 대기업중소기업소상공인 업종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를 풀었고, 한미 FTA도 강행하려 했다. 결국 안타깝게도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정부의 길을 닦아 준 셈이 되었다.

프레시안 : 김 관장은 DJ정부 시절 복지와 관련해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복지정책을 놓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까지 들어와서 갑론을박 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코멘트를 하신다면?

김성재 :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에 관심을 가진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발표된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정책은 안타깝게도 무늬만 복지이고, 속빈강정 같은 그야말로 포퓰리즘의 전형 같다. 진정성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과거와 달리 변화된 시대와 우리 현실에서 복지를 말하려면 인권에 의한 복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려는 공동체정신과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복지는 소득보장 한 분야만이 아니라 의료, 교육, 주거, 일자리 등 통합적인 사회정책으로써의 복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때문에 복지인식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 정책팀이 발표한 것을 보면, 재원문제는 둘째치고 여전히 과거적이다. 특히 생애주기별 복지라는 것은, 현재도 영유아복지와 노인복지가 서로 중요성과 재원 면에서 우선순위의 정치적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통합이 아니라 연령별, 세대별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으로 복지보다 반사회정책으로 귀결될 우려를 갖게 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 훌륭한 복지정책을 제시하면 좋겠다.

프레시안 : 김대중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시대를 산 정치인인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화시대에 정치를 시작했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통 사람들과의 교감 능력이 탁월했다. 게다가 자살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택하면서 일반인들의 정서 속에서 김대중보다는 노무현에 대한 감정이 울림이 훨씬 큰 것 같다. 어떻게 보나?

김성재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극적이고 비극적이어서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크다고 본다. 또한 소탈했던 인간미에 대한 향수가 있다. 탈권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의 역사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재단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고 연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대중 도서관과 상호 협동을 하나?

김성재 : 그렇다. 도서관에 자주 찾아오기도 한다. 여기서 정책 토론회도 한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을 처음 만들 때도 같이했다. 나는 노무현정부의 공과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하려고 했다. 잘 못한 것은 극복하고 잘 한 것은 더 발전시켜 가야 노무현대통령의 역사가 산다. 김대중대통령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찬양가도, 잘못된 비판도 삼가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김 관장과 인터뷰하면서 느낀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우리는 아직 김대중이라는 정치 지도자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가 될 것 같다. 아직도 박정희 시대라는 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일부 민주화 됐지만 박정희 시대를 완전히 극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김대중 도서관이 해야 할 역할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 계획은 어떤 것인가?

▲ 이야기 나누는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와 김성재 김대중도서관장 ⓒ프레시안(손문상)

김성재 : 사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대통령의 진면목을 잘 모르면서 겉으로, 정치적으로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김대중대통령의 책도 제대로 보지 않고, 심지어 자서전도 정부여당 사람들이 더 많이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김대중대통령 서거 이후 김대중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한 달 평균 1500명 정도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다. 방문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전시관을 둘러보고 김대중대통령을 다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역사가는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후 10년이 지나야 한다고 말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김대중대통령의 진가는 더욱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의 특별기획으로 올해 8월 김대중대통령 서거 2주기 때 학술 심포지엄과 '김대중연보'를 발간할 계획이다. 3년 동안 준비했는데, 항목으로는 약 2만 정도,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연보이다. 김대중대통령이 일생동안 만난 중요한 사람들의 이름이 거의 수록되어 있다. 이 연보를 보면 대통령께서 언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작년 말부터 준비를 했는데, 김대중전집을 5개년 계획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그동안 나왔던 전집과 30여권의 단행본 그리고 출판되지 않았던 국회발언록, 강연원고, 인터뷰 내용 등과 사진 자료들도 모두 포함시킬 계획이다. 또한 국내외적으로 교류 및 공동연구 제안도 상당수 있어 적극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다. 김대중도서관의 본래 목적사업인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빈곤퇴치를 위한 김대중평화아카데미 등의 제반 연구, 교육 사업들도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 사업을 하는데 국고 지원은 있나?

김성재 :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 매칭펀드 방식으로 일부 지원받고 있다. 김대중대통령께서 재임 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화해 차원에서 기념관 건립을 위해 200억을 지원했는데, 최근 다행하게 기념도서관이 건립되고 있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념관도 지어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 측도 기념관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 11월 2일 개관 7주년을 기념해서 전직대통령 기념관, 도서관의 역사적 필요성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많은 관심과 호응이 있었다. 전직 대통령기념관들이 건립되면 대통령 정치문화도 발전되고, 대통령을 하려는 사람들도 국민과 역사를 의식해서 더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도서관은 연세대 자율운영기관이기 때문에 대학본부에서 건물유지 및 관리비만 지원해주고 모든 프로그램과 사업은 후원금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돈이 없어서 할 일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을 제대로 하면 필요한 재원은 충당된다. 감사한 것은 자발적인 후원회원들이 약 1000명 있고, 직원들도 적은 인원수이지만 김대중대통령의 뜻을 이어서 펼쳐간다는 사명감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 관심을 가져준 프레시안에도 감사한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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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과학자 “운석에서 외계 생명체 발견” 충격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체는 언제, 어디서 왔을까. 또 지구 밖 우주에는 지구 생명체와는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미국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 생물학자가 우주 어딘가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운석에서 살아 있는 외계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현대 우주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두 가지 핵심질문에 해답이 될 수도 있기에, 이번 발표는 학계의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있다.

NASA의 마샬 우주비행센터의 연구원 리차드 B. 후버 박사는 “희귀 운석을 분석, 연구하다가 우주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외계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과학저널 ‘우주론’(Journal of Cosmology)에서 주장했다.

후버 박사는 남극대륙, 시베리아, 알레스카 등지를 다니며 약 10여 년 간 운석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 후버 박사는 이 저널에서 지구에 단 9개 밖에 없는 희귀운석인 Cl1 타나소질 구립운석을 조사하던 중 살아있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외계 박테리아’로 추정되는 문제의 생명체는 지구 박테리아인 티타노스필럼 벨로스(Titanospirillum velox)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구생명체의 필수요소인 질소가 부족하다는 점이 외계 박테리아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후버박사는 “이번 발견은 운석에서 생명체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처럼, 우주 곳곳에 있는 여러 행성에 생명체가 퍼져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인 셈”이라고 풀이했다. 주류 과학계는 38억 5000만년 전 지구에 떨어진 운석에서 부터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이른바 ‘운석 배종설’을 지지하고 있다.

한편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1996년에도 NASA 과학자들이 남극 대륙에 떨어진 운석을 분석해 화성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두고 과학적 논란이 10년 넘게 지속되는 중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지구외에 행성과 우주공간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어진 순간이군요.
그렇다면 이것은 그간 우리 지구를 배회한 우주선(UFO)들의 흔적은 외계인들의 방문이 있을 수도 있다는 확률을 높혀주는 사건이 되겠네요.

보다 높은 세상과 넓은 우주를 알아가는 지구인들의 노력이 언젠가 우리 지구인들을 구원하게 되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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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엄기영 영입…보수신문 "어처구니 없다"

누군가 ‘정치 블루칩’ 대접을 받을 때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느끼게 마련이다. 마음만 먹으면 정치권 새바람의 주인공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반기고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정치행보를 실행에 옮기면 당장 탄탄대로가 열릴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정치입문과 함께 혹독한 검증의 시기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좋은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진 보호막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내공’의 깊이에 따라 정치행보의 미래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엄기영 전 MBC사장이 2일 한나라당 강원도당에서 입당식과 함께 출마기자회견을 하고 4.27 강원도지사 보권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엄기영 전 MBC 사장도 그런 전철을 밟고 있다. 준비 과정은 화려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남겼던 ‘국민 앵커’ 엄기영. 그는 MBC 사장 시절에도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언론인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MBC 사장 교체 논란이 벌어졌을 때 누리꾼들의 ‘엄기영 지킴이’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2010년 2월 우여곡절 끝에 MBC를 떠났을 때 그는 민주당 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언론장악 논란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대중적인 이미지도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 블루칩’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강원도 7.28 재보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쪽과 스킨십을 확대하면서 의문을 낳았고, 조용히 강원도 춘천으로 주소를 옮기면서 다시 입방아에 올랐다.

그러더니 ‘파란 점퍼’를 입고 강원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간접적으로 알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3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 입당을 선언하면서, 그의 정치 노선과 색깔을 드러냈다.

아직도 ‘파란 점퍼 엄기영’의 모습을 어색하게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한나라당 강원도지사 후보 경쟁에 공식적으로 뛰어들었다. 한나라당 후보로서, 한나라당 승리를 위해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그의 삶이 언론인으로서는 화려했을지 모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이제 검증 무대에 서 있을 뿐이다. 문제는 도전의 대상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광역단체장(도지사 등)은 ‘정치력’이 검증된 이들이 도전하는 큰 무대이다.

엄기영 전 사장이 도전에 성공하려면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한나라당 후보군과의 경쟁에서 우선 승리해 공천을 얻어내야 하고 본선에서 야당 후보들과 경쟁해서 다시 승리해야 한다. 문제는 한나라당 승리방정식이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엄기영 전 사장이 강원도지사라는 꿈을 이뤄내려면 한나라당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희망이 있다. 그러나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영향력이 큰 보수 신문들의 반응이 썰렁하다는 점이 걸리는 대목이다.


 

   
중앙일보 3월 4일자 33면.
 

중앙일보 박승희 국제부문 차장의 3월 4일자 <엄기영의 염치>라는 칼럼과 조선일보 주용중 정당부문 팀장의 3월 3일자 <대통령이 재보선까지 공천하나>라는 칼럼은 엄기영 전 사장의 가시밭길 정치 행보를 암시하는 예고편이다.

박승희 차장과 주용중 팀장 모두 청와대와 국회 등 정치 메커니즘을 잘 아는 정치 전문 기자들이다. 엄기영 전 사장 입장에서 그들의 얘기는 경청할 대목이 있다. 특히 쓴소리라면 더욱 그렇다.

박승희 차장은 이날 칼럼에서 엄기영 전 사장의 한나라당 입당 과정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엄기영 전 사장은 왜 한나라당을 선택했는지, 한나라당이 아니면 안 되는지에 대한 뚜렷한 소신보다는 “강원도에는 한나라당이 절대 필요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박승희 차장은 “비겁하다. 그는 '내가 출마하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강원도민 핑계를 댔다. '원래 내가 있을 곳은 한나라당'이라고 하느니만 못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조선일보 주용중 팀장은 “대통령이 언제까지나 당을 원격조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청와대의 재보선 공천 개입에 대해 우려했다. 대통령 뜻대로 공천이 됐다고 해서 대통령 희망대로 재보선에 이길 수 있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만의 까칠한 시선일까. 동아일보는 이보다 앞서 ‘엄기영 공천 불가’를 밝혔다. 동아일보는 3월 2일자 사설에서 “한나라당으로선 강원도지사 자리를 되찾아 오는 것이 급하겠지만 엄 전 사장을 공천함으로써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차례로 사설과 칼럼으로 한나라당의 엄기영 전 사장 영입에 대해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강원도는 예전의 강원도가 아니다.

보수언론과 보수진영이 든든하게 지원을 해줘도 여당의 강원도지사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보수언론이 힘을 빼고 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엄기영 전 사장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다. 본선 경쟁력을 평가 받던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이계진 전 한나라당 의원은 모두 불출마로 정리됐다.

한나라당은 엄기영 전 사장으로 승부를 걸거나 인지도는 좀 떨어지지만 지역 기반이 있는 후보로 선수를 바꾸는 방법 밖에 없다. 강원도에서 절대강자로 인식되던 한나라당 처지가 참 딱하게 됐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이광재 바람’ 때문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던 한나라당은 강원도지사를 다시 내준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이다.

그러나 승리방정식을 기대하며 뽑아든 ‘엄기영 카드’가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수언론이 ‘참 염치없는 엄기영’이라고 지적하다 어느 순간 ‘참 훌륭한 엄기영’으로 급선회하기도 어렵다는 점도 고민의 지점이다. 중앙일보는 칼럼을 통해 엄기영 전 MBC 사장의 한나라당 강원도지사 후보 도전을 이렇게 평가했다.

“정치에 감동이 없고 염치가 없으면 추한 협잡과 술수만 남는다. 주연배우 엄기영이 등장한 한국정치의 단만극은 앵커 시절 그의 멘트처럼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다.”

 






"이광재, 엄기영 그 사람을 잘못 봤다"

양정철, 이 전 지사 발언 소개 …오락가락 정치 행보에 개탄



엄기영 전 MBC 사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해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하자 그를 지지했던 인사들 사이에서 그의 오락가락 행보에 처참함을 느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엄 전 사장이 MBC 사장으로 갈 때 많은 도움을 줬고, 지난해 지방선거 때 강원도지사 후보 출마권유까지 했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사람을 잘 못 봤다”고 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엄 전 사장은 2일 한나라당에 공식 입당하고 강원도지사 후보에 출마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연다. 엄 전 사장의 이런 행보에 일침을 놓은 것은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그는 이날 아침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엄기영씨에 대한 아주 불편한 진실들’이라는 글에서 엄 전 사장이 참여정부 말기 사장 선임권을 가진 한 MBC 인사에게 자신을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준다”고 안타까워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양 전 비서관은 유명 재야인사까지 그를 성원할 정도여서 그 말을 들은 MBC 인사도 그런 줄 알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특히 엄 전 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아주 친한 한 원로를 극진히 모셨고, 사장 선임을 앞두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면서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고 양 전 비서관은 전했다. 심지어는 방송가에 떠돌던 출처불명의 풍문까지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절박하게 매달렸다는 것이다.

“청와대 양정철 비서관이 저를 안 좋게 본다는데, 잘 말씀 좀 해주셔서 방어 좀 해주십시오.”

 
 


 

   
엄기영 전 MBC 사장. ⓒMBC노조
 

양 전 비서관은 이를 두고 “이는 엄 전 사장이 잘 모르고 한 얘기”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엄 전 사장을 돕기 위해 호의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양 전 비서관은 전했다. 엄 전 사장이 MBC 사장 시절 각종 탄압을 겪으며 힘겨워할 때 몇몇 인사들이 ‘굴욕을 당하지 말고 그만둔 뒤 출마하면 어떻겠느냐’며 도지사 출마와 심지어 이광재 의원 지역구에 나가보라는 권유도 했지만 엄 전 사장은 “정치에 뜻이 없다, 아내가 한사코 반대해서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이광재 의원이 엄 전 사장에게 강원도지사 출마를 간곡히 설득했지만 한사코 고사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일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 전 사장의 행보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지사직 박탈 가능성이 나오면서 한나라당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양 전 비서관은 “이광재 의원이 지역구 양보는 물론 자기 대신 강원도지사 출마 등을 권할 때 돌아보지도 않던 그가 이 지사의 법원 판결을 앞둔 시점부터 수상한 김이 피어올랐다”며 “뒤늦은 강원도 사랑,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파란색 점퍼를 입고 방송출연까지 하면서 그냥 강원도를 위해서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가 MBC 퇴사후 MBC 고문을 맡아 억대의 보수를 받은 것을 두고 양 전 비서관은 이를 두고 “자신을 처참하게 몰아낸 ‘MBC 김재철 사장체제’에서 고문에 위촉돼 고액연봉, 업무추진비, 운전기사, 고급승용차를 지원받으면서 정치행보를 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양 전 비서관은 “엄 전 사장이 MBC를 퇴사하면서 많은 동료 후배들에게 ‘MBC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한 대로 많은 이들이 MBC를 지키고자 열심히 노력했다”며 “그런 그는 자신을 부당하게 핍박한 정권, 자신의 후배들을 극한으로 내몬 정권, 자신의 친정을 유린하는 정권의 깃발을 들었다. 그 정권을 위한 지지의 한 표를 호소하러 나선다”고 개탄했다.
엄 전 사장이 강원도지사 후보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데 대해 이광재 전 지사는 스스로를 책망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양 전 비서관은 전했다.
“MBC사장 할 때부터 도와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사람을 잘못 본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
양 전 비서관은 엄 전 사장에 대해 “저는 지금 그가 차라리 극심한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인질이 범인에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을 겪고 있는 것이면 좋겠다”며 “그러면 연민이라도 느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그에게 가졌던 많은 기대 혹은 착시가 참으로 처참해지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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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물이 허위의 사실이라고 국가가 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선 있을 수 없다"

최우정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미네르바' 박대성(32)씨의 기소 근거가 됐던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로 인해 행정부와 학계 등에서는 '대체입법'과 '해당법률 삭제'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사실상의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권한을 제한하고 인터넷 사업자들의 자율규제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 앞으로 '쓰레기 시멘트' 게시물 삭제와 관련한 최병성 목사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운영법률' 위헌법률심판제청 등 사법부의 인터넷 규제 관련 결정이 추가적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에 따라 향후 인터넷 자율규제에 대한 논의는 사회 전반에 있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 방통심의위 '심의권한 축소' 공감대…자율규제 강조

헌재의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 위헌 결정과 관련,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와 한양대학교 법학연구소는 '인터넷 상의 허위정보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자율규제'라는 주제로 지난 17일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대체입법보다는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규제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인터넷 사업자 및 사용자의 자율적인 규제로 가는 것이 옳다는 데 공감대를 나타냈다.



최 교수는 이와 관련, "인터넷의 특성은 이용자가 동시에 글을 제공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댓글 등을 통해 반박할 수 있는 자율적 구조"라며 "이를 국가가 규제하는 것은 인터넷의 특성을 도외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는 현행 집권자가 통치 부담을 덜기 위해 통제를 하고 싶겠지만 인간의 자율성이 존재하고 또 성장하는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며 "자율규제가 국가의 다양성 보장 및 민주주의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또 방통심의위의 역할은 향후 광고 등에 국한해야 할 것이며 방송 프로그램 내용규제도 자율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통신과 관련한 심의를 국가가 직접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통신 관련 헌법 조항이 있는 것도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유향 문화방송통신팀장은 "미네르바의 글들을 봤을 때 학술지에 발표하지 않았을 뿐 논리적으로 전개된 것"이라며 "하물며 그런 설득력이 없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고 해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기본권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에 대한 특정한 자유 제한은 기본권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팀장은 또 "정치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 인터넷 자유는 그 근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사회정책적 요인으로는 북한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제한을 풀어야 한다"며 최근 방통심의위의 북한 사이트 접속 차단 방침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권창현 변호사는 "대체입법을 봤을 때 형사처벌은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굳이 정해야 한다면 국가 간 분쟁을 야기시키는 행위 등으로 특정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국가적인 허위사실이 있다면 정부가 규제하기보단 정부가 스스로 해명하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자율규제 핵심은 '최소한의 사회적 공감대'

하지만 자율규제의 경우에도 최소한의 원칙으로 대상을 구체화시키는 방향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자율규제로 가더라도 주요 인터넷 사업자들이 정부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인 담합으로 특정 게시물을 차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하나의 업체가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게시글을 차단하고 검열하는 것은 가능하고 이용자들은 다른 공간으로 가면 되지만 이미 시장에서 상당수 트래픽 점하고 있는 업체들이 공동으로 게시물에 대해 차단기준을 세워버리면 이용자들은 갈 곳이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일 그같은 경우가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될 수 있다면 업계의 연합이 아닌 각 개별 회사들 간의 윤리기준을 정해 이용자들에게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또 "연평도 위성사진 등의 사례를 봤을 때에도 인터넷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자정작용을 거쳐 허위여부가 밝혀진 바 있다"며 "자율규제 또한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황 교수는 "방통심의위의 심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단 개방성과 투명성, 독립성 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을 전제했다.

김유향 팀장도 "업계 뿐 아니라 민간단체와 정부까지도 공동으로 참여하는 자율기구를 구성한 프랑스와 영국의 사례가 인터넷자율정책기구의 좋은 모델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자율기구를 만들 경우 업체간에 희비 발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익단체로 전락할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나의 이익이 아니라 누구도 겸허히 수용할 수 있는 전제의 자율규제를 해야만 한다"고 제안했다.

인터넷기업협회 최성진 사무국장은 "기업들은 물론 돈을 열심히 벌려고 할 것이지만 헌법적 가치와 현행법률, 구성원들의 이익에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도 사업자들이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최 사무국장은 이어 사견임을 전제로 자율규제의 전제는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면서 "인터넷 기업들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위임을 지향하고 싶은데 그걸 특정 세력이 아닐 수 있도록 장치를 잘 마련해 그에 대한 재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자율기구 구성은 공신력 있는 외부 인사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위원장은 이와 관련, 기업과 민간단체, 학계, 정부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자율규제 기구 구성에 있어 정부의 참여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이밖에 학계에서는 자율규제가 이뤄지더라도 정부와 정치권 등에서 소송과 사업자 허가권, 세무조사 등을 통한 압박이 사업자들에게 가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대안 제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전기통신법 개정은 필요한가? 갑론을박

한편 법무부에서는 전기통신법 47조1항의 위헌 결정에 따른 대체입법을 추진 중이며, 국회에서도 한나라당 정옥임, 여상규, 임동규 의원 등이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법무부는 최근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파괴와 사회혼란을 유도 ▲공공복리의 현저한 저해를 일으키는 허위 통신을 한 자에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입법안을 준비 중이다.

의원 개정안도 제재 범위를 좀 더 구체화 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황용석 교수와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는 ▲전쟁,사변,교전상태이거나 내란,폭동,테러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적 차원의 비상사태가 발생한 상황에서 ▲ 피해 상황에 관해 객관적으로 명백한 허위정보가 유통되고 ▲대상 정보에 대한 문학적, 과학적 가치가 전혀 없고 ▲여론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며 사후 보정될 수 없는 즉시조치 사항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 중 다수는 이 또한 해석이 애매하게 나올 수 있다면서 법 개정보다는 해당 법안을 삭제하고 미국의 '폭탄허위제보법'과 같은 개별 법령을 통해 구체적으로 허위정보 제한 범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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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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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다 결국 숨져 공사장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김모(3)군은 세 살배기 아이로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환경에서 자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사건이 벌어진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다세대주택 인근 주민에 따르면 아버지 김모(33)씨 가족이 살았던 반지하 쪽방에서는 매일같이 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여느 아이처럼 툭 하면 우는 김군이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따스한 부모의 포옹이 아니라 일용직 노동을 하는 아버지의 주먹질이었다.말을 할 수 없는 아이는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로 ‘살려달라’는 표현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복도 맞은편 방에 사는 30대 여성은 “평소 김군의 울음소리가 잦았다.특히 새벽에 갑자기 울기 시작해 몇 시간씩 이어지곤 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김모(37)씨도 “이웃 주민들이 ‘밤낮으로 아이가 울어 잠을 못 잘 정도’라며 고충을 자주 토로하곤 했다”고 전했다.

 계속된 아이의 울음소리에 지친 이웃이 민원을 제기하는 통에 김씨는 범행 직전 2차례나 같은 동네에서 이사를 다니기도 했다.


이웃들은 새벽마다 아이 우는소리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일용직 노동을 하며 바쁘게 사는 터라 아이가 아버지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하는 상황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몇몇 주민은 경찰 탐문수사에서 “김군의 온몸에 항상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고 진술했다.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이가 울 때마다 화가 나서 폭행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이모(30)씨는 생활고에 시달린 탓인지 대낮에도 술을 마시곤 했다.그는 주로 분식집에서 음식을 시켜 자신과 세 아이의 끼니를 때웠다.

 분식집 배달원 김모씨는 “방 안에는 옷이 지저분하게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낮에 음식을 주문하면서 술을 같이 가져다 달라기에 술 배달은 안 된다고 했더니 직접 사러 나간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2007년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김씨와 결혼했다. 당시 김씨가 일자리가 없어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지만 사업이 잘 안 되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그해 말 집을 나갔다.

 이듬해 9월 김군을 임신한 이씨가 집으로 돌아왔고 김씨는 아이가 태어나자 “내 자식이 맞는지 믿을 수 없다”며 폭행을 일삼았다.

 김씨는 결국 지난해 12월16일 새벽 우는 아들을 수차례 때려 머리를 주방 싱크대에 부딪치게 해 살해했으며 지난달 이씨와 함께 시신을 자택 인근의 공사장 쓰레기더미에 버렸다.

 경찰 관계자는 “부모에게 정신적인 문제는 없어 보였다.두 사람 모두 범행은 시인했지만 반성의 기미는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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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웹표준화 작업 이란

W3C(World Wide Web Consortium)라는, 국제 웹제작 표준화기구를 창궐하여 공식표준이나 다른 기술 규격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       HTML, XHTML, SVG, XForms 같은 마크업 언어의 W3C권고

-       스타일시트, 특히 CSS W3C권고

-       흔히 자바스크립트라고 불리는 ECMA스크립트라는 Ecma 인터내셔널 표준

-       문서 객체 모델의 W3C 권고

웹표준화는 CROSS BROWSING 물론이고, OS 특성을 타지 않게 개발되어야 하며, 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타 웹에 접속을 가능케 하는 장치를 포함하여, 개발물이 노출되도록 하여야하며, 디스플레이에 있어서 부가적인 플러그인이나 인스톨 모듈을 갖지 않게 하여야한다. 궁극적으로 엑박이 나타나지 않아 모든 사용자들의 보편적 접근성을 갖춰야 하겠다.

 

그럼 표준규격에 의해 사이트가 제작되면 어떤점이 좋을까요?

- 페이지 로딩속도가 비표준 사이트 보다 빨라집니다.(구조적이기 때문에 브라우져 인식시간이 줄어듭니다.)

- xml 지원하는 다양한 정보기기에서 별도의 제작비용없이 서비스 있습니다.

- 다양한 운용체제(리눅스, 윈도우XP, 윈도우Vista, 맥켄토시) 에서 사이트를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 다양한 웹브라우져(ie계열, 파이어폭스, 오페라, 구글크롬, 사파리) 에서 사이트를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며, 거의 동일한 형태로 브라우져에 보여지게 됩니다.

- 구조와 표현 동작을 완벽히 분리해서 마크업을 하기 때문에 차후에 유지보수나 개편시 작업시간을 줄일 있습니다.(다만, 최초 개발단계에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수있습니다.)

- 장애인 비장애인, 어린이, 노인, 취약계층 등에서 웹사이트를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2. 인터넷 콘텐츠 접근성 지침

웹표준화 작업의 예제를 보기 이전에 웹표준화 작업을 하기위한 지침을 알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래의 지침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웹접근성 품질마크 인증" 사용되는 지침이며, 한국정보문화 진흥원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구분

항목(13)

지표(18)

준수

기준

1. 인식의

용이성

(3)

1-1. 텍스트 아닌 콘텐츠의 인식

(1) 이미지의 의미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

의미가 있는 이미지의 경우 대체 텍스트를 의미나 기능이 동일하게 제공

※ 의미가 없는 이미지(글머리기호, 테두리, 장식용 이미지, 공백 이미지 등)의 경우 대체 텍스트를 blank(alt="")로 제공

90%

(2) 배경 이미지가 의미를 갖는 경우, 배경 이미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체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의미가 있는 이미지는 배경 이미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함

90%

1-2. 멀티미디어 매체의 인식

(3) 동영상, 음성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체 수단(자막, 원고 또는 수화)를 제공해야 한다.

실시간 방송이라도 대체 수단을 제공하여야 하나, 예외로 인정할 수 있음

90%

1-3. 콘텐츠의 시각적 명료성

(4) 색상을 배제하여도 원하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색상 이외에도 명암이나 패턴 등으로 콘텐츠 구분이 가능해야 한다.

90%

2. 운용의 용이성

(6)

2-1. 이미지 맵 기법 사용 제한

(5)·서버측 이미지 맵을 제공할 경우, 해당 내용 및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대체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

지리정보의 경우에는 예외로 인정할 수 있음

90%

2-2. 프레임의

사용 제한

(6) 프레임을 제공할 경우, 해당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제목(title 속성)을 제공해야 한다.

90%

2-3. 깜빡거리는 객체 사용 제한

(7) 깜빡이는 콘텐츠를 제공할 경우, 사전에 경고하고 깜빡임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 깜박임 기준: 초당 3~49번을 깜박이는 콘텐츠

90%

2-4. 키보드로만 운용 가능

(8) 모든 기능을 키보드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90%

2-5. 반복 내비게이션 링크

(9) 반복되는 링크를 건너뛸 수 있도록 건너뛰기 링크(skip navigation)를 제공해야 한다.

50%

2-6. 반응시간의 조절기능

(10) 시간 제한이 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경우, 시간 제어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예외사항 : 경매, 실시간 게임 등과 같이 시간제한이 필수적인 콘텐츠

70%

(11) 새 창(팝업창 포함)을 제공할 경우, 사용자에게 사전에 알려야 한다.

70%

 

3. 이해의 용이성

(3)

3-1. 데이터 테이블 구성

(12) 데이터 테이블을 제공할 경우, 테이블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제목, 요약정보 등)를 제공해야 한다.

70%

(13) 데이터 테이블을 제공할 경우, 제목 셀과 내용 셀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70%

3-2. 페이지의 논리적 구성

(14) 해당 페이지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페이지 제목(<title>)을 제공해야 한다.

70%

(15) 콘텐츠는 논리적인 순서로 구성되어야 한다.

90%

3-3. 온라인 서식 구성

(16) 온라인 서식을 제공할 경우, 레이블(<label>)을 제공해야 한다.

90%

4. 기술적 진보성

(1)

4-1. 신기술의 사용

(17) 애플릿, 플러그인(ActiveX, 플래시) 등 부가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경우, 해당 애플리케이션이 자체적인 접근성을 준수하거나 사용자가 대체 콘텐츠를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70%

(18) 마크업 언어로 구현할 수 있는 기능(링크, 서식, 버튼, 페이지 제목)을 자바스크립트로만 구현하지 말아야 한다.

90%

 

3. 웹표준화 작업의 조금 세부적인 설명

웹표준화 작업은 위에서 잠시 언급한바 있습니다만,

구조, 표현, 동작  3 가지 요소로 구분하여 제작하고 있습니다.

 

3-1 구조란?

구조란 html 페이지 내부의 태그를 말하는 것이며 건축물로 비유하자면 기둥, 지붕, , 골조 등과 같이 기본골격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시면 되겠습니다.

 

3-2 표현이란?

표현은 css 페이지 내부의 태그를 말하는 것이며 건축물로 비유하자면 외장재의 모양이나 색상, 창문의 모양, 등과 같이 건물이 표현하고자 하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시면 되겠습니다.

 

3-3 동작이란?

동작은 javascript active-x, applet 같이 실제로 움직임이 있는 요소를 말합니다. 건축물로 비유하자면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혹은 자동문 정도로 생각하면 될거같습니다.

 

작업 단계별로 구조를 먼저 세우고 표현을 위한 css 제작하며 마지막 단계에 제대로 동작할 있게 작업을 하는 것이 바로 웹표준화 작업의 절차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4. 웹표준화 작업 예제

주로 공공기관 사이트에서 웹표준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 접근성 품질마크" 획득한 사이트 들입니다.

한번씩 들러보셔서 키보드 탭키를 이용해서 전체 사이트의 경로이동이 가능한지 확인해보시고, 비표준으로 만들어진 사이트에서도 키보드 탭키를 이용해서 사이트 이용이 가능한지 우선 확인해보세요. 확실히 차이점을 느끼실 있을 것입니다.

 

서대문구(서울) http://www.sdm.go.kr
노동부 http://www.molab.go.kr
행정안전부 http://www.mopas.go.kr
구미시(경북) http://www.gumi.go.kr
청와대 http://www.presiden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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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금태양의 세상읽기,통찰력큰사람,지식위지혜실천,과학이종교,무소유가행복,영물인김범,자유정의사랑,파워블로거,풍류선비,올마운틴MTB라이더,대금태양,웹제작 웹디자인 웹마케팅 웹기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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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도 않은자가 해본 자를 욕하는 것은
똥묻은 개가 재묻은 개를 나무라는거와 같은것이고,

지는 하지 않고 있으면서 그보다 더 잘 하고 있는자를
본인은 간장인지 소금인지 손가락 까딱 안하면서, 남이 설탕인지 소금인지 분간하려는 곳을 기웃거리며 시비거는 행위는
김정일 아들 김정남이 제3국으로 망명와서, 지는 똑똑하고 김정은과 김정일은 부족하다고 흉보는 행위와 닮은 꼴이 동일하다 본다.

이런자는 자고로 피가 복합적으로 지저분하게 섞혀있는 관계로, 개념정립 및 대화성립, 이성판단이 곤란한 상태임으로
흥분하면 거의 혼수상태랑 같다고 보면 된다.

소말리아에서 해적질 하고 아주 먼거리로 잡혀와서 어벙뛰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과 동일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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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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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기획자가 되는 길

ICT 2011. 2. 6. 05:21

최근 웹기획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고, 웹기획 분야로 진출하고 싶어하시는 분들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정착되지 않고, 정식 교육기관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웹기획자가 될수 있고, 기업에서는 어떤 웹기획자를 원하는 지를 알아봅니다. 다음과 같은 목차로 연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1. 웹기획자가 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

  2. 웹기획자가 된 사람들

  3. 웹기획의 시작은 웹사이트의 목적을 파악하는일









웹기획자가 되는 길


인터넷의 역사가 짧고 그 발전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그를 담당하는 직업 또한 역사가 짧고 전문가들도 그 경험에 한계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쪽 직업이 더 매력적인 지도 모르지요.


사실 기획이란 그 프로젝트가 수행되고 지속적인 영업을 할 때 까지 또는 종결 될 때까지의 모든 사항을 고려하여 진행되어야 하며,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하려면 프로젝트 기획경험 뿐 아니라 운영 및 수행 경험 또한 풍부하여야 하며, 전체적인 인터넷의 흐름과 사용자들의 특성 발전방향, 그리고 사이트의 총체적인 것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방대하고도 어렵게만 느껴지지요.


현재 사이트들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기획자들은 여러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웹 프로그래머에서 여러 사이트를 제작한 노하우를 가지고 기획쪽의 일을 하는 사람과 인터넷 사업을 운영하면서 필요한 아이템들을 기획하는 사람들, 여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웹 기획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개성을 가지고 또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웹기획자가 되려면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까요.


우선은 웹사이트를 많이 들러보고 사이트를 나름대로 분석하는 연습을 많이 하셔야 합니다. 이 사이트의 제작의도는 무엇이며, 과연 그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사이트의 개발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제작비는 얼마나 들어갔는지,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력은 얼마나 필요한지, 사이트의 선점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마켓팅 방향은 본 사이트와 잘 맞는지 등등 알아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이 있으며, 많은 연습을 통해 사이트를 보고 이런 것들을 알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실제 기획하는 사이트가 어떤 방향으로 구성을 잡아야 할 지 조금은 틀이 잡히실 겁니다. 좀 더 객관적인 분석능력을 키우려면, 나의 분석과 다른사람의 분석을 비교하여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신문도 많이 보시고.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와 친해지세요. (잘되는 사이트 뿐아니라 망하는 사이트 까지도)


정말 알아야 할게 많지요. 제대로 된 웹기획자가 되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하셔야 됩니다. 신문도 많이 보시고, 다른 사이트도 많이 보시고, TV의 PD나 영화감독을 생각해 보세요. 그사람들도 TV나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만 가지고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경험많은 팔방미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하나씩 접근해 보겠습니다.


웹기획자는 전반적인 인터넷 기술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HTML은 기본이고 ASP, PHP, Perl, Jsp등의 웹프로그램과 스크립트 부터 MS-Sql, Oracle, Mysql같은 DB 프로그램과 sql문법, Unix, Linux, NT등의 운영체제, IIS, 아파치 같은 웹서버, 포토샾, 플래쉬등의 디자인 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어야 겠지요.


그래야 이런 기획이 들어갔을 때 시간이 얼마나 걸리며, 또 인건비 및 각종 비용은 얼마나 들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필요한 지를 알 수 있으며, 또 개발참여시 전체적인 스케쥴관리 및 인력관리가 가능 하겠죠.


뭐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난 웹기획 못하겠다, 하고 브라우져는 닫아버리시지는 않겠죠? 위에 말씀드린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겠어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웹기획자들을 보면, 개발자 출신의 경우는 프로그램과 DB, 서버 부분이 강하구요. 처음부터 기획만 한 사람은 컨텐츠 쪽이 강하구요. 디자이너 출신은 디자인 부분이 강하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깊이는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 니다. 그럼 그게 어느 정도냐구요?


제 생각에는 최소한 이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 일단 웹프로그램의 경우 소스를 보면 이게 어디에 사용하는 지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소스를 카피해 가며 또는 책을 보면서 게시판 정도 만들수 있는 수준은 되야지요.
     

  • 웹서버는 자신이 도메인을 등록해서 URL로 사이트를 올릴 수 있는 정도 + 전체적인 운영체제에 대한 이해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 DB는 간단한 쿼리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검색 및 수정하고, 새로운 테이블을 만들어 낼 정도는 되야죠.
     

  • 디자인은 적어도 HTML은 완전히 알아야 합니다. 특히 Table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고 간단한 스크립트를 쓸 수 있다면 좋겠죠.

 

 

 

지난 시간 글을 읽으시고, '앗 웹기획자가 되기위해서 웹프로그램만 알아야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있으신 것 같더군요. 오늘 글이 이어졌더라면 그런 오해가 좀 적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전 글에서 말씀드린 걸 첨부터 배우시려면 학원에서 웹마스터 과정 정도가 비슷하겠네요. 한 6개월에서 1년정도 과정이구요. 하지만 제 경험상 자신의 주변상황에 맞도록 한가지씩 잡아서 열심히 하여 전문분야를 만들고 나머지를 살펴보는게 더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개발 쪽에는 크게 NT 운영체제에 IIS 서버를 돌리고(당연하겠지요?) MS-SQL DB 에 ASP 프로그램으로 코딩을 하는 것과, Linux 운영체제에 아파치 서버를 돌리고 My-sql DB를 사용하여 PHP프로그램 코딩을 하는 것으로 양분되며, 이외에 DB로서는 오라클, 인포믹스, 프로그램으로는 jsp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XML이나 asp.net을 쓰기도 하구요. 모바일쪽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이것을 모두 공부할 수는 없겠지요. 제 생각에는 우선 자신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 분야가 있다면 그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세요. 그리고 나서 다른 쪽을 보면 비교가 되면서 좀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합니다. 웹 기획자가 프로그램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으므로 모든 걸 다 전문가가 되려 노력하는 것은 좀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어요. 물론 원래 부터 개발자여서 잘하면 좋겠지만, 웹 기획자는 개발뿐 아니라 신경써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거든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 이런 의문을 갖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기획만 잘하면 되지 나보고 프로그래머가 되라는 얘긴가? 뭐 기획자가 어떻게 모든 걸 다하냐? 어차피 프로그램은 프로그래머가 하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지 않느냐? 기획자를 컨텐츠와 구성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꼭 그렇지 않음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기획자가 레이아웃을 만들어 메뉴는 어떻고 프레임은 어떻고 나름대로 멋지게 기획을 해놓고 자 이제 일을 합시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프로그래머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해서 안돼구요. 이건 어렵구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구요. 등등 말을 하는 데 아는 게 없는 기획자, 이것 저것 수정하고 완전히 다른 사이트가 되더라는 거죠.

만일 이런 일이 없이 제작에 들어갔다고 봅시다. 전혀 기술적인 기본 지식이 없이 만들어진 기획서로 말이죠. 실제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지요.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는 전체적인 파악은 모두 기획자에게 맡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부분만 열심히 하는 경우지요. 이럴 때 문제가 더 심각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추후 업그레이드 시점이나 사용자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치명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DB 확장에 문제가 되거나 이리 저리 꼬인 프로그램, 이미 나눠논 프레임을 어쩌지 못하고 발만 동동구르거나 사이트 전체를 바꿔야 하는 경우 등등.

최고의 프로그래머가 되라는 말씀은 안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사이트의 프로그램이 어떤 로직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DB의 흐름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사이트가 발전할 때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 지에 대한 대처능력과 파악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제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웹 기획자는 웹 기획을 가장 잘 할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무슨 황당한 말씀이냐구요?

만들려는 웹사이트의 목적을 파악하고 그에 합당한 기획을 잡아야죠.

메뉴 구성, 디자인 컨셉, 사이트 정책 결정(회원 로그인 부분 등), DB 결정, 컨텐츠 구성 등을 통해 잘 짜여진 사이트 기획이 이루어 져야 되겠지요. 이건 특별히 가르쳐 주는 곳도 없구요. 대부분 신선한 아이디어(창의)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거지요.

이런걸 잘하려면 잘 된 사이트의 벤치마킹, 인터넷 사용자의 성향, 그리고 나만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그동안 기획 및 운영에서 나온 경험의 조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이것이 사이트의 미래까지 바라보는 구성으로 이루어 진다면 금상첨화지요.

이 부분도 조금씩 체계가 이루어져 가고 있으며, 사업에 대한 분석, 초기 기획, 사이트맵, 스토리보드, 플로우 챠트등의 기획 문서 등을 통해 자신의 사이트 기획을 문서로 체계화 할줄 아는 힘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알아야 할 부분은, 사이트 제작에 관련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기법을 좀 아셔야 합니다. 그 중 예산 관리, 스케쥴 관리, 인력 관리 세부분이 필수적이며 이 부분은 Project Management 기법을 공부하시거나, 추후 기회가 닿는다면 따로 강좌를 기술하겠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또한 아주 중요한 기법으로 예산흐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체계적인 스케쥴 관리 기법 도입 그리고 마지막으로 혼자 일하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팀 구성원들을 계획에 따라 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관계에도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자 이제 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웹의 기획 관련 업무를 보는 사람들 컨텐츠 구성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인문과학 출신이 많고 유명 사이트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기자 출신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더 기술쪽에 중점을 두어 이제까지 이야기를 하였구요. 인문과학의 논리적 사고 체계와 자연 과학의 논리 체계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고 나오는 결과물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웹은 어느 것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웹기획자는 이런 프로젝트의 최전방에서 선봉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모든 걸 다 잘 알아야 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번에는 웹기획자가 인문쪽에서 익혀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정말 알아야 할 것도 배워야 할 것도 그리고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소양까지 너무나 많군요. 처음 웹기획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너무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닌 지 모르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확실하게 전문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차근 차근 도전해 보세요.

첫번째, 인터넷의 흐름을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항상 사이트를 벤치마킹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세요. 웹 기획자라하면 대다수의 사이트를 분석하고 벤치마킹하여 나름대로 사이트의 분류 체계를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의 흐름이 어느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사이트들이 만들어 지고 또는 새로운 기능과 컨텐츠가 삽입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들이 어떤 반향을 불러오는지, 본인이 기획하는 사이트와의 접목이 어느정도 가능한지 파악하여야 합니다. 이제는 인터넷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인터넷을 이해하려면 사회 전반에 걸친 이해력을 키워야 합니다. 신문, 잡지, 경제와 경영, 인간에 대한 이해 뿐아니라 영화 연극 콘서트 등도 소홀히 보아 넘겨서는 안됩니다.

두번째,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입니다. 새롭고 잘 짜여진 인터넷 사이트는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진 모든 인터넷 사이트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바탕으로 그 기반 위에 세워진 겁니다. 뭐 저작권을 위반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까지 인터넷 사이트는 알게 모르게 모두 모방되고 재창작된 작품들입니다. 다른 사이트를 분석하고 그 안에서 내가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컨텐츠 및 여러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예리한 눈이 필요합니다. 현재 이 세상이 발달시켜온 인터넷을 자신의 베이스로 삼아 더 훌륭한 사이트를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세번째,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영화처럼 인터넷 사이트도 종합예술입니다. 다시 말해 혼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죠. 가깝게는 아주 성향이 다른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가 있고 또한 대다수 인터넷에 문외한인 사이트 의뢰자가 있습니다. 이들을 잘 조율하고 설득하고 잘 이끌어나가는 윤활유 및 매개 역할 그리고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됩니다. 쉬운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사람의 일이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너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합니다. 의사전달 상대가 기본적인 지식이 없을 경우에도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화술이 필요합니다.

자 자신을 가지시고 이제 한번 시작해 봅시다. 21세기의 가장 유망 직종이라는 웹기획자의 길로 첫발을 들여놔 보세요.

그럼 이때까지 열심히 읽었는 데 뭐부터 해야 되지요?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으시겠죠? 저도 너무 두서없이 글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이트 분석부터 해보세요. 차근 차근 한발 한발 내딛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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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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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인 감성을 담은 포크락에 싱어송라이터 이장희, 국내 포크락시절 왠만한 노래는 다 그의 작곡실력에서 나온 수작들
한때는, 활동금지령때문에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 작곡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아들이름을 빌려 곡을 내기도 하였다.
수염덕땍에 우리들 기억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이장희의 사랑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기사이다.

이장희는 현재 파란만장한 삶을 겪어오고 조용히 자연을 벗삼아 울릉도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의 삶의 스토리를 책으로 펴낸다면,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나, 그를 흠모하는 팬, 후배들, 친구들 모두에게
잔잔한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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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에는 완장찼다고 저런 배짱과 용기를 뿜어낼 만한 사람이 없는거 같은데
그간 너무 조용했던 민노당에게도 활발한 이슈가 생긴듯하다.

정치생명을 조기마감할만한 사건같기도 하지만
한나라당이였다면 금새 잊혀질만한 조족지혈이였을것이다.
당을 잘못 찾으신듯.....

다시 부활하시려면 한나라당쪽에서 부활하시면 금방 용서가 될 수 있을듯

젊은 정치인들은 정치적신념이 형성되지 않아서 가끔 당을 잘못 찾기도 하는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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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같은 선수들을 제치고 국가대표에 발탁된 선수들은 인생의 황금빛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선수들이다.
그러한 선수들이 되기 위해 오로지 밥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제외하고는 땀나는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래야만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 라는 말처럼
우수한 선수들도 골키퍼 단 한명 두고 차는 승부차기에서도 골을 못 넣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아무리, 수학선생님이라고 해도, 못푸는 수학문제가 있을 것이고,
여행을 많이 다니는 여행가도 다가보지 못한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바둑 9단이라고, 신성시 우러러보는 사람도 바둑 7단한테 지는 경우도 속속들이 생겨나고,
말발좋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더 강자를 늘 만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한선수만 그런것도 아니고, 세 선수가 야조리 승부차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기운이 작용해서 그런것일까?

승부차기 3-0 이란 기록이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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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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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막가파식 사업확장덕에.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자립할 기회를 잃게 되었다.
대기업이 그간 최고의 트렌드사업인 안정적이고 황금알을 낳는 사업들을 쪽쪽드리 독차지 하더니,
이제 작은 기업들이 먹고 사는 시장까지 거머리식 확장을 하고 있다.
대기업은 새로운 사업분야를 개척하거나, 시장을 해외로 진출해서 외화벌이에 큰 몫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뒷전이다.
이른바 기업가정신이고 뭐고 없다. 그저 대기업출신 대통령이 고마울뿐이다.
치킨, 문구, 모텔, 고급룸싸롱, 피자, 학원, 온라인쇼핑몰, 소셜커머스몰, 온라인강의, 빵, 함바집, 극장코너샵, 편의점 등등
피래미나 새우없이도 고래가 오랫동안 생존할것으로 보는가?

뜻을 크게 품고 사는 인간이 없는 세상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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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금태양의 세상읽기,통찰력큰사람,지식위지혜실천,과학이종교,무소유가행복,영물인김범,자유정의사랑,파워블로거,풍류선비,올마운틴MTB라이더,대금태양,웹제작 웹디자인 웹마케팅 웹기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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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ufogalaxy.co.kr

도서출판 운하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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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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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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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집'(건설현장 식당) 운영권 브로커인 유상봉(65 구속)씨가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서울시 간부들을 상대로도 집중 로비를 펼친 것으로 드러났다.
'함바 비리'의 여파가 경찰 수뇌부에 이어, 이른바 'S라인'으로 불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

청와대 이명박 측근인 팀장마저 사직서를 내고, 
대통령이 눈감아줘서 이리 일이 커진것이 아닌가 싶다.

전 서울시부터 현재 청와대까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베인 함바집 식대비를 가로채가며,
공정사회를 부르짓는 것은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나 있을 듯한 비리로 참으로 가혹한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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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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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민란]우리가 왜 이고생을 해야 하는지..가슴이 아려 옵니다.

        우리가 왜 이고생을 해야 하는지... 가슴이 아려 옵니다.

 

 

 이사진을 기억 하십니까 ??

이명박이 지지난해 ‘08.6.19일 특별 기자회견...!
기사 일부내용입니다.

“6.10일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도 들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고 말했다.

반성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후 2년동안 무슨일이 벌어졌나요 ?

그 이후 촛불탄압의 상징인 명박산성을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국민들이 목숨을 잃는 용사참사 쌍용자동차 탄압 등 이루 말할수 없는 비참한 사건들이 속출했습니다.

모든것은 제처두고라도
사무라이조 한놈만 봐도 알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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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하게 우리 국민들은 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클릭-원본보기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
역사상 일국의 대통령이 이렇게 비참하게 서거한 나라를 보셨습니까 ?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노빠라서 그렇게 서러워 울었을까요 ??

클릭-원본보기


보십시오 !!
지금도 이러고 있는 그모습을 ...!!
연평도 폭격 무엇때문에 일어났습니까 ?

전쟁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시는건가요 ?



 

문성근이 왜 이고생을 하시는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당신의 아버지 문익환목사님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

▲ 문익환 목사가  흰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철조망을 넘고 있다. 


        

 

참으로 가슴이 아려오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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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 씨가 화두를 던젔으니....

이제 우리도 함께 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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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명령은 정치를 하기위한 단체가 아닙니다.

2012년 진정한 민주주의 승리를 위해 들불처럼 일어난 시민들 모임입니다.

문성근씨는 그중 한사람일 뿐입니다. 민란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국민이고

우리 자신입니다. 추운 겨울에 매일 같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활동 상황을 보시려면 국민의 명령

각 지방 들불방을 참고해 주십시오


현재까지 50,000여명이 국민의명령 백만송이 민란에 가입을 하였습니다
저들에게 국민의 힘을 보여줍시다. 연말까지 5만명의 목표를 무난히 달성 하였습니다.


국민의 힘을 보여 주세요
이글을 보는 여러분이 바로 백만민란의 주인공입니다.

2012년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 힘은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

한사람의 힘이라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국민의 명령을 찾아주세요 !!
이제 우리 횃불이 되어 다시만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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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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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일간지 프라우다(Pravda)가 보도한 외계우주선 접근 뉴스가 폭풍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프라우다는 '지구외문명탐사연구소(SETI)의 발표에 의하면 지름만 240km의 우주선과 그 보다 작은 우주선등 3대가 현재 명왕성궤도 너머에 있으며 2012년 12월에 지구에 도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라우다의 뉴스가 전 세계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미국 MSNBC의 코스믹 로그(Cosmic Log)에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외계우주선 지구 접근'은 이미 1년전 '떡밥'이다. 2009년 음모론을 주로 다루는 boomshock.com은 '미국정부와 해군에서 유출된 정보에 의하면 길이 240km에서 넓이 48km-80km 크기의 우주선(들)이 현재 명왕성에서 지구를 향해 접근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글은 인터넷에 확산 되면서 외계우주선의 사진이 첨가됐다. 우주 보기 사이트인 Sky-Map.org 에서 좌표번호 19 25 12, -89 46 03 을 넣고 줌인을 하면 푸른색의 외계우주선이 보인다는 주장이다. 문제의 사진에서 큰 부분이 지름 240km 모선이 되었고 2개의 작은 부분은 다른 우주선이 되면서 접근하는 외계우주선은 3개로 확정됐다.

사진이 첨부된 글은 다시 인터넷에 확산되었고 어느새 외계우주선의 도착날짜와 장소가 잡혔다. 바로 마야 달력이 예언한다는 지구 종말의 날 2012년 12월 21일 미국 워싱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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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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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내일이면 저는 자연인 신분과 그 반대되는 신분을 다 얻게 됩니다.

그간 계단을 오르느라 산통을 겪어가며 이리 가고 있습니다.

제 가는길에 누구하나 도와달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스스로 가야할 길을 완주했을때에 그리고 야호~ 하는

소리가 여러분들의 마음속까지 들렸으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첫단추를 끼우고, 둘째 단추를 끼우고 있습니다.

단추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하고 있습니다.

내 단추 끼우는것도 서투르지만, 시급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단추를 살펴드리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제 꼴깝을 하고 나서야 말이 되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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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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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이 너무 조용하게 끝나게 된것이 내심 안타깝네요.

덕분에 디가우저 앞으로 많이 팔릴듯 하네요.

이 나라에 대표라는 분이 응큼하여, 남의 뒤를 깨러 다니는 전담부서를 조직하여

박정희 못지않는 X파일을 양산하러 하다가

들키면 하드 날리라 하니, 하드 날리는 거 전문인 회사에 의뢰할때에는 반드시 대포폰을 사용하도록 하여

전혀 증거를 남기지말라! 명을 하달 받았으니,..  청와대에서도 대포폰을 쓰게 만든 저 불도우저 정신! 한다면 한다! 삽질정신의 발로가 아닌가 합니다.

총리실 산하에 공직윤리위원회가 공직자 부정부패나 비리, 부조리를 감시하기는 커녕

민간인이나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정치인, 기업인들의 개인 정보를 빼내어 미행을 하고, 감시을 하여

꼬투리를 잡아서 인생을 종치게 하고, 감옥에 쳐넣으려고 한 나치의 게스타포의 부활이였다.

이 시대 진정한 영화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한 이명박 대통령 응큼정치를 개탄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악성 동영상을 블로그에 담았다는 것 만으로 회사에 대표이사를 그만두게 만들고,

그의 순수한 정치적 정당후원금을

누구의 계획된 형님예산보다 더 

아주 더 잔인하게 특정 정치인 비자금으로 까지 부풀려, 특정 정치인도 2번죽이게 하고, 평범한 범상인을 매장시키려한, 정말 하마타면 보통사람을 아예 세상에서 영영 떠나버리려 했던

이 놀라운 사건을 우리는 개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증거인멸을 지시한 청와대 지령자 이영호씨는 적어도 죽기전에 양심선언을 하여야 합니다.

이영호씨! 그 자체만으로도 그와 같은 일을 지시한 근본이 이명박대통령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영호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며 청와대에 입성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내에서 대포폰을 쓰는 것은 좋습니다.

공직윤리위원회가 국민과 서민들 대상으로 '제 5호 감시제'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나와 뜻을 달리 한다는 이유만으로 처절하게 근본을 찾아서 말살하려 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되지 않게, 이번 정권에서만 하게 되는  마지막이 되었으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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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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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명곡 40선입니다.

1. White Christmas / Bing Crosby
하얀 눈에 덮힌 크리스마스에의 동경과 꿈을 낭만적으로 그린 이 곡은 1942년
어빙 벌린이 작사. 작곡한 것으로 빙 크로스비가 42년 노래해서 차트 정상에 올랐
던 크리스마스 캐롤송 중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
이 노래는 3천만장이 넘는 레코드 사상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 기네스 북에 오르
기도 했음.

2. Last Christmas / Wham
영국 출신 남성 듀오 웸의 1986년 베스트 앨범 에 수록된 노래로 인기차트와
상관없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 크리스마스 캐롤과 관계는 없으나 제
목이 크리스마스가 들어가 이후 10여년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색적인 노래.

3. Jingle Bells / Bing Crosby & Frank Sinatra
1857년 보스턴의 음악가 피어 폰트가 일요학교 학생을 위해 만든 오래된 노래
로 2년 후에 이 제목이 붙여져 캐롤의 대표적인 노래로 현재에 이르고 있음.
이 노래는 1943년 페리 코모와 빙 크리스비가 불렀고 이 후 크리스마스 때면 언제
나 불려지고 있는 곡으로 큰 인기를 끌었음.

4. Silent Night / Boyz II Men
17세기 말엽 오스트리아 성가대 지휘자 프란츠 그루버가 작곡한 노래로 캐롤
의 대표적인 노래. 빙 크로스비를 비롯해서 수많은 가수들이 크리스마스 시즌 때
불렀던 노래로 유명. 보이스 투 멘의 1994년 캐롤 앨범에 수록된 아카펠라 곡으로
큰 인기를 끌었음.

5. Silver Bells / Gene Autry
어빙 벌린의 대표적인 캐롤송으로 1943년 빙 크로스비가 노래해서 큰 인기를
끌었음. 그 외에 노래하는 카우보이로 큰 인기를 끌었던 진 오트리가 1947년 발표
해서 빅 히트를 기록했음.

6. Feliz Navidad / Boney M
푸에토리코 출신 맹인가수 호세 펠리치아노의 캐롤송으로 80년대를 대표하는
캐롤송. 국내에서는 호세 펠리치아노보다 자마이카 출신의 댄스그룹 보니 엠의 디
스코 풍의 노래로 더 큰 인기를 얻었음.

7. The Little Drummer Boy / Harry Simeone Chorale
편곡자 겸 합창단 지휘자로서 활약했던 해리 시메온이 1958년에 내 놓은 캐롤
송의 대명사로 불려지고 있는 노래. 이 노래는 자신의 합창단 이름으로 1958년 발
표되어 62년까지 계속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이색적인 기록을 갖고 있음.

8. The First Noel / Pat Boone
바로크 시대 이전부터 구전되어 온 가장 오래 된 캐롤 송으로 1948년 팻 분이
발표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

9.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 / John Denver
이 노래는 1949년 자니 마스크가 작사 작곡한 것으로 매우 재미있는 동화풍의
내용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크리스마스의 홈송으로 동요와 같은 형태로 불려지고
있음. 진 오트리의 레코드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이 노래는 이후 많은 가수들이
불렀는데, 국내에서는 미치 밀러 합창단과 존 덴버의 곡으로 애청되고 있음.

10. Joy To The World / Vienna Boys Choir
1871년 존 스테이너 박사가 70여편의 곡들을 정리해 내 놓은 캐롤송으로 많은
가수들이 크리스마스 앨범에 소개된 노래. 국내에서는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맑고
깨끗한 미성의 합창으로 큰 인기를 끌었음.

11. They Know It's Christmas / Band Aid Do
밥 겔돌프의 기획 아래 영국 최고의 뮤지션이 한자리에 모여 이디오피아 난민
자선 기금 마련 차원을 결성 된 밴드 에이드가 발표한 1985년 작품. 폴 영, 보이
조지, 듀란 듀란, 스팅, 바나나라마 등이 참여해서 노래한 이 곡은 차트 13위까지
오랐고, 이 프로젝트에 자극받아 미국에서는 USA For Africa를 결성, We Are The
World를 탄생시켰음.

12.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 Michael Bolton
1943년 헤이븐 길레스피가 작사하고 프레드 쿠츠가 작곡한 동요풍의 크리스마
스 송으로 조지 올센 악단이 소개하고 그후 에디 캔터가 불러 인기곡이 됐음.
국내에서는 빙 크로스비와 앤드류스 시스터스, 페리 코모, 패티 페이지, 카펜터스,
마이클 볼튼의 노래로 큰 인기.

13.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 Kingston Trio
어빙 벌린이 작사작곡한 곡으로 1940년대 말 냇킹 콜 등이 노래해서 큰 인기.
그 외에 포크 트리오 킹스턴 트리오가 60년대 초반 발표해서 잘 알려진 캐롤.

14. Here Comes Santa Claus / Bing Crosby & Andrew Sisters
진 오트리가 오쿠리 하드맨과 1947년 발표한 노래로 동요풍의 캐롤송.
크리스마스 때면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이 곡은 국내에서 1949년 빙 크로스
비와 앤드류 시스터스가 함께 노래한 곡으로 잘 알려졌음.

15. All I Want For Christmas / Mariah Carey
머라이어 캐리가 발표한 1994년 캐롤앨범에 수록된 노래로 캐롤분위기가 전혀
안나는 신나는 노래. 참고로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 <메리 크리스마스>는 총4백
만장이란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90년대 최고의 캐롤송으로 떠오르고 있음.

16. Oh Little Town Of Bethlehem / Mahalia Jackson
18 세기 성직자 찰스 웨슬리에 의해 소개된 이 노래는 현대 캐롤송에서 빼 놓
을수 없는 대표적인 캐롤송. 국내에서는 비엔나, 파리 나무십자가 합창단과 가스
펠 여성가수 마할리아 잭슨의 노래로 잘 알려졌음.

17. Blue Christmas / Elvis Presley
록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도 여러 크리스마스 캐롤을 노래했고, 또한 캐
롤 앨범을 내놓기도 했는데, 그 중 창작곡으로 소개된 이 노래가 크리스마스 시즌
이면 언제나 애청되고 있음.

18. Hark! The Herald Angels Sing / 파리나무 십자가 합창단
'천사 찬송하기를'로 유명한 이 노래는 18세기 찰스 웨슬리를 비롯한 몇몇 성
가 작가들에 의해 소개된 성가. 이 노래는 비엔나 소년 합창단과 파리나무 십자가
합창단의 깨끗한 미성의 합창으로 소개되어 큰 인기.

19. I'll Be Home For Christmas / Peabo Bryson & Roberta Flack
백 램과 킴 가논의 1943년 공동 작품으로 빙 크로스비가 노래해서 빅 히트.
크리스마스에는 우리 집에 돌아갑니다,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노래는 도리스 데
이, 카펜터스, 그리고 1994년 피보 브라이슨과 로버타 플랙의 듀엣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

20. Happy Christmas / John Lennon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 1975년 발표한 노래로 전쟁 없는 세상에서 평화
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자는 메시가 담긴 노래.

21. Miracles / Kenny G
세계적인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가 94년 발표한 연주곡으로 크리스
마스 시즌에 발표되어 이후 꾸준히 애청되고 있는 연주곡. 케니 지는 이 연주곡이
담긴 앨범으로 국내에서 2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음.

22. Winter Wonderland / Anne Murray
눈내리는 하얀 겨울의 낭만을 그린 이 노래는 50년대 스탠더드넘버로 이후 많
은 가수들이 겨울과 크리스마스 시즌때 많이 불렀던 곡. 국내에서는 팻 분과 앤
머레이의 노래로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음.

23. Christmas Song / Celine Dion The
이 노래는 재즈 보컬의 한 획을 그었던 멜 토메가 1946년 발표한 곡으로 크리
스마스의 정경을 아름답게 그린 캐롤송의 명곡. 1950년 냇 킹 콜이 노래해서 잘
알려진 이 노래는 이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는데, 오늘은 캐나다 출신의 최
고의 여가수 셀린 디온이 다심금 노래로 준비했음.

24. When A Child Is Born / Johnny Mathis
영화 '나자리노' 주제가로 잘 알려진 이 노래는 70년대 남성가수 '마이클 홈'
의 노래로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 아기의 신성한 탄생을 그린 이 노래는 70년대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캐롤과 함께 많이 애청됐던 곡.
국내에서는 마이클 홈과 자니 마티스, 보니 엠의 노래로 큰 인기.

25. Macarena Christmas / Los Del Rio
지난 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페인 출신의 남성 듀오 '로스 델 리오'가
Macarena를 새롭게 편곡해서 크리스마스 시즌때 선보인 노래.

26. Jingle Bell Rock / Bobby Helms
미국출신의 남성가수 바비 헬름스가 1957년 발표한 노래로 당시 인기차트 6위
까지 올랐던 곡. 이 노래는 59년만 빼고 1962년까지 매해 12월마다 차트에 재진입
하는 히트를 기록, 이후 캐롤송의 대표적인 곡으로 큰 인기.

27. Away In A Manger / Tommy Wynette
독일출신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작시한 이 노래는 중세시대부터 널리 불
리워졌던 캐롤의 대표적인 곡. 예수의 탄생을 신성하게 그린 이 노래는 '그 어리
신 예수'로 번역되어 국내에서도 널리 애창되고 있음.
국내에서는 비엔나 소년합창단과 존 바에즈, 타미 와이넷의 노래로 잘 알려졌음.

28. O Tannen Baum / Vienna Boy's Choir
바로크시대 이전부터 구전되어 온 이 노래는 민요에 신앙적인 가사를 붙인 캐
롤의 대표적인 노래. 국내에서는 파리나무 십자가 합창단과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노래로 잘 알려진 곡.

29. Amazing Grace / Judy Collins
미국출신의 여성 포크 싱어 주디 콜린스의 1971년 발표작으로 당시 차트 15위
까지 올랐던 노래. 1779년 존 뉴튼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이후 찬송가로 소개
되어 널리 불려지고 있는 곡.

30. Carol Of The Bells / David Foster
캐나다 출신의 최고의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데이빗 포스터가 1994년 창작한
노래. 이 곡은 데이빗 포스터의 피아노 연주와 웅장한 키보드 오케스트라가 함께
어우러져 94년 이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널리 애청되고 있음.

31. It's Christmas C'est Noel / Jordy
프랑스 출신의 4 살배기 가수 조르디가 1994년 크리스마스 시?除?발표한 곡
으로 어린아기 눈으로 본 크리스마스 세계를 깜찍하고 맑은 언어와 목소리로 노래.

32. God Rest Ye Merry Gentle Men / Take 6
영원한 캐롤의 고전인 이 노래는 크리스마스 때면 늘 불려지고 있는 곡.
이 노래는 캐롤의 대명사 빙 크로스비,팻 분의 곡으로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오늘은 R&B의 새로운 강자로 부각한 6인조 남성 중창단 Take 6의 곡으로
준비했음.

33. Come All Ye Faithful / Vic Damone
어빙 벌린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빙 크로스비가 노래해서 잘 알려진 캐롤의
대표적인 곡. 캐롤송으로는 이색적으로 차트에 올랐던 이 노래는 크리스마스 때면
늘 소개되는 노래.

34.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 Manhattan Transfer
1943년 휴 마틴과 랄프 블레인이 공동으로 만든 작품으로 영화배우 주디 갈란
드가 1944년 노래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발라드 풍의 노래. '당신도 즐겁고 멋진
크리스마스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가사가 주는 분위기 탓에 이후 크리스마스
캐롤로 꾸준히 불려지고 있음.

35.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 Harry Connick Jr.
1940년대 말에 발표된 스탠더드 곡으로 빙 크로스비, 팻 분, 냇킹 콜 등의 노
래로 잘 알려진 노래.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의 아름풍경을 노래한 이 곡은 하얀
크리스마스를 그리며 널리 애창되어온 캐롤의 대표적인 노래. 오늘은 국내에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는 재즈 뮤지션 해리 코닉 주니어의 멋진 노래로 준비했음.

36. Merry Christmas Baby / Bruce Springsteen
즐겁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를 그린 이 노래는 미국출신 록계의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80년대 말 크리스마스 시즌 때 노래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창작곡.

37. Ave Maria / Luciano Pavarotti
낭만파 시대를 대표했던 슈베르트의 작품으로 많은 성악가와 팝가수들이 노래
했던 클래식의 고전.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곡은 특히 크리
스마스 시즌 때 널리 불리고 있음.

38. This Time Of Year / Brook Benton
미국출신의 흑인 남성 가수 브룩 벤튼이 60년대 초에 발표한 창작곡으로 겨울
과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애청되고 있는 노래. 가스펠 풍의 이 노래는 브룩 벤
튼의 중후한 바리톤 창법이 일품.

39. Christmas Time / Backstreet Boys
뉴욕출신의 남성 5인조 틴 에이저 그룹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올해 발표작으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그린 경쾌한 분위기의 창작곡.

40. You Make It Feel Like Christmas / Neil Diamond
60년대 말과 70년를 대표했던 뉴욕 출신의 남성가수 닐 다이아몬드가 발표한
창작곡으로 70년대 중반에 소개되어 꾸준히 애청되고 있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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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금태양의 세상읽기,통찰력큰사람,지식위지혜실천,과학이종교,무소유가행복,영물인김범,자유정의사랑,파워블로거,풍류선비,올마운틴MTB라이더,대금태양,웹제작 웹디자인 웹마케팅 웹기획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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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중심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거대한 비눗방울형태 에너지 발견, 과학자들 의견 분분 2010년 11월 22일(월)

최근 우리 은하(Milky Way Galaxy)에서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포착됐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10일 기사에서 미 항공우주국(NASA)의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을 통해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서 두 개의 거대한 비눗방울 형태의 에너지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은하를 측면에서 바라 봤을 때, 이 두 개의 커다란 비눗방울 구조는 은하 중심부근에 서로 대칭된 모습으로 위치해 있다. 관련 학자들은 이 방울의 전체 규모가 은하의 위아래로 약 2만5천광년씩 전체 5만광년까지 퍼져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은하 전체의 규모와 맞먹는 것이다. 이 비눗방울 구조들은 약 10만개의 초신성 폭발과 맞먹는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거대하고 엄청난 에너지 덩어리의 근원이 무엇인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은하의 중심에서 별들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으로부터 나온 에너지 또는 은하 중심에 위치할 것이라 여겨지는 초거대블랙홀로부터 왔다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프린스턴대의 데이빗 스퍼겔 천문학박사는 “우린 우리은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형태의 에너지는 여태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말했다.

▲ 이번에 발견한 두개의 비눗방울형태의 에너지.  ⓒR. Hurt

거대 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인가

본지에 실렸던 암흑물질에 대한 기사(우주 암흑물질, 베일 벗을까)에서도 밝혔듯 사실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전체의 5~10%정도에 불과하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해 관측이 힘든 블랙홀은 물론 아직 그 정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암흑물질들이 나머지 90%정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번에 발견된 이 에너지 덩어리의 정체가 암흑물질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암흑물질이 보이는 에너지 분출 형태와는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 근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사실 이런 에너지의 형태가 존재할 것이란 추측은 있었다. 그 장본인은 이번 발견을 한 팀을 이끈 하버드 스미소니언 우주물리학 센터의 더그 핑크베이너 박사. 1년 전, 그레고리 도블러가 이끌던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에 위치한 카블리 이론물리학연구소의 일원이었던 핑크베이너 박사는 당시 불명확한 에너지의 존재에 대해 예측한 바 있다.

감마선 관측으로 인해 얻은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우리은하 중심부근에서 고에너지 입자들이 이루고 있는 안개군의 존재를 식별해 낸 것이다. 핑크베이너 박사와 그 동료들은 처음에 이것을 암흑물질로부터 나타난 현상이라 추측했다. 암흑물질들은 그들의 반물질과 반응해 쌍소멸하며 그 에너지를 감마선의 형태로 분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은하의 중심인 은하핵은 초거대블랙홀과 수많은 항성들, 강하게 회전하는 펄서(pulsar)등이 뭉쳐져 고에너지 현상이 일어나는 본거지이기에 이런 현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하지 못한 것이 있다. 지금까지의 이론에 따르면 암흑물질로부터 분출되는 에너지는 이번에 발견된 비눗방울 형태가 아닌 뾰족한 우물의 형태로 더 날카로운 모습을 띠고 있어야 한다는 것.

고밀도의 은하핵, 그 중심은 어떤 모습일까

▲ 밤하늘을 통해 본 우리 은하의 중심부  ⓒ2MASS/G. Kopan
이에 발견된 에너지가 암흑물질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은하 중심부에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초거대블랙홀로부터 발생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다가 초거대블랙홀은 은하의 전체적인 형태를 유지하는 에너지원이며 은하의 탄생 자체에 기원이 됐을 거란 추측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름밤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은하수만 유심히 관찰하더라도 은하의 중심부가 매우 밝고 많은 천체들이 높은 밀도로 뭉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계가 우리은하의 가장자리 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천체가 많은 은하의 중심 부분이 밤하늘에 밝게 보이는 것이다.

은하의 중심에 위치한 초거대블랙홀 궁수자리A의 1파섹(3.26광년) 범위 내에는 수천 개의 항성들이 있다. 은하 중심부의 초거대블랙홀은 이런 천체들을 위협하며 역동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파괴와 탄생의 주역, 초거대블랙홀

블랙홀이 발견된 이래 많은 연구와 관측 등을 통해 거의 모든 은하의 중심부에는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부터 수억 배에 달하는 초거대블랙홀이 있다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블랙홀이 단순히 모든 것을 빨아들어 파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의견이다.

블랙홀은 주변의 천체들을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퍼져나간 성간물질들이 항성이나 성운과 같은 천체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 엄청난 질량의 초거대블랙홀이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은하의 형태를 유지하는 에너지원이라고 보기도 한다. 게다가 블랙홀로부터 은하가 만들어 졌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에 발견된 거대한 에너지가 이 초거대블랙홀로부터 발생했다고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초거대 블랙홀을 비롯해 수많은 천체들이 밀집돼 있는 은하핵에서는 이만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엄청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다시금 짐작하게 해 준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신의 소설 ‘타나토노트’에서 생명체에 영혼이 존재하고 죽음에 이르면 그 영혼들이 은하 중심의 초거대블랙홀로 모였다가 환생을 할 준비를 한다는 내용을 썼다. 은하에서 일어나는 소멸과 창조의 중심에 블랙홀이 있다는 데에서 영혼이 존재한다면 매우 그럴싸한 이야기인 듯싶다.

▲ 블랙홀이 항성을 흡수하는 상상도.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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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양 金太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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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첫 눈이 내린 곳이 있는가 하면, 스키장도 벌써 개장을 했다. 드디어 집 안에 넣어둔 난방 기기들을 하나씩 꺼낼 때가 왔다. 그런데 난방기를 사용하면서 전기요금은 얼마나 나올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난방기기를 중심으로 대략적인 월간 소비전력을 살펴본다.

가전 제품의 전기 사용량 계산은 '제품의 소비전력 x 하루 당 사용 시간 x 날짜' 공식을 사용하면 된다. 단, 일반 가정용 전기료는 모든 제품의 사용량을 합산한 총 사용량에 따라 책정이 된다. 또한 전기요금은 전력 소비량이 많을수록 누진율이 적용되니 유의해야 한다.


< 주택용 전력(저압) 요금산정 기준 표, 출처:한국전력 >

예를 들어 주택용 전력의 경우, 200kWh나 300kWh 초과 때마다 기본 요금과 전략량 요금이 크게 늘기 시작한다. 전기라는 것은 전혀 사용치 않고 살 수 없기에, 일반 가정에서는 300kWh를 월간 전기사용량 상한선으로 설정, 많은 금액이 나오지 않도록 유의하곤 한다.

더 자세한 전기 소비량 별 요금은 한국전력의 홈페이지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 관련 내용 바로보러 가기

전기히터 소비전력, 얼마나 되나?

겨울 시즌, 가장 대중적인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전기히터의 소비전력은 얼마나 될까? 다나와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3종을 분석해 보았다.

히트제품 3종 비교 분석

나산전기 NS-7300 : 44,310 원

나산전기의 NS-7300은 외형 디자인이 독특한 제품이다. 전기 난로임에도 예전 사용하던 가스/기름 난로를 닮은 복고풍 디자인을 사용했다. 히터가 넘어지면 자동으로 전기가 차단되는 전도 안전 스위치를 제품 하단에 부착, 화재를 예방하고 있다. 조작기에는 꺼짐/약/강 모드로 표시되어 있지만, NS-7300의 소비전력은 열의 세기에 따라 0.6Kw와 1.2Kw로 나뉜다. 월간 소비전력은 약한 세기(0.6Kw)로 사용할 때 0.6Kw x 5(시간) x 30 = 90kWh이며, 강한 세기(1.2Kw)라면 1.2Kw x 5(시간) x 30 = 180kWh다.

신일산업 SEH-C96 : 38,870 원

신일산업의 SEH-C96은 선풍기 형 전기히터다. 이 제품은 일반 선풍기의 기능과 비슷한 30분 단위 최대 180분의 타이머, 강약 조절, 회전 등을 지원한다. 소비전력은 0.9Kw다. 이 제품을 하루 5시간, 30일 사용한다면 월간 소비전력은 0.9Kw x 5 x 30 = 135kWh다.

마이프랜드 MFH-1408C : 24,300 원

마이프렌드의 MFH-1408C는 신일산업 SEH-C96과 같은 선풍기형 전기 히터다. 최대 120분까지 타이머를 설정할 수 있고, 회전 기능, 강/약 조절 등이 가능하다. 기본 소비전력은 0.9Kw로 신일 산업 제품과 같다. 월간 소비전력도 SEH-C96과 같은 135kWh다.

일반 가정이 월간 전기 사용량을 300kWh로 상한선을 긋고 있음을 감안하면, 전기 히터 단독 소비전력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전기히터, 6평형 벽걸이 에어컨보다 소비전력량 많아

여름 시즌 필수품인 에어컨은 어떨까?

다나와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6평형 벽걸이 에어컨의 소비전력을 조사해 보니, 평균 0.65Kw 내외였다. 전기히터가 0.9Kw니 에어컨 대비 소비전력이 약 38%p 더 많다. 동일 시간 전기히터와 6평형 벽걸이 에어컨을 한달 간 가동시킨다면, 전기히터는 135kWh, 6평형 에어컨은 97.5kWh의 월간 소비전력을 기록하는 셈이다. 월간 소비전력 300Kwh를 기준으로 감안하면 에어컨 사용에 따른 부담이 전기히터보다 더 적다.

온풍기 소비전력, 얼마나 되나?

전기히터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온풍기의 소비 전력은 얼마나 될까?

히트제품 3종 비교 분석

위닉스 PTC-9100 : 153,000 원

9평형 실내를 따듯하게 사용하는데 이용될 수 있는 위닉스 PTC-9100은 스탠드형 모델로, 2단 온도 조절 기능, 바퀴를 활용한 편리한 이동, 4시간 타이머, 항균 필터 채택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었다. 소비전력은 3Kw로 전기히터보다 소비량이 많다. 이 제품을 하루 5시간, 30일 사용한다면 월간 소비전력은 3Kw x 5 x 30 = 450kWh다.

위닉스 PTC-7600 : 130,500 원

9평 공간에 최적인 위닉스의 PTC-7600은 스탠드형 디자인의 제품으로, 앞서 소개한 PTC-9100보다 가격이 저렴한 제품이다. 2단 온도 제어 기능, 바퀴를 통한 편리한 이동 기능, 4시간 타이머 조절 가능 등 편의를 제공한다. 제품 소비 전력은 3Kw로 PTC-9100과 같다. 이 제품을 하루 5시간, 30일 사용한다면 월간 소비전력은 3Kw x 5 x 30 = 450kWh다.

한일전기 HEF-3050 : 75,770 원

전기온풍기 인기순위 3위를 달리고 있는 한일전기 HEF-3050도 앞서 소개한 두 제품과 동일한 소비전력 3Kw급 제품이다. 스탠드형이며, 2단 온도조절, 다각 입체 풍향 등 편리한 부분을 갖추고 있다. 이 제품을 하루 5시간, 30일 사용한다면 월간 소비전력은 3Kw x 5 x 30 = 450kWh다.

온풍기 소비전력은 9~10평형 벽걸이형 에어컨보다 많아

온풍기의 소비전력인 3Kw는 9~10평형 벽걸이형 에어컨의 1Kw(9평형)~1.65Kw(10평형)보다 2배 이상 많다. 한달 간 하루 5시간, 온풍기와 10평형 에어컨을 각각 구동시킨다고 가정하면, 온풍기의 월간 소비전력은 450kWh 수준이지만 에어컨은 247.5kWh다. 누진세를 감안하면 온풍기의 소비전력은 전기요금 상승에 치명적일 수 있다.

1인용 전기장판 소비전력, 얼마나 되나?

그렇다면 전기 장판의 소비 전력은 얼마나 될까?

히트제품 2종 비교 분석

일월 2011년형 뉴숯황토방매트 (싱글(1인용)) : 44,900 원

1인용 매트인 일월 뉴 숯 황토방 매트는 15시간 이상 연속 사용 시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며 동시에 온도가 떨어질 때 자동으로 켜지는 슈퍼마이콤 조절기가 내장되어 있다. 소비전력은 180W로 다른 전열기의 전기 사용량보다 월등히 적다. 하루 5시간, 30일간 사용할 경우 월간 소비전력은 0.18Kw x 5 x 30 = 27kWh에 불과하다.

일월 2011년형 나노륨 온돌마루카페트 매트 (특대형(4~5인용)) : 103,200 원 

4~5인용 제품인 일월 2011년형 나노륨 온돌마루카페트 매트는 나뭇결 무늬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어 집안의 다른 용품들과 잘 어울린다. 취침 모드 적용 시 사람의 체온에 알맞은 온도를 유지시켜 주어 쾌적한 숙면을 유도한다. 제품 크기가 큰 만큼, 소비전력은 560W로 1인용 제품 대비 높다. 하루 5시간, 30일간 사용할 경우 월간 소비전력은 0.56Kw x 5 x 30 = 84kWh다. 이 수치는 6평형 에어컨을 동일한 상황 하에 켰을 때보다 낮다.

난방용품, 잘못 사용하면 전기료 폭탄 맞는다

전기료는 한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가전 제품의 전기 사용량을 합산, 매달 1회 청구된다. 청구 금액 기준은 전기를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주택용, 일반용, 산업용, 교육용 등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기준으로 청구된다. 주택용은 1~100kWh, 101~200kWh, 201~300kWh, 301~400kWh 등 사용 구간에 따른 사용료가 다른데, 300kWh 초과 시 청구되는 금액이 이전 구간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가정 내에서 이용하는 제품 중 전기 사용량이 많은 제품 이용 시 유의해야 한다.

에어컨이나 난방 기기 등 계절 가전 제품들은 특성 상 전기 사용량이 TV, 냉장고 등 일반 제품보다 많은데, 사용자들은 전기료가 어느 정도 나올지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 특히 소비전력이 많은 전기히터, 온풍기 등을 이용 시 추위만 고려한 나머지 무분별하게 이용한다면, 다음달 전기료 고지서를 보고 경악할 수 있다.

겨울철의 필수품 난방기기.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중요한 제품이지만 나에게 화살로 돌아올 수 있는 만큼, 실내 적정 온도를 지키며 생활하는 습관으로 요금 폭탄을 피하기 습관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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